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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리셋 오 소위-142화 (142/1,018)

인생 리셋 오 소위! 142화

16장 지고 싶지 않아(4)

“경고! 너 아까부터 손 쓰고 팔꿈치 쓴 거 다 알아. 이제부터 한 번만 더 옐로카드를 받으면 바로 레드카드야. 레드카드가 뭔 줄은 알지! 퇴장당하고 싶지 않으면 제대로 경기를 해라.”

차 중위가 두 가지 색깔의 카드를 슬쩍 보여주었다. 순간 화기중대원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설마하니 군대 축구에 레드카드까지 지참하고 왔을 줄은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그사이 밀려 넘어진 조규식 일병이 절뚝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야, 괜찮아?”

“네. 괜찮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태클이 진짜 높게 들어옵니다.”

“나도 봤어. 저 새끼들 아까부터 공은 안 차고 발만 차고 있어.”

“아무래도 분위기가 싸합니다. 저 녀석들 우리 부상 입히려고 고의로 그러는 것 같습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김일도 상병이 입술을 깨물었다. 중앙에서 볼 배급을 책임지는 그의 입장에서는 공이 가는 족족 거칠게 테클을 걸어대는 화기중대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잠깐만 모여 주십시오.”

작전장교가 화기중대 선수들의 항의를 받는 사이 김일도 상병이 주변의 선수들을 불러 모았다.

“사실 경기 전에 오 소위님께서 말씀하신 것이 있습니다.”

“오 소위님이? 그게 뭔데?”

이근우 병장이 눈을 반짝였다.

“만약에 경기가 험악해지면 전하라고 했던 말이 있습니다.”

“험악해지면? 지금처럼?”

“오 소위님이 이렇게 될 줄 예상하셨다는 겁니까?”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하신 말씀이 뭔데?”

“할리우드 액션입니다.”

“뭐?”

“만에 하나 과한 바디 체크나, 태클이 들어오면 그냥 드러누우라고 하셨습니다. 그것도 심판이 와서 볼 수 있도록 과하게 넘어지고 과하게 소리를 지르라고 합니다.”

“야, 그건 좀 그렇지 않냐?”

“맞아,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지금 심판을 보고 계신 분이 작전장교님 아닙니까. 저분 되게 깐깐하신 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실 융통성은 좀 없어 보이지만 반대로 엄청 공평하시지 않습니까.”

“하긴. 그렇긴 하지. 오늘도 휘슬 엄청 부셨고.”

“그걸 우리가 이용하자는 것입니다. 화기중대가 더럽게 나오면 저희도 그에 맞게 대응하자는 것이죠.”

“그래, 속는 셈 치고 한번 해보자. 이대로 가다간 죽도 밥도 안 될 거 같으니까.”

“오케이! 오 소위님 믿고 한번 해보자!”

1중대원들이 비장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시 경기가 시작되었다.

1중대원들은 서로 약속한 대로 화기중대가 조금만 부딪쳐도 앓아눕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악!”

삐이이익!

그때마다 어김없이 휘슬이 울렸고, 작전 장교가 버럭 소리를 지르며 달려왔다.

“이 자식들! 지금 뭘 하는 거야? 왜 이렇게 태클이 거칠어!”

“원래 군대 축구는 이렇습니다. 너무 깐깐하게 보시는 거 아닙니까?”

“축구면 축구지 군대 축구가 어디 있어? 너 경고야. 말조심해. 알았어?”

“아, 네에. 알겠습니다.”

작전 장교의 적극적 개입에 계속 경기가 끊기자 화기중대 상병 하나가 인상을 쓰며 중얼거렸다.

“거 참 심판 엿같이 보네!”

그런데 그 소리를 또 작전장교가 들어버렸다.

“야, 너 뭐라고 했어?”

“아무 소리도 안했습니다.”

“너 방금 심판 어쩌고 했잖아.”

“아닙니다.”

작전장교가 잠시 상병을 노려보고는 옆에 있는 일병에게 물었다.

“너도 못 들었어?”

“네, 못 들었습니다.”

“이 새끼들이 진짜 날 호구로 보네. 알았어, 너희들 다 각오해라!”

가뜩이나 스포츠 정신을 어기고 멋대로 구는 화기중대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대놓고 심판인 자신을 모욕하니 작전장교의 눈빛이 그 어느 때보다 활활 타올랐다.

다시 경기가 재개되다.

작전 장교의 휘슬에 부담을 느낀 화기중대 선수들이 몸을 사리면서 잠깐 동안 축구다운 플레이가 이어졌다.

그렇게 10분쯤 지났을까.

공을 잡은 김일도 상병이 앞에 있는 이근우 병장을 향해 공을 찔러 넣어줄 때 뒤에서 깊은 태클이 들어왔다.

“으아아악!”

김일도 상병의 비명을 내지르며 바닥에 쓰러졌다. 조심한다고 했는데 설마하니 이런 식으로 뒤에서 달려들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러자 작전장교가 휘슬을 불며 달려왔다.

삐이이익!

차 중위는 볼 것도 없이 옐로카드를 꺼내 들었다. 그러자 태클을 건 화기중대 상병이 놀란 눈으로 물었다.

“뭡니까?”

“보면 몰라? 옐로카드! 너 한 번만 더 옐로카드 받으면 퇴장이야.”

그러자 옐로카드를 받은 상병이 어이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아씨! 무슨 군대 축구에서 옐로카드야. 진짜 어이없네!”

하지만 작전 장교는 눈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자신의 명령을 대놓고 무시하는 화기중대 선수들에게 본때를 보여주듯 1중대 선수들이 넘어지기만 해도 곧바로 카드를 빼 들었다.

삐이이익!

“경고!”

삐이익!

“경고!”

작전 장교의 옐로카드가 쉴 새 없이 튀어나왔다.

그리고 전반전 10분을 남겨둔 시점에 기어코 사달이 났다.

“으아아악!”

거친 태클과 함께 이근우 병장이 쓰러지고

삐이이익!

“경고!”

작전 장교의 포켓에서 어김없이 옐로카드가 나왔다.

“하아. 진짜.”

경고를 받은 화기중대 일병은 그러려니 하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때 작전장교의 단호한 음성이 들려왔다.

“기다려!”

“……?”

“너 퇴장이야!”

“네?”

일병이 몸을 돌렸다. 잠깐 사이에 작전 장교의 손에 들린 카드가 노란색에서 빨간색으로 바뀌어 있었다.

“제가 퇴장이라뇨! 이유가 뭡니까?”

“너, 십오 분 전에 옐로카드 받았잖아! 두 개 받으면 퇴장인 거 몰라?”

“저 아닙니다. 저 경고 받은 적 없습니다.”

“이게 어디서 거짓말을 해? 내가 그것 하나 체크 안 했을 줄 알았어? 어서 나가!”

“이건 말도 안 됩니다.”

설마 정말로 퇴장을 당할 줄은 몰랐던 것일까. 일병이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작전 장교는 단호했다.

“뭐가 말이 안 돼! 내가 미리 경고했지? 적당히 하라고!”

“이게 무슨…….”

억울한 듯 주먹을 움켜쥐던 녀석은 고개를 떨군 채 연병장을 나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화기중대장이 어이없어하며 말했다.

“뭐야 저 새끼! 지금 뭘 준 거야?”

“레드카드입니다. 퇴장이라는데요.”

“뭐? 저 새끼가 돌았나!”

화기중대장이 눈을 부라리며 연병장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때 화기중대장 앞을 막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김철환 1중대장이었다.

“화기 중대장. 지금 뭐 하는 건가?”

“아니, 지금 축구를…….”

“축구가 왜? 파울을 했으니 당연히 경고를 받는 것이고, 그 정도에 따라 심하면 옐로카드를 줄 수 있는 거지. 게다가 자네는 축구 규칙도 모르나. 옐로카드 두 장이면 바로 퇴장인 거!”

“그게 아니라, 군대 축구에 무슨…….”

“군대 축구는 축구 아니야? 군대 축구에서는 발로 차도 되고, 주먹을 써도 돼? 우리 애들은 뭐 그걸 할 줄 몰라서 참고 있는 줄 알아!”

김철환 1중대장이 눈을 부라리며 화기중대장에게 말했다. 딱 봐도 화기중대 선수들이 고의적으로 1중대 선수들을 걷어차고 있는데 김철환 1중대장도 화가 나지 않을 리 없었다.

“1중대장님 그게 아니라…….”

“그게 아니면 뭐? 다 같이 전투 축구 해볼까? 다 같이 병원 신세 져 봐?”

김철환 1중대장이 사나운 얼굴로 말했다. 그러자 화기중대장이 냉큼 꼬리를 말았다.

“1중대장님. 진정하십시오. 무슨 얘기를 또 그렇게 섭섭하게 하십니까.”

“그러니까 잠자코 경기나 지켜보라고. 축구는 선수들이 하는 거고, 판정은 심판이 하는 거 아냐? 그러니 가만히 앉아 있어.”

“알겠습니다.”

화기중대장이 뒤로 물러나고, 김철환 1중대장 역시 자신의 자리로 갔다.

화기중대장이 도로 자리에 앉으며 중얼거렸다.

“아이 씨, 뭐야. 도대체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이제 어떻게 합니까?”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해? 한 명 빠진다고 축구 못 해?”

“계속 작전대로 할까요?”

“그럼. 작전대로 해야지. 이제 와서 몸 사려봐. 1중대장이 날 얼마나 우습게 알겠어?”

한 명이 퇴장당하면서 수적인 열세에 몰렸지만 화기중대의 작전은 달라지지 않았다.

화기중대 선수들의 거친 태클은 계속 이어졌고 그때마다 1중대원들은 보란 듯이 쓰러졌다.

그럼 작전 장교가 기다렸다는 듯이 달려와 옐로카드를 꺼냈다.

그러자 화기중대 선수들이 1중대 선수들에게 화를 내기 시작했다.

“야, 엄살 피우지 마!”

“진짜 아픕니다.”

“이 새끼가 진짜…….”

“야, 너 뭐야?”

이근우 병장이 나섰다. 그러자 화기중대 상병 하나가 인상을 썼다.

“방금 살살 부딪쳤는데도 아프다고 넘어지지 않았습니까?”

“야, 새끼들아! 너희들 눈에는 이게 살살 한 거냐? 여기 보이지, 상처 난 거? 너희들이 그만큼 거칠게 하는 거야. 살살 좀 하자! 자꾸 이러면 우리도 가만히 있지 않아.”

이근우 병장의 한마디에 화기중대 상병이 눈살을 찌푸리며 물러났다. 아무리 다른 중대라 해도 말년 병장의 짬밥에는 토를 달지 못했다.

그런 녀석을 붙잡고 작전장교가 어김없이 레드카드를 꺼냈다.

“저, 저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이 자식이 누굴 호구로 아나. 너 아까 저기서 경고받았잖아!”

“아닙니다! 저 아닙니다!”

“너 오늘 축구 끝나고 제대하냐?”

“……네?”

“이 자식들이 왜 이렇게 겁이 없지? 군 생활 오늘로 끝나? 그래?”

“아, 아닙니다.”

거듭된 파울로 경기가 지연되면서 양측의 합의에 따라 후반전은 휴식 시간 없이 바로 진행됐는데 후반전 초반까지 무려 4명의 퇴장이 나왔다.

“야, 뭐야? 애들 다 어디 갔어?”

“다 퇴장을 당했습니다.”

“하아, 시팔. 이래서는 안 되겠다. 다들 수비에 집중해. 1중대에게 한 골도 넣게 하지 마.”

“네!”

뒤늦게 중과부적임을 알게 된 화기중대 선수들은 자발적으로 작전을 바꿔 수비로 돌아섰다. 전부 다 경고를 받았다 보니 거친 태클도 없었다. 오직 공을 넣지 못하게 수비만 했다.

하지만 1중대 선수들도 쉽게 화기중대 진영으로 넘어가지 못했다. 화기중대 선수들의 옐로카드가 쌓인 것의 몇 배로 넘어지고 채이면서 자신도 모르게 몸을 사리게 됐기 때문이다.

그렇게 후반전 15분을 남긴 시점까지 1중대와 화기중대는 득점 없이 0 대 0을 유지했다.

“야, 김일도! 이제 어떻게 해야 하냐?”

이근우 병장이 초조한 얼굴로 말했다.

명색이 1중대 최고의 스트라이커인데 슈팅은커녕 제대로 공도 잡아보지 못하고 있으니 화가 나는 모양이었다.

그러자 김일도 상병이 잠시 생각을 하더니 말했다.

“이 병장님.”

“왜?”

“적 진영에서 좀 놀아보십시오.”

“내가?”

“네, 저 녀석들 한 명만 더 퇴장을 당하면 몰수패를 당하게 됩니다.”

“몰수패? 그런 게 있어?”

“원래 축구는 5명 이상 퇴장당하면 경기를 못 하는 거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 규정을 이용해서 경기를 끝내자고?”

“무리해서 공격 시도하는 것보다 그편이 좀 더 낫지 않겠습니까? 지금까지 당해준 것도 갚아주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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