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생 리셋 오 소위-136화 (136/1,018)

인생 리셋 오 소위! 136화

15장 전투체육을 아는가(21)

“야야, 손 쓰면 반칙이야.”

“그건 심판이 정하는 거지 말입니다.”

“박 하사! 이리 와서 심판 좀 봐요!”

“에이. 경기 중에 심판 집어넣는 건 좀 아니지 말입니다.”

그렇게 오상진을 재물 삼아 선수들은 모처럼 웃고 떠들며 훈련에 임했다.

그 모습을 보며 오상진도 씩 웃고 말았다.

‘그래, 나 하나로 너희들이 즐겁다면 소대장은 만족한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신세였지만 오상진도 딱히 기분 나빠 하지 않았다.

솔직히 소대장의 권위를 앞세우면 선수들도 몸을 사렸겠지만 그래 봐야 괜히 스트레스만 줄 뿐이었다.

“야! 비켜! 비키라고!”

“안 비킵니다! 자신 있으면 뚫어 보십시오!”

“야 인마! 나 소대장이야! 자꾸 이럴 거야?”

“제 앞에 계시는 분은 소대장님이 아니라 적입니다. 아까 하신 말씀 잊으셨습니까?”

일부러 악역을 자처하며 한 시간가량 공을 찬 후 오상진이 털썩 자리에 주저앉았다.

“야, 목마르다.”

그러자 박가람 일병이 일어나 물을 가져왔다. 오상진이 그것을 보고 환하게 웃었다.

“그래, 고맙다. 그보다 오늘도 열심히 훈련했으니 소대장이 한턱내려고 하는데 너희들 뭐 먹고 싶은 거 없냐?”

오상진의 한마디에 다들 눈빛이 초롱초롱해졌다.

“저는 시원한 맥주 하나 먹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팥빙수!”

각자 먹고 싶은 메뉴들을 불렀다. 오상진이 메뉴를 다 듣고 난 후 말했다.

“이놈들아. 아무리 그래도 맥주나 팥빙수는 힘들지. 그러지 말고 얼음 둥둥 떠 있는 시원한 콩국수는 어때?”

“오오, 콩국수 좋죠.”

“괜찮습니다.”

“고소한 콩을 갈아서 시원하게 쭉 마시면, 크~ 환상이죠.”

오상진이 잠깐 생각을 하더니 휴대폰을 꺼냈다.

“잠깐 기다려 봐라.”

오상진은 곧바로 김철환 1중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충성! 1소대장입니다.”

-어, 그래? 왜?

“다름이 아니라 오늘 간식으로 콩국수 해 먹으면 안 됩니까?”

-콩국수? 야, 그거 얼마나 귀찮은데……. 취사병 애들 엄청 싫어할 텐데 그걸 먹자고 그러냐.

“어렵겠습니까?”

-흠……. 왜? 혹시 축구팀 애들이 먹고 싶대?

“네. 날도 덥고 땀을 좀 많이 흘려서 그런지 콩국수가 당기나 봅니다.”

먼저 말을 꺼낸 건 오상진이지만 축구팀에 사활을 건 김철환 1중대장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축구팀을 파는 게 나았다.

-하아. 네가 그렇게 말하니까, 중대장도 먹고 싶네. 그냥 시켜 먹으면 안 되나?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저희끼리 어떻게 먹습니까? 가능하면 우리 1중대도 같이 먹었으면 합니다.”

-아무튼 오지랖하고는. 알겠다. 그럼 중대 행보관에게 말해봐. 중대장이 허락했다고 하고

“네, 알겠습니다.”

오상진이 전화를 끊고는 곧바로 중대 행보관 김도진 중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이구, 오 소위님 무슨 일이십니까?

“김 중사님. 별일 없으시죠?”

-저야 늘 무소식이 희소식 아닙니까? 그런데 별일은 오 소위님이 있으신 거 같은데 아닙니까?

“역시 귀신이십니다. 실은 부탁이 있어서 전화 드렸습니다.”

-부탁이라. 혹시 날이 더워서 뭐 좀 해 먹고 싶어서 그런 겁니까?

“어? 어떻게 아셨습니까?”

-이맘때 되면 이리저리 전화가 많이 옵니다. 솔직히 내가 다른 소대장이 이런 부탁을 하면 말도 안 된다고 단칼에 잘랐을 텐데. 우리 오 소위님 부탁은 들어드려야죠. 말해 보십시오. 뭐가 필요합니까?

“다들 콩국수를 먹고 싶어 합니다.”

-콩국수? 와, 말만 들어도 고소한 맛이 느껴집니다. 그렇지 않아도 부대에 밀가루가 남아도는데…….

“그렇습니까?”

-네. 좀 묵은 게 많아서 어찌 처리할까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봐서 주말에 수제비를 만들 생각이었는데 생각난 김에 콩국수 해 먹으면 되겠습니다.

“아, 감사합니다.”

-감사는 넣어두십시오. 그런데 중대장님은 허락하신 거죠?

“물론입니다. 먼저 중대장님께 허락받고 연락 드린 겁니다.”

-역시 오 소위님이십니다. 나더러 중대장님 설득해 달라는 소대장도 있는데 그 누군가에 비하면 우리 오 소위님은 양반이십니다.

“하하. 말씀만 들어도 누군지 짐작이 됩니다.”

-쉿. 그건 우리 둘 만의 비밀로 하죠. 아무튼 제가 한번 준비해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행보관님. 혹시라도 따로 필요하신 게 있으시면 말씀해 주십시오. 제가 냉큼 가서 사 오겠습니다.”

-크으, 내가 이래서 오 소위님 좋아합니다. 일단 제가 취사장에 가서 확인한 후 필요한 것은 문자로 찍어 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김 중사님 부탁드립니다.”

-네.

오상진이 전화를 끊고 애들을 향해 말했다.

“야, 오늘 콩국수 먹겠다.”

“와아아아! 진짜입니까?”

“이야, 군대에서 콩국수라니…….”

“이거 실화입니까?”

“진짜 먹을 수 있을 줄이야.”

“우리 소대장님 진짜 능력자입니다.”

중대원들 모두 오상진을 추켜세웠다. 오상진이 히죽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김 중사로부터 문자가 날아왔다.

-콩물을 만들 콩이 좀 부족합니다. 그리고 인원도 조금 부족할 것 같은데 축구 하는 인원 중에 몇 명만 뽑아서 취사장으로 지원 부탁드립니다.

-네, 알겠습니다.

오상진이 곧바로 답장을 보낸 후 중대원들을 보았다.

“취사장 지원 갈 사람.”

그러자 눈치 빠른 일병들이 손을 들었다. 상병 이상 고참들은 보내봐야 짐만 될 뿐이라 오상진이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우리가 말 꺼냈으니 제대로 돕고 맛있게 먹자.”

“네.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가 봐라.”

일병들이 일어나 취사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남은 인원을 보며 오상진이 말했다.

“그럼 콩국수가 되는 동안 한 게임 더 콜?”

“네, 좋습니다.”

중대원들이 다시 일어나 축구를 하려 했다. 오상진도 다시 가려는데 김도진 상사에게 재차 문자가 왔다.

-나중에 취사병들 고생했다고 한마디씩 해달라고 해주십시오. 특별식인데 쉬지도 못하고 짬 내서 만드는 겁니다.

-네네, 알겠습니다. 제가 취사병들 따로 챙기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이렇게 문자를 주고받은 후 오상진은 공을 차는 중대원들 사이로 뛰어들어갔다.

“야, 여기로 패스해!”

그렇게 오상진은 중대원들과 함께 또 어울렸다.

19.

후루루룩!

후룩!

콩물 국수 면발을 빨아 재끼는 소리가 이곳저곳에서 울려 퍼졌다.

병사 식당에는 1중대가 모여 맛있게 콩국수를 먹고 있었다.

한여름의 별미이긴 하지만 만드는 게 귀찮아 대부분 시켜 먹기 때문일까.

다들 생각지도 못한 콩물 국수에 푹 빠져들었다.

“우와, 진짜 맛있습니다.”

“농담 아니고 우리 집 앞에 있는 중국집보다 백만 배는 맛있다.”

“야, 너 다 먹을 거냐?”

“이병 최대식. 제가 콩물 국수를 엄청 좋아하지 말입니다.”

“짜식이. 조금만 덜어 줘 그럼.”

“안 되지 말입니다.”

오상진도 만족스러운 얼굴로 젓가락을 움직였다. 솔직히 제대로 만든 콩국수보다는 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취사병들의 땀과 정성이 들어갔기에 군대에서 먹는 콩국수는 좀 특별했다.

‘이 정도면 감지덕지지.’

오상진은 콩국수를 한 그릇 비운 후 이제 취사장 왕고가 된 구본승 병장에게 갔다. 구본승 병장은 지난달에 병장을 달았다.

“구 병장 오늘 최고였다. 정말 맛있게 잘 먹었다.”

오상진이 구본승 병장에게 엄지손가락을 세우며 말했다. 구본승 병장은 살짝 민망한 얼굴로 말했다.

“말도 마십시오. 저 팔 빠지는 줄 알았습니다.”

“그래, 그래. 고생했다.”

오상진이 구본승 병장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구본승 병장이 슬쩍 콩국수를 바라보더니 입을 뗐다.

“그런데 콩국수를 오 소위님이 부탁했다고 하던데 사실입니까.”

“미안하다. 모처럼 먹고 싶었는데 어떻게 하다 보니 그렇게 됐다.”

“하아. 아무튼 이것 만드느라 진짜 죽는 줄 알았습니다.”

구본승 병장이 곧바로 앓는 소리를 냈다. 오상진이 피식 웃으며 주머니에서 하얀 봉투를 꺼냈다.

“그래서 고생했다고 소대장이 준비했다.”

그 봉투를 받아 든 구본승 병장이 살짝 놀란 눈이 되었다.

“어? 이게 뭡니까?”

“미안해서 주는 거니까 그냥 넣어둬.”

“이, 이거 혹시……?”

“많이는 못 넣었으니까 나중에 애들이랑 치킨이나 시켜 먹어라.”

“아, 원래 이거 받아먹으려고 한 말 아닌데…….”

“알아, 소대장의 마음이야. 넣어둬.”

“감사합니다, 취사반 애들이랑 맛있게 먹겠습니다.”

“그래.”

오상진이 흐뭇하게 웃으며 가려는데 구본승 병장이 다시 불러 세웠다.

“오 소위님.”

“응?”

“다음에 또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그냥 저에게 말씀하십시오. 제가 따로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그럴래?”

“솔직히 10인분이 낫지. 중대원들 다 먹이려면 저희만 죽어납니다.”

“그래, 알았다.”

오상진이 씨익 웃었다. 하지만 다음에 또 뭔가가 먹고 싶더라도 중대원을 몰래 만들어 달라고 할 것 같지는 않았다.

20.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참 빨리 지나갔다.

체육 대회 준비 기간이라 주된 일과가 전투 체육 시간에 축구팀을 관리하는 것이었는데 박중근 하사와 선수들이 워낙 잘해주다 보니 오상진은 딱히 할 게 없었다.

일과 후에는 관사에 남아 축구 동영상을 시청했다.

본래 감독 흉내 좀 내보려고 시작한 공부인데, 하다 보니 의외로 재미가 쏠쏠했다. 때문에 오상진은 수요일 저녁에 김철환 1중대장 집을 찾아가 김세나의 공부를 봐준 걸 빼고는 계속 관사에만 머물렀다.

그리고 금요일 저녁이 되었다.

오상진이 집에 가려고 관사를 나서는데 한소희에게서 전화가 왔다.

“네, 소희 씨.”

-상진 씨 뭐해요?

“지금 집에 가려고 나섰습니다.”

-내일 가는 거 아니었어요?

“오늘 저녁에 가서 어머니랑 얘기할 것이 있었어요.”

-아……. 그렇구나.

수화기 너머 들려오는 한소희의 목소리가 힘이 쭉 빠져 있었다. 뭔가 아쉬움이 가득 묻어나 있었다.

“오늘은 어머니랑 얘기 좀 나누고 내일 오후쯤에 복귀할 거 같은데 혹시 내일 시간 되세요?”

-왜요?

“왜긴 왜겠어요. 소희 씨 보고 싶어서 그렇죠.”

-칫……. 내일 뭐 할 건데요?

“남들 하는 거 하죠.”

-남들 하는 거 뭐요?

“그냥 밥 먹고, 영화 좀 보고…….”

-또 영화 봐요? 나 요즘 보고 싶은 영화 없는데…….

“그럼 우리 간단하게 술 한잔할까요?”

-술이요? 네, 좋아요. 그렇다고 엉큼한 생각 하면 안 돼요.

“에이, 제가 무슨 그런 생각을 한다고 그래요.”

-그럼 안 해요?

“크흠. 그건 노코멘트 하겠습니다. 그럼 내일 다시 통화해요.”

오상진이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한소희는 멋대로 끊긴 휴대폰을 한참 동안 바라봤다.

“그런데 이 남자. 손만 잡고 자랬다고 정말 손만 잡고 자는 그런 남자는 아니겠지?”

불현듯 피어오르는 불안감에 한소희가 부정하듯 고개를 저었다.

한소희와 통화를 마친 오상진은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문을 열고 집에 들어가자 달콤한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엄마 나 왔어요.”

“어, 왔니?”

부엌에서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상진이 곧바로 부엌으로 향했다.

“엄마. 뭘 하시는데 이렇게 냄새가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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