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135화
15장 전투체육을 아는가(20)
담당 의사의 물음에 신순애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뇨, 그런 적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래요?”
담당 의사가 피식 웃었다.
“우리 어머니 일이 진짜 하고 싶었나 보네요. 거짓말까지 다 하시고.”
순간 신순애의 얼굴이 붉어졌다. 담당 의사는 이해한다는 듯 말을 이어갔다.
“수술이 잘 되긴 했지만 솔직히 말씀드려 이렇게 빨리 근력이 회복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보시면 됩니다. 젊은 사람이 운동을 열심히 해도 근력 손실은 피할 수 없어서 잘해야 70~80% 정도 돌아오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게다가 어머니는 최소한의 재활 운동만 하셨기 때문에 지금 당장 일을 하실 만큼 몸이 회복되셨을 가능성은 낮습니다.”
담당 의사의 직접적인 말에 신순애는 살짝 무안했다.
“솔직히 선생님 말씀처럼 완전히 회복되지는 않았어요. 당연히 예전만도 못하죠. 하지만 전 자식 셋을 키우는 엄마예요. 회복을 바라면서 계속 기다릴 수는 없어요.”
“혹시 아드님이 경제적으로 지원해 주시지 않나요?”
“지원이야 해주죠. 하지만 제가 죽을병에 걸린 것도 아닌데 아들에게 계속 부담을 줄 수는 없는 거잖아요.”
담당 의사가 신순애의 말을 듣고 잠시 생각을 하더니 말했다.
“좋습니다. 그럼 이렇게 하시죠. 꾸준히 허리 운동을 하신다는 조건하에 일을 시작하셔도 됩니다. 하지만 너무 무리하시면 안 됩니다.”
허리 수술 이후 가장 좋은 재활은 스트레스받지 않고 푹 쉬면서 제 몸을 돌보는 것이지만 대한민국의 어머니 중에 실제로 그럴 수 있는 사람은 손에 꼽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과하게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본인이 하고 싶어 하는 걸 하게 허락하는 편이 나았다.
“네, 선생님. 감사합니다. 아, 그리고 혹시 우리 아들에게 전화 와서 물어보면 말씀 좀 잘 해주세요.”
“알겠습니다.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네. 그럼.”
신순애가 인사를 하고 진료실을 나갔다. 담당 의사는 신순애가 나간 자리를 잠시 바라봤다.
2주 전에는 아들이 찾아와 어머니가 일을 하지 못하게 해 달라고 부탁하더니 이번에는 어머니가 찾아와 아들의 부담을 줄여줄 수 있게 해 달라고 호소했다.
요즘 같이 각박한 세상에 보기 힘든 훈훈한 모자였다.
“두 모자가 참 좋아 보이네. 어머님도 혼자서 세 자녀를 키우는 거 보면 대단하셔. 이래서 어머니가 위대하다고 하는 건가?”
담당 의사는 잠시 생각을 하더니 핸드폰을 들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네, 어머니! 잘 지내시죠? 아픈 곳은 없으세요? 네, 저야 밥 잘 먹고 다닙니다. 네, 걱정 마세요. 그보다 아버지는…….”
17.
진료비 수납을 마친 신순애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병원을 나섰다. 때마침 오상진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 그래.”
-엄마, 병원 진료 다 끝났어요?
“으응, 방금. 그렇지 않아도 전화하려고 했는데. 의사 선생님이 일해도 된대.”
-네? 벌써요?
“그래! 대신에 운동 꼬박꼬박한다는 조건으로 해도 된다고 했어.”
-엄마, 왜 이렇게 빨리 일을 하려고 하세요. 좀 더 쉬시지. 제가 생활비는 꼬박꼬박 드리잖아요.
어머니가 수술을 받은 이후 오상진은 어머니 통장에 200만 원을 매달 넣어드렸다.
본래는 500만 원쯤 넣어 드리려고 했으나 월급이면 충분하다는 어머니의 단호함에 금액을 낮췄다. 대신 동생들의 용돈을 직접 주면서 어머니가 온전히 생활비를 쓰실 수 있도록 배려했다.
그러다 보니 소위 월급 대부분이 생활비로 나가는 상황이지만 통장에 300억이 넘는 돈이 쌓여 있는 터라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어머니는 신경이 쓰이는 모양이었다.
“그러니까 그러는 거야. 자식에게 생활비 받고 맘 편한 부모가 어디 있니. 솔직히 네가 벌어다 준 돈으로 호의호식하는 거 엄마는 좀 불편해.”
-엄마, 그게 왜 불편해요? 갑자기 서운하려고 그러네. 내가 뭐 주워 온 자식이라도 돼요?
“주워 온 자식이면 맘 편히 쓰지. 이 녀석아. 네가 내 배로 낳은 자식이라서 그러는 거야. 어느 부모가 자식이 벌어다 준 돈을 가지고 팔자 좋게 생활하겠니. 그리고 엄마가 칠십이 됐니 팔십이 됐니? 아직 40대인데 벌써부터 아들 덕 보고 살아야겠니?”
-엄마. 솔직히 내일모레면 50대잖아요.
“50대도 요즘은 한창이지 뭐.”
-그래서 꼭 일을 하셔야겠다는 거죠?
“그래, 더 늦기 전에 일해야지. 여기서 더 게을러졌다간 큰일 날 것 같아.”
-그럼 무슨 일 하시려고요.
“여태까지 해온 일이 식당 일인데. 그 일 해야지.”
-엄마는 무슨 식당 일을 한다고 해요. 허리도 식당을 하면서 안 좋아지셨으면서. 그런데 또 그 일을 하시겠다고요?
“그럼 어떻게 하니. 엄마가 할 수 있는 일이 식당 일이 전부인데.
남편을 여의고 신순애가 가장 먼저 시작한 게 식당일이었다. 큰돈을 벌 수 있는 건 아니었지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일 한 번 해본 적 없는 아줌마를 써 주는 건 식당밖에 없었다.
-그럼 엄마! 전에 제가 말했던 거 기억하시죠?
“뭐?”
-제가 식당 차려 드린다고 했잖아요. 그냥 다른 식당에서 일하지 마시고 이참에 엄마가 직접 식당 하나 차리세요.
“…….”
-엄마? 엄마! 왜 말씀이 없어요.
“……정말, 차려 줄 거야?”
신순애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솔직히 오상진이 차려만 준다면 자신이 직접 가게를 운영해 보고 싶긴 했다.
그런데 오상진이 진짜 가게를 차려 준다고 하니 갑자기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엄마도 참, 가게를 차리고 싶으시면 그냥 편하게 말씀하시지 그걸 꾹 참고 계셨네.’
오상진은 어머니의 반응이 낯설면서도 귀여웠다. 빈말이 아니라 어머니가 원하면 정말로 가게를 차려 드릴 생각이었는데 어머니는 그걸 그냥 해본 말로 들으셨던 모양이었다.
-지난번에 약속했잖아요. 그러니까 엄마가 원하면 엄마가 직접 식당 운영해요.
“정말 그래도 될까?”
-아들이 돈이 있는데 안 될 게 뭐가 있어요? 봐서 제가 이번 주말에 집에 갈 테니까 그때 자세히 얘기해요. 그전까지 어떤 식당을 운영하실지 미리 생각해 보시고요.
“그런데 아들, 돈은 있니? 지난번에 집 산다고 다 쓰지 않았니?”
-엄마, 저 돈 많아요. 이 말까진 안 하려고 했는데 그때 로또 당첨된 통장 다 보여 드린 거 아니에요. 돈 더 있으니까, 엄마 돈 걱정은 하지 마요.
“그러니? 알았다. 그럼 주말에 보자. 밥 잘 먹고.”
-네, 엄마.
오상진은 신순애와의 통화를 끝내고, 곧바로 담당 의사에게 확인 전화를 넣었다.
“안녕하세요, 신순애 씨 보호자 오상진이라고 합니다.”
-아, 네. 아드님이시죠? 그렇지 않아도 전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어머니하고 방금 통화 끝냈는데요. 저희 어머니 정말 일하셔도 괜찮습니까?”
-그전에 실례지만 어머니께서 무슨 일을 하십니까?
“어머니가 그전까지 식당에서 일하셨습니다.”
-아하, 그러셨구나. 그런데 식당에서 무거운 것을 나르고 하면 힘드실 텐데요.
“그럼 선생님. 식당 경영을 하는 건 어떻습니까? 직원들 고용하고 하면요.”
-그 정도는 괜찮습니다. 사장이 무거운 것을 들고 그러지는 않을 거 아닙니까?
“그렇죠.”
-그럼 괜찮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여력 되시면 여기저기 많이 여행 좀 다니라고 하세요. 하루 종일 앉아 있는 것도 허리에 좋지 않습니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네, 무슨 일 생기면 바로 연락 주시고요.
“네.”
오상진이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잠시 생각하더니 또다시 휴대폰을 들었다.
전화 목록에서 부동산 중개인이라고 적힌 것을 확인하고 전화를 걸었다.
-네, 희망 부동산입니다.
“안녕하세요, 배 사장님. 오상진이라고 합니다. 저 기억하세요?”
-아이고! 네! 물론이죠, 고객님!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네. 덕분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 사장님은 잘 지내셨죠?”
-예예,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보다 혹시 집에 무슨 일 있습니까? 아니면 인테리어한 곳에 잘못되기라도 했어요?
“아뇨. 전혀 문제없습니다. 잘살고 있습니다.”
-아, 다행입니다. 그럼…… 무슨 일로?
“다른 게 아니라 저희 어머니께 식당을 하나 차려 드릴까 해서요.”
-식당요? 요새 식당 하시겠다는 분 많네요. 어머니 음식 솜씨가 남다른가 봅니다.
“예. 저희 어머니가 국밥집에서 몇 년간 주방장 겸 참모로 일하셨습니다.”
-아, 그러셨군요. 그럼 충분히 식당을 운영하셔도 되겠습니다. 요새 많이 불경기라고 하지만 사람도 먹고는 살아야 하지 않습니까. 어머니께서 실력이 좋으시면 걱정은 없겠습니다.
“네. 그렇죠.”
-그럼 규모는 대충 어느 정도 생각하십니까?
“그걸 제가 몰라서 연락을 드렸습니다. 저희 어머니가 직원 두세 명 정도 두고 쓸 정도의 크기면 될 것 같은데요.”
오상진이 대략적인 생각을 전했다. 배 사장이 잠시 생각을 하더니 입을 열었다.
-으음, 직원 두세 명을 둘 정도라면……. 주방을 포함해 대충 50평 정도는 봐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100평은 너무 큰 것 같고 말이죠.
“그 정도가 적당한가요?”
-그보다 작은 규모는 보통 부부나 가족들이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참, 직원에 주방 인원이 들어가나요?
“아뇨. 주방 인원은 빼야죠.”
-그럼 홀에 직원을 두세 명 둔다는 이야기인데 그 정도는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어머니랑 상의를 해봐야겠지만 일단은 그 정도 평수로 목 좋은 자리로 한번 알아봐 주시겠습니까?”
-위치는 어디쯤이 좋으십니까? 혹시 집 근처로 생각하십니까?
“네.”
-그 근처에 식당가가 있긴 한데 목이 좋아서 아마 권리금이 꽤 나올 겁니다.
“그래도 기왕 하는 거 장사 잘되는 곳이 낫지 않을까요?”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제 맘이 편합니다. 걱정 마시고, 제가 목 좋은 자리로 알아봐서 연락드리겠습니다.
“네, 부탁합니다.”
오상진은 통화가 끝난 다음에 시계를 확인했다.
13시가 조금 넘긴 시간이었다.
“어이쿠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네.”
오상진은 서둘러 교재를 챙겨서 일어났다.
그리고 정신교육이 실시되는 강당으로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18.
다음 날 오후.
전투 체육 시간이 시작되자 오상진은 오랜만에 축구화와 체육복을 입고 나왔다.
중대원들이 오상진을 보며 한마디씩 했다.
“오오, 1소대장님 체육복으로 환복하셨습니다.”
“뭡니까? 같이 뛰시려고 그러십니까?”
“이야, 제법 어울리십니다.”
소대원들이 오상진을 친구처럼 편하게 대하는 건 여전했지만 예전처럼 악의나 비아냥거림은 없었다. 소대장으로서 최소한의 존중을 잃지 않은 것이다.
오상진도 씩 웃으며 중대원들 앞에 섰다.
“그동안 얼마나 연습을 열심히 했나 소대장이 온몸으로 직접 확인해 볼 생각이니까, 지금 이 순간부터 나를 소대장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한 명의 적으로 생각해라. 알겠나!”
“넵!”
순간 중대원의 입가로 살벌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리고 오상진은 자신이 내뱉은 그 말을 곧 후회했다.
“어이쿠! 야야, 살살해. 이놈의 자식들……. 인마, 이건 반칙이지!”
오상진이 공만 잡으면 선수들이 거칠게 달려들어 발을 걸었다. 심판이 없다는 이유로 대놓고 손까지 써 버리니 모처럼 축구를 하는 오상진이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