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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리셋 오 소위-133화 (133/1,018)

인생 리셋 오 소위! 133화

15장 전투체육을 아는가(18)

“있잖아. 그 드라마.”

“그 드라마?”

“화요일에 오빠 원룸에서 같이 본 드라마!”

잠시 눈을 굴리던 남자가 그 날을 기억하고는 손가락을 튕겼다.

“아, 그 드라마? 그러네. 그때 주인공이 입었던 옷이네.”

“여주인공이랑 데이트할 때 입었던 옷이잖아.”

“맞아. 그랬지? 그런데 저 남자 뻔뻔하다. 어떻게 저 옷을 입을 생각을 했지?”

남자가 코웃음을 쳤다. 저 옷은 분명 드라마를 보며 마음에 들어 했던 옷이었다. 하지만 옷을 검색했을 때 아무나 소화 못 할 거라는 댓글이 많아 포기했었다.

그런데 그 옷을 자신보다 덩치가 큰 사람이 입고 있으니 도저히 못 봐줄 정도였다.

하지만 여자의 생각은 다른 모양이었다.

“왜? 생각보다 잘 어울리는데.”

“야, 드라마 속의 이병진은 저 사람보다 훨씬 괜찮았잖아. 호리호리하고.”

“이병진은 연예인이잖아. 키도 작고.”

“우리 병진이 형 무시하냐?”

“누가 무시한대? 아무튼, 일반인치고는 잘 받는 거 같은데?”

“뭔 소리야. 얼굴에 철판을 깔지 않고는 어떻게 똑같이 입고 나오냐.”

“으이그. 무슨 자격지심 있어? 아까부터 왜 그래?”

“내가 뭘? 아무튼 저런 남자들이 문제라니까.”

자신 때문에 다투기 시작한 커플을 보며 오상진은 쓴웃음을 지었다.

거리가 있어서 모든 대화를 다 들었던 건 아니지만 자신의 패션이 문제인 모양이었다.

“이 옷이 좀 별로인가?”

오상진은 고개를 갸웃하며 팝콘과 음료수를 들고 한소희가 있는 곳으로 갔다.

“이거는 한 대위님 커플 거.”

오상진이 팝콘과 음료수 두 잔을 건넸다. 그리고 한소희에게 가서 말했다.

“이건 소희 씨 겁니다.”

오상진은 한소희에게 한창 유행하던 비타민 음료를 건넸다. 그것을 받은 한소희가 의외라는 듯 오상진을 바라봤다.

“어? 내가 이거 좋아하는 거 어떻게 알았어요?”

“왠지 그럴 것 같아서 사 와봤습니다.”

“칫. 만약에 내가 안 마신다고 했으면요?”

“그럼 제가 마셔야죠. 사 온 걸 버릴 수는 없으니까요.”

“아무튼 못 말린다니까.”

잠시 후 영화관 입장이 시작됐다.

“자, 이제 우리 헤어질 시간입니다.”

한대훈이 짓궂게 웃으며 김소희 중위와 함께 오른쪽 커플석으로 향했다.

오상진과 한소희의 자리는 반대편 끝에 있는 왼쪽 커플석이었다.

“소희 씨가 바깥쪽에 앉아요. 그쪽이 더 잘 보일 테니까.”

“저는 괜찮아요. 솔직히 영화를 엄청 좋아하는 것도 아니라서요.”

“그래도 소희 씨가 밖에 앉아요.”

“그럼 그렇게 할게요.”

오상진이 통로 쪽 자리를 양보하고는 벽 쪽 자리에 앉았다. 그러다 자신의 옷을 살피며 물었다.

“그런데 소희 씨.”

“네?”

“제 옷이 좀 이상한가요?”

“옷이요?”

한소희가 오상진을 위아래로 보더니 피식 웃었다.

“아뇨? 제가 지금까지 본 상진 씨 옷 중에 제일 멋진데요?”

“그래요? 그런데 뭐가 문제지?”

“왜요?”

“아니, 아까 팝콘을 사는데…….”

오상진이 자신을 보고 다투던 커플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러자 한소희가 뭔가 알 것 같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 보니까, 그 옷이네요.”

“그 옷이 뭔가요?”

“드라마 올인에서 이병진이 입고 나온 옷이잖아요.”

“그 카지노 나오는 드라마요?”

“그 드라마 몰라요? 요즘 엄청 인기 있는데?”

“제가 드라마를 잘 안 봐서요. 전혀 몰랐습니다.”

빈말이 아니라 오상진은 드라마를 좋아하지 않았다.

어떤 드라마가 인기 있는지 정도까진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본방 사수를 하는 스타일은 결코 아니었다.

결혼 전에는 진급에 미쳐 사느라 드라마 볼 시간이 없었고 가정을 이룬 다음에는 아내에게 TV를 양보하느라 드라마를 볼 수가 없었다.

물론 아내와 함께 드라마를 시청할 수도 있겠지만 그때는 이미 근엄한 군인 남편의 이미지가 굳어진 터라 차마 용기를 내지 못했다.

‘그래서 소장까지 달고 퇴역하면 아내하고 여행이나 다니려고 했는데…….’

불현듯 자신이 너무 무미건조한 삶을 살았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였다.

“그런데 상진 씨. 드라마도 안 봤다면서 이 옷 누가 골라준 거예요?”

한소희가 눈을 가늘게 떴다.

오상진이 다급히 손사래를 치며 대답했다.

“여동생이 골라줬습니다.”

“여동생이요?”

한소희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여동생 누구요? 아는 여동생? 아니면 교회 여동생? 상진 씨 교회 다녀요?”

“아뇨, 교회 안 다닙니다. 그리고 아는 여동생도 없습니다.”

“그럼요?”

“지난번에 말했던 친여동생이 골라줬습니다.”

오상진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네? 친여동생이면 그 중3이요? 그런데 여동생이 오빠 옷을 골라줘요?”

한소희는 듣고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자신은 오빠들의 옷을 골라준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어려서 오빠들의 코디를 책임진 건 엄마였고 시간이 지난 다음에는 여자친구들이 그 역할을 물려받았다.

물론 중간중간에 오빠들이 어느 옷이 낫냐고 물어본 적은 있지만 그뿐. 같이 백화점을 다니며 쇼핑한 적은 맹세코 단 한 번도 없었다.

한소희의 표정을 읽은 오상진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소희 씨는 한 대위님 옷 골라 준 적이 없습니까?”

“전혀요. 제가 왜 그래야 하는데요?”

“그래요? 이상하네요. 제 동생은 제가 패션 센스가 엉망이라고 자기가 무조건 골라줘야 한다고 하던데요.”

“동생이 그런 말도 했어요?”

“네. 아, 이건 좀 깨나요?”

오상진은 괜한 소리를 한 것 같아 멋쩍어졌지만 한소희는 오히려 기분이 좋아졌다.

여동생이 패션이 엉망이라고 말할 정도라면 평소에도 옷을 대충 입고 다닌다는 이야기였다. 그렇다면 당연히 여자 경험도 적을 터.

그런데 자신을 만나기 위해 이렇게 노력한 걸 보면 자신을 좋아하는 게 틀림없는 것 같았다.

“그런데 정말 여동생 맞는 거죠?”

“네. 사진이라도 보여줄까요?”

“네.”

오상진이 휴대폰을 꺼내 메신저에 들어갔다. 그리고 메신저 사진첩에 저장된 오상희 사진을 찾아서 보여줬다.

“잠깐만요.”

한소희는 핸드폰을 뺏어 사진을 자세히 봤다. 살짝 흐릿하긴 했지만 오상진과 비교를 해보니 닮은 구석이 있었다.

“예쁘게 생겼네요.”

“예쁘기야 소희 씨가 훨씬 예쁘죠.”

“뭐예요~ 그런데 여동생이랑 친한가 봐요?”

“친한 건 아닙니다. 사실 남동생이랑 모처럼 쇼핑하러 가는데 여동생이 따라왔습니다. 그래서 제 코디 도와주면 용돈 준다고 해서 그런 겁니다.”

“여동생 왕따시키는 거예요?”

“그럴 리가요. 여동생은 저희 형제하고 성격이 완전 달라서요. 사교성도 좋고. 그래서 그동안 용돈도 넉넉히 줬습니다. 반면 남동생은 고2인데 공부밖에 모르고요.”

“그래서 남동생이랑 둘이 백화점에 가려는데 여동생이 따라왔다는 거죠? 용돈 벌이할 겸?”

“정확합니다. 그때 저한테 이 옷을 골라준 겁니다.”

“아, 그럼 이해가 됐어요.”

한소희가 피식 웃었다. 실제 자신의 친구 중에 오빠나 남동생의 사소한 부탁을 들어주고 용돈을 받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그런데 상진 씨. 그 옷 되게 잘 어울리네요.”

“아, 그렇습니까?”

“솔직히 저는 드라마 남주가 입은 옷인 줄 몰랐거든요. 상진 씨가 원래 입고 다니던 옷인 줄 알았어요.”

“하하. 그럴 리가요. 제가 너무 검은 색 옷만 입고 다닌다고 동생이 하도 뭐라고 해서 이번에 큰마음 먹고 변신을 시도해 본 겁니다.”

“잘했어요. 그리고 다음에는…….”

“……?”

“저하고 같이 가요. 백화점.”

“하하, 네, 알겠습니다.”

그때 영화관 조명이 어두워졌다. 그리고 스크린을 통해 예고 영상이 시작됐다.

한대훈이 고른 영화는 할리우드 영화인 ‘브루스 신이 되다’였다.

드라마와 달리 영화는 즐겨 보는 편이었지만 오상진이 과거에 보지 못한 영화이기도 했다.

영화 제목이 뜨자 오상진 한소희에게 나직이 물었다.

“소희 씨. 혹시 코미디 영화 좋아해요?”

“솔직히 말해요?”

“네. 전 솔직한 거 좋아합니다.”

“사실 전 이런 영화 별로예요.”

데이트 중이라면 싫은 영화도 좋아한다고 말해줄 만했지만 한소희는 이맛살까지 찌푸렸다. 오상진이 옆에 있으니까 마지못해 보는 거지 아니었다면 당장 영화관을 뛰쳐나갈 것 같았다.

“그럼 어떤 장르 좋아해요?”

“저는 액션요. 특히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같은 영화요.”

“아, 그래요? 저랑 비슷하네요.”

“상진 씨도 액션 영화 좋아해요?”

“제가 본 시리즈 광팬입니다.”

“본 시리즈요? 그거 작년에 나온 거 아니에요?”

“아……. 그게 나중에 시리즈로 나온다고 합니다.”

“정말요? 잘됐네요. 저도 그거 엄청 재미있게 봤는데.”

“그럼 나오면 같이 보러 오죠.”

“정말이죠?”

“그럼요.”

잠깐 말이 헛나왔지만 오상진은 냉큼 대화를 이어나가며 한소희가 오해하는 걸 방지했다.

“그런데 한 대위님은 동생분 취향을 전혀 모르시네요.”

“제 말이 그 말이에요. 제가 코미디 장르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지금껏 몇 번 말 했는데 아무렇지도 않게 예매한 거 봐요. 제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듣는다니까요?”

“그래도 한 대위님이 소희 씨를 많이 아끼는 것 같긴 한데요.”

“저하고 나이 차이가 제법 나니까 괜히 오빠 노릇 하고 싶어서 저러는 거예요. 사실 저에 대해서 별 관심도 없을걸요?”

한소희가 입술을 삐죽거렸다. 그러다 어둠을 틈타 김소희 중위와 진한 스킨십을 하는 것 같은 한대훈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그런데 저렇게 연애를 한다는 게 참 대단해요.”

한소희의 형제 중 보수적이고 권위적인 아버지를 가장 빼닮은 게 다름 아닌 한대훈이었다. 아버지가 결혼은 집안과 집안끼리 하는 거라고 강조할 때마다 당연하다며 맞장구를 쳤던 것도 한대훈이었다.

그런 한대훈이 김소희 중위를 만나 저렇게 달라질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솔직히 말해서 어둠을 틈타 김소희 중위의 손을 떡 주무르듯 주물러 대는 한대훈은 어딘지 모르게 낯설었다.

그저 좋은 사람이고 싶어서 가면을 쓴 게 아니라 허당기 넘치는 모습까지 가감 없이 보여주는 걸 보면 저게 진짜 사랑인가 싶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그런 한대훈이 안쓰럽기도 했다. 형제 중 유일하게 아버지의 기대감을 충족시켜오면서 애써 억눌렀던 것들이 김소희 중위를 만나면서 드러난 것일지도 몰랐으니까.

10여 분 가까이 이어지던 광고가 끝나고 영화 상영 주의사항이 나왔다.

한대훈 쪽을 힐끔거리던 한소희도 자세를 바로잡았다. 그리고 오상진이 가운데 놔둔 팝콘을 하나 먹어보려고 슬그머니 손을 뻗었는데.

‘앗!’

팝콘이 아니라 다른 게 부딪혔다.

한소희가 먼저 깜짝 놀라며 손을 뺐다. 그러면서 오상진을 봤는데 오상진은 피식 웃고는 아무렇지 않게 팝콘을 집어 입으로 가져갔다.

“방금 부딪힌 거 뭐예요?”

“아마 제 손일걸요?”

“그런데 왜 시치미 떼요?”

“시치미를 떼긴요. 영화관에서 소희 씨하고 손이 부딪혔다고 화들짝 놀라면서 소리 지를 수는 없지 않습니까.”

오상진의 말이 틀린 것도 아닌지라 한소희는 입을 다물었다.

‘뭐야 이 남자. 갑자기 훅 들어오네.’

한소희는 어쩌면 오상진이 팝콘을 핑계로 스킨십을 유도한 게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영화가 시작된 이후로도 오상진은 주기적으로 팝콘 상자에 손을 뻗었다. 그러고는 정말 재미있게 영화를 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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