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131화
15장 전투체육을 아는가(15)
본래 한소희는 몸매가 두드러지는 원피스를 입고 나올 생각이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 옷에 얼룩이 묻어서 입고 나오질 못했다.
그렇다고 마음에 들지 않는 옷을 입고 나가고 싶지 않아서 고민 끝에 여대생룩을 선택했는데 다행히 오상진의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내심 궁금해졌다. 오상진이 좋아하는 건 노출이 적은 옷차림일까 하고.
그러자 오상진이 어디선가 주워들은 말을 내뱉었다.
“저는 지금의 소희 씨가 더 좋습니다.”
“얌전해서요?”
“아뇨. 지금 제 앞에 있으니까요.”
“뭐예요, 그게.”
한소희가 풉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생각지도 못한 엉뚱한 대답이었는데 원했던 대답보다 더 기분이 좋았다.
그때 띵, 하고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우리 이제 올라가요.”
한소희가 오상진의 팔짱을 끼며 말했다.
“그, 그럴까요?”
오상진이 멋쩍게 웃으며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예약한 레스토랑은 7층에 있었다.
“여기인가 보네요.”
오상진이 먼저 앞장서서 레스토랑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카운터에 서 있던 유니폼을 입은 종업원이 오상진을 맞았다.
“어서 오십시오, 손님. 혹시 예약하셨습니까?”
“네, 예약되어 있을 겁니다.”
“혹시 예약자 성함이 어떻게 되시나요?”
“한대훈으로 예약되어 있을 텐데요.”
“잠시만요. 바로 확인해 드리겠습니다.”
종업원이 예약자 명단을 확인하더니 환한 미소로 말했다.
“네. 확인했습니다. 자리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네.”
오상진이 한소희를 보며 말했다.
“가죠.”
한소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오상진과 한소희는 종업원을 따라 움직였고 원형 테이블에 네 개의 의자가 배치된 창가 쪽 자리로 안내를 받았다.
“이곳입니다. 식사는 먼저 준비해 드릴까요? 아니면 나중에 하시겠습니까?”
“일행이 지금 올라오고 있어서요. 그때 할게요.”
“네. 그럼 조금 이따가 다시 오겠습니다.”
종업원이 가고 두 사람이 자리에 앉았다. 단둘이었다면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며 앉았겠지만 한 대위 커플과 함께 식사를 해야 하다 보니 나란히 앉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 대위와 김소희 중위가 나타났다.
“어, 누구야? 내 동생 한소희 맞아?”
한대훈 대위가 살짝 놀란 눈으로 한소희를 바라봤다. 과하게 노출을 하거나 조금도 꾸미지 않거나.
평소 모 아니면 도 스타일을 고수해 온 한소희가 바람직한 옷차림으로 다소곳하게 앉아 있다는 게 신기하기만 했다.
그러자 한소희가 눈을 흘기며 말했다.
“그럼 나지, 누군데.”
한소희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러자 한대훈이 크게 웃었다.
“하하하! 톡 쏘는 게 내 동생 맞네. 그런데 오늘 옷차림 뭐야?”
“왜?”
“너무 예쁘잖아!”
“웃겨…….”
한소희는 한대훈의 반응이 어이없었다. 평소에도 예쁘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고 다녔지만 저렇듯 말하는 걸 보니 지금의 옷차림이 정말로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반면 김소희는 내심 서운함을 감추지 못했다. 다른 사람도 아닌 한소희와의 더블데이트라고 해서 의상은 물론이고 미용실까지 다녀온 상태였다. 그런데 한대훈이 한소희의 수수한 옷차림을 칭찬하니 자신도 모르게 얼굴이 빨개졌다.
‘뭐야. 그럼 난? 안 예쁘다는 거야?’
김소희가 살짝 눈을 흘기며 한대훈을 바라봤다.
한대훈은 그것도 모르고 한소희를 보며 칭찬을 이어 나갔다.
“야, 진즉에 이렇게 입고 다니지. 얼마나 보기가 좋냐? 이 모습을 아버지가 보셨어야 했는데.”
“됐거든?”
“잠깐 있어 봐. 사진 한 장 찍자.”
“찍기만 해.”
“내가 말 했지? 넌 노출이 있는 옷을 입고 다니지 않아도 충분히 예쁘다고.”
“알았으니까 1절만 좀 해!”
“하하하, 앞으로도 꼭 이렇게 입고 다녀라.”
“흥, 내 맘이거든?”
그렇게 한소희에 칭찬에 열을 올리던 한대훈은 한참이 지나서야 따끔거리는 시선을 느꼈다. 뒤늦게 고개를 돌려보니 김소희의 표정이 잔뜩 굳어 있었다.
한대훈은 그제야 아차 싶었다. 한소희가 한껏 꾸미고 나올 것에 대비해 예쁘게 차려입으라고 신신당부를 해 놓고서 동생만 칭찬하고 있으니 김소희 중위의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다.
“그럼 이제 주문을 해볼까요?”
한대훈이 냉큼 화제를 돌리며 메뉴판을 펼쳤다. 그러다가 옆에 앉은 김소희의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자기. 우리 자기는 뭐 먹을 거야?”
“내가 알아서 먹을 건데요.”
김소희가 화가 풀리지 않은 양 새침하게 말하자 한대훈이 김소희 쪽으로 의자를 끌어왔다.
“그냥 거기 있어요.”
“나는 우리 소희 씨하고 가까이서 밥 먹고 싶은데요?”
“대훈 씨.”
“그러니까 화 풀어요. 네?”
“하아……. 알았어요.”
김소희 중위가 마지못해 표정을 풀었다. 한대훈이 한소희를 싸고도는 게 하루 이틀 일도 아닌데 일일이 반응하는 것도 감정 낭비였다.
게다가 단둘이 있을 때는 한대훈처럼 세상 다정다감한 남자가 없었다.
“난 스테이크 먹고 싶은데……. 자기도 스테이크 좋아하잖아요. 그럼 스테이크 두 개랑 여기 크림파스타 어때요?”
한대훈이 김소희 중위만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정식으로 교제한 지 제법 되어서일까. 한대훈은 김소희 중위의 식성을 대충 알고 있었다.
김소희 중위는 면류만큼이나 고기를 좋아하고 생각보다 많이 먹는 편이었다. 그래서 김소희 중위의 양이 모자라지 않도록 크림파스타까지 시켰다.
“많지 않을까요?”
김소희 중위는 한소희를 의식해서 그런지 슬쩍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눈치가 빠른 한대훈이 고개를 흔들었다.
“아뇨. 조금 이따 나오는 거 보면 알겠지만 여기 파스타 양이 생각보다 적어요. 제 주먹만 할 걸요?”
“이렇게 비싼데요?”
“괜히 강남 물가라고 하는 게 아니잖아요. 그리고 소희 씨가 남겨도 제가 다 먹을 테니까 안심하세요.”
“지난 번에도 그렇게 말해놓고 다 남겼잖아요.”
“솔직히 그 집은 맛이 좀 없었잖아요. 그래도 이 집은 다를 겁니다. 제가 아버지 따라 몇 번 왔던 곳이니까요.”
한대훈은 그 자리가 주로 선 자리였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김소희 중위도 얼추 눈치를 챘지만 굳이 내색하지 않았다.
“그럼 그렇게 해요.”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빤히 보던 오상진도 눈치를 보며 메뉴판을 들었다. 그리고 한소희에게 내밀며 말했다.
“소희 씨는 뭐 드시겠어요?”
“글쎄요, 여긴 뭐가 맛있을까요?”
“보통 여자분들은 크림파스타를 좋아하지 않나요?”
한소희는 새치름하게 말했다.
“여자하고 이런 곳 자주 다녔나 봐요?”
“하하. 그럴 리가요. 소희 씨를 위해 공부를 좀 했을 뿐입니다.”
“정말이죠?”
“지난번에 말씀드렸잖습니까. 저 육사 나온 거. 육사생들은 연애 금지입니다. 육사 졸업하고 임관한 지 1년도 됐는데 언제 여자를 만나고 다녔겠습니까?”
한소희가 가끔 질투 어린 의심을 던질 때 마다 오상진은 정직함을 무기로 대답했다.
물론 육군 사관학교 생도들이라고 해서 연애를 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오상진은 딱히 여자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목표대로 군 생활을 열심히 하다 보면 좋은 여자를 만날 수 있을 거라는 착각에 빠져 살았다.
그렇게 소개받을 뻔했던 여자들이 농담 섞어 한 트럭은 되겠지만 오상진은 딱히 후회하지 않았다. 그 덕에 이렇게 한소희를 만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무튼 앞으로 여자는 어쩌고 하는 말은 하지 말아 주세요. 그런 선입견 싫어해요.”
“네, 알겠습니다. 그럼 소희 씨는 어떤 음식을 좋아합니까?”
“저는 느끼한 것은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그럼 크림파스타보다는 토마토 파스타가 입에 맞으시겠네요.”
“파스타 자체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둘 중 하나를 먹어야 한다면 토마토 파스타 쪽이 낫겠죠.”
“스테이크는 어떠십니까?”
“저는 고기 좋아해요.”
“하하. 다행이네요.”
“뭐가요?”
“저랑 입맛이 잘 맞는 거 같아서요. 사실 연인끼리 식성이 다른 것도 골치 아픈 일 아니겠습니까.”
“뭐래. 우리 아직 사귀는 사이 아니거든요?”
“그렇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럼 우리도 스테이크 먹을까요?”
“그래요.”
한소희는 대답을 한 후 은근슬쩍 김소희를 다시 바라봤다. 때마침 김소희도 한소희를 바라보고 있었다.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두 소희 간의 눈싸움이 치열하게 전개됐다.
그사이 오상진이 한대훈에게 말했다.
“저희는 스테이크 먹겠습니다.”
“오 소위도 파스타 하나 시키지 그래요? 여기 스파게티가 둘이 먹어서 하나가 죽을 만큼 맛있습니다.”
“그럼 토마토 파스타 추가하겠습니다.”
“잘 생각했어요. 연인끼리 이런 데 오면 원래 음식 여러 개 시켜 놓고 나눠 먹는 겁니다.”
한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저만치 서서 눈치를 보고 있던 종업원에게 손을 흔들었다.
“네, 손님. 주문 도와드릴까요?”
“안심 스테이크 네 개하고 크림파스타, 토마토 파스타 하나씩 주세요.”
“네. 음료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우리 와인 한 잔씩 할까요?”
한대훈이 오상진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러자 김소희 중위가 냉큼 한대훈을 만류했다.
“대훈 씨 차 가지고 왔잖아요.”
“저 빼고 가볍게 한 잔씩들 하면 되는 거죠. 어때요?”
“그래도 괜찮겠어요?”
“저는 와인보다 우리 소희 씨의 안전이 더 중요합니다. 오늘 이렇게 모였으니 기념으로 건배라도 하자는 거죠 뭐.”
“그럼 그렇게 해요.”
김소희 중위가 고개를 끄덕이자 한대훈이 제법 고가의 와인을 주문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스테이크 굽기는 어떻게 해드릴까요?”
“미디움 웰던으로 통일해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종업원이 주문을 받고 갔다. 그러자 김소희 중위가 한대훈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대훈씨, 저 잠시 화장실…….”
“왜요? 속이 불편해요?”
“아뇨. 그냥 손 좀 씻으러요.”
“그럼 저랑 같이 가요. 그렇지 않아도 화장실 가고 싶었는데 잘 됐네요.”
김소희 중위를 따라 한대훈이 몸을 일으켰다. 그 모습을 보던 한소희가 한마디 툭 던졌다.
“웃겨, 오빠는 무슨 여자 화장실까지 따라가.”
그러자 한대훈이 한소희를 바라봤다.
“나 대신 네가 소희 씨 따라가 줄 거야? 그럼 난 안 가고.”
“내가 왜?”
“거봐, 네가 안 따라가 주니까 내가 가는 건데 불만 있어?”
한대훈이 실실 웃으며 말했다. 김소희 중위가 조금 민망했던지 한대훈의 옆구리를 찔렀다.
“대훈 씨. 그냥 앉아 있어요.”
“아닙니다. 내 여잔 내가 지킵니다. 가시죠.”
한대훈이 김소희 중위와 함께 화장실 쪽으로 사라졌다.
“상진 씨, 저건 좀 아닌 거 같지 않아요?”
한소희가 미간을 찌푸렸다. 남들 다 하는 연애 한답시고 유난을 떠는 한대훈의 모습이 꼴사나웠다.
하지만 오상진은 같은 남자로서 한대훈의 심정이 충분히 이해가 갔다.
“왜요, 보기 좋은데요.”
“그래요? 그럼 만약에 제가 화장실 간다고 핸드백 들어달라고 하면 들어줄 거예요?”
“당연히 들어줘야죠.”
“군인은 이런 거 싫어하지 않나요?”
“여기서 군인이 왜 나옵니까? 소희 씨 가방인데.”
그 말에 한소희가 입꼬리를 슬쩍 올렸다.
“칫! 아무튼 말은 잘해요. 솔직히 말해봐요. 누구한테 과외받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