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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리셋 오 소위-130화 (130/1,018)

인생 리셋 오 소위! 130화

15장 전투체육을 아는가(15)

-왜요? 상진 씨도 오빠처럼 여자는 조신하게 입고 다녀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런 뜻으로 한 말은 아닙니다.”

-그럼요?

“솔직히 저는 소희 씨가 어떤 옷을 입어도 상관없습니다. 제가 보고 싶은 건 소희 씨지 소희 씨 옷이 아니니까요.

-칫, 뭐야. 말은 잘하시네요.

“물론 제가 군인이고 또 군대 문화가 다소 보수적이다 보니 너무 노출이 심한 옷은 좀 신경 쓰이긴 합니다. 남자라면 여자 친구의 은밀한 모습은 단둘이 있을 때 보고 싶을 테니까요.”

오상진이 차분히 한소희를 달랬다. 아직 정식으로 교제하는 사이도 아니라 한소희의 옷차림을 가지고 간섭하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기왕 말이 나온 김에 자신의 생각을 전해두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그런 오상진의 조심스러움 때문일까.

집에서 듣던 말과 크게 다를 바 없었지만 한소희는 별로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사실 이번에 오빠 여자 친구한테 확실하게 보여줘서 다시는 더블데이트 하자는 소리 못하게 하려고 했는데 상진 씨를 봐서 봐줄게요.

“잘 생각하셨습니다.”

-대신 당분간은 팔다리 꼭꼭 숨기고 다닐 거예요.

“아이고…….”

-뭐예요. 그 아저씨같은 소리는?

“아닙니다. 아무것도.”

-왜요? 이제 와 생각해 보니 아쉬워요?

“아쉽다기보다는…… 단둘이 데이트 할 때는 그러지 않으셔도 될 것 같아서요.”

-뭐예요? 그 음흉한 속셈은?

“크흠. 제가 좀 음흉했습니까?”

-뭐래. 아무튼 꿈 깨요. 저 그렇게 쉬운 여자 아니거든요?

한소희가 장난스럽게 전화를 끊었다.

오상진도 피식 웃으며 귓가에서 핸드폰을 떼 놓았다.

잠깐 통화했다고 생각했는데 통화 시간을 보니 20분이 다 되어갔다.

‘어쩐지 귀가 뜨끈뜨끈하더라니.’

이래서 연애하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고 하는가 보다.

‘예전에는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과거 오상진은 늦은 나이에 선을 보고 결혼을 했다. 육사 출신이고 라인을 잘 탄 덕분에 이곳저곳에서 혼담이 들어 왔지만 결혼만큼은 번듯하게 하고 싶은 욕심에 미루고 미루다 결국 평범한 여자와 가정을 이뤘다.

당연하게도 지금처럼 핸드폰을 붙잡고 오래도록 통화한 적도 없었다.

세 달쯤 만나다 결혼을 했고 결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가 생겼다. 그렇게 둘째까지 내리 낳고 나서는 여자가 아니라 그저 한 가족처럼 지냈던 것 같았다.

그래서 과거로 돌아오더라도 연애는 잼병일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재능이 있는 거 같은데.’

깐깐한 한소희를 구워 삶아냈다는 사실에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났다.

오상진은 핸드폰을 열어 다시 문자를 보냈다.

-소희 씨. 혹시 화 난 거 아니죠?

-화 안 났거든요.

-그럼 뭐 하는데요?

-자려고 누웠어요.

-더블데이트 허락해 줘서 고마워요. 주말에 봐요. 잘 자요.

-저 안 잘 거거든요.

오상진은 그런 문자를 보며 피식 웃었다.

“아무튼 귀엽다니까.”

마흔 무렵까지 살다 온 아저씨가 한창 어린 여자에게 이러는 게 주책이라 느껴질 수도 있지만 지금 이 순간을 즐기고 싶었다.

14.

체육대회 준비 기간이다 보니 평일 일과는 전술 훈련 교육과 정신 교육이 주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16시 30분 전투 체육이 시작되면 중대 축구 대표로 뽑힌 선수들은 한 데 모여 축구 연습을 시작했다.

오상진이 포지션별로 선수들을 선정한 덕분에 시간이 지날수록 선수들의 호흡은 착착 맞아떨어졌다.

“좋아, 좋아. 잘하고 있어.”

선수들이 알아서 잘 훈련하다 보니 오상진이 할 일은 딱히 없었다. 가끔 감독처럼 박수를 치며 응원하다가 간식을 사 주는 정도였다.

“그런데 소대장님. 저희는 연습만 계속합니까? 실전은 없습니까?”

“맞습니다. 다음주부터 예선전 시작하는데 그전에 연습 경기라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몸이 근질근질해 죽겠습니다.”

선수들의 성화에 오상진이 피식 웃었다.

1중대를 상대로 연습 시합 신청이 제법 많았지만 오상진은 일단 거절했다. 말이 좋아 연습 시합이지 군대스리가나 다름 없다 보니 애써 꾸린 팀이 부상이라도 입을까 걱정이었다.

실제로 연습 경기 도중 일어난 부상으로 각 중대마다 선수 교체가 빈번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래서 오상진은 연습 시합을 최대한 뒤로 미뤘다. 그 편이 전력을 노출시키지 않는 데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혈기 왕성한 병사들에게 그 모든 걸 설명할 수는 없었다.

“걱정 마라. 곧 너희들의 봉인을 해제해 줄 테니.”

오상진의 한마디에 선수들의 표정이 달라졌다.

“기대하겠습니다.”

그렇게 한 주가 후다닥 지나가고 토요일 오후가 되었다.

오상진은 오상희가 골라준 밝은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관사를 나섰다.

관사 앞에는 언제 왔는지 한 대위 차량이 대기하고 있었다.

“오 소위.”

“한 대위님.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어쩐 일은요. 어차피 약속 장소에 갈 거 아닙니까. 같이 갑시다.”

“아, 네.”

오상진이 뒷좌석에 앉았다. 조수석에는 김소희 중위가 예쁜 옷차림으로 앉아 있었다.

김소희 중위도 한소희가 신경 쓰였던지 평소에 잘 하지 않던 화장까지 해가며 최선을 다해 꾸몄다.

그동안 군복 입은 모습만 봐서 잘 몰랐는데 사복을 차려 입으니 김소희 중위의 미모도 한껏 사는 것 같았다.

그런 오상진의 눈길을 읽은 것일까. 한 대위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어떻습니까? 우리 김 중위?”

“오늘 정말 예쁘십니다.”

오상진의 칭찬에 김소희 중위가 얼굴을 붉혔다. 그러다가 힐끔 고개를 돌려 오상진을 바라봤다.

“정말 예쁩니까?”

“네, 진짜 예쁘십니다.”

“혹시 나 놓친 거 후회됩니까?”

남자 친구 앞에서 할 소리는 아니었지만 여자다 보니 칭찬이 고팠던 모양이었다.

“이렇게 차려입으시니까 후회는 됩니다. 하지만 저는 괜찮습니다.”

오상진이 우문현답을 내놓았다. 그러자 한 대위가 만족스러운 얼굴로 웃었다.

“이야, 우리 오 소위가 소희에게 푹 빠졌나 봅니다.”

그러자 옆에 앉은 김소희 중위가 살짝 눈을 흘겼다.

“한 대위님. 웬만하면 앞에 성을 붙여서 불러줬으면 좋겠어요.”

“아, 그렇지. 내 실수 좀 봐.”

“어서 출발하기나 해요.”

“하하. 그럼 그래 볼까요?”

괜히 한 소리 들은 한 대위가 사람 좋은 얼굴로 시동을 걸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앞좌석의 분위기가 다시 화기애애하게 변했다.

“그래서 제가 뭐라고 했는지 아십니까?”

“뭐라고 했는데요?”

“이 자식아. 여기다 침 놓으면 너 죽어 인마. 그랬더니 이 녀석이 화들짝 놀라는 겁니다.”

“그냥 확 놓아버리지 그러셨어요.”

“에이. 아무리 그래도 명색이 한의사인데 어떻게 그럽니까.”

뒷좌석에 앉은 오상진은 괜히 멋쩍었다. 두 사람의 대화에 끼는 건 눈치 없는 짓인데 잠자코 듣고만 있는 것도 고역이었다.

그래서 휴대폰을 꺼내 혼자 있을 한소희에게 문자를 보냈다.

-소희 씨. 저는 지금 출발했습니다. 가고 있는데 어디에요?

-거의 다 왔어요. 그런데 차 가지고 와요?

-아뇨. 한 대위님 차 얻어 타고 갑니다.

-왜요?

-출발하려고 나와 보니까 관사 앞에서 기다리고 계시더라고요.

-어휴. 진짜 주책. 그럼 오빠 여자 친구도 있겠네요?

-네. 지금 앞자리에서 두 분이 열심히 깨를 볶고 있네요.

-그러게 왜 데이트를 같이 하자고 했어요?

-미안합니다. 계급이 깡패라…… ㅜㅜ

-상진 씨는 언제 진급해요?

-중위까지는 멀지 않았지만 대위가 되려면 시간이 좀 걸립니다. 그리고 그전에 한 대위님은 제대하시겠죠.

-그러니까 더블데이트는 오늘이 마지막이에요. 알았죠?

-네.

-아무튼 좀만 참아요. 제가 구해줄 테니까요.

-네, 소희 씨! 저 좀 빨리 구해줘요.

오상진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구해주겠다는 한소희에게 천연덕스럽게 투정을 부리는 자신이 살짝 낯설게 느껴졌다.

그때 룸미러를 보고 있던 한 대위가 물었다.

“오 소위. 뭐 합니까?”

“네?”

“뭡니까? 핸드폰으로 뭘 보기에 그렇게 웃어요?”

다른 때 같았다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했겠지만 김소희 중위까지 관심을 가지니 괜히 심통이 났다.

“소희 씨하고 대화 중이었습니다.”

“벌써 문자 주고받는 사이까지 발전한 거예요?”

김소희 중위가 눈을 똥그랗게 떴다. 그러자 옆에서 한 대위가 크게 웃었다.

“하하하, 벌써라니요. 우리 때는 안 그랬나.”

“우린 알고 지낸 지 오래됐잖아요.”

“또 그렇게 되나요?”

김소희 중위가 눈을 흘기자 한 대위가 냉큼 꼬리를 말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래서 말이죠.”

입담 좋은 한 대위 덕분에 김소희 중위는 다시 한참을 웃었다.

그렇게 세 사람은 약속 장소에 도착을 했다.

주차장 진입로 쪽에 잠깐 차를 세운 한 대위가 뒤를 보며 오상진에게 말했다.

“오 소위는 먼저 내려서 올라가시죠. 소희 씨와 저는 주차하고 바로 올라가겠습니다.”

“네.”

오상진은 군말 없이 차에서 내렸다. 솔직히 주차장까지 같이 가야 하나 걱정하던 차였다.

한 대위의 차가 주차장으로 가는 것을 확인한 뒤 오상진은 입구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입구 쪽에 낯익은 실루엣이 보였다.

“소희 씨!”

오상진이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는 한소희 곁으로 빠르게 뛰어갔다. 한소희 역시 오상진을 발견하고 표정이 밝아졌다.

“이제 오는 거예요?”

“네, 방금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올라가서 기다리지 않고, 왜 여기 있어요?”

“저도 방금 도착했어요. 엘리베이터 기다리는데 차 소리가 들리는 거 같아서 혹시나 하고 기다리고 있었어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한소희는 오상진이 오길 이십 분 넘게 기다렸다.

“그런데 오빠는요?”

“아, 주차하고 김 중위와 같이 온다고 저보고 먼저 올라가라고 했습니다.”

“둘이 또 뭘 하려고 그러지?”

한소희가 눈을 흘기며 말했다. 오상진은 그 말을 듣고 피식 웃었다. 한 대위는 한소희와 진도 좀 나가라고 등을 떠미는데 막상 한소희는 김소희 중위와 한 대위가 오붓한 시간을 보내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보다 상진 씨 저 어때요?”

한소희가 살짝 포즈를 잡았다.

“아름답습니다.”

오상진이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한소희의 실루엣을 보고 발걸음을 재촉할 때부터 감탄했지만 오늘의 한소희는 지난번에 만났을 때와는 느낌이 사뭇 달랐다.

헤어 스타일이 변해서일까.

아니면 모처럼 만나서일까.

그것도 아니면 메시지를 주고받는 동안 애틋함이 커져서일까.

지난 두 번의 만남과 달리 캐주얼한 옷차림의 한소희가 더 예쁘게 보이는 게 오상진도 신기하기만 했다.

“상진 씨. 이런 스타일 좋아해요?”

“딱히 좋아하는 스타일은 없습니다. 그냥 예쁜 분은 뭘 해도 예뻐 보이는구나 싶습니다.”

“뭐에요. 요즘 아부가 심해진 거 아니에요?”

“아부라니요. 전 그런 거 모르는 남자입니다.”

어느 정도 립서비스가 섞였겠지만 다른 사람도 아닌 오상진의 칭찬이다 보니 한소희도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상진 씨. 솔직히 조금은 실망했죠?”

“네?”

“오늘 스타일 말이에요. 조신해도 너무 조신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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