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128화
15장 전투체육을 아는가(13)
오상진의 물음에 2소대장이 잠시 머뭇거리더니 헛기침과 함께 말했다.
“어험, 2소대도 있긴 한데 정말 대신 인솔하실 겁니까?”
“농땡이 피는데 그 정도는 당연히 해야죠.”
“크흠. 그냥 해본 말입니다.”
“저도 그냥 해본 소립니다. 그런데 환자가 누굽니까?”
“1소대장도 알 겁니다. 최강수 병장입니다.”
“최 병장. 그 새끼가 또 아프답니까?”
최강수 병장의 이름이 튀어나오기가 무섭게 4소대장이 반사적으로 언성을 높였다.
앞서 영창에 끌려간 최용수 병장과 2소대 분대장 최강수 병장. 서로 이름이 비슷해 형제라고 오해하는 이들이 많았지만 실제 군대에 오기 전까지는 일면식도 없는 사이였다.
하지만 4소대장을 비롯해 간부들은 둘이 어쩌면 어렸을 적 헤어진 형제일지도 모른다고 여겼다. 군 생활 편하게 하는 것으로는 둘 다 도가 텄기 때문이다.
그나마 최용수 병장은 오상진에게 걸려 군사 재판까지 받아야 했지만 최강수 병장은 장재일 2소대장의 비호 속에 군대를 유격 캠프마냥 즐기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4소대장은 최강수 병장 이름만 나오면 학을 뗐다. 하지만 평소 제 식구는 끔찍이 챙기는 장재일 2소대장이 그런 꼴을 두고 볼 리 없었다.
“새끼라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렇게 막말해도 돼?”
“죄송합니다. 제가 잠깐 흥분을 해서.”
“그럴 시간에 4소대 애들이나 신경 써. 괜히 애꿎은 우리 애들 잡지 말고.”
장재일 2소대장이 4소대장을 날카롭게 째려봤다. 4소대장은 입을 막으며 고개를 돌려 시선을 피했다.
그러자 오상진이 냉큼 나서서 장재일 2소대장의 시선을 잡아 끌어왔다.
“그런데 최강수 병장은 어디가 아프답니까?”
“그냥 온몸이 아프다고 합니다.”
“그러면 국군 병원에 가 봐야 하는 거 아닙니까?”
오상진이 진지하게 걱정하자 4소대장이 다시 한번 끼어들었다.
“1소대장님. 그런 거 아닙니다. 최강수 그놈 별명이 걸어 다니는 종합병원 아닙니까. 정신교육 받기 싫으니까. 빠지려고 그러는 겁니다.”
“4소대장. 우리 최 병장에게 무슨 원한이라도 있어? 아까부터 왜 자꾸 시비지?”
“솔직히 사실이지 않습니까. 우리 중대에 소문이 파다합니다. 나일론 병장이라고.”
“이봐, 4소대장!”
2소대장이 눈을 부릅뜨며 소리쳤다. 오상진이 또다시 말렸다.
“그만하십시오. 아무튼 최강수 병장도 제가 데리고 가겠습니다.”
오상진의 중재에 4소대장은 냉큼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2소대장은 잔뜩 얼굴을 구기며 낮게 으르렁거렸다.
‘네가 오상진 저 새끼를 믿고 까부는가 본데, 두고 봐라. 조만간 작살을 내줄 테니까.”
12.
잠시 후.
호출을 받은 병사들이 행정반으로 찾아왔다.
오상진은 그들을 확인했다.
“너희 다 환자 맞아?”
“네. 그렇습니다.”
“그런데 한 명이 늘었네?”
“가, 갑자기 복통이 와서…….”
“일단 알았다. 가자.”
오상진이 자리에서 일어나 전투모를 썼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오상진을 따라 병사들이 줄을 서 이동했다. 환자라고는 해도 군기가 빠진 행동은 용납이 되지 않는 게 군대였다.
“너희들 저기 대로변으로 가 있어. 내가 차 가져올 테니까.”
“네. 알겠습니다.”
오상진이 주차장으로 가고, 세 명은 나란히 대로변으로 가서 기다렸다. 그런데 최강수 병장이 심심한지 다른 소대 애들을 힐끔 봤다.
“야.”
“네?”
두 명은 일병과 이등병이었다.
“이 새끼들 봐라. 병장이 부르는데 관등성명도 안 대네.”
“일병 이태훈.”
“이병 김하늘.”
최강수 병장이 이태훈 일병을 거쳐 김하늘 이병에게 향했다. 그리고 히죽 웃음을 띠었다.
“어쭈 이등병이네. 이등병이 벌써부터 의무대를 들락거려? X나 빠졌네. 너 몇 소대야?”
“3, 3소대입니다.”
“3소대? X팔, 3소대 새끼들 X나 빠져 가지고. 거기 분대장 류종호 병장 아니야?”
“네. 그, 그렇습니다.”
잘 모르는 병장이 시작부터 육두문자를 쏟아내니 김하늘 이병의 얼굴이 파리하게 질렸다. 그런 김하늘 이병에게 바짝 다가서며 최강수 병장이 나직이 중얼거렸다.
“내가 류종호보다 한 달 먼저 들어왔어, 인마. 그럼 내가 높아, 안 높아?”
“최, 최강수 병장님이 높습니다.”
“그래, 새끼야. 내가 인마…….”
최강수 병장은 그렇게 김하늘 이병을 잡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며 이태훈 일병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또 시작이네. 시작이야.’
말년 병장의 꼬장일까. 아니면 성격이 더러운 것일까.
최강수 병장은 타 소대 이등병들을 볼 때마다 괜히 저런 식으로 놀리고 괴롭혔다.
이태훈 일병도 일병을 달기 직전까지 최강수 병장에게 호되게 당했다. 그 당시 억울한 마음에 류종호 병장에게 일렀지만 그에게서 돌아온 답은 미친개는 상대하지 말라는 것뿐이었다.
그래서 이태훈 일병은 최강수 병장을 애써 무시했다. 일병쯤 되어서 군대 돌아가는 걸 겪고 보니 다른 소대 병장들에게까지 깍듯하게 굴 필요는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하지만 그걸 알지 못하는 김하늘 이병은 마치 류종호 병장을 대하듯 바들바들 몸을 떨어야 했다.
그때 오상진이 차를 몰고 나타났다.
“야, 뭐 해?”
오상진의 목소리에 최강수 병장이 움찔하며 뒤로 물러섰다. 그러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딴청을 부렸다.
하지만 오상진의 눈에는 잔뜩 떨고 있는 김하늘 이병이 보였다.
“거기 이병.”
“이병 김하늘!”
“너 왜 그래?”
김하늘 이병은 아까보다 얼굴이 더 하얗게 질려 있었다.
“많이 아파?”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오상진의 시선이 이태훈 일병에게 향했다. 이태훈 일병이 슬쩍 최강수 병장을 봤다. 그제야 김하늘 이병이 왜 이러는지 이해가 되었다.
“최강수.”
“병장 최강수.”
“너 인마, 왜 남의 소대 막내를 괴롭혀.”
“아, 소대장님 그렇게 말씀하시면 섭섭하지 말입니다. 어떻게 남의 소대입니까, 저희 중대죠.”
“그럼 인마, 너희 중대 소대장인 날 보고 왜 그렇게 건들거려!”
“……네?”
“이 새끼가 말년이라고 군기 다 빠졌네. 똑바로 안 서? 차렷!”
“아, 왜 그러십니까. 애들 보는데.”
“그러는 너는 애들 보는데 지금 소대장한테 항명하는 건가? 차렷!”
오상진이 눈을 부릅뜨며 말했다. 그러자 최강수 병장은 마지못해 차렷 자세를 취했다.
“지금 그게 차렷 자세인가? 병장이 되어서 차렷 자세도 제대로 못 하면서 무슨 애들을 가르친다고 그래! 넌 기본부터 잘못되었어! 아니면 계급을 똥구멍으로 먹었거나.”
과거 오상진은 소대장과 중대장을 거쳐 대대장까지 올랐다. 당연하게도 말년 병장 하나 다루는 것쯤은 일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회귀 이후에 병사들과 원만하게 지내왔던 건 청춘을 바쳐 군대에서 고생하는 병사들에게 측은지심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의 계급을 악용해 애꿎은 신병들을 괴롭히는 놈들에게는 예외였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계급에는 계급.
오상진은 괜히 오버를 하며 최강수 병장을 나무랐다. 그럴수록 최강수 병장의 얼굴은 점점 일그러졌고 이태훈 일병은 웃음을 참느라 허벅지를 꼬집어야 했다.
13.
오상진은 차를 몰고 의무대로 향했다. 뒤에 앉은 최강수 병장은 잔뜩 인상을 쓴 채 차창 밖만 바라봤다.
룸미러로 보고 있자니 새파란 후임들 앞에서 혼이 난 게 어지간히도 분하고 억울한 모양이었다.
‘억울하면 너도 소위 달고 와, 인마.’
오상진은 피식 웃고 말았다. 성격 고약한 소대장이라면 표정이 마음에 안 든다고 다시 한번 군기를 잡으려 들었겠지만 오상진은 더 이상 분위기를 악화시키고 싶지 않았다.
의무대에 도착한 오상진은 병사들을 이끌고 한 대위를 만나러 갔다. 한 대위는 오상진을 보며 말했다.
“아이고, 오 소위만 보려고 했더니 누굴 잔뜩 데리고 왔습니다.”
“그냥 오기 그래서 선물을 좀 데리고 왔습니다.”
“와, 이런 선물은 좀 부담스러운데…….”
“이해 좀 해주십시오. 그렇다고 의무실에 놀러 올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하긴. 그렇죠. 일단 진료부터 하고 얘기 나누시죠.”
“그럽시다.”
한 대위는 먼저 김하늘 이병부터 진료를 봐주었다. 이리저리 살펴보니 급체를 한 것 같았다. 게다가 어제부터 밥도 제대로 못 먹었는지 기력이 많이 상해 있었다.
“일단 침 좀 맞고, 수액 맞자.”
“네.”
“그래, 저쪽으로 가서 누워.”
김하늘 이병이 간이침대로 가서 누웠다. 한 대위가 침 몇 개를 놓고 일어났다. 그리고 의무병에게 말했다.
“수액 놓게 준비해 줘.”
“네.”
“다음!”
이태훈 일병이 나타났다.
“넌 어디가 안 좋아?”
“어제 운동을 좀 무리했더니 발목이 좀…….”
“어디 보자.”
전투화를 벗고 발 상태를 확인했다. 발목이 약간 부었지만 뼈에는 이상 없는 것 같았다.
“일단 부기 빠지는 침 놔줄게.”
“네.”
그렇게 두 번째 환자까지 확인한 후 마지막 최강수 병장만 남았다.
“어디 보자, 최강…… 수? 야, 너 또 왔네.”
“왜 그러십니까. 전역을 한 달 반 남겨둬서 그런지 요즘에 힘이 너무 없습니다. 축 처지고 생기도 없습니다.”
“그게 말이 되냐. 전역이 얼마 남지 않았으면 힘이 나야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먹고 싸는 건 어때?”
“잘 먹고 잘 쌉니다.”
“딱 봐도 군대 체질이네. 전역 때문에 마음이 싱숭생숭 한 거라면 이번 기회에 아예 말뚝을 박지그래?”
“에이, 그건 또 아니죠. 저같이 잘난 남자가 계속 군대에 있으면 이 나라의 큰 손실입니다.”
최강수 병장이 청산유수로 말을 늘어놓았다. 바로 조금 전까지 자신에게 혼나서 입술이 댓 발 나왔던 녀석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런 최강수 병장이 익숙한 한 대위는 피식 웃고 말았다. 그러다 어이없다는 얼굴로 최강수 병장을 바라보고 있는 오상진을 보며 나직이 말했다.
“이 녀석 여기 단골입니다.”
“그렇게 자주 옵니까?”
“보통 일주일에 세 번은 오는 거 같습니다. 와서는 저랑 이렇게 웃고 떠들다 가고요.”
“최강수 뭐야? 사실이야?”
오상진이 최강수 병장을 노려봤다. 그러자 최강수 병장이 냉큼 허리를 붙잡고 앓는 소리를 냈다.
“아닙니다. 저 여기 허리가 너무 아파서 왔습니다. 침 좀 놔주십시오.”
“진짜야?”
“진짜입니다. 어어, 지금도 아픕니다.”
“갑자기?”
“어서 침 좀 놔주십시오.”
“알았어. 일단 누워 봐.”
최강수 병장이 옷을 올리고 침대에 누웠다.
“어디가 아파? 여기? 아니면 여기?”
“아, 네. 아픕니다.”
“여긴?”
“윽. 더 아픈 거 같습니다.”
한 대위가 침 자리를 찾아 허리 이곳저곳을 움직였다. 그러다 최강수 병장이 또 거짓말을 한다는 걸 눈치채고는.
“여긴 어때?”
“어어, 거기 무지 아픕니다.”
“이 자식아. 여기에 침놓으면 큰일 나.”
“그, 그렇습니까?”
“꾀병 그만 부리고 일어나!”
만약 새로 온 군의관에게 이런 장난을 쳤다면 대번에 군기 교육대에 끌려갔을지 몰랐다. 하지만 최강수 병장처럼 전역 날을 앞둔 한 대위는 최강수 병장의 하는 짓이 귀엽기만 했다.
“그러지 말고, 허리에 좋은 뜸 하나만 놔주십시오.”
“이 자식이. 무슨 한방 병원 왔냐?”
“에이, 하나만 놔주십시오. 지난번에도 놔주시지 않았습니까.”
“에라이. 대신 이번이 마지막이다?”
“넵.”
뻔뻔스러운 최강수 병장을 보며 오상진은 민망함을 감추지 못했다.
“죄송합니다. 한 대위님. 이런 줄 모르고 데려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