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생 리셋 오 소위-127화 (127/1,018)

인생 리셋 오 소위! 127화

15장 전투체육을 아는가(12)

‘이 자식이 또 무슨 짓을 하려고…….’

오상진은 순간 울컥했지만 애써 화를 삭이며 물었다.

“알았어. 뭔데?”

“사실 나…… 눈 수술하고 싶어서.”

순간 오상진은 뭔가 잘못 들었나 싶어 고개를 갸웃했다.

“뭐? 뭘 한다고?”

“쌍수한다고, 쌍수!”

“갑자기 쌍수는 왜. 누가 우리 동생 못생겼다고 해?”

오상진은 순간 웃음이 났다. 뭔가 심각한 이야기가 나올 줄 알았는데 고작 쌍꺼풀 수술이었다니. 괜히 혼자서만 진지해진 것 같았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오상희에게는 큰 고민거리였다.

“칫, 언제는 못생겼다면서! 그 얼굴로 무슨 연예인을 하냐고 했잖아.”

“야, 그건 그냥 네가 하도 정신을 못 차려서 해본 소리고.”

“그럼 내가 예쁘다고?”

“뭐 너 정도면…….”

오상진이 말끝을 흐렸다. 요즘 들어 워낙 미인들을 자주 만나서일까. 오상희 정도면 예쁘장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차마 입 밖으로 말하지 못했다.

그러자 오상희가 눈을 부릅떴다.

“이봐, 이봐! 오빠도 나 예쁘다고 말 못 하잖아.”

“야, 솔직히 안 예쁜 건 아닌데 그렇다고 엄청 예쁜 편은 아니잖아. 안 그러냐?”

“그건 인정!”

오상희도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오디션을 들으며 자주 들었던 게 바로 그런 평가였다.

“그런데 갑자기 왜 쌍꺼풀 수술이야?”

“갑자기 아니야. 오래전부터 고민한 거라고.”

“오디션 때문에 그래?”

“오디션을 볼 때마다 나 눈 작다고 얘기를 하잖아. 짜증 나게!”

“그래서 그것 때문에 쌍수를 하고 싶었어?”

“응.”

“어후, 그런 거면 오빠에게 진즉 말하지.”

“응? 왜? 말하면 오빠가 해줄 거야?”

오상희의 눈빛이 반짝였다.

“막말로 내 동생이 하고 싶다는데 그거 하나 못 해주겠냐.”

“정말이야?”

오상희의 표정이 환해졌다. 오상진이 그런 오상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럼. 그런데 지금은 너무 이르니까 너 고등학교 졸업하면 그때 하자.”

“뭐? 아직 3년이나 남았잖아!”

“그때까지 제발 사고 치지 말고 무사히 학교만 졸업해. 그럼 졸업 선물로 시켜줄 테니까.”

“정말이지? 오빠 약속한 거다?”

“오빠가 어디 약속해서 지키지 않은 적 있냐.”

“아싸!”

오상희가 그 자리에서 폴짝폴짝 뛰며 기뻐했다. 그 모습을 보며 오상진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11.

월요일 아침 오상진은 기분 좋은 상태로 행정반에 들어섰다. 다른 소대장들과 부소대장들은 이미 출근을 한 상태였다.

“오, 벌써 출근들 하셨습니까. 좋은 아침입니다.”

오상진을 발견한 4소대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했다.

“네, 좋은 아침입니다.”

“1소대장님 오셨습니까. 주말 잘 보냈습니까?”

3소대장의 물음에 오상진이 환하게 답했다.

“네. 3소대장도 잘 보냈습니까?”

“네. 저도 잘 보냈습니다.”

그렇게 여느 때처럼 인사를 나누고 오상진이 책상에 가서 앉았다. 그러자 박중근 하사가 다가왔다.

“소대장님. 집에 잘 다녀오셨습니까?”

“네, 박 하사님. 저 때문에 주말에 쉬지도 못하고 고생 많으셨습니다.”

“고생은요.”

“혼자 제가 주말에 시간을 냈어야 했는데…….”

오상진이 미안한 듯 웃었다. 그러자 박중근 하사가 두 손을 흔들었다.

“에이, 그게 무슨 섭섭한 말씀이십니까. 그리고 저도 축구팀 코치입니다. 소대장님께서 일이 있으시면 제가 애들을 관리하는 게 당연합니다.”

“집에서는 뭐라고 안 합니까?”

“와이프는 오히려 좋아합니다. 하루 종일 아들만 신경 쓸 수 있다고 하면서요.”

“참, 아들 수술은 어떻게 됐습니까?”

말이 나온 김에 오상진이 박중근 하사 아들의 수술 경과를 물었다.

너무 과하게 신경 쓰면 부담을 주는 거 같아서 알아서 말해주길 기다렸는데 나중에 듣고 보니 수술을 이미 받은 모양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말씀드리려고 했는데 소대장님 덕분에 잘 받았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박 하사야말로 그게 무슨 섭섭한 말입니까. 우리 사이에 그런 인사치레는 됐습니다. 아들이 먼저죠.”

“하하. 그렇습니까?”

박중근 하사가 기분 좋게 웃었다. 그러고는 아들의 수술 경과를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별 이상이 없다고 합니다. 너무 늦지 않게 수술해서 회복도 빠른 편이라 한두 달만 더 상황 지켜보고 이상 없으면 퇴원해도 된다고 합니다.”

“잘 되었습니다. 그럼 이제 아무 문제 없는 거죠?”

“성장기이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지켜봐야 한답니다. 6개월에 한 번씩 정기검진도 받아야 하고요. 그래도 저대로 무사히 커 주면 한시름 놓고 살 것 같습니다.”

“정말 다행입니다.”

오상진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박중근 하사의 눈시울이 붉어지는 거 같자 냉큼 화제를 돌렸다.

“그보다 축구 연습은 어땠습니까?”

“재미있었습니다. 솔직히 주말에 연습하라고 하면 대충 할 줄 알았는데 다들 의욕이 넘쳤습니다.”

“그렇습니까?”

“네. 제 요구 사항도 다들 잘 따라줬습니다.”

“확실히 애들이 박 하사를 좋아하나 봅니다.”

“1소대라면 몰라도 다른 소대 병사들도 섞여 있는데 그게 어디 저 때문이겠습니까? 다 중대장님 덕분이죠.”

“생각해 보니 그렇네요. 하하.”

“그런데 어떻게 그런 애들로 엔트리를 짜실 생각을 다 하셨습니까?”

“네?”

“애들 호흡이 착착 맞습니다. 마치 오래전부터 함께 축구를 해온 녀석들처럼 말입니다. 게다가 자기들끼리 더 욕심을 내려고 하니까 훈련시키는 맛이 있습니다.”

“그렇습니까.”

오상진이 흐뭇하게 웃었다. 선수마다 따로 불러서 휴가권과 외박증을 약속한 게 어느 정도 효과가 있는 모양이었다.

“아직 수비가 좀 약하긴 하지만 미드필더들은 전부 2소대 출신이라 그런지 몰라도 찰떡궁합입니다.”

“강인한 상병하고 쌍둥이 일병들 말이죠? 제가 그거 믿고 억지로 뽑았지 않습니까.”

“잘하셨습니다. 솔직히 소대장님하고 2소대장하고 사이 안 좋은 거 병사들도 다 알아서 2소대에서는 한 명도 차출 안 될 줄 알았답니다. 그런데 소대장님께서 직접 와서 뽑아주니까 신이 난 모양입니다. 2소대에 은근 공 잘 차는 병사들 많지 않습니까.”

1중대의 4개 소대를 기준으로 축구 전력을 평가하자면 2소대가 가장 잘한다는 의견들이 많았다.

2소대가 병장부터 상병, 일병에 이르기까지 선수 밸런스가 가장 좋은 데다가 장재일 2소대장이 틈만 나면 선수들과 축구를 해오면서 팀워크가 좋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오상진의 생각은 달랐다. 단순히 군대스리가였다면 2소대가 나을지 몰라도 대대 체육대회에서는 통하지 않을 거라 여겼다.

그래서 2소대의 간판 공격수들을 전부 배제했다. 대신 2소대에서 궂은일을 도맡아 하는 강인한 상병과 주로 수비를 보았던 하영운, 하영진 쌍둥이 일병을 끌고 왔다.

소대가 다른 이들끼리 묶어 놓는 것보다 같은 소대 출신들로 미드필더 라인을 구상하는 게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그런 오상진의 계획은 지금까지 잘 들어맞고 있었다.

“공격 라인은 어떻습니까?”

“세 명 다 골 욕심은 상당합니다만 김일도 상병이 2선에서 자리를 잡으면서 균형이 잡힌 느낌입니다.”

“그렇습니까?”

“솔직히 저는 김일도 상병이 그렇게 축구를 잘하는 줄 몰랐습니다. 몇 번 같이 축구를 하면서 골을 잘 넣는 줄은 알았는데 밖에서 보니까 빈틈을 파고드는 기술이 어마어마한 것 같습니다. 숄사르드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사실 그래서 일도를 뽑은 겁니다. 공격수는 둘이면 충분하지만 일도에게는 이근우 병장이나 김이중 상병에게 없는 무언가가 있으니까요.”

“플레이메이커 같은 건가요?”

“역시. 박 하사도 축구 보는 안목이 상당한 것 같습니다. 정확하게 봤습니다. 제가 일도에게 원하는 게 바로 그겁니다.”

“솔직히 다른 중대에서 이 이야기를 들었다면 군대 축구에 무슨 플레이메이커냐고 코웃음을 쳤겠지만 저는 소대장님의 판단이 훌륭했다고 생각합니다. 이근우 병장이나 김이중 상병 둘 다 공격을 만들어가는 스타일은 아니니까요.”

“이렇게 또 제 생각을 알아주니 몸 둘 바를 모르겠네요.”

오상진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런데 김일도 상병은 원래 축구를 잘했습니까?”

“네. 듣기로 원래 공은 좀 찼나 봅니다.”

“그렇습니까? 아무튼 패스를 받는 김이중 상병과 이근우 병장이 아주 그냥 엄지손가락을 세우며 칭찬에 열을 올립니다.”

“그건 아마도 그 녀석들 때문일 겁니다.”

“네?”

“최용수 병장하고, 강상식 상병 말입니다. 둘이서 대놓고 접대 축구를 즐겼을 테니까요.”

“하긴, 그 두 사람 입맛에 맞게 패스해 주면서 실력도 늘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박중근 하사가 이해가 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일도가 특별히 열심히 한다고 하니까 소대장으로서 가만있을 수가 없네요.”

“외박증 하나 더 쏘십니까?”

“휴가증은 좀 과하고 외박증 한두 개 정도는 소대장 재량으로 줄 수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후후, 그럼 제가 슬쩍 얘기해 놓겠습니다.”

“그렇게 하십시오. 그럼 알아서 더 열심히 할 겁니다.”

“네.”

한참을 웃고 떠들던 박중근 하사가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오상진도 오늘의 훈련 스케줄을 확인하려고 하는데 갑자기 휴대폰이 울렸다.

“어? 한 대위님?”

오상진이 곧바로 받았다.

“네. 오상진 소위입니다.”

-접니다, 한 대위.

근무 중인 듯한 대위가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 한 대위님 무슨 일이십니까?”

-지금 시간 되면 나 좀 볼 수 있습니까?

“지금 말입니까?”

-제가 긴히 할 말이 있는데 말입니다.

“흠…….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전화를 끊은 오상진이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일 있나?”

훈련 스케줄을 확인하니 오늘은 정신교육이 내정되어 있었다. 그래서 특별히 자신이 할 일은 없었다.

“그래도 일과 시간에 무작정 가기는 그렇고…….”

오상진이 잠시 생각을 하더니 고개를 들어 물었다.

“혹시 오늘 우리 1중대 환자 없습니까? 제가 의무대에 갈 일이 있는데 제가 인솔하겠습니다.”

그러자 3소대장이 가볍게 손을 들었다.

“안 그래도 아침부터 아프다고 하는 녀석이 있는데 잘 됐습니다.”

“많이 심각합니까?”

“잘은 모르겠는데 아무래도 체육대회 때문에 조금 무리를 한 모양입니다.”

“요즘 날이 더워서 뭘 잘못 먹은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오상진이 고개를 돌려 4소대장을 바라봤다. 그러자 4소대장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저희 소대는 환자 없습니다.”

“다행이네요.”

그때였다.

“괜히 의무대 간다는 핑계로 농땡이 부리는 거 아닙니까?”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장재일 2소대장이 시비를 걸듯 말했다.

“2소대장님!”

때마침 자리에서 일어나 커피를 타던 3소대장이 눈치를 줬다. 그러자 2소대장이 보란 듯이 미간을 찌푸렸다.

“왜?”

“한동안 조용히 지내시더니 또 그러십니까?”

“내가 뭘? 내 입으로 말도 못 하나?”

“지금 그게 아니지 않습니까.”

“이봐, 3소대장 너 변했다.”

“제가 뭘 변했습니까.”

두 사람은 목소리를 낮춰 말했지만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앉아 있던 오상진이 듣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괜히 저 때문에 싸우지들 마십시오. 그리고 2소대에는 환자 없습니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