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생 리셋 오 소위-124화 (124/1,018)

인생 리셋 오 소위! 124화

15장 전투체육을 아는가(9)

박중근 하사가 1중대 축구 선수들을 불러 모은 장소는 소각장 옆에 마련된 작은 공터였다.

“와, 소각장 옆에 이런 공터가 있었습니까?”

“쓰레기 나오면 쌓아 놓으려고 만든 장소야. 고철이나 각종 폐기물 놓는 곳이기도 하고.”

“그런데 폐기물들은 다 어디 갔습니까? 여기 엄청 많이 쌓여 있었는데.”

“어제인가? 그제인가? 차가 와서 싹 쓸어갔다고 하던데.”

“그렇습니까?”

이근우 병장이 들은 걸 일러주었다. 실제로 차에 실으면서 떨어진 기름 흔적들이 곳곳에 남아 있었다.

“그런데 여기 쌓인 거 팔면 얼마나 나올까요?”

“팔아? 미쳤냐? 그걸 누가 돈 주고 사가?”

“우리가 돈을 주고 폐기물을 수거해 가는 거로 알고 있습니다.”

“그것도 쓰레기 나름 아닙니까? 고철 같은 건 그래도 제법 값이 나갈 텐데 말입니다.”

“행보관들이 뒷주머니를 어떻게 차겠냐? 보통 이런 데서 남는 거로 해 먹는 거야.”

“우앗! 그게 정말입니까?”

“그렇다고 어디 가서 떠들고 다니지는 마라. 나한테 들었다는 말도 말고.”

“물론이지 말입니다.”

그렇게 1중대원들이 얘기를 나누고 있을 때 저 멀리 박중근 하사가 걸어왔다.

“다들 모였냐?”

이근우 병장이 대표로 나서서 대답했다.

“네.”

“좋아, 그럼 인원체크 간단히 한 후 훈련 설명을 하겠다.”

박중근 하사가 인원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그때 이근우 병장이 손을 들고 물었다.

“박 하사님.”

“왜?”

“우리 정말 여기서 훈련합니까?”

“맞아. 왜? 불만 있냐?”

“아니 그건 아니지만…… 다른 중대는 연병장에서 하지 않습니까.”

체육대회까지 남은 시간은 길어야 4주 정도.

그중 2주는 예선전 기간이니 선수들이 연습할 수 있는 시간은 2주 남짓에 불과했다.

당연하게도 선수들은 연병장에 나가 몸을 풀고 싶었다. 하지만 대대 연병장을 모든 중대가 함께 써야 하다 보니 연습 공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지금 3중대하고 5중대가 연습 중이라서 어쩔 수가 없다.”

“그냥 선 긋고 나눠 쓰면 되지 않습니까?”

“나도 그럴까 했는데 저쪽에서도 불편해해서 그냥 날을 나눠서 연습하기로 했어. 오늘은 3중대와 5중대가 쓰지만 내일은 우리와 2중대가 쓸 거다.”

“그럼 내일 2중대와 연습 경기입니까?”

“그건 상황 봐서. 오 소위님하고 상의도 해야 하니까.”

“그럼 우리 오늘 여기서 뭐 합니까?”

“여긴 너무 좁습니다.”

“좁지. 하지만 훈련을 못 할 정도는 아니야. 오늘은 가볍게 패스 연습을 하자. 연병장 못 쓴다고 하루 쉬는 것보다는 나을 테니까.”

“하긴. 그 말이 맞습니다.”

“이렇게라도 공을 차는 게 어디입니까?”

박중근 하사가 사정을 설명했다. 처음에 툴툴거리던 병사들도 상황이 어쩔 수 없음을 이해했다.

박중근 하사가 박수를 치며 말했다.

“자, 일단 몸부터 풀자.”

그렇게 1중대 축구부의 첫 훈련이 시작되었다.

한편, 오상진은 연병장에 나와 다른 중대의 연습을 관전했다.

충성대대의 연병장은 다른 대대에 비해 넓은 편이었다.

노후화가 심한 구막사를 허물고 새 막사를 새로 지으면서 남는 부지들이 전부 연병장으로 통합됐기 때문이다.

사이즈는 학교 운동장의 2배 정도.

그래서 3중대와 5중대가 연습 시합을 하는 도중에도 6중대와 화기 중대가 구석에서 간단하게 몸을 풀고 있었다.

‘6중대는 수비 연습을 하는가 보네.’

6중대는 주로 일대일 대인 마크 연습을 하고 있었다.

군대스리가 특성상 수비를 대충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공간을 지키지 않고 일단 덤벼들다가 뚫리면 손과 발을 써서 반칙으로 끊는 게 주된 전술이었다.

하지만 내기 축구 시합도 아니고 체육대회에서 그런 식으로 경기를 했다간 집단 퇴장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았다.

“나쁘지 않은 생각이야. 일단 수비만 제대로 해도 상대가 당황할 테니까.”

기억하기로 6중대는 이렇다 할 선수가 없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콘셉트를 이탈리아의 빗장 수비로 잡은 듯했다.

반대편에선 화기중대로 보이는 병사들이 패스 연습을 하고 있었다. 3중대와 5중대의 연습 시합이 끝난 뒤 화기중대와 6중대의 시합이 예정된 모양이었다.

지난 전술 훈련 때처럼 제비뽑기로 대진표를 짜지 않는다면 토너먼트 방식에 따라 1중대의 8강 상대는 화기중대가 될 가능성이 컸다.

오상진은 다시 고개를 돌려 3중대와 5중대의 시합을 본격적으로 지켜봤다.

누가 군대스리가 선수들 아니랄까 봐 실력은 못 봐줄 정도였다. 축구는 팀 스포츠인데 전술 같은 건 없고 모두가 공을 쫓는 데 바빴다.

“야, 공 저기 있다.”

“아니야. 뒤쪽이야.”

콜 플레이도 제대로 해줘야 하는데 이곳저곳에서 마구잡이로 떠들어대니 귀가 아플 정도였다.

축구는 11명이 하는 스포츠이고 골키퍼 1명을 뺀 10명이 넓은 그라운드를 책임져야 하는데…….

“아이구야.”

위에서 내려다보니 넓은 연병장이 텅텅 비어 보였다.

얼핏 보면 전원 공격, 전원 수비를 하는 듯했지만 공격수고 수비수고 공만 쫓기 바쁘니 제대로 된 플레이를 파악하기도 어려웠다.

“야, 새끼야! 여기, 여기!”

“패스하라고 새끼야!”

전방에 있는 고참들은 여느 때처럼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내기 축구가 아니라 대대 체육대회의 중대 대표로 뽑힌 거라면 최소한의 자각이 있어야 하지만 골문 앞에서 패스를 받으려는 버릇은 고치지 못한 모양이었다.

“5중대는 완전히 오합지졸이네.”

오상진은 내심 아쉬웠다. 1중대가 화기중대를 격파하면 4강은 2중대와 6중대의 승자와 붙게 된다.

딱 봐도 1중대보다 실력이 떨어지는 5중대와 붙으려면 결승까지 올라가야겠지만 저런 실력으로 5중대가 살아남을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그런 5중대와 시합을 해서일까.

3중대는 상대적으로 체계가 잡힌 것처럼 보였다.

전반에는 공만 쫓아다니던 선수들이 3중대장에게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후반에 들어서는 분업을 하기 시작했다.

수비수들은 어느 정도 라인을 잡고 공간을 지키고.

공격수들은 가상의 하프 라인 밑으로 내려오지 않고 공격에 몰두하고.

미드필더들은 공수를 오가며 부지런히 패스를 연결하고.

순간순간 떼로 몰려드는 5중대의 토탈 사커(?)에 밀리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3중대는 축구다운 축구를 하기 시작했다.

“역시 3중대는 위험해.”

오상진은 다이어리를 펼쳐 3중대의 포메이션을 그려 넣었다. 이게 얼마나 큰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기왕 관전을 나왔으니 감독으로서 뭐라도 하고 싶었다.

그렇게 유심히 관전을 하는 와중 유독 눈에 띄는 한 명의 선수가 있었다.

“아, 누군가 했더니 그 녀석이잖아?”

전반 막판에 한 골을 집어넣을 때만 해도 대수롭지 않게 넘겼는데 후반 들어 상대 진영을 휘젓는 몸놀림이 심상치가 않았다. 마치 전반에는 대충 뛰다가 후반 들어 제 실력을 발휘하는 것 같았다.

방금 전에도 공을 잡자마자 페이크 동작으로 눈 깜짝할 사이에 수비수 두 명을 벗겨냈다.

물론 내기 축구였다면 손을 써 가며 수비를 했겠지만, 심판의 엄격한 판정이 적용되는 체육대회 규칙상 지저분한 플레이를 했다간 심판은 물론이고 축구를 좋아하는 윗사람들의 눈 밖에 나게 될 수 있었다.

그렇게 골문으로 파고든 녀석은 어쩔 줄 몰라 하는 골키퍼를 놀리듯 골대 정면 쪽으로 방향을 틀더니 발끝으로 공을 툭 하고 밀어 넣어 골을 만들어냈다.

“저 녀석 이름이 뭐였더라? 아무튼 고등학교 때까지 선수였다고 하더니……. 진짜였네.”

자대 배치를 받은 신병들에게 물어보면 열에 서넛은 밖에서 공 좀 찼다고 한다.

초등학교 때 축구부였다는 이들은 널렸고 중고등학교 시절까지 선수로 뛰었다는 이들도 소대에 한두 명쯤은 있었다.

하지만 선수 출신이라고 해서 모두가 축구를 잘하는 건 아니었다. 진짜배기는 열 명 중에 하나둘 정도.

1중대의 공격을 이끌 이근우 병장과 김이중 상병도 축구 실력이 제법이지만, 3중대의 공격을 진두지휘하는 저 녀석 정도 되는 병사들은 김일도 상병과 골키퍼, 김성진 상병뿐이었다.

김성진 상병은 군대에 흔치 않은 골키퍼 선수 출신이고 김일도 상병은 축구 이외에 육상을 해서 그런지 지칠 줄 모르는 체력이 압권이었다.

아마 다른 중대에서도 김일도 상병은 분석에 들어갔을 것이다. 하지만 김성진 상병은 아직 베일 속에 싸여 있다. 혹시라도 눈에 띌까 봐 비공식적인 훈련을 진행하게 하고 후보 선수들이 번갈아가며 골키퍼를 보고 있으니 당장 적들의 안테나에 걸려들 가능성은 낮았다.

“3중대장님. 많이 좋아하십시오. 좋아하실 수 있는 것도 지금뿐이겠지만요.”

오상진은 미소를 지으며 계속해서 메모를 이어나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3중대 1소대장이 이대우 3중대장에게 갔다.

“중대장님.”

“어, 왜?”

“지금 오 소위가 정찰을 하는 것 같습니다.”

“뭐? 정찰?”

무슨 소린가 싶어 이대우 3중대장이 고개를 돌렸다. 1소대장의 말처럼 저만치 오상진으로 보이는 누군가가 뭔가를 열심히 적고 있었다.

“제가 쫓아낼까요?”

“쫓아내? 무슨 수로? 연병장에서 보란 듯이 공 차고 있는데 구경하지 말라고 할까?”

“그럼 내버려 둡니까?”

“까짓것 보라고 해. 본다고 해도 우리 정태는 막지 못할 테니까.”

“하긴 박 상병이 있는 이상 우리가 이겼다고 봐야겠죠?”

“당연하지!”

이대우 3중대장이 크게 웃으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그만큼 이대우 3중대장은 박정태를 굳게 믿고 있었다.

박정태의 활약이 이어질수록 오상진도 박정태 상병을 어떻게 막을 것인지에 대한 고민에 빠져들었다.

1중대 선수들을 포지션에 맞춰 뽑아놓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도 수비가 헐거운 건 마찬가지였다. 박정태 상병이 맘먹고 흔들어 놓으면 수비를 맡은 선수들도 휘둘릴 가능성이 컸다.

‘이 녀석을 막느냐 못 막느냐에 따라서 우리가 이기느냐, 지느냐 싸움이 되겠어.’

그렇게 박정태 상병을 향한 오상진의 눈빛이 점점 매서워졌다.

9.

금요일 저녁.

오상진은 모처럼 충성대대를 벗어나 집에 들렀다.

집 앞 현관에 도착한 오상진이 초인종을 눌렀다.

거금을 들여 산 제집이긴 하지만 관사 생활을 하다 보니 지난번에 얼핏 들은 비밀번호를 잊어버린 것이다.

잠시 후 문이 열리고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어? 정진아?”

“왜 벨을 누르고 그래. 비밀번호 알려 줬잖아.”

“몰라. 까먹었어. 그러게 쉬운 거로 하라니까.”

“형…….”

“왜?”

“엄마 생일이거든?”

“크흠, 그랬냐? 그건 그렇고 네가 이 시간에 웬일이냐?”

괜히 멋쩍어진 오상진이 말을 돌렸다. 아직 야간 자율학습이 폐지되기 전이라 밤늦게까지 학교에 붙잡혀 있어야 할 오정진이 벌써 집에 왔다는 게 수상쩍었다.

그러자 오정진이 별 의심을 다 한다는 투로 말했다.

“요즘 시험 기간이거든?”

“시험 기간? 그래서 집에서 공부하는 거야?”

“이젠 독서실보다 내 방이 훨씬 좋잖아. 당연히 집에서 공부해야지.”

“짜식이. 괜히 걱정했잖아.”

오상진이 중얼거리며 군화를 벗으려는데 오정진의 뒤쪽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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