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생 리셋 오 소위-123화 (123/1,018)

인생 리셋 오 소위! 123화

15장 전투체육을 아는가(8)

한소희가 말끝을 흐렸다. 그러면 오상진이 자연스럽게 식사를 하자는 말을 해줄 거라 여겼다.

하지만 오상진은 한소희가 보낸 신호를 제대로 캐치해 내지 못했다.

“지금 3시가 넘어가는데 점심을 안 먹었어요? 왜요? 어디 아파요?”

한소희는 다소 실망한 얼굴로 말했다.

-글쎄요. 오늘은 입맛이 없네요.

“그래도 날이 점점 더워지는데 식사는 꼭 챙겨 먹어요. 그리고 저 지금 운전을 해야 해서 통화 오래 못할 것 같습니다.”

-어디 가요?

“잠깐 일 보러 나왔다가 부대 들어가는 길입니다.”

-네. 알겠어요.

“그럼 다시 연락할게요.”

오상진은 전화를 끊고 운전대를 잡았다. 체육대회 일로 잠깐 외출을 한 상황에서 한가롭게 한소희와 전화 통화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한소희는 휴대폰을 바라보며 입술을 삐죽거렸다.

“칫, 뭐야. 모처럼 전화했는데.”

한소희는 괜히 투덜거렸다. 오상진의 연락을 기다리다가 목이 빠질 것 같아서 어렵사리 용기를 냈는데 고작 한다는 소리가 밥 잘 챙겨 먹으라니.

“하아……. 진짜, 이게 뭐 하는 거지.”

맥이 빠지는 기분이었다.

그때였다.

“우리 소희 여기 있었네?”

느끼한 목소리와 함께 느끼함이 팍팍 풍기는 그림자가 한소희의 옆으로 다가왔다.

한소희가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2년 선배인 우미광이 징그럽게 웃으며 서 있었다.

순간 한소희의 표정이 굳어졌다. 별로 상대하고 싶지 않은 우미광과 이렇게 마주칠 줄은 몰랐던 것이다.

“네, 선배. 안녕하세요.”

한소희가 떨떠름한 얼굴로 고개를 까닥거렸다.

다른 선배들이 봤다면 싸가지가 없다고 한소리 들을 상황.

하지만 우미광은 음흉한 미소를 멈추지 않았다.

“그런데 여기서 뭐해? 수업 안 들어가?”

우미광이 슬쩍 한소희의 등 쪽으로 손을 뻗었다. 여자라면 선후배를 막론하고 스킨십을 시도하는 게 우미광의 못된 버릇 중 하나였다.

그러자 한소희가 우미광의 손을 슬쩍 피하며 말했다.

“오전 수업은 끝났어요. 그리고 어깨에 손 올리는 거 하지 말아 주실래요?”

한소희가 눈을 흘기며 냉랭하게 말했다. 이쯤 되면 대놓고 퇴짜를 놓은 꼴이었지만 우미광은 그런 한소희가 귀엽기만 했다.

“미안. 습관이 되어서.”

“그런 습관은 좀 고치시는 게 어떨까요?”

“그럼 오빠가 이 습관 고치게 우리 소희가 도와줄래?”

“제가 왜요?”

“그야 오빠가 우리 소희를 좋아하니까 그렇지.”

우미광이 당연하다는 투로 말했다.

물론 한소희뿐만 아니라 예쁘고 몸매 좋은 여학우들 대부분을 좋아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소희에게 관심이 없는 건 결코 아니었다.

게슴츠레한 눈으로 빠르게 훑어본 한소희는 오늘도 예뻤다.

‘진짜 보면 볼수록 대박이라니까. 화장도 안 했는데 눈이 부실 정도야.’

본래 우미광은 화장을 잘하는 여자를 좋아했다. 여자라면 모름지기 화장을 잘해야 한다며 주변에 설파하기도 했다.

그런데 한소희가 입학한 이후로 그 생각이 달라졌다.

화장도 하지 않고 가끔 안경까지 쓰고 다니지만 한소희의 외모는 그야말로 클래스가 달랐다.

게다가 한소희는 몸매도 예술이었다.

현직 모델부터 시작해 몸매 좋다는 여자들도 여럿 만나봤지만 한소희만한 여자는 없었다.

‘진짜 갖고 싶다.’

우미광의 두 눈으로 탐욕이 번들거렸다. 그럴수록 한소희는 이 기분 나쁜 상황을 한시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더 하실 말씀 없으시면 가 볼게요.”

“잠깐. 소희야. 뭐가 그렇게 급해?”

“제가 아직 식전이라서요.”

“뭐? 지금 시간이 몇 시인데 밥을 안 먹었어? 이거 안 되겠네? 선배로서 그냥 못 넘어가겠는데?”

“그냥 못 넘어가시면요?”

“그야 당연히 선배로서 우리 후배 밥을 사 줘야지. 뭐 먹을까? 실은 나도 점심을 부실하게 먹어서 뭐 좀 먹을까 고민하고 있었거든.”

“아뇨, 괜찮아요.”

“에이, 그러지 말고 같이 가자. 요 앞에 새로 생긴 레스토랑 있지. 거기 가 봤냐? 맛있다고 소문이 나서 사람들이 줄 서고 그래.”

“괜찮다는 얘긴 들었어요.”

“괜찮은 정도가 아냐. 오픈한 지 얼마 안 되어서 예약도 일주일 전에 해야 한다는데?”

“그래서요?”

“그래서는 뭐가 그래서야. 내가 이 말을 왜 꺼냈겠어? 남들은 예약하고 줄 서서 들어가야 하지만 너는 바로 프리패스라는 이야기지.”

“프리패스요?”

“이건 비밀인데 사실 거기 사장님하고 나하고 좀 친해. 집안끼리 알고 지내는 사이라고나 할까?”

우미광이 씩 웃으며 말했다. 비밀을 운운하며 자신의 인맥과 집안을 자랑하는 건 우미광의 또 다른 버릇이었다.

실제 마음에 드는 여자들마다 어찌나 떠벌리고 다니는지 그가 금수저라는 사실을 모르는 학우는 거의 없을 정도였다.

보통 이렇게 말하면 열에 아홉은 넘어오게 마련이지만 한소희는 그런 여자들과 달랐다.

“그래요? 우연이네요. 저도 거기 사장님 좀 아는데.”

“네가? 어떻게?”

“그건 굳이 말해드릴 필요 없을 거 같고요. 참고로 거기 이미 다녀 왔어요.”

“뭐? 가 봤다고? 벌써? 언제?”

순간 우미광의 표정이 싹 변했다.

“너 설마 남자랑 갔냐?”

“그걸 왜 궁금해하시는데요?”

“야, 한소희!”

우미광이 자신도 모르게 버럭 화를 냈다. 그러자 한소희가 가볍게 코웃음을 치고는 그대로 몸을 돌렸다.

“전 그만 가 볼게요.”

“야, 어디 가는데!”

“모르셔도 되요.”

“어후, 저 싸가지 없는 년.”

뒤도 안돌아보고 걸어가는 한소희를 보며 우미광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환상적인 한소희의 뒷태를 보고는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음흉한 미소를 머금었다.

“두고 봐, 내가 널 꼭 내 것으로 만들 테니까.”

8.

충성 대대는 보통 오후 16시 30분부터 18시까지 전투 체육을 실시했다.

“김 상병님 축구하러 가실 시간입니다.”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어?”

4소대 킹리라 불리는 김이중 상병이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는 잠시 스트레칭을 한 후에 입을 뗐다.

“야. 내 신발 어디 있냐?”

“넵! 여기 있습니다.”

김이중 상병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이병 하나가 총알처럼 김이중 상병 앞에 축구화를 가지고 왔다.

“짜식. 잘 했어!”

김이중 상병 만족스러운 얼굴로 축구화를 신었다. 그리고 이미 묶여 있던 축구화 끈을 풀고는 마치 의식이라도 치르듯 꼼꼼하게 다시 동여맸다.

마지막으로 운동장에 들어가 몸을 푸는 국가대표 축구 선수처럼 자리에서 일어나 폴짝폴짝 뛰었다.

“야, 어떠냐?”

김이중 상병이 후임병들을 보며 물었다. 그러자 후임병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환호하기 시작했다.

“오오, 역시 김 상병님. 멋지십니다.”

“역시 킹리 십니다.”

“김 상병님은 우리 4소대의 자랑이십니다.”

매번 옆구리 찔러 듣는 칭찬이라 질릴 만도 할 텐데 김이중 상병은 히죽 웃으며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본래 이 맛에 고참하는 법이다.

그러자 누워 있던 임찬규 병장이 짜증 내듯 말했다.

“야, 인마. 적당히 해. 먼지 날리잖아.”

“에이, 임 병장님. 좀 봐주십시오.”

“나 여자 아니면 안 보는 거 모르냐? 아무튼 김이중.”

“상병 김이중.”

“우리 4소대 망신시키지 말고 잘하고 와라.”

“그런 걱정은 붙들어 매십시오. 제 별명이 뭡니까? 킹리 아닙니까.”

“킹리고 자시고 간에 3소대 이 병장한테 발리기만 해. 그땐 진짜 가만 안 있는다.”

3소대 이근우 병장과 임찬규 병장은 4소대에서 영혼의 라이벌로 통했다.

물론 축구 실력은 이근우 병장이 월등히 좋았지만 임찬규 병장은 자신이나 이근우 병장이나 별차이가 없다고 착각했다.

그래서일까. 임찬규 병장은 자신만 쏙 빼놓고 팀을 꾸린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런 임찬규 병장의 속내를 읽은 주재민 상병이 슬쩍 분위기를 바꿨다.

“그러지 말고 김 상병님 개인기 한 번 보여주시지 말입니다.”

김이중 상병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한번 보여줘?”

김이중 상병이 공을 바닥에 내려놓고, 그 위에 다리를 올렸다.

“상태야.”

“일병 이상태.”

“앞에 서봐!”

“네.”

“가만히 서 있지 말고 들어와, 들어와! 들어와서 뺏어봐.”

김이중 상병이 손을 까닥까닥 거렸다. 이상태 일병이 재빨리 앞으로 치고 들어갔다.

김이중 상병이 히죽 웃으며 몸을 움직였다.

흔히 지단 턴이라 불리는 마르세유 턴을 보여줄 생각이었다.

그런데…….

“어어…….”

쿵!

이상태 일병이 공이 아니라 다리를 향해 들어오면서 김이중 상병이 그대로 뒤로 넘어지고 말았다.

순간 내무실은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잘한다. 미친놈.”

임찬규 병장만 코웃음을 칠 뿐 다른 병장들은 감히 숨소리조차 내지 못했다.

사고를 친 이상태 일병은 잔뜩 겁에 질린 듯 부르르 떨었다.

“저, 저…….”

김이중 상병도 많이 당황했다. 하지만 이내 벌떡 일어나서는 크게 웃었다.

“하하, 하하하! 새끼, 공을 보고 들어와야지 다리를 보고 들어오면 어떻게 해?”

“죄, 죄송합니다.”

“아무튼 너 파울인 건 알지?”

“아, 넵! 파울 맞습니다.”

“이번엔 제대로 들어와라. 아까처럼 또 다리 걸면 그땐 진짜 죽는다?”

“제, 제대로 들어가겠습니다!”

김이중 상병은 다시 자세를 잡으며 말했다.

“다시 들어와!”

이상태 일병은 잔뜩 긴장한 상태로 다가갔다. 앞서 사고를 쳐서일까. 진짜 수비수처럼 달려들어 줘야 하는데 주춤주춤하는 게 군대스리가의 접대 축구를 보는 듯했다.

하지만 김이중 상병은 신경 쓰지 않고 발끝으로 공을 툭 하고 끌어당긴 뒤에 이상태 일병의 옆으로 몸을 돌려 빠져나갔다.

“봤지, 봤지?”

“와아아아아!”

초조한 얼굴로 그 모습을 지켜보던 후임병들이 일제히 박수를 쳤다.

“야, 그렇게는 나도 하겠다.”

임찬규 병장도 코웃음을 쳤다.

그때 3소대 이근우 병장이 지나가면서 그 장면을 봤다.

“훗! 지랄하고 있네. 야, 너 뭐 하냐?”

김이중 상병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 병장님은 왜 또 남의 내무실까지 오셔서 시비입니까.”

“그냥 지나가는 길에 어이없는 장면을 봐서 그런다.”

“어이가 없다니 무슨 말씀입니까?”

“설마 그거 지단 턴이라고 한 건 아니겠지?”

“방금 못 보셨습니까? 제대로 된 지단 턴이었는데 말입니다.”

“지단 턴은 개뿔. 그렇게 느려 터져서야 실전에서 써 먹을 수나 있겠나?”

“느린지 안 느린지 직접 들어와 보시겠습니까?”

“됐고, 빨리 나오기나 해. 시간 다 됐으니까.”

이근우 병장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상병이나 되어서 내무실에서 후임들 앞에 두고 공을 차고 있는 모습을 보니 그저 한심스럽기만 했다.

하지만 김이중 상병은 이근우 병장이 자신을 시기하는 거라 여겼다.

“이 병장님. 제가 지단 턴 좀 가르쳐 드릴까요?”

“지랄한다! 그딴 거 배워서 뭐하게? 실전에서 써먹지도 못할 텐데.”

“저 지난 내기 축구 때 지단 턴으로 수비수 두 명 제친 거 못 보셨습니까?”

“응. 못 봤어. 그러니까 괜히 후임병들 괴롭히지 말고 나오기나 해.”

“또 제가 언제 후임병들을 괴롭혔다고 그러십니까.”

둘은 그렇게 티격태격하며 내무실을 나섰다.

9.

전투체육이라고 해서 실제로 농구나 축구를 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전투력 상승을 위한 체력단련을 하는 경우가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1중대 축구부는 체육대회를 위한 연습을 하기로 중대장에게 허락을 받은 상태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