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생 리셋 오 소위-122화 (122/1,018)

인생 리셋 오 소위! 122화

15장 전투체육을 아는가(8)

“그래도 그게 어디입니까.”

“맞습니다. 오 소위님 멋있습니다.”

1소대원들이 한목소리로 오상진을 추켜세웠다. 다른 소대원들도 크게 만족하는 분위기였다.

그사이 박중근 하사가 줄자와 메모장을 들고 나타났다.

“자, 사이즈를 재야 하니까 한 명씩 일어나서 앞으로 나와.”

박중근 하사는 선수로 선발된 병사들의 신체 사이즈와 발 사이즈를 일일이 확인한 후 메모장에 적었다.

오상진은 대충 사이즈만 알아달라고 했지만 박중근 하사는 군대식으로 철저하게 조사했다.

“저기 박 하사…….”

“부르셨습니까?”

“아닙니다. 고생한다고요.”

“고생은요. 저보다 소대장님이 더 고생이시죠.”

박중근 하사가 멋쩍게 웃었다.

막말로 고작 부대 체육대회였다. 그런데 이렇듯 유니폼까지 맞출 필요가 있을지 의문이었다.

대대장이 관심을 갖는 만큼 잘 보이고 싶은 욕심이야 당연하겠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유난을 떤다는 소리를 듣게 될지도 몰랐다.

그러나 오상진의 생각은 달랐다. 이미 시가전 전술훈련에서 뼈아픈 패배를 당한 상황에서 체육대회를 대충 치르고 싶지 않았다.

이번 체육대회에서 오상진의 목표는 축구 우승이었다.

축구 우승을 통해 1중대에게 종합 우승을 안길 생각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병사들의 사기를 북돋울 필요가 있었다.

‘형님을 위해서라도 이번에 제대로 한번 보여주자.’

오상진이 마음을 다잡는 사이 박중근 하사가 선수들의 사이즈를 전부 확인했다.

“소대장님. 여기 있습니다.”

“다 확인하신 겁니까?”

“그런데 13명으로 경기를 치르는 겁니까? 아까 보니까 골키퍼가 없던데 말입니다.”

“골키퍼 볼 녀석은 제가 따로 치수를 받았습니다. 오늘은 일이 있어서 못 왔지만 훈련 때는 합류할 겁니다.”

“아, 그렇습니까?”

“아무튼 수고하셨습니다.”

오상진이 메모지를 받고 주머니에 넣었다. 그러자 박중근 하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런데 중대장님께서 유니폼 제작비도 지원하시는 겁니까?”

“아닙니다. 이건 제가 그냥 제 사비로 해주려고 합니다.”

“네에? 그럼 돈이 엄청 많이 들 텐데요. 굳이 이렇게까지 하셔야 합니까?”

“박 하사가 이해해 주세요. 그냥 제가 해주고 싶어서 그렇습니다.”

회귀 전 대대장 시절 육사 출신 3중대장이 부임한 일이 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대대 체육대회를 열었는데 3중대가 축구와 농구는 물론 줄다리기를 석권하며 통합 우승하는 기염을 토해냈다.

그날 저녁 회식 자리에서 오상진은 3중대장을 치하하며 비결을 물었고 3중대장은 자신의 사비를 털어 병사들의 유니폼과 신발을 맞췄다는 사실을 밝혔다.

이유를 묻자.

“돈은 물론 많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고생하는 건 병사들인데 뭐라도 해주고 싶었습니다.”

3중대장은 우문현답을 주었다.

우승하면 활약한 선수들에게 포상 휴가를 주겠다는 뻔한 사탕발림으로는 한계가 있으니 병사들이 자발적으로 체육대회를 즐길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해 준 것이다.

비록 그 시절과 회귀한 지금은 다르겠지만 오상진은 자신을 감동시켰던 3중대장처럼 1중대 병사들을 독려하고 싶었다.

쉰 냄새 풀풀 나는 체육복을 입고 운동장에서 흙먼지 풍기며 뛰어다니다 보면 제 실력이 나올 리 없었다.

그보다 모두가 부러워할 만한 깔끔한 유니폼에 질 좋은 운동화를 선물한다면 다들 신이 나서 더 열심히 할 터였다.

물론 금전적인 지출이 상당하다는 단점을 무시할 순 없지만 죽어서 돈을 싸 들고 갈 것도 아닌데 고생하는 병사들을 위해 기분 한번 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본래 윗사람들은 경기 결과만큼이나 단합력을 중요하게 여기니까. 그것만으로도 1중대는 50점을 먹고 들어가는 거겠지.’

오상진이 생각을 무를 것 같지 않자 잠시 고심하던 박중근 하사가 큰 마음을 먹고 말했다.

“소대장님. 그럼 저도 보태겠습니다.”

“괜찮습니다. 아는 곳에서 싸게 하기로 했으니까 돈 걱정은 마시고 박 하사는 박 하사가 해줄 수 있는 걸 해주십시오.”

“제가 할 수 있는 거요?”

“저는 박 하사가 이 녀석들 전담 코치를 해주셨으면 합니다.”

박중근 하사가 놀란 눈으로 말했다.

“제가 말입니까?”

“박 하사. 소싯적에 축구 좀 하지 않습니까.”

“어? 그걸 어떻게…….”

박중근 하사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 중학교 때까지 축구부 활동을 했다는 사실을 오상진에게 말한 기억이 없었기 때문이다.

순간 오상진도 아차 싶었다. 생각해 보면 박중근 하사가 축구 실력을 뽐내기 시작한 건 연말 무렵이었다.

‘이런 내가 너무 성급하게 말했나?’

오상진은 박중근 하사가 캐물으면 뭐라고 변명해야 할꼬 고심했다. 하지만 정작 박중근 하사는 알아서 이야기의 출처를 찾아냈다.

“혹시 김 중사님께 들으셨습니까?”

오상진이 멋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네에. 아마 그럴 겁니다.”

“아무튼 김 중사님도 참 별 이야기를 다 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럼 제 부탁 들어주는 겁니까?”

“소대장님 부탁인데 당연히 해야죠. 걱정 마십시오. 제가 책임지고 훈련시키겠습니다.”

“네. 그럼 전 용품을 주문하러 가보겠습니다.”

“다녀오십시오.”

박중근 하사에게 선수들을 맡겨 놓고 오상진은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미리 전화로 예약해 놨던 스포츠 매장으로 향했다.

군대 근처에도 종종 단체 티를 주문한다는 가게가 있었지만 재질에 비해 가격을 터무니없이 받았다.

리베이트가 목적이라면 최고의 가게겠지만 자신의 주머니에서 돈이 나가는 만큼 오상진은 가성비에 신경을 썼고, 그러다 중고차를 구매한 임창석 대리로부터 좋은 업체를 소개받을 수 있었다.

차로 약 30여 분을 달려서 스포츠 매장에 도착했다.

“어서 오세요. 손님.”

“혹시 사장님 계신가요?”

“제가 사장인데 무슨 일로……?”

“어제 임 대리님 소개로 전화드린 사람입니다.”

“아, 네. 어서 오세요. 그렇지 않아도 언제 오시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사장이라는 사내는 인상이 좋았다. 게다가 오상진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임창석 대리와 친분이 두터웠다.

“창석 씨한테는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다. 유니폼이랑 축구화 구입하신다고 하셨죠.”

“네.”

“이쪽으로 오십시오. 가격은 제가 거의 원가로 해드릴 테니까 마음 편하게 보시구요.”

“네. 감사합니다.”

오상진은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신발을 구경했다.

유명한 스포츠 브랜드는 아니지만 스포츠 마니아들에게는 가성비 좋은 브랜드로 알려져서인지 몰라도 유명 스포츠 브랜드 제품들과 큰 차이가 나지 않았다.

그때 여종업원이 다가와 말했다.

“마실 것 좀 드릴까요?”

“네, 녹차 있으면 한 잔 주세요.”

“시원하게 해드릴까요?”

“그럼 좋죠.”

여종업원이 얼음 동동 띄운 녹차를 들고 돌아왔을 때 오상진은 세 종류의 축구화를 골랐다.

“일단 이 녀석은 이번에 새로 나온 겁니다.”

“어쩐지 눈길이 확 가더라고요.”

“품질로는 큰 차이가 없는데 신제품이라 가격대가 좀 있습니다. 대신 얘네 둘은 작년에 나온 거라 제가 추가 할인도 해드릴 수 있고요.”

“그럼 이걸로 해주십시오.”

“알겠습니다. 혹시 사이즈는 가지고 오셨나요?”

사장을 대신해 매장 매니저가 물었다. 오상진이 곧바로 메모지를 꺼내 건넸다.

“아. 여기 있습니다.”

“어디 보자…….”

매장 매니저가 오상진이 건넨 메모를 확인하며 말했다.

“다행히 사이즈별로 재고가 남아 있네요. 일단 축구화는 바로 가능하고요. 유니폼은 번호랑 이름을 찍어야 하니까 시일이 좀 걸릴 겁니다. 괜찮으십니까?”

“며칠이나 걸릴까요?”

“일주일 정도는 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저희도 다른 업체에 맡겨야 해서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바로 계약서를 작성하겠습니다.”

“네.”

오상진은 그 자리에서 계약서에 서명을 하고 카드를 건넸다. 자신과 박중근 하사를 포함해 총 16명의 유니폼과 신발을 구매했으니 적잖은 돈이 나갈 거라 여겼는데 할인을 얼마나 해준 건지 백오십만 원을 넘기진 않았다.

그렇게 차를 타고 매장을 나오다 보니 오정진이 생각났다.

“맞다. 정진이 운동화 사 준다고 했는데…….”

지난번에 봤을 때 오정진의 운동화가 많이 낡아 있었다. 신발 바꿀 때가 되지 않았냐고 넌지시 말을 꺼내니 학교만 다니는 건데 무슨 소용이냐며 빨지 않아서 그렇지 세탁하면 깨끗하다고 말했다.

오정진에게 신발 사라고 용돈을 쥐여줘 봐야 나중에 대학 가면 사겠다고 통장에 넣어놓을 게 뻔한 노릇.

“이참에 하나 사야겠다.”

오상진은 차를 돌려 유명 스포츠 브랜드 매장으로 들어갔다.

“사이즈가 280mm이었지.”

자신도 아버지를 닮아 발이 큰데 오정진도 생각보다 신발 사이즈가 컸다.

오상진이 진열대에 있는 신발들을 쭉 훑어보자 직원이 다가와 물었다.

“운동화 보시나요?”

“아, 네에. 동생에게 하나 사 줄 까 해서요. 혹시 이 중에서 제일 잘나가는 신발이 어떤 겁니까?”

“혹시 동생분 나이가 어떻게 되실까요?”

“고등학생입니다. 남동생이고.”

“요즘 고등학생들 사이에서 엄청 인기 있는 제품은 어떠신가요? 죠던 시리즈인데 솔직히 없어서 못 팔 정도거든요.”

직원이 진열된 신발 하나를 집어 들며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마음에 들던 녀석인데 인기가 있다고 하니 다른 신발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 정도면 정진이도 좋아하겠지?’

오상진이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사이즈 280인데 있죠?”

“물론이죠.”

“혹시 여자 신발도 있나요?”

“여자 친구분 신발 사시게요?”

“아뇨. 여동생 거요.”

“그렇다면 이쪽에서 한번 보시겠어요?”

직원이 안내한 진열대에서 오상희에게 어울릴 만한 신발을 하나 구입한 뒤 오상진이 계산대로 갔다.

“다 해서 이십육만팔천 원입니다.”

“카드로 계산할게요.”

“네. 카드 받았습니다.”

오상진은 어제 한국은행에서 받은 VVIP 전용 블랙카드를 내밀었다. 일반 카드와 달리 앞면에 카드 번호가 양각되어 있지 않았다. 그저 한국은행의 로고와 VVIP라는 표기, 그리고 비씨 카드의 로고가 박혀 있을 뿐이었다.

“손님. 이거 신용 카드인가요?”

블랙카드를 처음 본 종업원이 오상진을 보며 물었다.

“네. 신용 카드 맞아요. 아까 다른 매장에서도 사용했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아, 네. 죄송합니다. 제가 이런 카드는 처음이라. 그럼 몇 개월로 해드립니까?”

“그냥 일시불로 해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종업원이 조심스럽게 카드를 긁었다.

잠시 후

지직. 지지직.

영수증 출력 소리와 함께 계산이 완료됐다.

“신으시면 환불은 안 되고 교환은 일주일 안에 오셔야 가능하세요.”

“네. 알겠습니다.”

양 손에 쇼핑백을 하나씩 들고 오상진은 주차된 차에 올라탔다.

그때 한소희로부터 전화가 왔다.

“어? 소희 씨네. 여보세요.”

-뭐 해요?

“저 지금 밖에 일 좀 보고 있습니다.”

-밥은 먹었어요?

“아뇨 아직 식사 전입니다.”

-그래요? 저도 아직 점심 안 먹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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