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121화
15장 전투체육을 아는가(7)
“강 상병. 안 본 사이에 개그가 늘었다? 무슨 트리플 미드필드? 웃기고 자빠졌네. 야, 쓸데없는 소리 말고 자리에 앉기나 해.”
“이 병장님은 아직도 전역 안 했습니까?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해야 할 판에 무슨 축구입니까. 그러다가 진짜 어디 하나라도 부러져 봐야 정신 차릴 겁니까?”
“닥쳐 인마! 나도 나오고 싶었겠냐. 1소대장님이 하도 나오라고 사정 사정을 하니까. 나온 거지.”
“거짓말 마십시오.”
“이 새끼가 거짓말이라니! 인마, 너희 강수가 그리 가르치더나?”
순간 강인한 상병이 움찔했다. 최강수 병장은 2소대 분대장이었다.
“거, 거기서 분대장님이 왜 거론됩니까?”
“네가 하는 꼬라지가 영 아니라서 그랬다.”
“제, 제가 뭘 어쨌다는 겁니까.”
“닥치고 전에 너희 2소대 우리한테 깨졌지? 그리고 4소대 너희도 말이야.”
“저번 주에는 저희가 5 대 3으로 이겼지 않습니까?”
“아, 내가 하도 불쌍해서 후반전에 빠져준 날?”
“그래도 이긴 건 이긴 겁니다.”
“솔직히 그날은 내기 축구 아니라고 해서 적당히 빠져준 거야. 솔직히 내기가 있어야 축구 할 맛 나잖아. 안 그래?”
이근우 병장이 짓궂게 말했다. 그러자 강우석 상병과 조규식 일병, 박가람 일병이 당연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축구로 따지면 3소대가 다른 소대보다 조금 잘하는 편이긴 했다.
하지만 2002년 월드컵 이후 국기가 되어버린 축구를 두고 자존심을 굽힐 정도는 아니었다.
그때 마지막으로 문이 열리고 1소대가 들어왔다.
“어? 다들 와 계셨습니까?”
김일도 상병을 선두로 김우진 상병, 한태수 일병까지.
이로서 오상진이 직접 호명한 모든 인원이 모였다.
“오오, 일도 왔어?”
이근우 병장이 김일도 상병을 반갑게 맞았다. 그도 그럴 것이 김일도 상병은 자신과 포지션이 겹쳤다.
다만 김이중 상병보다 김일도 상병이 예쁜 건 김일도 상병은 섀도 스트라이커 역할도 가능하다는 점이었다.
“어? 이 병장님. 설마 아직도 부대에 계셨습니까?”
“인마, 너까지 그러면 나 섭섭하다.”
“에이, 전 벌써 전역하신 줄 알았습니다.”
“이놈이나 저놈이나 왜 다들 날 못 보내서 안달인 거야? 아직 한 달 반이나 남았다고.”
“그럼 내무실에 편히 계시지 말입니다.”
“나도 그러고 싶었는데 너희 소대장님이 어찌나 날 꼬시던지 말이야.”
“그렇습니까?”
김일도 상병이 피식 웃고 말았다. 오상진이 안 된다는 걸 이근우 병장이 우겨서 뽑혔다는 소문이 파다했지만 괜히 이근우 병장을 망신주고 싶지 않았다.
“우린 저 쪽에 앉자.”
김일도 상병과 1소대원들이 2소대의 맞은 편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잠깐 시간이 지나자 다시 축구 이야기로 시끌벅적해지기 시작했다.
“참, 저번 주에 3소대랑 4소대랑 붙어서 어떻게 됐습니까? 3소대가 이겼습니까?”
“당연하지 우리가 이겼지.”
“첫판은 그렇지만 둘째 판은 저희가 이겼지 않습니까.”
순간 4소대 김이중 상병이 버럭 소리쳤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서로 내기 축구로 엮여 있다 보니 승패에 따라 조금씩은 앙금이 남아 있었다. 게다가 군대 축구는 자존심 빼면 시체였다. 어느 소대보다 약하다는 말을 듣는 걸 질색했다.
그런 모습을 오상진은 박중근 하사와 함께 멀찍이서 지켜보기만 했다.
“저러다 싸우는 거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설마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다들 중대 대표로 뽑힌 건데요.”
“워낙 혈기왕성한 녀석들이라서 말입니다. 저는 좀 불안합니다.”
“그래도 한 팀이 되려면 저런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일단 조금만 더 지켜보도록 하죠.”
오상진은 선수들끼리 자연스럽게 친해질 시간을 주고 싶었다. 군대라고 해서 계급만 앞세운다면 좋은 성적을 내기 어려울 거라 여겼다.
그러는 사이 김이중 상병이 한마디 했다.
“그런데 오 소위님은 무슨 생각으로 이 인원을 모았지?”
1소대 김일도 상병이 눈을 부라리며 벌떡 일어났다.
“지금 우리 소대장님 욕하신 겁니까?”
“야, 무슨 욕이야. 그냥 말하는 거지.”
“말이 이상하지 않습니까.”
“어쭈, 새끼 봐라. 그러다가 한 대 치겠다.”
“아무리 그래도 저희 소대장님 보고 뭐라 하시는 것은 못 참지 말입니다.”
“그래서 내가 욕을 했냐?”
“어쨌든 뭐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이 새끼가. 그냥 가만히 두고 보자니까, 못하는 말이 없네. 인마! 아무리 소대는 달라도 내가 선임인데 그렇게 눈을 부라리냐?”
“저희 소대는 아니지 않습니까.”
“이 새끼가 진짜!”
김이중 상병이 눈을 부라렸다.
그때 이근우 병장이 일어났다.
“이 새끼들은 오냐오냐하고 지켜봤더니. 나는 안중에도 없지?”
그러자 두 사람이 입을 다물었다.
순간 분위기는 싸늘해지고 박중근 하사의 표정도 굳어졌다.
“정말 저렇게 둬도 괜찮겠습니까?”
“이 병장도 있고 심각한 상황도 아닌 거 같으니까 놔두십시오.”
“그래도…….”
박중근 하사가 걱정을 떨치지 못했다.
하지만 오상진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애당초 별것도 아닌 일로 주먹부터 휘두를 녀석들은 선발로 뽑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상진의 선발 기준은 실력과 더불어 인성이었다. 실력은 좋지만 성격이 나쁜 병사들은 그래서 탈락시켰다. 뒤에서는 자신을 향해 욕을 하겠지만 중대 대표팀을 이끌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다.
“걱정 마십시오. 큰일은 없을 겁니다.”
그때 오상진의 핸드폰이 울렸다.
“네, 오상진 소위입니다.”
-피자집인데요. 위병소 앞에 왔거든요.
“아, 네네. 위병소에 맡겨 주십시오.”
-네. 알겠습니다.
오상진이 전화를 끊고 박중근 하사를 보았다.
“아, 피자 도착했다고 합니까?”
“네.”
“제가 찾아오겠습니다.”
“그럼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부탁은요. 당연한 거죠.”
박중근 하사가 위병소로 가고 잠시 후 몇 박스나 되는 피자를 들고 나타났다.
“소대장님. 뭘 이렇게나 많이 사신 겁니까?”
앞서 오상진에게 수술비를 도움받아서일까. 박중근 하사도 오상진의 씀씀이를 걱정했다.
그러자 오상진이 자연스럽게 김철환 1중대장을 팔았다.
“제가 산 거 아닙니다. 중대장님께서 사신 것입니다.”
“와, 우리 중대장님. 역시 배포가 크신 것 같습니다.”
오상진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이제 들어가죠.”
“네.”
오상진이 병사 식당 문을 확 열었다.
“다들 모였나!”
오상진의 등장에 시끌벅적했던 식당이 한순간에 조용해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자, 일단 피자부터 먹고 시작하자.”
박중근 하사가 식탁에 피자를 내려놓자 모두의 표정이 달라졌다.
“피자?”
“피자라고 했습니까?”
소대원들이 고개를 돌리며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 한가득 쌓여 있는 피자를 보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우와, 진짜다.”
“진짜 피자야.”
“세상에 냄새가 여기까지 퍼지네.”
모두 황홀한 눈빛으로 피자를 바라봤다. 그러자 박중근 하사가 소리쳤다.
“이놈들아, 뭐 하고 있어. 어서 가져가지 않고.”
“넵! 알겠습니다.”
“와, 식당에서 피자라니.”
병사들은 피자 한 판씩 가지고 자신의 자리로 갔다. 오상진이 앞에 서며 말했다.
“자, 다들 피자 먹으면서 소대장이 하는 얘기를 듣는다.”
소대원들은 손에 피자 한 조각씩을 든 채로 오상진을 바라봤다.
“이제 너희들은 1중대의 대표다. 체육대회가 끝나기 전까지 자신이 몇 소대인지는 잊고 오로지 1중대 축구부로 산다. 알겠나.”
“예!”
모두 힘차게 대답은 했다.
“내가 너희들을 왜 뽑았는지 모를 거다. 그 이유를 이제부터 알려주겠다.”
오상진은 한 명 한 명을 보며 얘기를 했다.
“3소대 이근우 병장. 소대장이 알기론 우리 중대 최고의 스트라이커라고 하는데 사실이야?”
이근우 병장이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맞습니다.”
“그래. 그래서 공격형 포워드로 널 뽑았다.”
이근우 병장의 청탁이 있긴 했지만 오상진도 우승을 위해 이근우 병장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이근우 병장도 기분이 좋은지 실실 웃었다.
“다음으로 2소대 강인한 상병.”
“상병 강인한!”
“넌 레프트 윙이다. 발도 빠르고 수비 범위도 넓어서 소대장이 특별히 뽑았으니까 최선을 다하도록.”
“알겠습니다.”
“그리고 1소대 김일도 상병.”
“상병 김일도.”
“너는 중원에서 경기를 조율하는 역할을 맡게 될 거다.”
“플레이 메이커입니까?”
“거창하게 말 하면 그렇지만 공격과 수비, 모두를 조율해 줘야 해. 할 수 있겠나?”
“넵! 맡겨만 주십시오!”
김일도 상병의 눈빛이 반짝였다.
이후로도 오상진은 선발한 선수 하나하나의 이름을 부르며 포지션을 말해주었다.
그래서일까. 더 이상 오상진의 선수 선발에 의문을 품는 병사는 나오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오상진은 두 명의 공격수의 임무를 조정했다.
“이근우 병장이 이나우두고 김이중 상병이 킹리라며?”
“헐, 그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쑥쓰럽지만 애들이 그렇게 부르고 있습니다.”
“그럼 김 상병이 이근우 병장 밑에서 뛰자. 섀도 스트라이크처럼. 아무래도 이근우 병장에게 수비가 집중될 테니까 그때마다 공간을 침투해서 골을 노리는 거야. 어때?”
“어떤 느낌인지 알 것 같습니다. 저만 믿으십시오.”
“좋아! 아무튼 이렇게 모아놓고 보니까 뿌듯하다.”
오상진의 진심을 전했다. 머릿속으로 구상했던 병사들로 팀을 꾸리니 꼭 게임을 하는 기분도 들었다.
소대원들은 피자를 먹느라 정신이 없지만 그래도 열심히 오상진의 말에 장단을 맞춰 주었다.
그래서일까.
“이건 나중에 너희 하는 거 봐서 말해줄까 했는데…… 너희들 축구용품은 소대장이 사비를 털어서 제대로 된 거로 지원해 줄 것이다. 유니폼도 맞춰서 나눠줄 것이고.”
“그게 정말입니까?”
“축구화도 나오는 겁니까?”
“그래. 실력을 발휘하는 데 아무 문제 없도록 확실히 지원할 테니까 너희는 최선을 다하면 된다. 일단 예선전이 벌어지기 2주 전까지 연습훈련을 할 예정이니까 그리 알고. 가능하면 이번 주와 다음 주 주말에 다른 부대와 친선 경기를 잡아보도록 하겠다. 다들 문제없지?”
“네, 문제없습니다!”
“그래, 그럼 일단 피자부터 먹자. 다 식겠다.”
씩 웃으며 피자를 집어 들려던 오상진은 미처 하지 못한 말을 기억해냈다.
“아, 맞다. 가장 중요한 얘기를 소대장이 깜빡했다. 만약에 우리 중대가 결승에 올라간다면 너희 모두에게 외박증이 주어질 것이다. 그리고 만약에 우리 1중대가 우승을 한다면? 그다음부터는 너희들의 상상에 맡기겠다.”
그 순간 장병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우앗! 설마?”
“짜식들! 외박증 다음은 뭐겠냐?”
“휴가증 아닙니까?”
“그래! 휴가증!”
“그럼 우리 전부 포상 휴가를 받게 되는 겁니까?”
“그렇다는 거지.”
“아, 그리고 당분간은 전투 체육 시간에 틈틈이 손발을 맞춰볼 생각이다. 너희들 훈련 시간은 중대장님께 말씀드려서 최대한 보장받도록 하겠다.”
“어? 그럼 저희 하루 종일 축구만 하는 겁니까?”
“이 새끼들아.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우리는 군인이야. 군인의 본분은 지켜야지. 할 수 있는 건 일단 하고, 어느 정도 훈련 시간을 소대장이 마련해 보겠다는 것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