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120화
15장 전투체육을 아는가(6)
“그래!”
“하아, 김 병장님 진짜 왜 그러십니까? 말년에 무슨 골키퍼십니까.”
김학도 상병은 김성진 병장이 괜히 꼬장을 부린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김성진 병장은 진심이었다. 제대를 앞두고 소대원들과 별다른 추억을 쌓지 못한 것 같아 아쉽던 차에 이런 기회가 생겼으니 놓치고 싶지 않았다.
“최 병장도 골키퍼 하는데 나라고 못할 거 있어?”
“아무리 그래도 김 병장님 지금은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해야 할 시기가 아닙니까. 내일 모레면 전역하시는 분이 무슨 축구는……. 게다가 골키퍼라니. 정 하시고 싶으면 공격수 하십시오. 제가 양보해 드리겠습니다.”
“됐어, 인마. 그럼 저쪽에서도 골키퍼 바꿀 거 아냐? 내가 골키퍼 할 테니까 넌 시원하게 골이나 넣어. 내가 한 골도 안 내줄 테니까 제대로 하고. 알았냐?”
김학도 상병이 고개를 갸웃했다.
“정말 한 골도 안 먹을 자신 있습니까?”
“그래!”
“그럼 무조건 이기겠습니다.”
“가서 쓸어버려!”
“네, 알겠습니다. 대신 다쳤다고 저희한테 꼬장부리시면 안 됩니다.”
“알았어 인마.”
신용일 이병을 대신해 김성진 병장이 골대로 향했다. 김학도 상병은 소대원들을 불러 전열을 재정비했다.
그러자 상대팀 병장이 한마디 했다.
“야야. 김 상병. 뭐냐? 오늘 경기 아예 포기했냐.”
“아닙니다.”
“아니긴, 그런데 김 병장님이 저기 왜 있어? 이병이 답이 없으니까 병장 방패라도 세워 보게?”
“……잔말 말고 경기나 하시죠.”
“크크, 그래.”
그 후로 다시 경기가 시작됐는데.
펑!
퍼엉!
김성진 병장이 골대 안으로 들어오는 모든 공을 쳐 내면서 경기 분위기가 순식간에 뒤집혔다.
“우와! 진짜였네.”
김학도 상병이 놀란 눈이 되었다. 상대팀 병장이 소리를 질렀다.
“아이씨! 말년 병장이 지키고 있는 골대 아냐. 그걸 못 넣어!”
무작정 욱여넣다 보면 들어가는 게 군대 골대이긴 하지만 김성진 병장은 마지못해 골키퍼를 보는 병사들과 차원이 달랐다.
경기 흐름을 정확하게 판단해 자를 때와 막을 때를 구분하고 수비하는 병사들을 조율해 슈팅 공간을 차단하며 효율적으로 골대를 지켰다.
그렇게 김상진 병장은 단 한 골도 내주지 않았고 그사이 3소대가 연속 득점에 성공하면서 결국 13:8로 경기를 뒤집을 수 있었다.
경기가 끝난 후 소대원들은 전부 김성진 병장에게 갔다.
“와 김 병장님 완전 짱이십니다.”
“어떻게 그렇게 모두 막아낼 수 있습니까?”
“혹시 선출 아니십니까?”
“이웅재가 울고 가겠습니다!”
그러자 김성진 병장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나 사실 중학교까지 선수였어 인마. 그것도 골키퍼! 내가 계속 축구 했으면 아마 2002년도 월드컵 때 웅재 형 골키퍼 못 봤을걸?”
그때 오상진은 김성진 병장이 떠드는 말을 전부 들었다. 그리고 조만간 있을 2중대와의 축구 시합 때 김성진 병장을 골키퍼로 써먹을 계획도 세웠다.
하지만 갑자기 부대에 일이 생기면서 2중대와의 축구 시합은 물 건너가고 김성진 병장은 전역을 하고 말았다.
그래서일까.
이렇게 다시 본 김성진 병장, 아니, 상병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야, 그냥 좀 해주면 안 되겠냐?”
“저희 애들 저 축구 싫어하는 줄 압니다. 그러니까 어디 가서도 선수였다는 소리는 하지 말아 주십시오.”
“좋아. 그 얘기는 안 할게. 다들 사정이 있는 거니까. 그래도 우리 중대를 위해서 네가 좀 도와주면 안 될까?”
김성진 상병이 한숨을 푹 내쉰다.
‘하아, 미치겠네. 계급이 깡패라 안 한다고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내가 선수 출신인 거 아는 눈친데 못한다고 버틸 수도 없고…….’
김성진 상병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입을 꾹 다물고만 있었다. 사실 김성진 상병은 선수 시절 부상을 당한 이후로 축구공을 만지지도 않았다. 군대를 택한 것도 운동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것이 가장 컸다.
그래서 소대원들에게도 선수 출신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축구는 정말 못한다고 했다.
만약에 선출이라고 하면 주말마다 불러내 축구를 시킨다는 친구의 으름장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였다.
그런데 어떻게 알았는지 오상진이 직접 와서 부탁을 하니 거절할 방법이 없었다.
“김 상병. 만약에 네가 골키퍼를 봐주면 외박증 챙겨 줄게. 어때?”
“에이, 저 외박증 필요 없습니다.”
“그럼 포상 휴가는 어때? 그것도 2박 3일!”
순간 김성진 상병의 표정이 바뀌었다. 말년 휴가 때 붙여 쓸 수 있다면 구미가 당기는 조건이었다.
“병장 휴가 갈 때 붙여서 갈 수 있게 해줄게.”
때마침 오상진의 입에서 원하던 이야기가 나왔다.
“그러니까 2박 3일은 무조건 주신다는 거죠?”
“그래. 만약에 네가 정말 열심히 해서 우리 중대가 우승을 했다? 그럼 내가 똑같은 휴가증 하나 더 준다.”
“오올! 정말입니까?”
“그럼. 당연하지. 내가 설마 이런 거 가지고 장난치겠냐.”
“좋습니다. 그럼 하겠습니다.”
휴가에 무덤덤해진 상병이라 해도 2박 3일짜리 휴가증 2개는 그냥 넘길 수가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몸이 근질근질했는데 뭐…… 이번 기회에 슬그머니 축구판에 발을 들여 볼까? 그건 그렇고, 휴가증을 어떻게 쓸까? 붙여 쓸까? 아니야. 그건 너무 기니까 그냥 병장 달자마자 바로 써 버리자!’
혼자만의 상상에 빠진 김성진 상병을 보며 오상진이 피식 웃었다.
그렇게 오상진은 부대 최고의 골키퍼를 얻게 됐다.
7.
다음 날.
오상진은 자신이 뽑은 축구 선수들을 소집했다.
장소는 병사 식당을 빌렸다.
첫 만남인 만큼 겸사겸사 회식도 할 예정이었다.
“몇 시까지 모이라고 했냐?”
“10시까지 모이라고 했습니다.”
“10시면 아직 시간 남았잖아. 왜 이렇게 일찍 나오자고 했어?”
“우리만 선발됐다고 분위기 싸하지 말입니다.”
“하긴. 그건 그래. 그러게 축구 좀 잘하지. 선수로 뽑힌 게 우리 잘못이냐?”
“제 말이 그 말입니다.”
식당 문이 열리고 세 명의 장병이 들어섰다.
4소대에서 선발된 김이중 상병과 이재민 일병, 그리고 심도민 일병이었다.
“뭐야? 아무도 없어?”
“아무래도 우리가 처음인 것 같습니다.”
“쯧쯧, 누가 뽑혔는지 모르겠지만 다들 개념들이 없어. 아니, 첫날에 십 분 이십 분 일찍 오는 건 기본 매너 아닌가?”
“그러게 말입니다. 진짜 우리처럼 시간 약속 철저한 소대원도 없을 겁니다.”
“일단 저희 자리로 가서 앉으시죠.”
“그래!”
4소대원들이 우측 자리로 가서 앉았다. 그러고는 또다시 밀린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보다 말입니다. 이번 체육대회는 당연히 우리 1중대가 이겨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겨야지! 지난번 시가전 전술훈련 때 3중대한테 완전 당했잖아. 진짜 친구 놈이 어찌나 지랄을 하던지…….”
“참, 3중대에 친구분이 있다고 하신 거 기억납니다.”
“진짜 우리 1중대한테 매번 깨지던 것들이 어쩌다 한 번 이겨놓고서는…….”
김이중 상병이 손을 부르르 떨었다. 전술 훈련의 여파가 간부들에게만 있는 건 아닌 모양이었다.
“그래도 김이중 상병님이 계시니까 축구는 당연히 우리 1중대가 1등 아니겠습니까?”
“맞습니다. 화려한 드리블에 이어 주특기인 헛다리 짚기로 상대를 농락해 버리면 그냥 게임 끝이지 말입니다.”
“하하하. 짜식들. 그렇게 아부해도 뭐 없다?”
“에이. 아부가 아니라 팩트이지 말입니다.”
“하긴. 내가 좀 하지.”
김이중 상병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 옆에서 두 명의 일병은 열심히 알랑방귀를 뀌었다. 김이중 상병이 손으로 턱을 만지며 말했다.
“그런데 다른 부대에서는 누가 올 것 같냐?”
“3소대 이근우 병장님이 오시지 않겠습니까?”
“에이, 설마 뽑히겠습니까? 이근우 병장님…… 솔직히 개발이지 않습니까.”
“후후후, 맞아! 이 병장님 개발이지. 공격수랍시고 만날 공중으로 뻥뻥 차올리고 말이야.”
“맞습니다. 전에 우리랑 내기 시합할 때도 엄청나게 홈런을 날렸지 말입니다.”
“그래도 지난 시합 때 5골 중 3골을 혼자 넣었습니다. 저는 무조건 뽑힐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 봐야 개발이지 뭐. 개발이 어디 가겠어!”
그때였다.
쾅!
“누가 개발이래!”
거칠게 문이 열리고 귀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김이중 상병이 피식 웃었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김이중 상병이 몸을 돌려 입구를 바라보았다. 그곳에 3소대원들이 식당으로 입장하고 있었다.
이근우 병장을 필두로 강우석 상병과 조규식 일병, 박가람 일병이 호위병처럼 따라 왔다.
이근우 병장이 김이중 상병을 바라봤다.
“야, 김 상병. 다시 말해봐. 뭐가 어떻다고?”
“에이. 그걸 또 듣고 그러십니까.”
“에이이? 허, 이 새끼. 너 많이 컸다.”
“제가 말입니까?”
“새끼가 쪼개?”
이근우 병장이 입꼬리를 올렸다. 김이중 상병도 지지 않고 이근우 병장을 바라봤다.
정말 사이가 좋지 않았다면 이쯤에서 욕지거리나 주먹다짐이 오가야 했지만 내기 축구로 다져진 우정일까. 김이중 상병과 이근우 병장의 입가로 동시에 웃음이 번졌다.
“왜 오자마자 분위기를 잡으시고 그럽니까.”
“그냥 한번 잡아 봤어, 인마.”
“그런데 우리 이 병장님 아직도 부대에 계셨습니까? 전역하신 것 아닙니까?”
“후후후, 아직 전역하려면 멀었지. 아직 한 달 넘게 남았는데.”
“와우! 아직 한 달이나 남았습니까? 그렇다면 말년 아니십니까? 그런데 갑자기 무슨 축구를 다 하신다고 그러십니까. 그러다 어디 부러지시면 어떻게 하시려고.”
김이중 상병의 말에 이근우 병장이 피식 웃었다.
“인마, 너희들이 하도 못하니까. 나까지 출전했잖아. 내 골이 아니면 어떻게 우리 1중대가 이기겠냐. 안 그래?”
이근우 병장이 따라온 소대원들을 보며 물었다. 그러자 소대원들이 곧바로 응수했다.
“맞습니다. 우리 이나우두 병장님이 없다면 누가 골을 넣겠습니까.”
“솔직히 군대스리가라면 호나우두도 우리 이 병장님한테 한 수 접어야 하지 말입니다.”
3소대에서 이근우 병장의 별명은 군대판 호나우두.
성을 붙여서 이나우두라 부르기도 했다.
그만큼 이근우 병장은 공격수로서 자질이 남달랐다. 선수 출신이 아니다 보니 골 결정력이 좋은 편은 아니지만 일단 공을 잡으면 어떻게든 상대 골문을 향해 슈팅을 시도하려 노력하는 저돌적인 스타일이었다.
그러나 이근우 병장 못지 않은 공격수를 보유한 4소대에서 이나우드를 인정할 리 없었다.
“호나우두는 언제적 호나우두입니까? 요즘은 앙리가 대세이지 말입니다.”
“우리 김이중 상병님이 킹리로 불리는 거 모르십니까?”
“킴리도 아니고 킹리는 뭐야?”
“킹 앙리 아닙니까? 저희 킴이중 상병님도 킹이시고요. 그래서 킹리입니다.”
“좀 억지스럽지 않습니까?”
“적어도 이나우두보다는 나은 거 같은데 말입니다.”
그때였다.
“이나우두는 뭐고 킹리는 또 뭡니까.”
다시 문이 열리고 새로운 얼굴들이 나타났다.
3소대와 4소대가 일제히 식당 입구로 향했다.
강인한 상병을 선두로 하영운, 하영진 일병 쌍둥이 형제가 들어섰다.
“여기 있는 우리 셋의 트리플 미드필드 지역은 절대 못 뚫지 않습니까?”
강인한 상병이 피식 웃었다. 그러자 이근우 병장이 코웃음을 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