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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리셋 오 소위-118화 (118/1,018)

인생 리셋 오 소위! 118화

15장 전투체육을 아는가(4)

“그게…… 첫 단추를 좀 잘못 낀 것도 있지만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그렇게 두루뭉술하게 말하지 말고요. 은지가 여자로 안 느껴져요?”

“흠. 글쎄요. 솔직히 같이 있으면 편하고 즐거운데 그 이상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은지 씨도 저를 남자로 보는 것 같지 않고요. 저도 은지 씨 같은 친구가 있으면 좋다고 생각하고요.”

오상진이 너무 분명하게 선을 그어서일까.

김선아의 얼굴을 타고 아쉬움이 번졌다.

그렇다고 오상진을 탓할 생각은 없었다.

“상진 씨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구나.”

이성 관계보다 친구처럼 느껴진다고 말한 건 오상진만이 아니었다.

김철환 1중대장이 눈을 크게 뜨며 김선아를 바라봤다.

“상진 씨도라니? 뭐야, 그럼 은지 씨도 우리 상진이 별로래?”

“그게 아니라 은지도 비슷한 소리를 했어요. 상진 씨가 좋은 남자긴 한데 남자 친구보다는 친구 삼고 싶다고. 저는 그냥 하는 말인 줄 알았거든요.”

“뭐야, 그거. 남 주기는 싫고, 자기 가지기에는 아깝다는 거야?”

“그런 건 아니고요.”

“아니긴 뭐가 아니야. 원래 지인이 고백했는데 싫으면 그러잖아. 우리 그냥 친구로 지내자고.”

김철환 1중대장은 경험상 박은지는 오상진을 좋아하지 않는 게 틀림없다고 여겼다.

하지만 김선아의 생각은 달랐다. 박은지가 오상진을 인간적으로 괜찮고 좋은 남자라고 느꼈기 때문에 오히려 연애를 하기 두려워하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친구 사이라면 상관이 없지만 그 안에 사랑이라는 감정이 들어가게 되면 아무래도 지금처럼의 관계를 유지하기란 쉽지 않을 터. 그러다 만에 하나 둘이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모처럼 만난 좋은 친구를 잃게 될 가능성이 높았다.

그래서 김선아는 박은지의 심정이 충분히 이해가 갔다. 물론 그렇다 하더라도 박은지와 오상진이 잘 되길 바랐다.

“그래도 두 사람, 서로 좋은 감정인 건 맞는 거죠?”

“네. 그렇죠.”

“그러니까 미리 선을 긋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친구처럼 지내다가 연인으로 발전할 수도 있는 거잖아요. 안 그래요?”

김선아가 김철환 1중대장에게 동의를 구했다.

그러자 김철환 1중대장이 마지못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래, 뭐 네 형수 말대로 잘 지내봐.”

“네. 형님.”

오상진이 멋쩍게 웃었다.

김선아 역시도 미소를 지었다.

5.

집에서 출발한 오상진과 김철환 1중대장은 어제 술을 마셨던 식당으로 향했다. 대리 기사를 부르려 했으나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고 해서 차를 세워두고 택시를 타고 이동했기 때문이다.

택시에서 내린 두 사람은 어제 세워뒀던 차량 쪽으로 향했다.

“상진아.”

“네.”

“네가 운전해라.”

김철환 1중대장이 오상진에게 차 키를 던졌다. 그리고는 자연스럽게 조수석에 가서 앉았다.

오상진은 피식 웃으며 김철환 1중대장을 대신해 운전대를 잡았다.

“1호차 운전병이 모는 차량처럼 편안하게 모시겠습니다.”

“오냐.”

김철환 1중대장은 잠이 모자랐던지 의자를 뒤로 젖히며 눈을 감았다.

오상진은 김철환 1중대장이 깨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 그렇게 차를 몰고 5분간 이동하자 곧바로 충성 부대가 나왔다.

차에서 내린 두 사람은 사이좋게 행정반으로 들어갔다. 그때 밖으로 나오던 장재일 2소대장과 딱 부딪쳤다.

“어?”

장재일 2소대장이 흠칫 놀라더니 어색한 웃음을 흘리며 경례했다.

“충성. 두 분 같이 출근하십니다.”

“왜? 어제 술 한잔해서 그런다. 문제 있나?”

김철환 1중대장이 삐딱하게 굴었다. 장재일 2소대장이 3중대장과 내통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으니 예전처럼 편하게 대해줄 수가 없었다.

그런 김철환 1중대장의 불편한 심기를 읽은 것일까.

“아닙니다. 그럼…….”

장재일 2소대장이 재빨리 자리를 피했다.

“너무 티 내시는 거 아닙니까?”

오상진이 걱정스러운 투로 말했다. 솔직히 장재일 2소대장을 눈칫밥 먹게 만들려던 건 아니었다.

하지만 적아가 분명한 김철환 1중대장은 더 이상 장재일 2소대장을 안중에 두지 않았다.

“일부러 티 낸 거야.”

“중대장님.”

“내 등에 칼을 꽂을 때 이 정도 각오는 했었어야지. 안 그래?”

김철환 1중대장이 코웃음을 치며 행정반으로 들어갔다.

행정반 안에는 장재인 2중대장을 제외한 모든 간부들이 모여 있었다.

“다들 좋은 아침.”

김철환 1중대장이 표정을 바꾸며 인사했다.

하지만 열린 문을 통해 지켜본 간부들은 하나같이 굳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묘한 분위기를 눈치챈 김철환 1중대장이 냉큼 화제를 돌렸다.

“크흠, 자. 주목. 이달 말이 체육대회인 거 다들 알고 있지?”

“이번에는 어떻게 한다고 합니까?”

오상진이 자신의 자리로 가서 물었다.

“말도 마라. 대대장님이 체육대회를 얼마나 거창하게 하려고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중대별로 준비를 제대로 하라고 하시더라.”

“요즘 대대장님께서 열정이 넘치시는 것 같습니다.”

가만히 듣고 있던 4소대장이 불쑥 말했다. 그러자 이곳저곳에서 실소가 흘러 나왔다.

김철환 1중대장도 피식 웃고는 오상진을 보며 말했다.

“들리는 소문에는 사단에서 제대로 지원을 받아 내신 모양이다.”

“사단에서 말입니까?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었답니까?”

“그게 다 네 덕분이야.”

“저 말입니까?”

오상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자 김철환 1중대장이 내숭을 떤다며 오상진을 흘겨봤다.

“네가 지금까지 한 게 많잖아. 무엇보다 지난번 멧돼지 사건 때 신문에 실리면서 사단 이미지도 상당히 좋아졌다나 봐.”

“아, 네.”

그 일로 단순히 사단의 이미지만 좋아진 게 아니었다. 덩달아 사단장의 평가까지 격상되면서 만만찮던 진급 전선에 훈풍이 분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그렇지 않아도 사단장님께서 대대에 필요한 게 없냐고 몇 번 말씀하셨다는데 대대장님께서 체육대회 핑계로 받아 오신 거지.”

“그렇습니까?”

오상진이 멋쩍은 얼굴로 웃었다. 솔직히 사단 지원이 얼마나 대단할지는 모르겠지만 크게 와닿지는 않았다.

“아무튼 사단장님의 통 큰 지원 덕분에 역대급 체육대회가 될 가능성이 크니 다들 정신 바짝 차리자. 지난 전술 훈련 때 실수한 거 이번 체육대회에서 만회해야 해.”

김철환 1중대장이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평소 간부들에게 부담을 주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장재일 2소대장까지 꼬드겨 승리를 챙긴 3중대장을 보고 있자니 이대로는 안 된다는 위기의식이 들었다.

“네. 알겠습니다.”

오상진을 비롯해 1중대 간부들도 두말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1중대가 괜히 1중대가 아니었다.

대대의 선봉에 서는 부대가 바로 1중대였다.

당연히 모든 면에서 다른 중대의 모범이 되어야 했다.

“그건 그렇고 1소대장.”

“네.”

“이번 체육대회 말이야. 네가 다 준비할래?”

“제가 말입니까?”

오상진이 놀랐다.

“그래. 네가 책임지고 한번 해봐. 잘할 것 같은데.”

김철환 1중대장은 이번 기회에 소대장 간의 위계질서를 바로잡을 생각이었다. 장재일 2소대장이 제 발등을 찍은 만큼 오상진에게 힘을 실어 준다면 자연스럽게 질서가 잡힐 거라 여겼다.

하지만 오상진은 이런 식으로 공을 독차지하고 싶지 않았다.

“중대장님. 살려주십시오. 저 혼자 그걸 어떻게 다 합니까.”

“그거 얼마나 된다고 엄살이야?”

“그럼 제 일은 누가 해줍니까?”

“그거야 틈틈이 하면 되지. 아니면 박 하사에게 도움을 받거나.”

“아무리 체육대회가 중요해도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보다 말 나온 김에 종목별로 중대장님께서 나눠 주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내가?”

김철환 1중대장이 곰곰이 생각했다.

오상진에게 전부 맡기는 게 깔끔하긴 했지만 모처럼 만에 중대장으로서 임무 배분을 해도 나쁠 것 같지 않았다.

김철환 1중대장이 자신의 턱을 슬쩍 만지며 고민했다.

“이번 체육대회에 종목이 총 몇 개지?”

“축구, 족구, 농구, 씨름 이렇습니다. 체육대회 당일에는 줄다리기와 계주가 있습니다.”

“그래? 어차피 줄다리기는 인원이 30명으로 제한되어 있으니까 체격 좋은 병사들로 선별하면 될 것 같고. 계주도 마찬가지고……. 그렇다면 나머지 4종목에 대해서 인원을 차출하면 될 것 같은데.”

김철환 1중대장이 쓰윽 각 소대장들을 훑었다.

“잘 되었네. 어차피 4개 소대니까. 각 소대별로 하나씩 맡으면 되겠다. 1소대장 생각은 어때?”

오상진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좋았어. 그럼 어디 보자.”

김철환 1중대장은 별로 생각할 것도 없이 바로 그 자리에서 결정을 내렸다.

“일단 1소대장은 축구를 맡고, 2소대장은 농구를 좋아하니까, 농구를 맡으라고 해. 나중에 2소대장이 와서 뭐라고 하면 나 찾아오라고 하고. 족구야 지난번 시합을 통해서 우리 중대가 최고라는 걸 인정받았으니까 무리 없이 우승할 수 있겠지. 안 그래? 3소대장?”

“아, 넵. 그렇습니다.”

“3소대에 지난번 그 친구들이 있지?”

“네. 그렇습니다.”

“그럼 족구는 3소대장이 맡아.”

“알겠습니다.”

“나머지는 씨름인데 남은 소대장이 4소대장이네. 자네가 맡아야겠다.”

“네.”

4소대장이 마지못한 얼굴로 대답했다. 내심 농구라도 맡고 싶었지만 소대장 순번에서 밀리다 보니 자신에게는 선택권이 없었다.

종목을 배분한 뒤 김철환 1중대장이 가볍게 박수를 쳤다.

“자, 다들 예선전부터 잘 치른 후 꼭 1중대가 우승할 수 있도록 하자.”

“넵!”

“그럼 오늘 하루도 수고하고.”

김철환 1중대장이 말을 한 후 자신의 사무실로 향했다. 그러자 4소대장이 기다렸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하필 씨름이라니…….”

옆에 있던 3소대장이 고개를 돌렸다.

“왜 그럽니까? 씨름 싫습니까?”

“싫다기보다는 좀 그렇습니다. 제가 체격이 좋은 것도 아니고 참…….”

4소대장은 1중대 간부 중에서 가장 왜소한 편이었다. 그렇다고 마른 체형은 아니지만 오상진처럼 키가 크지도, 2소대장이나 3소대장처럼 체격이 건장하지도 않았다.

그렇다 보니 덩치 큰 병사들과 부대껴야 할 씨름이란 종목이 썩 내키지 않았다.

“정 그러시면 저랑 바꾸겠습니까?”

“정말입니까?”

“4소대장이 원하면 제가 중대장님께 말씀드리겠습니다.”

3소대장의 제안에 4소대장의 눈빛이 순간 반짝였지만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뇨, 중대장님이 정해주신 대로 해야죠.”

생각해 보니 그건 그것대로 하극상으로 비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건 그렇고 1소대장님. 씨름은 어디서 해야 합니까?”

4소대장의 물음에 오상진이 고개를 들며 말했다.

“연병장 구석에 씨름장 있지 않습니까?”

“그렇습니까?”

4소대장이 일어나 창가를 통해 확인했다. 그때 우측 저 멀리 구석에 둥근 원형이 보였다.

“서, 설마 저기를 말씀하는 겁니까?”

4소대장이 깜짝 놀라며 물었다. 3소대장이 옆으로 다가와 확인을 한 후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기 맞을 겁니다.”

“어휴, 저기서 어떻게 씨름을 합니까.”

옆에 있던 3소대장도 거들며 말했다.

“1소대장님. 저긴 안 됩니다. 오랫동안 관리도 안 되어 있어서 저기서 훈련하면 애들 다칩니다.”

“그렇습니까?”

오상진이 잠시 생각을 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중대장실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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