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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리셋 오 소위-117화 (117/1,018)

인생 리셋 오 소위! 117화

15장 전투체육을 아는가(3)

3.

오상진은 기분 좋은 꿈을 꾸고 있었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을 포근하게 안아주고 뽀뽀도 해주었다.

꿈이라는 걸 알지만 깨고 싶지 않았다.

막말로 꿈에서 못할 게 뭐가 있단 말인가.

‘누굴까. 이 부드러운 느낌은.’

머릿속으로 몇몇 여자들의 얼굴이 스쳐 지났다. 덩달아 오상진의 입가에도 흐릿한 미소가 번졌다.

그런데.

“우웅, 자기야.”

여자의 입에서 굵직한 남자의 음성이 들려왔다. 순간 오상진은 깜짝 놀랐다. 그 목소리가 무척이나 익숙했기 때문이다.

‘서, 설마……!’

오상진은 화들짝 놀라며 꿈에서 깼다.

“하아하아……. 미친 꿈이었어.”

다른 사람도 아니고 김철환 1중대장이었다니.

오상진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아무리 꿈이라지만 이런 악몽은 다시는 꾸고 싶지 않았다.

그때 굵직한 남자의 팔뚝이 오상진을 끌어안았다.

“자기야, 어디 가.”

꿈속에서 들었던 목소리였다. 오상진이 흠칫 놀라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 웃통을 벗은 김철환 1중대장이 옹알대고 있었다.

“이리와, 자기야.”

“으아아, 깜짝이야!”

오상진은 호들갑스럽게 몸을 피했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니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풍경이 들어왔다.

김철환 1중대장 집 안방.

“마, 맞다. 어제 중대장님 집에서 잤지.”

술에 취해 김철환 1중대장과 함께 잠을 잤다는 걸 깜빡 잊고 있었다.

오상진이 누워 있는 김철환 1중대장을 보며 한마디 했다.

“그건 그렇고 형님. 무슨 잠꼬대를 살벌하게 합니까. 진짜! 그리고 옷은 왜 훌러덩 벗고 자요.”

오상진이 살짝 인상을 쓰며 중얼거릴 때 문이 열리며 김선아가 얼굴을 내밀었다.

“어? 도련님. 일어났어요?”

“아, 네. 형수님. 잘 주무셨…… 죠?”

오상진은 김선아 보기 미안했다. 아무리 술에 취했어도 관사에 가서 잤어야 했는데 본의 아니게 안방을 빼앗은 꼴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김선아는 크게 개의치 않아 했다.

“호호. 네. 저는 잘 잤어요.”

“죄송합니다, 형수님.”

“죄송은 무슨요. 다른 사람은 몰라도 도련님은 가족이나 마찬가지니까 그런 거 신경 쓰지 마요.”

“네, 감사합니다.”

“일어났으면 나와서 씻어요. 아침 준비 다 되어가니까요.”

오상진이 조심스럽게 거실로 나왔다. 임관 초반에 술을 진탕 마시고 엉겁결에 신세 지고 난 이후로 이 집에서 아침을 맞이한 건 처음이었다.

그때도 김선아는 지금과 똑같은 얼굴로 웃어 주었다. 그런 김선아의 배려심이 고마워 김철환 1중대장을 더 따랐던 것도 있었다.

‘그런데 어제 어떻게 된 거지?’

소파에 앉아 잠시 생각을 더듬던 오상진의 머릿속으로 어제 새벽에 일어난 추태들이 떠올랐다.

어젯밤 김철환 1중대장과 진탕 술을 마시고 김철환 1중대장의 집에 도착할 때까지만 해도 좋았다. 그런데 소변을 보고 나니 갑자기 취기가 확 올라버렸다.

벌게진 얼굴로 비틀거리는 사람을 보고 매정하게 그냥 가라고 할 만큼 김선아는 모질지 못했다.

“도련님. 그러지 말고 자고 가요. 밤도 늦었는데.”

“아, 아닙니다. 갠차쑴다.”

“나는 소은이랑 같이 자면 되니까 자고 가요.”

“그래도…….”

오상진이 망설이자 김철환 1중대장이 냉큼 목덜미를 잡으며 말했다.

“짜식이 뭘 그렇게 빼? 너희 형수가 자라면 잘 것이지. 어서 들어 와!”

“혀, 형님.”

“시끄럽고 자자. 이대로 가면 나 너희 형수한테 혼날지도 몰라.”

“…….”

김철환 1중대장의 요구에 오상진은 어쩔 수 없이 다시 신발을 벗었다. 처음에는 김철환 1중대장과 소은이 방에서 자려고 했는데 남자 둘이 눕기에는 너무 좁았다. 그렇다고 김세나가 들락거리는데 거실에서 잘 수도 없는 노릇.

“그냥 안방에서 자요.”

“아닙니다. 제가 어떻게…….”

“괜찮으니까 자요. 여기서 더 소란스럽게 굴면 옆집에서 쫓아올지도 몰라요.”

김선아의 재촉에 마지 못해 안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김철환 1중대장은 그대로 곯아떨어졌고 오상진은 잠깐 술만 깨면 관사로 갈 생각을 먹었다.

그렇게 한 시간쯤 버텼던 것까지는 기억이 났는데 눈을 떠 보니 아침이었다.

‘어휴. 나도 참.’

오상진이 땅이 꺼지라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다 김선아와 눈이 마주치자 문이 닫힌 김세나의 방을 보며 물었다.

“세, 세나는 일어났나요?”

“세나요? 벌써 학교 갔죠.”

“어? 일찍 가네요.”

“고등학생이잖아요. 그리고 좀 이른 감이 있지만…… 요새 공부 좀 열심히 하는 눈치예요.”

김선아가 흐뭇한 얼굴로 말했다.

“오, 그래요?”

“네. 도련님에게 과외받기를 잘한 것 같아요.”

“에이, 뭘요. 제가 한 게 뭐가 있다고요.”

“솔직히 도련님 아니었다면 저렇게까지 열심히 하지 않았을 거예요.”

김선아의 칭찬에 오상진이 절로 기분이 좋았다.

“잘 되었네요. 정말로 성적 오르면 맛있는 거라도 사 줘야겠습니다.”

“그럼 저야 좋죠.”

“그럼 형수님. 저 세수 좀 하고 나오겠습니다.”

“네. 그래요.”

오상진이 화장실로 들어가 가볍게 세면을 하고 나왔다. 부엌에는 어느새 아침이 차려져 있었다.

김선아가 국을 떠서 식탁에 놓았다.

“도련님. 이리 와 앉아요.”

“네. 형수님.”

오상진이 자리에 앉았다.

“참, 도련님. 지난번에 준 반찬은 다 먹었어요?”

“반찬이요? 아, 네. 거의 다 먹었습니다.”

“거짓말. 말하는 거 보니까 아직 많이 남은 거 같은데요?”

김선아의 추궁에 오상진이 어색하게 웃었다.

“그게 실은…… 반 정도 남았습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반도 넘게 남아 있었다.

김선아의 반찬은 언제 먹어도 질리지 않을 만큼 맛이 있었지만 아무래도 과거와는 상황이 변해서인지는 몰라도 관사에서 혼자 밥을 먹는 경우가 많지 않았다.

오상진의 생활에 대해서 김철환 1중대장에게 전해 듣고 있는 김선아는 그럴 줄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일부러 넉넉하게 싸 준 거니까 반찬 아깝다고 생각하지 말고 오래되었으면 그냥 버리세요. 반찬은 제가 언제든지 새로 만들어 드릴 테니까요 걱정 말고요.”

“네, 형수님.”

“대신 반찬 통은 꼭 가져다주세요.”

“아, 넵. 알겠습니다. 그런데 형님은 아직인가요?”

오상진이 슬쩍 화제를 돌렸다. 김철환 1중대장이 나올 줄 알았는데 한참이 지나도 보이질 않았다.

“아까 깨우긴 했는데 일어나기 힘든가 봐요. 제가 가서 깨울게요.”

“아닙니다. 앉아 계십시오. 제가 깨우겠습니다.”

오상진이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안방으로 들어갔다.

“형님, 일어나세요. 형님.”

오상진이 흔들어 깨우자 김철환 1중대장이 움찔거렸다. 그리고 눈을 감은 채 팔을 쭉 벌리며 말했다.

“으음, 자기야. 뽀뽀, 뽀뽀.”

순간 당황한 오상진이 뒤로 몇 발자국 물러났다.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중대장님. 빨리 일어나십시오.”

오상진이 일부러 호칭을 바꿔 말했다. 그렇게 하면 김철환 1중대장도 장난을 그만둘 거라 여겼다.

하지만 결혼하고 나서 사랑스러운 아내가 깨워주는 아침의 꿀맛을 즐겨온 김철환 1중대장은 그 행복을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너 말고, 내 마누라 불러. 안 그러면 안 일어날 거야.”

“형님이 애입니까? 어서 일어나요.”

“싫어. 빨리 내 마누라 불러줘.”

김철환 1중대장은 이불 속에 더 깊숙이 파묻혀 들어갔다. 그 모습에 오상진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김선아를 불렀다.

“형수님.”

“네?”

“아무래도 형수님께서 오셔야 할 것 같은데요.”

“왜요?”

김선아가 의문을 가지며 다가왔다. 그러다 누워서 아이처럼 칭얼대고 있는 김철환 1중대장을 보며 허리에 손이 올라갔다.

“여보, 여보 일어나요.”

“뽀뽀…… 뽀뽀…….”

“이 인간이 진짜……. 주책이야.”

김선아는 힐끔 오상진을 보며 민망한 얼굴이 되었다. 그리고 이불을 확 걷어내며 가슴을 때렸다.

“빨리 일어나요.”

“싫어, 싫어. 뽀뽀. 뽀뽀.”

“이이가 진짜…….”

김선아가 무안하다며 몸을 피했지만 김철환 1중대장이 붙잡는 걸 뿌리치진 못했다.

‘형님네는 아직도 신혼이시네.’

오상진이 멋쩍게 웃으며 부엌으로 갔다.

김선아는 오상진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뽀뽀를 ‘쪽’ 해줬다.

그제야 김철환 1중대장이 눈을 번쩍하고 뜨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벌써 아침이야?”

“진짜 도련님 보는데 그러고 싶어요?”

“상진이는 상진이고 나는 나지. 내가 내 마누라하고 뽀뽀하겠다는데 뭐가 문제야?”

“당신도 참! 어서 나오기나 해요. 국 다 식어요.”

“알았어.”

김철환 1중대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오상진의 옆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잘 잤냐?”

“네. 형님도 잘 주무셨습니까?”

“난 너 때문에 못 잤다.”

“제가 혹시 코 골았습니까?”

“네가 내 마누라 자리를 빼앗아갔잖아.”

“하하. 네에. 제가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알면 됐다.”

오상진이 헛웃음을 흘렸다. 그러자 김선아가 오상진을 대신해 김철환 1중대장을 나무랐다.

“당신도 거기까지만 해요.”

“내가 뭘 어쨌다고?”

“그리고 얼굴이라도 씻고 와요.”

“에이. 어차피 또 씻어야 하는데 그냥 먹고 씻으면 안 될까?”

“여보!”

“아, 알았어. 씻고 와.”

김철환 1중대장은 투덜거리며 화장실로 갔다. 그 모습이 꼭 엄마에게 잔소리를 듣는 아들을 보는 것 같았다.

4.

잠시 후.

세 사람이 나란히 식탁에 앉아 아침을 먹었다.

김철환 1중대장이 밥을 먹다가 오상진을 보며 물었다.

“참, 상진아. 넌 언제 결혼할래?”

“갑자기 무슨 소리입니까.”

“뭔 소리긴 뭔 소리야. 너도 나이 먹기 전에 좋은 여자 만나서 결혼을 해야 할 거 아니야. 설마 평생 혼자 살려는 건 아니지?”

김철환 1중대장의 잔소리는 다소 뜬금없었다. 하지만 오상진은 기분 나쁘지 않게 받아넘겼다.

“결혼은 할 겁니다. 그런데 지금은 아닙니다.”

“너 그렇게 살다간 평생 못한다. 나 봐라. 너희 형수 보자마자 그냥 결혼하자고 했잖아.”

“저도 형수님 같은 분 만나면 결혼할 겁니다.”

“그런 여자 찾는 게 쉽겠냐?”

“그건 맞습니다.”

“짜식이. 아주 눈은 높다니까.”

김철환 1중대장이 씩 웃으며 김선아를 바라봤다. 그러다 김선아의 눈짓을 읽고는 물을 반쯤 들이켠 뒤 화제를 돌렸다.

“그건 그렇고 은지 씨하고는 잘 돼가?”

“네?”

“은지 씨하고 부대 앞 김치찌개 집도 갔다며?”

“아, 네. 은지 씨가 근처에 볼일이 있다고 해서요.”

“너랑 은지 씨 밥 먹는 거 보고 부대 소문이 이상하게 퍼졌다.”

“……?”

“너 김 중위랑 사귀는 거로 되어 있잖아. 그래서 지금 양다리냐 헤어진 거냐 말들이 많아.”

“그렇습니까?”

오상진이 피식 웃었다. 한 대위가 김소희 중위와 연애를 시작한 이후로 그쪽으론 별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는데 박은지 때문에 다시 구설수에 오른 모양이었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김소희 중위와는 말만 맞춘 거라고 둘러대기도 어려웠다.

그런 오상진에게 김철환 1중대장이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그래서 말인데 이참에 은지 씨하고 연애하는 건 어떠냐?”

“연애요?”

“왜? 은지 씨는 아니야?”

오상진의 표정을 살피던 김선아도 냉큼 끼어들었다.

“도련님. 우리 은지 맘에 안 들어요?”

“그런 것은 아니고요. 뭐랄까…….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연인보다는 친구 같은 느낌입니다.”

“친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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