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116화
15장 전투체육을 아는가(2)
“네. 싸게 구입했습니다.”
“싼타페르를? 아무리 봐도 싸게 산 거 아닌 것 같은데…….”
김철환 1중대장은 차 욕심이 많았다. 그래서 해마다 차를 바꾸겠다고 조르다가 김선아에게 야단을 맞곤 했다.
그런 김철환 1중대장이 보기에 오상진의 차는 절대 싸게 주고 가져올 만한 게 아니었다. 그런데…….
“야, 상진아!”
“네.”
“여기 이거! 뒤쪽 범퍼가 왜 이래? 이거 제대로 보고 산 거야?”
김철환 1중대장이 사기라도 당한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다.
순간 뭐라고 대답해야 하나 고민하던 오상진은 적당히 둘러대기로 마음먹었다.
“아, 그게…… 이것 때문에 싸게 산겁니다.”
“그래? 사고 차야? 심각해?”
“그 정도는 아닙니다. 사고도 났고 중고차 단지에 넘기기도 그렇다고 해서 아는 사람에게 싸게 산 겁니다.”
“아, 그래?”
김철환 1중대장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솔직히 요즘 들어 오상진이 돈을 너무 헤프게 쓰는 것 같아서 한 소리 하려고 벼르던 차였다.
로또에 당첨됐다곤 하지만 대출을 크게 받아 집을 구입한 것부터 시작해 차까지 샀으니 이러다 장가도 가기 전에 모아놓은 돈을 전부 까 먹을까 걱정했다.
하지만 얘기를 들어보니 그 정도로 생각이 없는 건 아닌 것 같았다. 100퍼센트 납득이 되는 설명은 아니지만 오상진이니까 어련히 알아서 잘 했으리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너 전에 받은 당첨금 얼마나 남았냐? 집도 사고, 게다가 차까지 사고. 돈이 남아 있긴 해?”
“물론이죠. 그동안 저축한 돈도 있고 해서 괜찮습니다.”
“괜찮다 괜찮다 하다가 훅 간다 너. 아무리 그래도 장가갈 밑천은 가지고 있어야지.”
“걱정 마십시오. 저도 따로 모아 둔 것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차 진짜 얼마 안 줬습니다.”
“그럼 됐고…….”
김철환 1중대장이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가 무슨 생각이 났는지 오상진을 날카롭게 노려봤다.
“가만히 듣고 보니, 좀 이상하네.”
“뭐가 말입니까?”
“나한테 한마디 말도 없이 돈을 따로 모아뒀단 말이지?”
“아니, 그거야 형수님이…….”
“너희 형수 팔지 말고 인마. 그래서 요즘 삼겹살에 소주가 뜸했던 거잖아. 아니야?”
“무, 무슨 소리입니까. 절대 아닙니다.”
“아니긴, 우리 삼겹살에 소주 안 먹은 지 오래되었다는 거 몰라?”
김철환 1중대장이 서운하다는 투로 말했다. 로또에 당첨되기 전에는 사흘이 멀다 하고 오상진과 삼겹살에 소주를 마셨는데 언제부터인가 술자리가 뜸해졌다.
“에이, 며칠 전에도 마셨지 않습니까?”
“몰라, 기억 안 나!”
김철환 1중대장은 곧바로 오리발을 내밀었다. 오상진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중대장님. 아무리 그래도 중대장님이 소대장에게 삼겹살에 소주 얻어먹는 건 좀 그렇지 않습니까?”
“어라? 이 녀석 봐라. 네가 네 입으로 말했잖아. 내가 원하면 삼겹에 소주는 평생 책임지겠다고.”
“물론 그러긴 했습니다만…….”
“왜? 이제와 생각해 보니 아까워? 그런 거야?”
“아닙니다. 그냥 해본 소리였습니다.”
“짜식이. 그러니까 왜 그런 소릴 그냥 해?”
“농담이었습니다. 농담.”
김철환 1중대장이 눈을 가늘게 뜨다가 피식 웃었다.
“아무튼 오늘 차도 뽑았고, 한잔하자.”
“네, 알겠습니다.”
“특별히 네가 사는 거로. 오케이?”
“네. 콜입니다.”
그날 저녁 오상진과 김철환 1중대장은 항상 가는 단골집에서 삼겹에 소주 한 잔을 기울였다.
“카아! 역시 소주엔 삼겹이지.”
김철환 1중대장은 소주 한 잔을 비우고 잘 구워진 삼겹살을 장에 찍어 입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상추를 탈탈 턴 후 삼겹살을 올리고 마늘도 올려 장을 듬뿍 넣은 후 입에 넣었다.
“역시 맛있어.”
김철환 1중대장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며 오상진은 피식 웃었다. 그러다 김철환 1중대장이 소주잔을 비우자 소주병을 들어 빈 잔을 채워 주었다.
“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
“어떻게 지내긴 뭘 어떻게 지내, 인마. 그냥저냥 지내는 거지.”
순간 김철환 1중대장의 표정이 씁쓸하게 변했다. 술맛이 떨어진 정도까진 아니었지만 뭔가 잘 안 풀리는 일이 있는 것 같았다.
그 모습을 보고 오상진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전술 훈련 때문에 그러십니까?”
“뭐? 전술 훈련? 그거 잊어버린 지가 언제인데.”
“그럼 왜 그러십니까?”
“그게 말이다.”
뭔가 말을 하려던 김철환 1중대장은 이내 소주잔을 비웠다. 오상진이 다시 소주병을 들고 빈 잔을 채웠다.
“너 혹시 9회차 당첨자 나왔다는 거 들었냐?”
“네?”
“로또 9회차 말이야!”
“갑자기 로또 9회차 얘기는 왜…….”
“아니, 9회차 당첨자가 수령한 금액이 무려 300억 가까이 된다고 하잖아. 어후! 진짜, 내가 그걸 당첨되었어야 하는데. 그랬으면 진짜 빚도 다 갚고 이사도 하고 하는 건데. 왜 2등에 당첨이 되어가지고는…….”
“…….”
김철환 1중대장이 푸념을 늘어놓았다. 오상진은 말없이 술을 들이켰다. 인간의 욕심이란 끝이 없다 보니 더 큰 걸 바라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만 한편으로는 좀 씁쓸한 생각도 들었다.
“그건 그렇고 상진이 너 요새 꿈 안 꾸냐?”
“꿈이요?”
“요즘은 조상님 꿈에 안 나오시냐고. 진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로또 1등에 한 번만 더 당첨되면 소원이 없겠는데.”
“형님!”
평소 어지간하면 중대장이라는 호칭을 지켜 온 오상진이지만 이번만큼은 형님이라고 불렀다. 그래야 자신의 진심이 제대로 전달될 것 같았다.
“짜식이, 무섭게 왜 이래?”
“이제 그만 좀 하십시오. 솔직히 2등도 어디입니까. 대한민국 사람 중에 2등에 당첨되지 않은 사람도 수두룩합니다. 무엇보다 우리는 군인이 딱입니다.”
“야, 누가 뭐래? 나도 알아. 아는데 진짜 솔직히 우리 소은이 저렇게 혼자 있는 거 보고 있으면 안쓰러워 죽겠다고.”
“네? 갑자기 뜬금없이 무슨 말씀입니까?”
로또에서 시작한 이야기가 갑자기 소은이 이야기로 이어지자 오상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자 김철환 1중대장이 반쯤 남은 소주병을 그대로 들이키고는 삼겹살을 씹어대며 말했다.
“내가 얘기 안 했나? 네 형수에게 둘째 얘기 꺼냈다가 한 소리 들었잖아.”
“왜요?”
“군인 월급이야 뻔하고 집에 빚도 아직 남았는데 무슨 둘째냐 이거지. 솔직히 소은이가 클수록 돈도 더 들어갈 테니까 부담도 적잖고. 무엇보다 소은이도 계획하고 가진 게 아니거든.”
“아, 그렇습니까?”
“그래. 자리 잡을 때까지는 아이 갖지 말자고 했는데 덜컥 생겨 버린 거야.”
김철환 1중대장이 소주잔을 들었다. 오상진이 곧바로 소주잔을 들어 부딪쳤다.
“그래도 형수님 나이가 있는데 더 늦기 전에 소은이 동생 만들면 좋을 텐데 말입니다.”
“내 말이 그 말이다. 그래서 혹시나 싶어 며칠 전에 다시 말해봤는데 씨알도 안 먹혀. 그래서 꾸준히 로또를 사는 거였는데 그것도 이젠 네 형수 때문에 못 사고. 아무튼 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 답답하다!”
“로또 말고 또 문제가 있습니까?”
오상진이 빈 술잔에 다시 술을 채우며 물었다.
김철환 1중대장이 소주를 입 안에 털어 놓고는 오상진을 힐끔 흘겨봤다.
“정말 몰라서 물어보는 거냐?”
“네?”
“우리 집에 처제 있잖아.”
“……?”
“처제가 있는데 뭘 하기도 눈치 보이잖아!”
“아…….”
오상진은 그제야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가 되었다. 아무리 가족이라고 하지만 다 큰 처제가 들을지도 모르는데 예전처럼 편하게 부부 관계를 갖기란 쉽지 않을 것 같았다.
김철환 1중대장은 씁쓸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솔직히 나는 별로 신경 안 쓰는데 네 형수가 되게 눈치가 보이나 봐. 진짜 예전에는 눈만 맞으면 뜨겁게 사랑을 나누고 그랬는데……. 요새는 눈치 보면서 가끔씩 하려니 힘들다. 힘들어. 어휴, 내 팔자야.”
그런 김철환 1중대장을 보며 오상진이 슬쩍 생각했다.
‘저런 모습을 보니 안쓰럽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1등을 드릴 걸 그랬나?’
하지만 오상진은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야. 선택은 형님께서 하신 거야.’
솔직히 지금 가장 힘이 드는 건 김철환 1중대장의 고충이 예전만큼 마음에 와닿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예전이야 김철환 1중대장보다 더 빈곤했으니 내 일처럼 가슴이 아팠지만 이제는 삶이 여유로워지다 보니 고개만 끄덕이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그래. 나중에 일이 더 잘 풀리면 형님께 좀 더 도움을 드리는 방향으로 생각해 보자.’
오상진이 애틋한 눈으로 김철환 1중대장을 바라봤다. 하지만 반쯤 취한 김철환 1중대장은 오상진이 자신을 노려보는 거라 착각했다.
“뭐? 왜 또 인마.”
“네?”
“뭘 그리 빤히 쳐다봐?”
“제가 언제 말입니까?”
“아니야? 아님 말고 술 줘라. 나 술잔 비웠다.”
김철환 1중대장이 빈 술잔을 살랑살랑 흔들었다. 오상진이 피식 웃으며 곧바로 소주병을 들었다.
“앗! 죄송합니다. 제가 이런 큰 실수를 하다니.”
오상진이 곧바로 빈 잔에 술을 채웠다. 그러자 김철환 1중대장이 슬쩍 물었다.
“상진아.”
“네?”
“그래서 말인데…… 삼겹살 1인분 더 시켜도 되냐?”
“시키십시오. 1인분 말고, 2인분 시키셔도 됩니다.”
“자식이, 삼겹살 가지고 생색은…….”
오상진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돌려 이모를 불렀다.
“이모 여기 삼겹살 2인분 더 주세요.”
그러자 김철환 1중대장이 손을 들어 말렸다.
“야, 1인분만 시켜. 무슨 2인분이야.”
“에이, 그냥 드십시오. 다 못 먹으면 남기면 되지 말입니다.”
“야! 고기를 남기는 것은 죄야!”
“남으면 여기에 킵해 놓으면 되는 거 아닙니까?”
“깁? 삼겹살도 킵이 되냐?”
김철환 1중대장의 물음에 오상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괜히 여기 단골입니까? 지난번에 보니까 다른 단골손님들도 그렇게 하는 거 같았습니다.”
“그래?”
“가만히 계셔보십시오.”
오상진이 다시 고개를 돌려 이모를 바라봤다.
“이모! 우리 고기 남으면 킵해 놓을 수 있죠?”
그러자 이모가 버럭 했다.
“내 소주를 킵해달란 소린 들었어도 고기 킵해달라는 건 처음 듣네. 고기를 무슨 킵을 해! 나중에 상한 고기 먹으려고? 안 돼!”
이모의 말에 오상진이 뒷머리를 긁적였다. 언젠가 술에 취해 비슷한 소릴 들은 거 같은데 잘못 들은 모양이었다.
“안 된답니다.”
그 모습을 보며 김철환 1중대장이 크게 웃었다.
“상식적으로 그게 되겠냐?”
“그렇죠?”
“아무래도 안 되겠다. 이렇게 된 거 다 먹고 가야겠네.”
“그럼 소주 일 병 더 시킬까요?”
“그야 당연하지!”
소주를 추가로 주문한 뒤 오상진과 김철환 1중대장이 마주보며 소주잔을 들어 올렸다.
째각.
허공에서 가볍게 소주잔이 부딪쳤다.
“형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다 잘 될 겁니다.”
오상진이 덕담하듯 김철환 1중대장을 위로했다.
“짜식. 말이라도 고맙다.”
김철환 1중대장의 입가에도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그렇게 두 사람의 술자리는 날이 새도록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