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115화
15장 전투 체육을 아는가(1)
1.
“오빠아아아아!”
강하나가 놀라며 소리쳤고, 최강철은 자신도 모르게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아, X팔!”
그리고 옆에 앉은 강하나를 쏘아보며 소리쳤다.
“야, 너 때문이잖아.”
“내가 뭘? 오빠가 운전했잖아!”
“그러니까 적당히 좀 하라고 했잖아!”
“나 아무 짓도 안 했거든?”
“어휴, 진짜…….”
최강철은 입술을 질근 깨물었다. 그렇다고 강하나 때문에 사타구니 쪽이 불편해 액셀러레이터를 세게 밟았다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아무튼 넌 나오지 말고 여기 있어.”
최강철이 안전벨트를 풀었다.
때마침 앞차 운전자도 뒷목을 잡고 내리고 있었다.
최강철은 차에서 내리는 오상진을 유심히 살폈다.
오상진의 헤어스타일은 요즘 잘 하지 않는 스포츠 머리였다. 검은 티셔츠 차림에 덩치도 제법 있어 보였다.
‘뭐야. 조폭이야?’
최강철이 살짝 겁을 먹었다. 그것은 차에 타고 있는 강하나도 마찬가지였다.
“오빠, 오빠!”
조수석에 앉아 있던 강하나가 다급하게 불렀다.
“왜?”
“내리지 말아 봐. 저 사람 왠지 조폭 같아.”
최강철이 움찔했지만 고개를 돌려 다가오는 오상진의 인상은 생각처럼 그리 사납지가 않았다.
‘X발. 쫄았잖아.’
최강철은 속으로 가볍게 한숨을 쉰 후 강하나에게 말했다.
“조폭은 무슨. 아무튼 넌 여기 있어.”
최강철이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오상진은 뒷목을 잡은 채 자신의 차를 확인하고 있었다.
“괜찮으십니까?”
최강철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오상진이 고개를 돌려 말했다.
“하아. 방금 뽑은 찬데…….”
“네?”
“아닙니다. 아무것도.”
오상진이 살짝 원망 어린 시선으로 최강철을 바라봤다.
그러자 최강철이 곧바로 사과를 했다.
“죄송합니다.”
오상진이 뒷목을 잡고 있던 손을 풀며 말했다.
“뭐가 그리 급하시다고 급출발을 하십니까.”
“그게……. 제가 액셀을 좀 강하게 밟았나 봅니다. 그보다 다치신 곳은 없습니까?”
최강철이 정중한 목소리로 물었다. 혹시라도 운전 중에 사고가 나면 아버지를 생각해서라도 제대로 대응해야 한다고 여러 번 주의를 받아서인지, 짜증 나는 상황에서도 평정심을 유지하려 애를 썼다.
하지만 그 모습이 강하나의 눈에는 조폭 같은 사내에게 기가 눌려 겁을 먹은 것처럼 보인 모양이다.
“저 자식이 우리 오빠를?”
강하나가 신경질적으로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는 보란 듯이 소리쳤다.
“오빠, 뭐 해? 저 아저씨가 잘못한 거 아니야?”
강하나가 당당하게 말했다. 순간 오상진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최강철도 마찬가지였다.
“야, 강하나! 넌 차에 있으라고 했지. 어서 들어가 있어.”
“아니, 그게 아니라. 신호가 바뀌었는데 저 아저씨가 출발하지 않은 거잖아. 그럼 저 아저씨 잘못 아냐?”
강하나의 무식한 발언에 최강철은 슬쩍 혈압이 올라왔다. 옆 차선을 따라 뒷차들이 지나가면서 힐끔힐끔 바라보는데 창피해서 고개를 들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야, 너 시끄럽게 굴지 말고, 어서 차에 들어가!”
“내가 왜?”
강하나는 최강철이 국회의원인 아버지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최강철을 위해 일부러 강하게 나갔다.
그럴수록 부끄러움은 최강철의 몫이었다.
“죄송합니다. 쟤가 철이 없어서요.”
최강철은 다시 한번 오상진에게 사과를 했다.
그런 두 사람을 오상진은 새삼스럽게 바라봤다.
한 대에 2억 쯤 한다는 슈퍼카에 연예인 못지않게 예쁜 여자 친구까지.
상황으로 봐서는 금수저 같은 느낌이었다.
그런데 정작 최강철은 예의 바른 청년처럼 굴었다.
‘의외네.’
오상진의 시선이 강하나를 지나 다시 최강철에게 돌아왔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보험 접수 할까요?”
오상진의 물음에 최강철이 살짝 당황했다.
“어, 그게……. 죄송하지만, 보험 접수 안 하면 안 됩니까?”
“네?”
“아, 그냥 제 과실이고 제가 다 수리해 드리겠습니다. 그러니 보험 접수는 좀…….”
최강철이 난감해하며 말했다. 오상진이 고개를 갸웃했지만 뭔가 사정이 있는 것 같았다.
“으음…….”
오상진은 낮은 신음을 흘리며 다시 자신의 차를 확인했다. 뒤범퍼가 약간 찌그러지긴 했지만 들이받은 슈퍼카보다는 덜 했다.
‘보험 접수를 안 하면 슈퍼카 수리비가 더 나올 텐데……. 금수저라 이 정도는 괜찮은 건가?’
오상진이 속으로 생각하고 있을 때 최강철이 다시 부탁했다.
“보험 접수 안 하면 안 되겠습니까?”
“아, 아닙니다. 그렇게 하시죠.”
“후우. 감사합니다. 그럼 계좌번호를…….”
최강철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보험 접수를 할 경우 기사가 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기 어려웠다. 조용히 넘어가더라도 아버지가 정치 활동을 할 때 꼬투리가 될 가능성이 있었다.
‘그나저나 얼마를 줘야 하나? 50만 원? 아니지. 그냥 100만 원쯤…….’
최강철은 오상진이 함부로 떠들고 다니지 않도록 과한 보상금을 쥐어 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오상진도 최강철에게 보상금을 뜯을 만큼 힘든 상황은 아니었다.
“아닙니다. 됐습니다. 그러지 말고 각자 수리하는 걸로 하죠.”
“네?”
오상진의 뜻밖의 말에 최강철이 살짝 놀랐다. 대게 저런 경우라면 어떻게든 돈을 뜯어내려고 할 텐데 각자 수리하자니. 순간 잘못 들었나 싶었다.
“방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각자 수리하자고 했습니다.”
“그럼 병원은…….”
“됐습니다. 아까는 살짝 목이 뻐근했는데 지금은 괜찮으니까요.”
“그래도 병원에 가 보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가야 할 것 같으면 제가 알아서 가겠습니다.”
“정말입니까? 나중에 다른 말씀 하시는 거 아니시죠?”
“절대 아닙니다. 그리고 딱 봐도 그쪽 차량 수리비가 더 많이 나올 것 같은데요.”
오상진이 최강철의 차를 바라보며 말했다.
싼타페르는 뒤범퍼가 살짝 찌그러진 정도였지만 포르쉐르의 앞범퍼는 교체를 해야 할 것 같았다.
포르쉐르 서비스 센터를 통해 수리할 경우 부르는 게 값일 터.
그걸 감안했을 때 이쯤에서 합의를 보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제 차는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보다 선생님 차는 수리 안 해드려도 되겠습니까?”
오상진이 호의를 베풀어서일까.
최강철의 입에서 선생님이라는 호칭이 나왔다.
“네.”
오상진은 피식 웃었다. 자신의 호의를 아는 걸 보니 요즘 한창 논란이 되고 있는 잘 사는 집안 자식들과는 확실히 달라 보였다.
“그렇게 봐주시면 정말 감사합니다.”
최강철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그러고는 지갑에서 명함을 하나 꺼내었다.
“혹시라도 무슨 일이 있으면 이쪽으로 연락주시면 됩니다.”
오상진이 명함을 받고 확인을 했다.
“선진그룹 홍보팀장, 최강희 씨?”
선진그룹으로 말할 것 같으면 대한민국 10대그룹에 당당히 이름을 올린 대기업이었다. 거기다 홍보팀장이면 제법 직위가 높았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여자 이름 같았다. 오상진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이거 본인 명함입니까?”
“아, 아닙니다. 저희 누나 명함입니다. 제 이름은 최강철입니다. 제가 조만간 군대에 입대할 것 같아서요. 누나에게는 미리 말해놓을 테니까, 걱정 마시고 문제가 있으면 연락 주세요. 어차피 블랙박스에 다 찍히지 않았습니까.”
“네. 그렇긴 하죠.”
오상진이 구매한 풀옵션 차량에는 후방 블랙박스도 포함되어 있었다.
“혹시라도 병원에 가셔야 하거나 차량 수리비가 생각보다 많이 나오신다면 꼭 연락 주십시오.”
“네. 알겠습니다.”
오상진은 명함을 잘 챙긴 후 차에 올라탔다. 그리고 차를 몰고 가면서 다시 한번 명함을 보며 중얼거렸다.
“재밌네.”
오상진이 피식 웃었다.
솔직히 조금 전 사고가 났을 때 오상진은 짜증부터 났다. 외제 차는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피해야 하는데 2억에 달하는 슈퍼카가 와서 들이받았으니 울컥 올라오는 감정을 참기 어려웠다.
그래서 만에 하나 이상한 금수저 녀석이 내려서 시비를 걸면 그냥 넘어가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의외로 정신이 똑바로 박힌 괜찮은 녀석을 만난 것 같았다.
“그나저나 곧 군대 간다고? 착잡하겠네. 그런데 저러다가 우리 부대로 오는 건 아니겠지?”
오상진은 피식 웃으며 부대로 차를 몰았다. 그리고 앞범퍼가 망가진 포르쉐르는 부산을 향해 길을 돌렸다.
2.
“아, 맞다! 이 차 아직 등록이 안 되어 있어서 통과가 안 될 텐데…….”
저 멀리 위병소가 보이고서야 오상진은 깜빡 잊고 있었던 뭔가가 떠올랐다.
오상진은 오늘 차를 구입했기에 차량 등록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차를 타고 부대에 들어가지는 못할 것 같았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오상진은 조심스럽게 위병소를 향해 차를 몰고 갔다.
아니나 다를까.
차 번호판을 확인한 위병소가 부산해졌다.
“어이, 저 차 뭐야. 막아!”
위병소 조장이 소리쳤다. 그러자 위병 근무자 두 명이 손을 들어 오상진의 차를 막았다.
오상진이 차창을 내리며 말했다.
“고생들 많다. 나, 1중대 1소대장 오상진 소위다.”
“충성!”
오상진을 알아본 위병 근무자가 경례를 했다. 그리고 차량 번호를 다시 확인을 하더니 말했다.
“죄송합니다. 오 소위님. 차량이 등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알고 있다. 오늘 차량을 구입해서 말이야.”
“그래도 차량 등록 후 출입이 가능하십니다.”
“그래? 그럼 저쪽에 잠깐 대놓고 등록하고 오면 되나?”
“진입로가 좁아서 차를 빼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오늘 바로 등록도 어려우실 것 같습니다.”
“그래?”
오상진의 입가에 쓴웃음이 번졌다. 그때 맞은편에서 곽부용 작전과장이 걸어 내려왔다.
“어? 오 소위.”
“충성.”
“너 차 샀냐?”
“네. 오늘 구입했습니다.”
“그래? 그런데 왜 올라가지 않고?”
“제가 깜빡 잊고 차량 등록을 하지 않아서 말입니다.”
“아, 그렇지.”
곽부용 작전과장이 고개를 끄덕인 후 위병조장을 보았다.
“임 하사인가?”
“네.”
“나 알지.”
“물론입니다.”
“내가 내일 아침 일찍 등록할 테니까. 오늘은 그냥 보내줘.”
“그래도…….”
위병조장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곽부용 작전과장이 슬쩍 눈을 부라렸다.
“나 몰라? 충성대대 작전과장 곽부용 대위 진이야.”
곽부용 작전과장은 ‘진’이라는 말을 강조했다. 왜냐하면 조만간 소령으로 진급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아, 알고 있습니다.”
“이 정도는 해줄 수 있잖아. 안 그래?”
“네, 그렇죠. 알겠습니다.”
“그래. 고마워.”
곽부용 작전과장이 피식 웃으며 몸을 돌렸다.
“오 소위. 됐으니까. 올라가 봐!”
“아, 그래도 됩니까?”
오상진은 말을 하면서 슬쩍 위병조장을 바라봤다. 그는 살짝 인상을 썼지만 어쩌겠는가, 계급이 깡패인 것을.
임 하사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요. 임 하사.”
그리고 곽부용 작전과장에게도 인사를 했다.
“감사합니다. 과장님.”
“감사는 무슨. 그리고 우리 부대에서 오 소위 얼굴 모르는 사람 있나. 괜찮으니까, 어서 올라가 봐.”
“넵! 충성.”
“그래.”
오상진이 차를 몰고 부대로 올라갔다. 그리고 주차장에 차를 딱 세웠는데 마침 김철환 1중대장이 걸어오고 있었다.
“어? 상진아.”
“충성.”
오상진은 김철환 1중대장을 보며 곧바로 경례를 했다. 김철환 1중대장은 경례를 받는 둥 마는 둥 하며 오상진의 차를 둘러봤다.
“오오, 이거 무슨 차냐? 너 차 샀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