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114화
14장 뜻대로 된다면 그게 인생이겠는가(12)
“아, 아닙니다. 그냥 친구입니다.”
“그냥 친구입니까?”
“네. 그냥 친구예요.”
“하아. 아쉽네요. 우리 은지가 드디어 연애를 하나 싶었는데 말입니다.”
박은지에게 사심이 있나 싶었지만 임창석 대리는 진심으로 아쉬워했다.
“은지 씨랑 많이 친하신가요?”
“네. 이야기 들으셨는지 모르겠지만 제가 은지 대학 선배입니다. 솔직히 은지가 좀 예쁜 편이긴 하잖아요. 그래서 학교 다닐 때도 남자들이 많이 쫓아다녔습니다. 정작 은지는 관심도 안 가졌지만요.”
“아, 그러시구나.”
“사실 저도 은지에게 고백했었습니다. 그러니까 하는 말이 같이 술을 마셔서 버티면 사귀어 준다나요? 그 말에 오기가 생겨서 술 대작을 했는데…….”
“지셨군요?”
“네. 그때 정말 죽을 뻔했습니다. 그러다 여차여차해서 지금의 와이프를 만나게 됐지만요.”
임창석 대리가 멋쩍게 웃었다. 그러고는 오상진에게 당부하듯 말했다.
“암튼 친구시라고 하니까 앞으로도 우리 은지 잘 부탁드립니다. 워낙에 똑 부러지는 성격이다 보니까, 주변에 친구도 많이 없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서류가 준비되는 동안 잠시 사담을 나눴다가 오상진은 바로 계약을 마치고 차를 끌고 나왔다.
차량 등록은 업체에서 곧바로 해주었다.
“한번 달려 보실까?”
부대를 향해 부지런히 내달리던 오상진은 신호에 걸려 차를 세웠다.
때마침 멋진 스포츠카가 뒤쪽으로 다가왔다.
“어? 포르쉐리다. 이야, 멋지네.”
오상진의 시선이 절로 룸미러를 향했다. 과거 드림카로 첫손에 꼽았던 게 바로 포르쉐리였다.
차종은 불문. 그냥 포르쉐리 마크가 달린 차라면 뭐든 좋을 것만 같았다.
“그냥 포르쉐리를 살 걸 그랬나?”
오상진이 피식 웃었다. 과거에는 그저 바라만 볼 수밖에 없는 차였지만 로또에 당첨된 지금은 달랐다. 마음만 먹는다면 포르쉐리 한 대쯤은 끌고 다닐 수 있었다.
하지만 일개 소위가 포르쉐리를 끌고 부대에 출퇴근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나중에 관사 생활을 끝내면 생각해 보자.”
오상진이 애써 포르쉐리에서 눈을 뗐다.
그런데 포르쉐리가 요란한 배기음을 내더니 자꾸 거리를 좁혀 왔다.
“뭐가 급해서 저러지?”
불안해진 오상진은 신호가 바뀌길 기다렸다가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
그런데 갑자기 뒤에 있던 차가 급출발을 하더니 오상진 차 뒤쪽을 ‘쿵’ 하고 박았다.
“아, 뭐야.”
오상진이 허탈한 얼굴로 브레이크를 밟았다.
중고차라고는 하지만 첫 차를 산 지 몇 분 만에 사고가 나버렸다.
10.
최강철은 자신의 포르쉐리 차량을 끌고 강하나와 함께 드라이브에 나섰다.
“오빠. 내가 그렇게 보고 싶었어?”
“네가 드라이브시켜 달라며?”
“오빠가 바쁘다고 얼굴도 안 보여주니까 그렇지. 그런데 오빠. 우린 무슨 사이야?”
“뭐?”
“무슨 사이냐고. 그냥 엔조이는 아니지? 그렇지?”
“너 편할 대로 생각하세요.”
강하나와의 관계는 설명하기가 애매했다.
강하나는 반년쯤 만난 여자 친구와 헤어지고 클럽에서 만난 여자였다.
게다가 그에게 영장이 날아오면서 그냥저냥 만남을 이어가고는 있었지만, 그렇다고 강하나와 사귈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자신보다 자신의 배경을 더 좋아하고 몰래 다른 남자를 만나고 다니는 여자와 진지하게 사랑을 나눌 자신은 없었다.
“근데 오빠. 진짜 다음 주에 군대가?”
“모처럼 만났는데 기분 잡치게 할래?”
“와, 오빠도 군대를 가는구나. 그런데 오빠는 왜 군대 가? 다른 사람은 어떻게든 안 가려고 하던데.”
“몰라, 젠장맞을…….”
“오빠네 아빠, 국회의원이라고 하지 않았어?”
강하나의 말처럼 최강철의 아버지는 2선 국회의원이었다.
비례 대표로 국회에 입성했다가 지역구를 받아 재선에 성공하면서 정치인으로서 입지를 다지고 있었다.
하지만 최강철은 아버지를 썩 좋아하지 않았다.
본인의 이미지를 위해 자신을 강제로 군대에 보내려고 하기 때문이었다.
“국회의원 아들이면 뭐? 내가 어디 아픈 것도 아닌데 무슨 수로 군대를 빼냐?”
“에이. 나 아는 오빠도 아버지가 시의원인데 군대 빼줬다던데?”
“그런 거 불법이잖아. 그거 걸리면 인생 꼬이는 거 몰라?”
“설마 걸리겠어?”
“지금 네가 그렇게 입 싸게 말하고 다니잖아. 그러다 보면 소문 퍼지는 거 십상인데 평생 안 들킬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뭐야, 오빠. 웃기다. 난 그냥 오빠 걱정돼서 한 말인데.”
“됐으니까 당분간 내 앞에서 군대의 군 자도 꺼내지 마. 알았어?”
“칫. 알았어.”
강하나가 입술을 삐죽거렸다. 연예인을 해도 될 만한 외모에 몸매도 좋으니 남자가 이렇게 말하면 정이 떨어질 만도 했지만 강하나의 몸은 여전히 최강철 쪽을 향해 있었다.
‘하아. X팔. 나라고 군대 가고 싶겠냐.’
차가 신호에 걸리자 최강철이 미간을 찌푸리며 브레이크를 밟았다.
솔직히 최강철도 할 수만 있다면 군대를 면제받고 싶었다.
아버지의 정치 인생을 위해 2년이라는 시간을 허비한다는 거 자체가 손해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집안 전체가 아버지의 청와대 입성을 꿈꾸는 상황에서 철없는 아들이 될 수는 없었다.
군대만 다녀오면 뭐든 하고 싶은 걸 하게 해주겠다는 아버지의 제안도 뿌리치기 어려웠고.
‘그래. X팔. 2년만 참자.’
그나마 올해부터 26개월이던 병역 기간이 24개월로 줄어든 만큼 꾹 참아 볼 생각이었다.
‘당분간 여자 구경도 못 할 테니까 오늘은 제대로 즐겨야지.’
최강철의 시선이 옆자리에 앉은 강하나의 허벅지 쪽으로 향했다.
마치 보란 듯이 짧은 핫팬츠를 입은 강하나의 허벅지는 뽀얗고 예뻤다.
앉아 있을 때도 각선미가 돋보이는데 서 있을 땐 정말 길고 쭉 뻗은 다리가 모델 뺨 칠 정도였다.
‘내가 저 다리에 반했지.’
최강철은 언제부턴가 여자를 볼 때 다리에 우선순위를 줬다.
스물 넘어가면 미용이랍시고 성형을 하는 여자들이 많다 보니 자연 미인을 찾기 어렵고, 가슴 또한 분별이 어려운 상황이라 자연스럽게 각선미에 눈을 뜨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 최강철의 끈적한 시선을 느낀 것일까.
“오빠도 참.”
강하나가 씩 웃더니 슬쩍 최강철의 허벅지에 손을 올렸다.
순간 최강철이 움찔 놀라며 말했다.
“야, 뭐 해?”
“뭐 하긴 뭐 해. 내 남자 허벅지 만지는데.”
“하지 마. 운전 중이잖아.”
“오빠 웃기다? 내가 뭘 했어? 안 잡아먹을 테니까 운전에 집중해. 난 그냥 우리 허벅지 잘 있나 확인만 할 테니까.”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강하나의 손길은 노골적으로 허벅지를 지나 사타구니 쪽을 파고들었다.
“하지 말라 했다.”
아랫도리에 신호가 올 것 같자 최강철이 일부러 화를 냈다.
“칫.”
그제야 강하나가 슬그머니 손을 거두었다.
신호가 바뀌고 최강철은 다소 불편한 자세로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
부우웅!
힘 조절이 되지 않다 보니 차가 다소 거칠게 출발했다.
스포츠카로 유명한 포르쉐리의 제로백은 5초 미만.
최강철이 타고 있는 이 녀석은 3.9초였다.
그렇게 순식간에 치고 나간 차량이 길게 뻗은 도로를 타고 내달렸다.
“그런데 오빠.”
“또 왜?”
“오빠 군대 가면 난 심심해서 어떻게 해?”
손장난으로 만족이 되지 않았던지 강하나가 새로운 작전을 구사했다.
군대 가기 전에 둘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든 확실하게 만들고 싶은 모양이었다.
최강철은 애써 정면을 바라보며 말했다.
“심심하긴 뭐가 심심해. 나 없으면 얼씨구나 하고 클럽 가서 딴 남자 만날 거면서.”
“아니거든? 나 클럽 끊은 지 오래거든?”
“언제부터 끊었는데? 어제? 아니면 오늘 아침?”
“아, 진짜. 요즘 클럽 안 다닌다니까?”
“그러니까 그 좋은 클럽 다시 다니세요. 괜히 나 기다리지 말고.”
최강철은 군 입대와 함께 강하나와의 관계를 정리하고 싶었다.
강하나는 예쁘고 인기도 많으니까 자신이 아니더라도 더 좋은 남자를 만날 수 있다고 여겼다.
물론 강하나도 최강철이 제대할 때 까지 기다려 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가끔 휴가를 나온다면 만나줄 의향은 있지만 여자 친구인 양 면회까지 가는 건 질색이었다.
“그런데 오빠! 오늘 우리 어디 가?”
“어디 가긴 어디 가. 드라이브 끝나면 집에 가야지.”
“그러는 게 어딨어?”
“네가 드라이브만 하자며.”
“에이, 뭐야아~ 그럼 우리 드라이브하면서 부산 가자.”
“부산? 지금 이 시간에?”
“왜에~ 오랜만에. 응?”
강하나가 다시 최강철의 허벅지 위로 손을 뻗었다.
“나, 있잖아. 갑자기 해운대 바다가 보고 싶어. 지난번에 갔던 거기 있잖아. 조선호텔인가? 바닷가 보이는 곳에 방 얻어서…….”
강하나는 손가락을 세워 쓰윽 허벅지를 훑었다. 최강철이 움찔했지만 인내심을 발휘했다.
“이 시간에 바다는 무슨…….”
“오빠아아~ 그러지 말고. 응?”
강하나가 더욱 애교 섞인 목소리로 애원했다.
“오늘 내가 진짜 잘해줄게. 서비스 확실하게…….”
강하나의 손이 허벅지를 지나 사타구니 쪽으로 향했다.
스킨십에 약한 모습을 보이자 집요하게 파고든 것이다.
“야, 손 치워! 운전 중인데…….”
최강철은 다급히 강하나의 손을 쳐냈다. 다행히 신호가 바뀌었으니 망정이지 계속 달렸다간 큰 사고가 났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강하나는 오히려 짓궂게 웃어댔다.
“왜에~ 운전 중이니까. 더 짜릿하지 않아?”
“야, 강하나.”
최강철이 눈을 부릅떴다. 강하나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오빠, 말은 그렇게 하지만 다른 곳은 아니라고 말을 하는 거 같은데?”
“아, 아니거든.”
“아니긴 뭐가 아니야. 여기 이렇게…… 불룩 튀어나와서 나한테 시그널을 보내고 있는데.”
강하나가 피식 웃으며 최강철의 사타구니를 힐끔거렸다.
괜히 민망해진 최강철이 벌개진 얼굴로 화를 냈다.
“야, 그만 해라. 계속 그러면 나 화 낸다.”
“내가 뭘?”
“그만 까불라고.”
최강철이 고개를 돌려 강하나를 노려봤다.
그때 신호등이 붉은 색으로 바뀌어 있었다.
“어어, 오빠. 신호! 신호!”
강하나의 호들갑에 최강철이 반사적으로 브레이크를 밟았다.
끼이이익!
간신히 앞차와 30㎝의 거리를 두고 멈춰 섰다.
최강철은 놀란 가슴을 진정시켰다.
강하나 역시 눈을 크게 뜨며 숨을 골랐다.
“우와! 놀래라.”
“야, 너 때문에 사고 날 뻔했잖아.”
“내가 뭘!”
“아무튼 부산 가고 싶으면 조용히 있어. 알았어?”
“부산 가는 거야?”
“왜? 싫어?”
“나야 오빠랑 함께면 어디든 좋지~”
강하나가 씩 웃으며 최강철의 팔짱을 꼈다.
그 모습이 귀여웠던지 최강철도 그저 피식 웃었다.
“어? 오빠 신호 바뀌었다.”
잠시 최강철의 어깨에 마리를 기댔던 강하나가 말했다.
최강철은 무심코 액셀을 밟아 차를 출발시켰다.
부우웅!
그런데 앞 차가 생각 이상으로 천천히 움직였다.
“어, 어?”
최강철이 당황하며 액셀에서 발을 떼고, 브레이크를 잡아 봤지만 이미 늦어 버렸다.
포르쉐르는 순간 가속력을 이기지 못하고 앞으로 튕겨 나갔다. 그리고 그만 앞차와 쿵 하고 부딪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