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112화
14장 뜻대로 된다면 그게 인생이겠는가(10)
“아가씨야말로 제대로 말하지? 당신 남자 친구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차량이었어. 그거 알아?”
“그게 지금 무슨 소리예요? 시거 잭에서 흙이 묻어 나왔잖아요.”
“흙? 무슨 흙? 시거 잭 아무 이상 없는데 왜? 그리고 막말로 전주인이 시거 잭을 진흙에 비볐을지 어찌 알고 고작 이런 거로 침수 차니 마니 하는 거야?”
“그런 억지가 어딨어요? 그리고 강하윤 딜러님. 반말은 하지 마시죠?”
“꼬우면 당신들도 반말해. 우리가 서로 좋은 말 할 분위기는 아니잖아. 안 그래?”
“그러니까 처음부터 제대로 된 차를 보여주셨으면 이런 일 없잖아요.”
“내가 분명 정상적인 차량을 보여줬는데 돈 없다고 싼 차를 원한 건 아가씨 아니었어? 우리는 땅 파서 장사해? 기껏 좋은 차 보여주면 뭐해? 싼 차만 원하는데. 이 세상에 공짜는 없어. 이러니까 싼 거야. 이런 차니까 싼 거라고.”
사내들을 믿는 것일까. 강하윤의 태도가 조금 전과 달리 180도 달라졌다.
“신뢰와 정직이라더니 순 거짓말이었네요.”
박은지도 지지 않고 빈정거렸다. 솔직히 이 정도만 해도 충분했지만 제대로 된 영상 확보를 위해서는 강하윤을 조금 더 자극할 필요가 있었다.
“쌍욕 나오게 하지 말고 꺼져! 재수 없으니까. 에이 씨!”
“나 참, 어이가 없네. 지금 누가 화를 내야 하는데.”
“아니, 근데 이 아가씨가 오냐오냐해 주니까 진짜 눈에 뵈는 게 없나. 왜 자꾸 까불어?”
사내 하나가 박은지를 위협하듯 굴었다. 그러자 오상진도 냉큼 나서서 박은지의 앞을 가로막았다.
“말씀 좀 가려 하시죠.”
“하아, 넌 또 뭐야?”
“알아서 뭐하시게요?”
“이것들이 쌍으로 미쳤나. 진짜 네 깔치 보는 앞에서 한번 처맞아 볼래?”
사내가 씩씩거렸지만 그렇다고 정말로 덤벼들지는 않았다. 여기서 폭력을 행사해 봐야 자신에게 득이 될 게 없다는 걸 아는 모양이었다.
그때 뒤에 있던 박은지가 오상진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조금 더 해달라는 의미.
“말로는 안 되니까, 폭력을 행사하려고? 자신 있으면 치세요. 나도 가만있지는 않을 테니까.”
“허, 이 새끼가 진짜? 가만있지 않으면 어쩔 건데? 어? 네까짓 게 어쩔 거냐고!”
오상진의 체격이 만만치 않았지만 사내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손바닥으로 오상진을 툭툭 밀었다. 이렇게 하면 오상진이 제풀에 기가 꺾일 거라 여기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오상진은 겁이 나기보다 오기가 생겼다.
사내의 도발로 폭행은 이미 성립된 상태.
여기서 한 대 시원하게 주먹을 날려 버리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그때 박은지가 황급히 다가왔다.
“상진 씨 진정해요. 이 사람들이랑 싸워봤자, 상진 씨만 손해예요. 어차피 경찰 불렀으니까. 그때 제대로 해봐요.”
“뭐? 누굴 불러?”
“경찰이요, 경찰. 당신들 이제 큰일 났어요.”
“허, 경찰 부르면 뭐 내가 죄송합니다 고객님 할 줄 알았냐? 잘됐네. 나도 경찰 오면 당신들 영업 방해한다고 쫓아내 달라고 해야겠네.”
“지금 장난해요?”
“장난인지 아닌지는 두고 보면 알 테니까 도망가려면 지금 도망가는 게 좋아. 더 험한 꼴 보기 싫으면.”
경찰을 불렀음에도 강하윤은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강하윤이 부른 사내들도 코웃음을 쳤다. 더 이상 물리적인 도발은 하지 않았지만 경찰이 오거나 말거나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은지 씨. 아무래도 경찰하고도 무슨 얘기가 된 것 같은데요.”
오상진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경찰이 오더라도 박은지의 계획대로 일이 해결되지는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박은지는 자신만만했다.
“네, 알고 있어요. 그래서 경찰을 부른 거고요. 걱정 마요, 제가 알아서 할 테니까요.”
잠시 후
“신고받고 왔습니다. 경장 최무근입니다. 무슨 일입니까?”
경찰 두 명이 나타났다.
그러자 강하윤이 실실 웃으며 나타났다.
“아이고, 최 경장님 오셨습니까. 다름이 아니라 이 아가씨가 자꾸 영업 방해를 하면서 시비를 걸어서요. 그것 때문에 저희도 죽겠습니다.”
경찰에 신고를 한 건 박은지였다. 그런데 최무근 경장과 동료 경찰은 오히려 안면이 있는 강하윤의 한탄을 들어주었다.
“딱 봐도 젊은 분들 같은데 좀 이해하지 그랬어요.”
“저희야 이해해 드렸죠. 그런데 저 난리를 치니 어휴. 진짜 먹고 살기 너무 힘듭니다.”
최무근 경장이 이해를 하는 듯 고개를 끄덕인 후 박은지에게 갔다.
“아가씨, 여기서 이러지 마시고 서에 가서 얘기를 하시죠.”
“최 경장님이라고 하셨죠? 신고한 건 전데 그런데 왜 저쪽 말을 들어요.”
“아, 그러셨습니까? 그럼 무슨 일로…….”
최무근 경장이 당황했다. 강하윤의 말을 듣다가 정작 신고자가 누구인지 확인하지 못한 것이다.
“제가 이 차를 샀는데 여기 있는 제 남자 친구가 차를 확인했더니 침수 차인 거예요. 그래서 어떻게 된 일이냐고 따졌더니 다짜고짜 나가라고 하잖아요.”
“아니, 아가씨! 우리가 언제 나가라고 했어요? 문제가 있는 차니까 안 팔겠다고 했죠.”
“딜러님이 언제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당장 꺼지라면서요?”
“와, 이 아가씨 생사람 잡는 거 보소? 최 경장님. 저것 좀 보시라니까요.”
박은지와 강하윤이 서로 말다툼을 벌이는 사이 최무근 경장은 문제의 차를 대충 훑어봤다.
깨끗이 세차한 차의 외관은 아무 문제가 없었다.
“제가 보기에 별 이상이 없어 보이는데요.”
최무근 경장이 박은지를 바라봤다. 그러자 그 너머에 서 있던 강하윤이 냉큼 눈짓을 했다.
뭔가 문제가 있다는 의미.
‘아무튼 이 새끼들. 조심 좀 하라니까.’
최무근 경장은 애써 헛기침을 했다. 그리고 조금 더 사무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말이 잘못 나왔네요. 문제가 있는 차인 걸 알았으니까 거래를 하지 않으시면 되는 일 아닙니까?”
“무슨 소리예요. 저한테 이 차를 팔았는데.”
“이걸 팔았다고요?”
최무근 경장이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강하윤이 재빨리 다가왔다.
“아니, 나중에 문제 있는 차량인 것을 확인하고 안 팔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자꾸 저러니까.”
최무근 경장이 다시 고개를 돌려 박은지를 보았다.
“그렇다는데요.”
“계약서에 사인까지 다 했고, 돈도 입금까지 다 했는데요. 그리고 제가 몇 번이나 문제 있는 차량인지 물어봤고요. 그때마다 아무 문제 없다고 저 딜러님이 호언장담하셨어요. 그러면서 나중에라도 문제 있는 차량이라는 게 밝혀지면 위약금으로 두 배를 물어 준다고까지 하셨고요.”
박은지가 또박또박 대답했다. 그러자 최무근 경장의 표정이 난감하게 변했다.
“돈을 입금했다는 게 사실입니까?”
“그게 저 아가씨가 일방적으로 입금한 거예요. 정말입니다. 계약 직전에 저기 옆에 있는 남자 친구란 사람이 찾아와서 차를 보여달라고 해서 저는 당연히 차를 검수한 이후에 계약을 진행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저 아가씨가 멋대로 통장에 입금해 버린 걸 저더러 어쩌라는 겁니까?”
강하윤의 입장에서는 억울할 만했다. 만에 하나 계약서대로 계약을 해지한다면 생돈 700만 원을 내줘야 했기 때문이다.
강하윤에게 꾸준히 술대접을 받고 있는 최무근 경장도 위약금까지 지불하는 건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가씨. 기분 나쁘신 거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딜러도 사람인데 어떻게 모든 차를 완벽하게 알 수 있겠습니까? 자신도 모르게 문제가 있는 차를 아가씨에게 팔려고 했던 모양인데 좋은 게 좋은 거니까 이쯤에서 계약 해지하는 거로 넘어가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최무근 경장이 좋은 말로 박은지를 달랬다. 하지만 박은지가 사건의 전후도 모르고 무작정 강하윤의 편을 드는 최무근 경장의 말을 들어줄 이유가 없었다.
“제가 왜 그렇게 해야 하는데요? 계약서 썼으니까 계약 해지하고 싶으면 위약금을 주세요.”
“아가씨가 좀 이해해 줘요. 여기 차가 얼마나 많은데 이걸 다 일일이 체크하겠습니까. 깜빡하고 놓칠 수도 있죠.”
“처음부터 그렇게 말했다면 제가 이러지는 않죠. 분명 차 안에서 먼지가 발견됐을 때도 아무 문제 없다고 했고요. 만약에 차에 문제가 있다면 손에 장까지 지지겠다고 했어요.”
“내가 언제? 내가 언제 그랬어요?”
강하윤은 펄쩍 뛰었다. 그냥 영업용으로 내뱉은 말까지 전부 꼬투리 잡고 넘어간다면 드림랜드에서 딜러 할 사람은 없을 터였다.
“아까 저한테 똑똑히 말씀하셨잖아요.”
“증거 있어요? 내가 그랬다는 증거 있냐고요.”
강하윤이 단호하게 오리발을 내밀었다. 그 순간, 박은지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만약에 증거가 있으면 어쩔 거예요?”
“증거? 무슨 증거? 몰래 내가 하는 말 녹음이라도 하셨어요?”
“네. 녹음도 했고 촬영도 했어요.”
“네에?”
순간 강하윤의 눈이 커졌다. 그저 빈정대려던 거였는데 박은지가 정말 녹취를 했을 줄은 생각지도 못한 모양이었다.
거기다 더 큰 문제는 촬영이었다.
“바, 방금 뭘 했다고요?”
“찍었다고요. 처음부터 끝까지. 제가 딜러님 만나서 지금까지 모든 걸요.”
“뭐야? 당신 뭐냐고!”
강하윤이 버럭 고함을 질렀다. 만약 최무근 경장만 없었다면 당장에라도 달려들 기세였다.
그러자 박은지가 짓궂게 입을 열었다.
“참, 제가 말하지 않았나요? 저 신문사에서 일하는데.”
“시, 신문사요?”
강하윤이 입을 쩍 벌렸다.
옆에 있던 최무근 경장도 당황을 금치 못했다.
“참, 최무근 경장님. 그런데 자초지종도 제대로 들어보지 않으시고 이런 식으로 저 사람들 편만 들어줘도 되는 거예요?”
“제, 제가 또 언제 그랬습니까? 그리고 기자님이라고 하셨죠? 죄송한데 제 이름은 좀…….”
“왜요? 최 무 근 경장님. 혹시 제가 경장님 성함을 잘못 알고 있는 건가요?”
“아닙니다. 그 이름이 맞습니다.”
“조금 전에 보니까, 딜러하고 꽤 친해 보이시던데요.”
“친하긴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아가씨께서 잘못 보신 겁니다.”
“아까 강하윤 딜러가 최무근 경장님 보고 바로 알아봤잖아요?”
“그냥 오다가다 몇 번 얼굴만 본 사이입니다. 정말입니다. 오히려 이런 일로 하도 민원이 들어와서 골치 아파 죽을 지경입니다.”
최무근 경장이 선을 긋자 강하윤이 화들짝 놀라며 다른 경찰을 붙잡고 말했다.
“기, 김 순경님.”
“거 참, 왜 팔을 잡고 그래요? 그리고 당신 나 알아요? 어디서 친한 척이야. 사람들 오해하게 말이야.”
김 순경이 강하윤의 손을 탁 쳤다. 그사이 최무근 경장이 웃으며 박은지에게 물었다.
“죄송하지만 다시 한번 천천히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최무근 경장이 수첩을 꺼내며 진정성을 보였다. 이제 와 그러는 게 우스웠지만 박은지도 더 이상 일을 키우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기사가 올라가면 시말서 좀 쓰셔야 할 테니까.’
박은지는 먼저 이 차량이 침수 차량이라는 사실을 말했다. 그러면서 문제의 시거 잭을 달라고 강하윤에게 요구했다.
“여, 여기 있습니다.”
어느새 청소를 했는지 시거 잭은 깔끔했다.
하지만 시거 잭이 꽂힌 구멍 안쪽에 묻은 흙까지는 미처 처리할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