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생 리셋 오 소위-109화 (109/1,018)

인생 리셋 오 소위! 109화

14장 뜻대로 된다면 그게 인생이겠는가(7)

“아. 그게…….”

오상진이 말을 얼버무리자, 박은지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또 대출 때문에 온 거예요?”

박은지는 오상진이 아파트를 샀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아파트 매매 대출 건 때문에 한국은행에 왔다는 것으로 지레짐작했다.

“네, 그 건도 있고 다른 상품이 있다고 해서 겸사겸사 왔습니다.”

“의외네요.”

“네?”

“솔직히 남자들 은행 다니는 거 귀찮아하잖아요.”

“하하. 저도 딱히 좋아서 다니는 건 아닙니다.”

“그보다 정말 시간 괜찮으세요? 바쁘신데 제가 시간 뺏는 거 아니죠?”

“물론이죠. 저 오늘 시간 괜찮아요.”

“다행이다.”

박은지가 환하게 웃었다. 갑작스럽게 선배 기자가 줄행랑을 놓을 때까지만 해도 어떻게 해야 하나 싶었는데 오상진이 있어서 안심이 되었다.

“그런데 우리 지금 어디 가는 겁니까?”

“아, 인천요.”

“인천?”

오상진이 고개를 갸웃했다.

“네. 인천 드림랜드라고 아세요?”

“어? 거기 들어본 것 같은데.”

“제가 말한 중고차 파는 곳이에요.”

“그런데 거기 엄청 큰 곳 아닙니까? 광고로 본 것 같은데.”

“네. 엄청 크죠. 아마 대한민국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들걸요?”

“그런 곳에도 허위 매물이라는 게 있습니까?”

“상진 씨가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되죠? 대한민국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갈 만큼 큰 곳이니까 차가 엄청 많을 텐데 허위 매물이 왜 필요하나 싶고요.”

“솔직히 그렇습니다.”

“그런데 상진 씨. 중고차 살 때 꼼꼼하게 알아보는 사람이 얼마나 될 것 같아요?”

좌회전 신호를 받고 핸들을 돌리며 박은지가 물었다. 오상진은 그 질문에 잠깐 생각을 하다가 대답했다.

“차가 한두 푼 하는 것도 아닌데 꼼꼼하게 알아보지 않을까요?”

“저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의외로 대충 보는 사람들이 많더라고요. 중고차일수록 꼼꼼히 따져야 하는데 그래 봐야 중고차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고요.”

“그런 맹점을 노려서 인천 드림랜드 같은 곳에서 허위 매물을 미끼로 쓴다는 말이군요?”

“네. 요즘은 다들 인터넷으로 매물을 찾잖아요. 그런데 싸고 좋은 차가 있어 봐요. 얼마나 기분이 좋겠어요?”

“하지만 허위 매물 차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차량 아닙니까.”

“제가 아는 지인도 그걸 모르고 사기를 당했어요.”

“사기요?”

“허위 매물 보고 갔다가 딜러가 사고 차량이 아니라고 해서 원치 않은 차를 구매했는데, 알고 보니 침수 차량이더라고요.”

“어? 침수 차량을 팔 수도 있습니까?”

“팔면 안 되죠. 그런데 딜러가 아무렇지 않게 팔았더라고요.”

“와, 무슨. 그런 인간들이 다 있습니까?”

“그러니 제가 화가 나겠어요, 안 나겠어요? 그래서 한가한 선배 끌고 현장 취재 가려는데 선배가 인천 드림랜드라니까 발을 빼는 거예요. 인천 드림랜드에 조폭이 끼어 있다나 어떻다나 하면서요.”

박은지가 보란 듯이 혀를 찼다. 아무리 조폭이 무서워도 그렇지 기자 정신을 망각할 수 있느냐며 한동안 선배 기자를 비난했다.

하지만 오상진은 선배 기자의 심정도 충분히 이해가 갔다. 기자로서 사명을 다 하는 것도 좋지만 제 안위를 먼저 신경 쓰는 것 또한 인간의 본성이었다.

“그 지인분 이야기 좀 자세히 해주세요.”

오상진이 슬쩍 화제를 돌렸다. 박은지도 선배 흉을 보기 지쳤던지 냉큼 말을 받았다.

“지인이 면허를 딴 지 얼마 안 됐거든요. 새 차를 사고 싶다고 하기에 제가 말렸죠. 벌써부터 새 차는 위험하다고. 그래서 중고차를 알아보게 됐는데 마음이 콩밭에 가 있으니 얼마나 잘 알아봤겠어요?”

“어떤 심정일지 이해가 갑니다.”

“그러다 중고차 매매 사이트에서 엄청 좋은 차가 싸게 올라왔다고 호들갑을 떠는 거예요. 저는 그 말만 듣고 감이 와서 그런 건 다 허위 매물이니까 속지 말라고 말해줬거든요. 그런데 업체하고 전화 통화를 하고는 저쪽에서 하는 말에 혹해서 일을 벌인 거예요.”

“하기야 중고차 딜러들이 워낙에 달변이니까요.”

오상진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과거에도 중고차 딜러를 하다 왔다는 병사와 면담을 한 적이 있는데 어찌나 말을 잘하는지 하마터면 영업을 당할 뻔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박은지는 지인이 속았다는 사실에 초점을 맞췄다.

“아무튼 저한테 말도 안 하고 드림랜드로 갔는데 허위 매물인데 있을 리가 없잖아요. 그 차를 보여 달라니까 갑자기 말을 바꾸더래요. 워낙에 귀한 매물이라 경쟁자가 많았는데 조금 전에 먼저 도착한 사람이 그 차를 사 갔다고. 그러면서 실망한 지인을 끌고 정신없이 차를 보여주기 시작하는데…….”

“아이구야.”

“그렇게 두 시간 넘게 뺑뺑이를 돌리니 제정신이겠어요? 지인이 다음에 오겠다니까 갑자기 험악한 사람들이 나타나서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차를 안 사면 큰일이 날 것 같았데요. 그래서 수중에 돈이 없다고 하니까 가격을 맞춰주겠다고 하고는 침수 차를 팔아먹은 거죠.”

“침수 차인 줄 몰랐답니까?”

“솔직히 그 분위기에서는 알아도 못 산다고 말을 못 했을 것 같아요.”

“정말 나쁜 놈들이네요.”

“그렇죠? 진짜 그런 거로 사기 치는 놈들은 그냥 깡그리 감방에 처넣어야 해요.”

박은지가 씩씩거리며 소리쳤다. 오상진이 그 모습을 보며 피식 웃었다.

“그럼 전 뭘 하면 되죠?”

“아, 상진 씨는 어떻게 하면 되냐면요.”

박은지가 휴대폰을 꺼냈다.

“제가 통화버튼을 누른 상태로 딜러를 만날 거예요. 밖에서 듣다가 혹시라도 제가 위험하다 싶으면 경찰에 신고해 주세요.”

“그건 너무 위험하지 않을까요? 그냥 저하고 함께 움직이시죠.”

“그건 안 돼요. 그렇지 않아도 선배 기자가 이미 한 번 취재를 시도해 봤는데, 남자면 차가 없다고 그냥 돌려보내고 만만한 여자에게만 사기를 치더라고요.”

“그래서 은지 씨가 직접 나선 거군요.”

“지난번에도 말했지만 제가 또 연극 동아리 출신 아니겠어요? 모처럼 장기를 발휘해야죠.”

박은지는 그렇게 말하며 한쪽 눈을 찡긋했다. 그러고 보니 박은지의 옷차림이 평소와 조금 달랐다.

평상시에는 취재하기 편한 복장이었다면 오늘은 뭐랄까.

차 살 생각에 들뜬 여대생을 보는 것 같았다.

“컨셉은 여대생인가요?”

“올~ 센스 뭐죠? 선배들은 히스테리 노처녀 과장이라고 하던데.”

“은지 씨가 어딜 봐서요.”

“그렇죠? 진짜 작심하고 하이힐까지 챙겼는데 상진 씨도 절 그렇게 봤으면 엄청 실망했을 거예요.”

“지금 하이힐 신고 계신 겁니까?”

“아뇨. 하이힐은 저기 뒤에 놔뒀죠. 제가 운전 경력이 몇 년인데요?”

오상진이 고개를 돌려 뒤를 봤다. 붉은색 하이힐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이 옷차림에 하이힐까지 신으면 먹음직스러운 먹잇감처럼 보이겠죠?”

박은지는 뭐가 그리도 기분이 좋은지 싱글거리며 말했다. 오상진이 고개를 끄덕인 후 입을 열었다.

“그럼 제가 멋지게 등장해서 은지 씨를 구해 드리면 되는 겁니까?”

“아뇨. 그런 역할은 아니니까 김칫국 드시지 마세요.”

“왜 이러십니까. 저 싸움 잘합니다.”

“하지만 군인이잖아요. 군인이 밖에서 민간인하고 싸우면 되겠어요, 안 되겠어요?”

“하하. 또 이야기가 그렇게 되나요?”

“그냥 따지는 거였으면 바로 경찰 대동하지 제가 왜 상진 씨에게 도움을 청했겠어요?”

“중요한 건 취재라는 말이군요.”

“네. 그러니까 상진 씨는 차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제가 부탁할 때 도와주세요.”

“알겠습니다.”

“그건 그렇고 상진 씨, 차에 대해서 잘 알아요?”

“대충은요.”

“만약에 사무실에서 계약서를 쓰는 상황까지 가게 된다면 오셔서 훼방을 놔주세요.”

“아, 일을 키워달라?”

“딩동댕!”

“그거야 어렵지는 않은데 취재에 방해가 되지 않을까요?”

“그건 다 생각이 있죠.”

박은지와 오상진은 약 1시간을 달려 인천 드림랜드 근처에 도착했다.

주차장에 차를 주차한 뒤 박은지가 핸드백과 뿔테안경을 착용하고 거울을 봤다.

“어때요? 완벽한 여대생 같지 않아요?”

“아, 네에. 그러네요. 하하하.”

오상진이 어색하게 웃었다. 박은지의 말대로 계속 보니 졸업을 앞둔 여대생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자, 그럼 이제 출동해 볼까요? 상진 씨는 여기에 계세요. 지루하다고 밖에 돌아다니면 안 돼요. 알았죠?”

“네. 차에 꼼짝 않고 있을 테니까 조심하세요.”

“헤헤. 그럼 이따 봐요~”

박은지가 웃으며 대답했다. 그리고 인천 드림랜드를 향해 걸어갔다.

차 안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며 오상진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아무튼 참 대단하다니까.”

8.

단지 안으로 들어간 박은지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누군가를 찾았다.

그때 어떤 사내가 터벅터벅 걸어왔다.

박은지는 다가오는 사람이 자신이 만날 사람이라는 것을 대번에 눈치를 챘다.

그녀는 어깨에 건 핸드백을 돌려 자연스럽게 사내 쪽으로 향하게 만들었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저 여기서 딜러분 만나기로 했는데요.”

“아, 아까 저한테 전화 주신 분 맞으시죠? 인터넷에서 매물 보셨다던.”

“아, 네! 맞아요.”

“왠지 그럴 것 같아서 여쭤 봤습니다. 반갑습니다. 저는 드림랜드 딜러 강하윤입니다.”

강하윤이 명함을 건네며 위아래로 박은지를 훑어봤다.

겉보기에 나이는 스물다섯 정도.

여대생처럼 꾸며 입긴 했지만 어쩌면 화류계에 종사하는 여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내 촉은 정확하다니까.’

처음 박은지와 통화를 할 때부터 강하윤은 감이 왔다.

차에 대해서 아는 건 거의 없으면서 어디서 주워들은 연식과 옵션만 꼬치꼬치 물어대는 게 딱 봐도 호구였으니까.

그리고 직접 본 박은지는 기대 이상으로 훌륭했다.

“그런데 면허는 있으세요?”

“그, 그럼요! 당연히 있죠.”

“이상하네. 고등학생은 면허 못 딸 텐데?”

“네?”

“하하. 농담입니다. 너무 어려 보여서 고등학생인 줄 알았습니다.”

“에이, 농담도. 사실 가끔 고딩들이 연락처 물어보고 그래요.”

“하하. 그런가요?”

적당히 작업 멘트를 던지자 호구 고객이 애처럼 좋아했다.

‘밑 작업은 이 정도면 충분하고.’

강하윤은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물었다.

“참, 아까 어떤 차 본다고 하셨죠?”

“아븐테요. 차 번호가 28차에 5578이던가?”

“아아, 그 차요. 그 차가 지금 있던가?”

“네? 아까 분명 있다고 하셨는데?”

“아까야 당연히 있었죠. 그런데 통화한 지 2시간이 지났잖아요. 아시겠지만 좋은 차는 경쟁이 심한 편입니다.”

“설마 팔린 건 아니죠?”

박은지가 걱정 어린 표정을 지었다.

“일단 차량 조회를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일단 사무실로 가시죠.”

“네.”

박은지가 고개를 끄덕인 후 강하윤의 뒤를 따라 사무실로 향했다. 그러는 동안 박은지는 오상진에게 전화를 건 뒤에 통화가 연결된 채로 핸드폰을 주머니 안에 넣었다.

“커피 드릴까요?”

“커피 말고 다른 거 없어요?”

“주스가 있는데…… 이런, 다 떨어졌네요.”

“그럼 커피 주세요.”

“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강하윤은 직접 믹스 커피를 타서 박은지에게 건넸다.

“감사합니다.”

“네. 아까 차 번호가 뭐라고 그랬죠?”

“28차에 5578번요.”

“아, 맞다. 그거지. 잠시만요.”

강하윤이 덩치 좋은 직원 하나를 불러 물었다.

“이 차 좀 조회해 줄래?”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