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108화
14장 뜻대로 된다면 그게 인생이겠는가(6)
첫 번째 당첨 때와 두 번째 당첨 모두 오상진의 이름은 익명으로 처리됐다. 언제 정확하게 수령을 했는지조차 제대로 밝히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오상진이 문제의 9회차까지 당첨됐다는 사실이 알려진다면? 은행으로서도 여러모로 곤란해질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그럼 고객님. 로또 용지 좀 보여주시겠습니까.”
“아, 네.”
오상진은 지갑에서 로또 용지를 꺼내 내밀었다. 팀장은 아주 조심스럽게 용지를 받아 들고 확인을 했다. 잠시 후 팀장은 고개를 끄덕인 후 말했다.
“네, 확인되었습니다. 다시 한번 1등에 당첨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팀장은 딱히 놀라지 않았다. 사실 오상진이 9회차 당첨자일지도 모른다고 지점장에게 말한 게 바로 팀장이었기 때문이다.
“지금에 와서 말씀드리는 거지만 정말 운이 대단하십니다. 어떻게 1등만 3번이나 당첨이 되십니까?”
“그러게 말입니다. 제가 조상님 덕을 보나 봅니다.”
“이런 말씀 실례일 수도 있지만 고객님 조상님께서 진짜 나라라도 구하신 듯합니다.”
“하하하, 네, 뭐……. 그럼 당첨금은 바로 처리해 주시는 겁니까?”
“아, 네에. 걱정 마십시오. 신분 확인되었고, 곧바로 입금처리 될 것입니다. 기존에 입금해 드린 통장에 다시 입금해 드리면 되는 거죠?”
“네.”
“말씀 들으셨겠지만 세금 공제하고 고객님께서 수령하실 금액이 이 정도 됩니다.”
팀장이 노트북 화면을 돌려서 보여주었다.
화면에는 3으로 시작하는 11자리 숫자가 길게 나열되어 있었다.
“네, 확인했습니다.”
오상진의 입가를 타고 웃음이 번졌다. 앞서 수십억의 당첨금도 타 봤지만 단위가 다르니 기분도 달라졌다.
팀장은 노트북으로 몇 번 타자를 두드린 후 말했다.
“고객님. 지금 바로 입금해 드렸습니다.”
“와, 오늘은 빨리 되네요.”
“후후, 오신다고 해서 미리 다 준비를 해뒀습니다.”
팀장은 정리한 후 조심스럽게 물었다.
“참, 그런데 지금도 계속 군에 다니십니까?”
“그럼요. 아직 소위입니다. 제대하려면 몇 년 더 남았죠.”
“혹시 육사 나오셨습니까?”
“네.”
“어쩐지. 그러실 것 같았습니다. 그럼 의무 복무 기간을 채우셔야겠네요.”
“복무 기간이 끝나도 계속 군 생활을 할 생각입니다.”
“군대가 체질에 맞으시나 봅니다.”
“솔직히 애국심보다는 집안 형편이 어려워서 육사에 지원했거든요. 그러니까 조금이라도 나라에 보탬이 되어 보고자 합니다.”
오상진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나라의 동냥이 되자는 건 육사 출신 동기들끼리 자주 하던 말이었다.
하지만 그 말도 통장에 300억을 넘게 가지고 있는 오상진이 하니까 달리 들렸다.
“고객님은 참 대단하신 것 같습니다.”
“제가 말입니까? 하하. 그냥 별 볼 일 없는 소위입니다.”
“그냥 소위가 아니시죠. 솔직히 20대 중반의 군인 중에 이 정도 재산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흔하겠습니까? 물론 복권을 불로소득이라고 한다지만 저는 복권도 당첨될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 당첨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팀장의 금칠에 오상진은 그저 말없이 미소만 지었다.
“그런데 고객님. 뭐 하나 여쭤봐도 될까요?”
“네. 말씀하십시오.”
“제가 로또 당첨된 분들 여럿 봤지만 고객님 같은 군인은 처음이라서요. 돈 많은 군인은 어떤 느낌입니까?”
“말 그대로 돈 많은 군인일 뿐입니다. 사실 제가 로또에 당첨된 걸 아는 사람이 없어서요. 그냥 평소처럼 지내고 있습니다.”
“그러기가 쉽지 않을 텐데 대단하시네요. 사실 제가 아는 지인도 군인인데 맨날 위에서 깨진다고, 매일같이 옷 벗고 싶다고 난리도 아니거든요.”
“그렇습니까?”
“그래서 제가 말만 하지 말고 적성에 맞지 않는 거 같으면 하루라도 빨리 그만두라고 충고를 했더니 버럭 화를 내는 겁니다. 군인 연금 탈 때까진 못 나간다면서요. 하하하. 그런 점에서 우리 고객님은 그런 걱정은 전혀 없으시겠습니다.”
“하하하…….”
오상진은 그냥 웃고 말았다. 누군가는 돈이 많으니 군대에 얽매여 있을 이유가 무엇이냐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과거로 회귀한 오상진에게 군대는 제대로 된 삶을 살아야 하는 또 다른 이유나 다름없었다.
“참, 지점장님이 말씀드렸던 신용카드는 지금 승인이 떨어져 일주일 안에 나올 것 같습니다.”
“그럼 지금 가지고 있는 카드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냥 가지고 계셔도 상관없습니다. 연회비가 포인트에서 차감될 거라 부담도 없으실 테고요. 하지만 카드 여러 장 가지고 계시는 게 불편하시다면 새 카드를 받으신 다음에 가위로 자르시고 저에게 전화로 말씀만 해주십시오. 제가 바로 정지 처리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고객님.”
“네.”
“혹시 당첨금으로 무엇을 하실지 실례가 안 된다면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팀장이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표정을 보아하니 따로 부탁이라도 있는 모양이었다.
“그건 아직 생각 안 해봤습니다.”
“그럼 저희 은행에 이번에 새롭게 출시된 상품을 이용하시는 건 어떨까요? 절대 부담 드리려고 꺼낸 말은 아닙니다만 워낙에 좋은 상품이라서요. 그래서 괜찮으시면 이것 좀 설명해 드릴까 하는데…… 혹시 불쾌하실까요?”
팀장이 오상진의 눈치를 봤다. 오상진이 씨익 웃으며 속으로 생각했다.
‘돈 많은 졸부 대접도 나쁘진 않네. 그건 그렇고 은행에서 내 편의를 봐줬는데 그냥 가는 건 예의가 아니겠지.’
오상진이 생각을 정리하고 입을 열었다.
“정말 괜찮은 상품이라면 두 개만 추천해 주십시오. 그럼 제가 확인 후 생각해 보겠습니다.”
“역시 고객님은 정말 좋으신 분입니다.”
“아닙니다.”
“그리고 여기. 혹시 몰라서 제가 미리 준비를 해 뒀습니다.”
팀장이 미소를 지으며 2종류의 펀드 서류를 내밀었다.
“바로 펀드에 가입하실 필요는 없으니까 일단 내용 한번 읽어보시고 연락 주십시오. 그럼 제가 지난번처럼 도와드리겠습니다.”
오상진이 서류를 받고 펀드 내용을 확인했다.
“이 펀드는 뭐죠?”
“아, 이 펀드는 요새 한창 떠오르는 상품인데 브릭스 펀드라고 해서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의 주식이나 채권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펀드입니다. 이 네 나라가 신흥경제대국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거대한 영토와 많은 인구, 풍부한 지하자원 등으로, 경제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는 요인을 모두 갖추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 나라에 대한 채권에 투자를 해서 수익을 창출하는 방식입니다. 한마디로 이 나라의 미래에 투자를 하는 것이죠.”
“아, 네에.”
팀장은 두 번째 펀드를 가리켰다.
“아. 이것은 CMA(Cash Management Account)통장입니다.”
“CMA통장?”
“네. 입출금 계좌의 편리성의 장점과 종금사의 실적배당형 상품의 수익성이라는 장점을 결합하여 만든 자산관리 계좌입니다.”
팀장은 CMA통장에 관한 것을 쭉 설명했다. 오상진은 서류와 팀장의 설명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 외 재테크에 대한 설명을 해주었다.
“무엇보다 요즘은 1%대의 초저금리 시대가 아닙니까. 이럴 때일수록 재테크를 잘 활용하셔야 합니다. 그래서 간단한 팁을 알려드리면 우선 다양한 금융상품에 최적의 분산투자를 하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쉽게 설명하자면 안정성이 높은 예/적금이나 채권, 수익성이 높은 주식이나 펀드, 연금저축과 같은 장기상품 가운데 비과세, 복리, 소득공제 등의 혜택이 있는 상품 등을 말씀드리는 겁니다. 여기서 고객님의 상황에 알맞게 포트폴리오만 잘 구성한다면 아주 좋은 재테크를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팀장이 환한 미소로 차분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오상진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고민을 했다.
‘그래. 한두 푼도 아니고 통장에 무작정 묻어두는 것보다는 일부라도 굴리는 게 낫겠지.’
그때 오상진의 휴대폰이 ‘지잉’ 하고 울렸다.
“아, 죄송합니다. 전화 좀 받겠습니다.”
“네. 고객님. 편안하게 받으십시오.”
부대에서 온 전화일까 싶었지만 발신자는 박은지였다.
“네. 은지 씨!”
-오랜만이에요. 상진 씨. 잘 지냈어요?
“네. 저야 뭐 똑같죠. 은지 씨는 어떻게 지냈습니까?”
-저도 만날 특종 잡으러 뛰어다니느라 정신이 없어요. 지금도 마찬가지고요.
“후후, 고생이 많으십니다. 그보다 무슨 일 있으십니까?”
-그런데 상진 씨. 지금 어디예요? 부대는 아닌 거 같은데?
“잠깐 밖에 나왔는데, 어떻게 아셨습니까?
-후후, 잘 아시면서…….
“아, 네에.”
오상진은 쓰게 웃었다. 보나 마나 김선아를 통해 자신이 외출했다는 사실을 전해 들은 모양이었다.
박은지와 자신이 잘 되길 바라는 김선아 입장은 충분히 이해가 가지만 오상진은 마치 박은지에게 감시를 받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살짝 불쾌한 마음도 들었다.
하지만 그 불쾌함이 박은지에 대한 인간적인 호감보다 크진 않았다.
“그래서 용건이 뭡니까?”
-시간 되면 저 좀 도와주시면 안 될까요?
“시간이야 상관없는데 제가 뭘 도와드리면 됩니까?”
-요새 중고차 허위 매물 많은 거 아시죠?
“네. 뉴스에서 봤습니다.”
-지금 허위 매물 파는 딜러 취재하려고 하거든요. 그런데 같이 가기로 한 기자가 펑크를 내는 바람에 저 혼자 움직이게 됐어요.
박은지가 말을 살짝 얼버무렸다. 오상진은 무슨 상황인지 바로 이해를 했다.
“그래서 제 도움이 필요하시다 이 말이로군요.”
-네. 도와주실래요?
“까짓것 도와드려야죠. 우리 사이에.”
-그럼요! 서로 상부상조해야죠.
“제가 어디로 가면 되겠습니까?”
-어휴. 오시긴요. 제가 부탁드리는 거니까 제가 움직여야죠. 제가 상진 씨 있는 곳으로 갈게요. 거기 어디예요?
“여기 한국은행 본점입니다.”
-어? 그럼 이 근처네요. 10분 정도 걸릴 것 같아요.
“알겠습니다.”
-그럼 이따가 봐요.
그렇게 전화를 끊고, 팀장을 바라봤다.
팀장이 웃으며 말했다.
“실례지만 여자 친구분입니까?”
“아닙니다. 그냥 지인입니다.”
“재복만 있으신 줄 알았는데 여복도 있으신 모양입니다.”
“하하. 그런 거 아닙니다. 그보다 이 상품들은 제가 좀 더 검토를 한 후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아이고, 그럼요. 천천히 읽어보시고 마음에 드시면 전화 한 통 주십시오. 오시기 번거로우시면 제가 서류 준비해서 제가 직접 찾아뵙겠습니다.”
“하하하, 굳이 그렇게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럼 약속이 생겨서 먼저 일어나 보겠습니다.”
“네, 제가 밑에까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팀장이 허리를 90도로 꺾으며 인사를 한 후 앞장서서 내려갔다. 그리고 1층 보안문에 카드를 대서 직접 문을 열어 주었다.
“감사합니다.”
“네, 고객님. 그럼 안녕히 가십시오. 무슨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 주시고요.”
“네.”
오상진은 주차장을 빙 돌아 도롯가로 나와서 기다렸다.
약 5분이 지난 후 익숙한 차량이 오상진 앞에 섰다.
차창이 열리며 박은지가 환한 얼굴로 말했다.
“상진 씨 타요.”
“아, 네에.”
오상진이 바로 조수석에 앉았다. 박은지는 오상진이 안전벨트를 착용하는 것을 보고 차량을 출발시켰다.
“그런데 한국은행에는 무슨 일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