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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리셋 오 소위-107화 (107/1,018)

인생 리셋 오 소위! 107화

14장 뜻대로 된다면 그게 인생이겠는가(5)

“체육대회?”

“어차피 체육대회 때 중대별로 겨룰 테니까요. 그때 우리 1중대가 잘해서 우승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체육대회 우승은 쉬운 줄 아냐? 자신은 있고?”

“저야 항상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지 않습니까.”

“그래. 자신감은 넘쳐서 좋다, 인마.”

“그러니까 이번 전술 훈련은 잊으십시오. 제가 최선을 다해서 1중대의 명예를 되찾아오겠습니다.”

상심한 김철환 1중대장에게 오상진이 해줄 수 있는 위로는 간단했다.

다음번에는 꼭 승리하겠다.

그 말이 먹혔는지 김철환 1중대장도 피식 웃고 말았다.

“쓸데없는 소리 말고 술이나 먹자! 오늘은 술이 댕긴다.”

김철환 1중대장이 잔을 들었다. 오상진이 미소를 띠며 물었다.

“그런데 중대장님. 형수님께는 허락을 받으셨습니까?”

“으응? 네 형수…….”

김철환 1중대장이 움찔했다. 표정을 보아하니 술 마시고 늦게 들어간다는 연락조차 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이럴 것 같아서 김철환 1중대장을 대신해 미리 김선아에게 전화를 넣었지만 그 사실을 알지 못하는 김철환 1중대장은 한참을 고심하더니 어울리지 않게 떼를 썼다.

“아아, 몰라! 오늘은 그냥 마실래.”

김철환 1중대장이 거칠게 소주잔을 비웠다. 오상진도 웃으며 소주를 들이켰다.

5.

다음날.

지이잉. 지이잉.

오상진에게 낯선 번호로 전화가 왔다.

“네, 여보세요.”

-혹시 오상진 고객님 되십니까?

“네. 맞습니다. 누구십니까?”

-안녕하십니까. 한국은행 지점장 안익태입니다. 잠시 통화 괜찮으십니까?

“한국은행이요?”

순간 오상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한국은행에서 전화가 왔다는 것도 당혹스러운데 지점장이라니. 꼭 장난 전화처럼 느껴졌다.

“무슨 일 때문에 전화 주셨습니까?”

오상진이 경계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그런 오상진의 속내를 눈치챈 듯 수화기 너머 목소리가 조금 더 나긋하게 변했다.

-제가 갑자기 전화 드려서 놀라셨죠? 죄송합니다. 사실 고객님께서 오시길 기대하고 있었는데 오시질 않아서요.

“네?”

-바쁘실 테니 거두절미하고 여쭙겠습니다. 혹시 지난 9회차 로또에 당첨되셨습니까?

“네?”

오상진은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 톤을 올려 대답했다. 설마하니 한국은행 지점장의 입에서 로또 이야기가 나올 줄은 예상하지 못한 것이다.

그러자 안익태 지점장이 곧바로 말을 이었다.

-혹시 불쾌하셨다면 죄송합니다. 실은 제가 9회 1등 당첨자가 나온 지역을 확인해 보니 고객님께서 구입하신 로또 판매점이 현재 살고 계시는 아파트 근처라고 나와서요. 고객님께서 이미 두 차례나 1등에 당첨이 되셨기 때문에 혹시 이번에도 당첨되신 게 아닐까 해서 이렇게 전화를 드렸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오상진은 애써 덤덤한 척 굴었다. 하지만 안익태 지점장은 오상진의 반응을 통해 오상진이 당첨자라는 사실을 확신했다.

-혹시라도 제가 잘못 짚은 거라면 진심으로 사과의 말씀 드립니다. 다만 만에 하나 고객님께서 또다시 1등에 당첨되신 거라면 편하게 당첨금을 수령하실 수 있도록 따로 도움을 드리고자 하는데 어떠십니까?

“따로 도움이요?”

-그전에 한 가지 먼저 대답을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게…….”

잠시 고심하던 오상진은 솔직하게 대답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렇지 않아도 조만간 로또 당첨금을 수령하기 위해 한국은행에 갈 생각이었다. 이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대충 둘러댔다가 그때 가서 당첨자였다고 이실직고하는 것도 우스울 것 같았다.

‘그렇지 않아도 기자들 눈을 어떻게 피할까 고민했었는데. 이렇듯 먼저 알아서 해준다고 하니…….’

오상진은 이내 입을 열었다.

“네, 맞습니다. 제가 9회 당첨자입니다.”

-역시 그럴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저인 줄 어떻게 아셨습니까? 아무리 제가 사는 집 근처에서 당첨자가 나왔다고 해도 말입니다.”

-원래 복권은 당첨된 사람이 다시 당첨될 확률이 높은 편입니다. 게다가 지역도 비슷하니 고객님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연락을 드린 겁니다. 혹시 불쾌하셨다면 죄송합니다.

“조금 당황스럽긴 했지만 괜찮습니다.”

-고객님을 당황하게 해드려 다시 한번 송구하다는 말씀드립니다. 다만 저희도 입장이 난처한지라 실례를 무릅쓰고 연락을 드렸다는 점은 이해해 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입장이 난처하다니 무슨 말씀이신지?”

-이번 9회차가 역대 최고 당첨금이라서요. 기자들이 당첨자 정보를 알려달라고 난리인데 고객님께서 오시질 않으니 직원들이 제대로 업무를 보지 못할 지경입니다. 차라리 고객님이 몰래 다녀가셨다면 그렇게라도 둘러대겠지만 당첨자는 나왔는데 실수령인이 없으니 의심 어린 눈초리로 보는 사람들도 많고요.

“아……. 제가 그것까진 생각을 못 했네요.”

-솔직히 직원들의 고충이야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겠는데 혹시 고객님이 주거래 은행을 옮기시는 건 아닐까 싶어서 걱정이 들었습니다. 9회차 당첨 금액이 워낙 어마어마해서요. 고객님이 다른 은행으로 가신다면 제 자리도 위태로울 지경입니다.

안익태 지점장이 농담 삼아 말하긴 했지만 한국은행에서 로또 지정 은행이 되기까지 공을 들인 게 상당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로또 당첨 금액이 어마어마한 만큼 그 금액을 한국은행에서 관리만 해도 이자 수익이 쏠쏠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정확히 당첨금이 얼마입니까?”

-아, 제가 가장 중요한 말씀을 안 드렸네요. 9회차 당첨 금액은 어디 보자…… 세금 떼고 300억 정도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놀라지 않으시는 걸 보니 예상을 하셨나 보네요.

“기사에서 비슷한 금액을 이야기해서요.”

-하하. 로또에 세 번이나 당첨되셔서인지 감흥이 덜 하신가 봅니다. 아무튼 당첨금을 수령하러 오시기 전에 미리 말씀해 주시면 제가 조용히 따로 자리를 마련해 드리겠습니다.

“아, 그렇게 해주시면 감사하죠.”

-대신에 고객님 당첨금은 저희 은행에…….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렇게 저의 편의를 봐주시는데 그 정도는 해드려야죠.”

-아, 감사합니다. 저도 눈치 보여 혼났는데 이제야 발 뻗고 자겠습니다. 하하하!

안익태 지점장이 기분 좋게 웃었다. 그런데 그 웃음소리가 긴 게 아직 할 말이 남은 모양이었다.

-그리고 고객님.

“네?”

-이런 말씀 염치없는 줄 알지만 신용카드를 새로 발급해 드려도 괜찮을까요?

“신용카드요? 잘 사용하지도 않는데…….”

-안 그래도 확인을 해보니까, 지난달 사용금액이 50만 원 미만이시더라고요.

“아, 제가 주로 체크카드를 사용합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알았다면 혜택이 좋은 카드를 발급해 드렸을 텐데 일선 직원들이 관성으로 일을 하느라 착오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닙니다. 제가 체크카드가 편해서 그렇습니다.”

육사에 진학한 이후로 나라사랑카드만 써오다 보니 신용카드보다는 체크카드를 쓰는 게 편했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알지 못하는 안익태 지점장은 기존에 발급된 카드에 문제가 있다고 여겼다.

-고객님. 이번에 카드를 최고 등급으로 업그레이드하시면 최고 50%까지 할인 혜택을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적립 금액도 기존 카드보다 5배나 높게 적용되고요. 그 외에도 고객 맞춤 서비스가 있으니 고객님이 필요하신 혜택은 전부 넣어드리겠습니다.

“제가 원하는 혜택을요?”

오상진은 귀가 솔깃해졌다. 사실 지난번에 발급한 신용카드는 팀장이 사정을 해서 받았던 터라 크게 정이 가지 않았는데, 안익태 지점장의 말처럼 혜택이 좋다면 체크카드만 고집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그럼 연회비는 얼마입니까?”

-연회비는 걱정하지 마십시오. 고객님께서 예금을 맡겨 주시는 것만으로도 연회비 면제 혜택을 받으실 수 있으니까요.

“그게 가능합니까?”

-네.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시고 이번 기회에 새로 발급을 받아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지점장님께서 알아서 해주십시오.”

-네, 고객님! 감사합니다. 그럼 언제쯤 지점에 방문하실 예정이십니까?

“일단 스케줄을 확인해 봐야 해서요. 제가 시간 확인 후 연락드리겠습니다.”

-네. 제가 연락 가능한 개인 번호 남겨놓을 테니 그 번호로 전화나 메시지 보내주시면 미리 준비해 놓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그렇게 오상진에게 한국은행에서 극소수에게만 주어진다는 블랙카드 사용자에 이름을 올리게 됐다.

6.

주말이 지난 화요일 오후.

오상진이 한국은행에 모습을 드러냈다.

“여기로 오라고 했지?”

한국은행 건물 주차장을 따라 들어가 보니 보안문이 하나 나왔다.

시간을 확인해 보니 오후 3시 50분.

약속했던 은행 폐점시간이 거의 다 되었다.

오상진은 휴대폰을 꺼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네, 팀장님. 저 왔습니다.”

-아, 네 고객님. 제가 금방 내려갈 테니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그리고 잠시 후 ‘딸깍’ 소리와 함께 보안문이 열리며 팀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서 오십시오. 고객님. 이렇게 또 뵐 줄은 몰랐습니다.”

“하하. 제가 너무 자주 오나요?”

“좋은 일로 오시는 건데요, 뭘. 참고로 지점장님께는 미리 이야기 들었습니다.”

“네.”

“일단 2층으로 올라가시죠. 제가 서류 준비해서 바로 올라가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지난번에 한 차례 방문해서일까.

오상진은 익숙하게 2층 VIP룸으로 향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여직원 하나가 놀란 얼굴로 오상진을 맞았다.

“고객님! 들어오시면 안 돼요.”

“네?”

“영업시간이 끝나서요. 죄송하지만 내일 다시 방문해 주시겠어요?”

“아, 그게…….”

오상진은 살짝 난감해하고 있는데 팀장이 나타나며 물었다.

“미진 씨. 왜? 무슨 일이야.”

“여기 고객님께서 영업이 끝났는데 올라오셔서…….”

“괜찮아. 우리 지점 VIP 고객님이셔.”

“그럼…….”

“고객님 업무는 내가 처리할 테니까 다들 조용히 내려가.”

팀장이 대수롭지 않은 얼굴로 말했다. 그러자 여직원이 오상진의 눈치를 보며 슬그머니 자리를 피했다.

“고객님. 이제 들어가시죠.”

“감사합니다.”

팀장과 오상진이 VIP룸으로 들어가고 잠시 후.

문을 나섰던 여직원이 잠시 멈춰 서서 고개를 돌렸다.

“어디서 봤는데. 누구였더라…….”

하지만 아무리 고민해 봐도 오상진을 본 기억이 나질 않았다.

“그런데 뭐 하는 사람일까? 재벌 2세 느낌은 아닌데.”

7.

VIP룸으로 들어간 오상진과 팀장은 서로를 마주 보며 앉았다.

“바쁘실 텐데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고생은요. 그런데 제가 너무 늦게 왔나 봅니다.”

“아닙니다. 은행 업무 시간이 끝났다고 해서 퇴근하는 건 아니니까요.”

“그런가요?”

“고객님께 괜히 4시에 맞춰서 와 달라고 부탁드린 게 아닙니다. 아마 직원 중에 고객님 얼굴을 알고 있는 사람이 있을 텐데 또 들어오셔서 저를 찾아보십시오. 그럼 분명 소문이 날 수밖에 없습니다.”

“하긴. 그건 또 그렇겠네요.”

오상진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한국은행에서 자신을 과하게 배려해 준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알고 보니 앞선 두 번의 당첨 때문인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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