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106화
14장 뜻대로 된다면 그게 인생이겠는가(4)
3중대 1소대가 돌아왔을 것으로 추정되는 루트는 오상진이 활용한 길보다 바깥쪽에 있었다.
수풀 길이 아니라 그 외곽을 빙 돌아 움직이는 경로로 쉬지 않고 움직인다 하더라도 12분 이상이 소요됐다.
“잠깐이라도 지체했다면 13분 안에 절대 못 들어왔을 거야. 처음부터 함정들을 배제하고 이 길을 고른 게 틀림없어. 그런데 그게 가능한가? 만에 하나 매복이 있었다면 분명 타격을 입었을 텐데?”
1층에 지나치게 많은 병력을 배치한 것도 납득이 가지 않았다.
수비팀이 지키는 3층 건물의 1층은 다수가 지키기에 여러모로 불리한 구조였다.
정문에 입구와 큰 창이 2개나 뚫려 있고 좌측과 우측에도 창이 위치해 있으며 후방에도 큼지막한 통로가 열려 있었다.
여길 제대로 막으려면 한 소대 이상을 투입해야 하는데 소대 단위 전투 특성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렇다면 차라리 1층을 버리고 수비하기에 용이한 2층이나 3층을 집중 수비하는 게 나았다.
“중대장님 말씀처럼 뭔가 있는 건가?”
그때 오상진 뒤로 누군가가 나타났다.
“저기, 1소대장님.”
“……?”
오상진이 움찔 놀라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2소대 부소대장이 서 있었다.
“김 하사가 무슨 일입니까?”
“그게…….”
뭔가 말을 하려던 김 하사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표정을 보아하니 2소대장을 찾는 눈치였다.
“2소대장이라면 저쪽에서 식사 중인데…… 나한테 할 말이라도 있습니까?”
“실은 말입니다.”
김 하사가 결심하듯 입을 열었다. 그리고 그의 이야기가 끝이 났을 때 오상진은 김철환 1중대장의 예상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됐다.
4.
점심 식사가 끝이 나고 오후 일과가 시작되었다.
공격조에 들어간 건 3소대.
3소대장이 4소대장과 공평하게 가위바위보를 해서 이긴 덕분에 공격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2소대의 실수를 만회해야 해.”
3소대장은 의욕적으로 움직였다. 3중대 1소대가 기록한 18분의 벽을 깨기 위해 무리하게 작전을 펼쳤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18분은커녕 오상진이 세운 20분의 벽조차 넘지 못했다. 게다가 사상자까지 다수 발생하면서 최종 시간은 30분을 훌쩍 넘기고 말았다.
“죄송합니다. 중대장님.”
“죄송은. 3소대도 고생 많았다.”
이어진 전투에서 4소대장은 적재적소에 매복병을 배치하며 3중대의 발목을 잡았다. 그리고 수비팀 중 처음으로 30분 수성을 해내는 데 성공했다.
A조 1중대 공격 승리(20분)
B조 3중대 공격 승리(18분)
C조 1중대 공격 승리(36분)
D조 1중대 수비 승리
결과만 놓고 보자면 3중대보다 1중대가 잘했다고 볼만했다.
C조의 결과는 시간 초과로 무효화 하더라도 D조 결과를 더하면 1중대가 우위에 서 있었다.
하지만 최종 승리의 영광은 3중대에게 돌아갔다.
소대 간 승패 결과를 떠나 가장 빨리 공격에 성공하는 팀에게 승리를 준다는 원칙 때문이었다.
그렇게 모든 훈련이 끝나고 금요일에 부대 작전과에서 기록을 정리했다.
“전체 1등은 3중대 2소대입니다. 기록은 18분. 사상자 없습니다.”
“으음, 그래?”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던지 곽부용 작전과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작전장교가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그런데 말입니다. 과장님.”
“왜?”
“뭔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뭐가?”
“3중대 2소대 기록 말입니다. 너무 빨리 점령한 것 같습니다.”
“뭐, 좀 빠르긴 했지만 그럴 수도 있지. 오상진이도 20분 만에 점령했잖아?”
“오 소위는 사실 논외로 하는 게 맞다고 봅니다. 매복도 뚫었고 건물 앞에서 잠시 발이 묶이기도 했으니까요. 분대장을 소대장으로 위장시키고 별동대를 활용해 후방을 공략한다는 작전도 사실 수비팀의 방어가 워낙 거세니까 나온 차선책이었지 않습니까.”
“하고 싶은 말이 뭐야?”
“사실 제가 3중대 1소대를 따라다닌 판정관에게 물어봤는데 말입니다. 1소대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움직였다고 합니다. 특별히 정찰을 하거나 경계도 하지 않고 마치 그곳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아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
“네. 원래 앞에 장애물이 있거나 엄폐물이 보이면 확인을 거치지 않습니까. 그런데 2소대는 그런 게 전혀 없었습니다.”
“뭐, 오상진 때문에 공격적으로 움직였나 보지.”
“정말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설마 내부 정보라도 전해 들었다는 거야?”
“저는 솔직히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흠…….”
곽부용 작전과장이 자신의 턱을 어루만졌다.
요즘 충성대대에서 제일 핫한 사람은 오상진이었다.
육사 출신에 임관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소위 녀석이 벌써 신문에 나고 윗선의 관심을 받고 있는 상황이었다.
부하 하나 잘 두면 진급하기 쉬워지는 군대 특성상 오상진을 싫어할 상관은 없었다. 특히나 진급 심사에서 물을 먹고 충성대대로 밀려난 한종태 대대장 입장에서는 미우나 고우나 오상진을 손에 쥐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오상진이 예쁜 짓을 하니 그 위에 있는 1중대장도 같이 예뻐할 수밖에 없는 노릇.
하지만 3사 출신인 3중대장은 대대장이 같은 육사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1중대장을 아낀다고 오해를 하고 있었다.
물론 대대장이 육사 출신들을 따로 챙기는 건 사실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선후배끼리 밀어주고 끌어주는 군대 문화의 일부로 봐야 했다.
실제로 실적이 부진한 다른 육사 출신 중대장들은 한종태 대대장의 따스한 눈길을 거의 받아보지 못했으니까.
오직 1중대 못지않은 활약을 펼치는 3중대만이 한종태 대대장의 사랑을 얻기 위해 안달이었고 모두가 보는 앞에서 우승하겠다고 선전포고까지 했는데, 오상진이 어마어마한 기록으로 공격을 성공시켰으니 1중대를 이기기 위해 비겁한 수를 썼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었다.
정황 증거는 충분했다.
3중대장도 3사단 출신. 수비를 맡은 1중대 2소대장도 3사단 출신.
그 둘이 자주 어울리는 건 부대 사람들이 다 알고 있었다.
곽부용 작전과장은 대충 어떤 그림인지 그려졌다. 하지만 또 그걸 가지고 딴지를 걸 수도 없었다.
“그래서, 그게 어떻다는 거지?”
“네?”
“전쟁 중에 적의 작전을 알아채고 그걸 역으로 이용한 걸 가지고 뭐라고 해야 할까?”
“그건 아닙니다만…….”
“그리고 말이야. 그 작전을 누설한 1중대가 멍청한 거 아니야?”
“그렇게 말씀하시니 맞는 것 같습니다. 그럼 1중대장에게는 넌지시 얘기를 해주는 게 낫지 않을까요?”
“됐어. 이건 3중대장이 머리를 잘 쓴 거야.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면 모르겠지만 우리가 나서서 분란을 만들지는 말자고.”
“네. 알겠습니다.”
작전 장교가 마지못해 물러났다. 이대로 이 일을 덮는 게 찜찜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곽부용 작전과장의 지시를 어길 수는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김철환 1중대장도 어렴풋이 내부 정보가 누설됐다는 사실을 짐작하고 있었다.
기록을 봐도 그렇고 판정관에게 들은 당시 정황도 그러했다.
“제기랄. 집안 단속 하나 못해서 이게 무슨 망신이야.”
속이 상한 김철환 1중대장은 홀로 삼겹살집에서 소주를 기울였다.
그때 오상진이 나타나며 말했다.
“중대장님. 벌써 시작하셨습니까?”
“왜 이렇게 늦었어?”
“옷 좀 갈아입고 오느라 늦었습니다.”
“깔끔 떨기는. 왔으면 빨리 앉아.”
“넵!”
오상진이 달려와 자리에 앉았다.
“중대장님. 천천히 드십시오. 그러다 속 망가집니다.”
“넌 속도 편하다. 지금 상황에서 그런 말이 나오냐.”
“그럼 어떻게 합니까. 전술 훈련은 끝났고 결과는 나왔으니 받아들여야죠.”
“넌 대대장님 얼굴 안 봐도 된다 이거지? 자식이 내 속도 모르고.”
“압니다. 제가 왜 모르겠습니까. 자, 자. 그만 푸시고 한 잔 받으십시오.”
오상진이 냉큼 소주병을 잡아 들고 김철환 1중대장의 잔을 채웠다.
“크으. 쓰다. 써.”
김철환 1중대장이 입안으로 소주를 단숨에 털어 넣었다.
오늘따라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는 소주가 무척이나 독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빈 소주병이 세 병째가 될 무렵.
“그래도 인마 이건 말이 안 돼! 어떻게 이런 기록이 나올 수가 있냐고!”
김철환 1중대장이 다시 흥분해 언성을 높이기 시작했다.
“중대장님. 옆에서 듣습니다.”
“뭐? 옆에서 들어? 어이쿠, 죄송합니다. 미안합니다.”
“그러지 마시고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시는 게…….”
“야, 오상진이! 너도 그러는 거 아니다. 네가 내 맘을 아냐? 아냐고오오.”
오상진은 홀로 끙끙 앓는 김철환 1중대장이 안쓰러웠다.
중대장으로서 모든 걸 끌어안은 것도 좋지만 저러다 정말로 병이라도 날까 걱정이었다.
오상진이 소주잔을 들어 입으로 가져갔다.
‘아무래도 말을 해야겠지?’
오상진은 김 하사와 나눴던 대화를 떠올렸다. 원래는 그냥 조용히 묻으려 했지만 김철환 1중대장을 보니 그래서는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대장님께 사실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뭐? 뭔데?”
“사실 아까 김 하사가 절 찾아왔습니다.”
“김 하사라면 2소대 부소대장?”
“네. 김 하사 말이 전술 훈련 직전에 3중대장이 우리 2소대장을 찾아왔다고 합니다.”
순간 김철환 1중대장의 눈이 번쩍하고 떠졌다.
“뭐? 정말이야?”
“둘이서 잠시 얘기를 나눴다고 하는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김 하사가 애써 못 본 척했는데 이동 중에 2소대장이 이상한 말을 했다고 합니다.”
“무슨 말?”
“혹시 자신이 중대를 옮기게 되면 따라오겠냐고…….”
“허, 설마 이 새끼들 둘이 짜고……!”
“아직 그렇다고 단언하긴 어렵습니다. 정황상 의심스러울 뿐이지 아직 확실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아니야. 장재일이 그 새끼. 언제고 내 뒤통수 칠 줄 알았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3중대장이랑 짜고 날 물 먹여?”
김철환 1중대장이 흥분해 소리치자 옆자리에서 술을 마시던 남자들이 이쪽을 힐끔 바라봤다.
사복을 입고 있어서 확신하긴 어렵지만 저들 중에 충성 대대 군인이 있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
오상진이 냉큼 김철환 1중대장을 달랬다.
“중대장님. 진정하십시오. 막말로 2소대장이 3중대장에게 작전을 흘렸다 하더라도 그걸로 따질 수는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왜? 왜 못 따지는데?”
“대대장님께서 실전처럼 훈련에 임하라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3중대에서 우연히 전술을 알아낸 것뿐이라고 잡아떼면 오히려 집안 단속 못 했다는 비웃음을 살 수도 있습니다.”
“제기랄.”
김철환 1중대장이 땅이 꺼지라 한숨을 내쉬었다.
오상진의 말처럼 이의제기를 하더라도 3중대장은 교묘하게 빠져나갈 가능성이 컸다.
“어쨌건 당분간 3중대장 우쭐한 모습을 봐야 하니 속이 쓰리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김철환 1중대장의 표정은 조금 풀려 있었다. 그저 막연히 의심을 하다가 진실을 알게 됐으니 마음이 한결 홀가분해진 모양이었다.
오상진이 피식 웃었다.
“안 그래도 여기 오기 전에 슬쩍 일정을 확인했더니 조만간에 체육대회가 있었습니다. 그때 만회하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