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105화
14장 뜻대로 된다면 그게 인생이겠는가(3)
“와, 시발. 부럽네.”
“그러게 말입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소대장님이 훑어볼 때 자원할 걸 그랬습니다.”
“나도 자원하려다 말았는데, 에효. 해진이하고 영일이 제대하면 평생 이거 가지고 우려먹겠구나.”
“이렇게 된 거 우리도 숟가락 얹지 말입니다.”
“그럴까? 그냥 버리긴 아까운 에피소드인데.”
“대신 나중에 서로 말 맞추기입니다.”
“그런데 분대장님. 아까 들어보니까 우리가 1등인 거 같은데 진짭니까?”
병사 하나가 김대식 병장에게 물었다.
“일단 다른 부대 훈련하는 걸 다 지켜봐야겠지만 아마 우리 기록 깨긴 쉽지 않을 거야.”
김대식 병장이 씩 웃으며 말했다.
“내가 이런 말은 안 하려고 했는데 전에 내가 시가전 전술 훈련을 했을 때 말이다. 30분 안에 상황 종료를 시킨 소대가 없었어. 대부분 실패를 했지.”
“그게 정말입니까?”
“그래. 시간은 촉박한데 무작정 들이받아 봐야 피해만 생기니까 어느 순간부터는 그냥 비기는 전술을 쓰더라고. 생각해 봐라. 지면 대대장님한테 왕창 깨지겠지만 최선을 다해 비기면 최소한 욕을 먹진 않을 거 아냐.”
“그거 말 됩니다.”
“그래서 나도 솔직히 30분 안에 끝내는 건 쉽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소대장님이 이렇게 잘하실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김대식 병장도 오상진 찬양에 동참했다.
분대장으로서 체면을 지키고 싶었지만 오늘 보고 들은 오상진의 활약상은 절로 존경이 들 정도였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번에 우리가 진짜로 1등을 하면 또 포상 나오는 겁니까?”
“나오지 않겠냐? 우리 소대장님 다른 건 몰라도 포상은 은근 잘 챙겨주시잖아.”
“저도 내심 기대 중이지 말입니다.”
“왜? 지난번에 꼬셨다던 여자 보려고? 걔 연락도 안 온다며?”
“세상에 여자가 걔 한 명이겠습니까? 저는 가는 여자는 안 붙잡지 말입니다.”
“짜식이, 좋겠다. 여자 잘 꼬셔서.”
1소대원들은 1등이 확정된 것처럼 웃고 떠들어댔다.
하지만 B조의 전투가 끝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취익! 상황 종료! 1중대 2소대 전멸. 3중대 1소대도 전원 생존.
“뭐? 뭐라고?”
상황실로 날아든 무전에 한종태 대대장을 비롯한 곽부용 작전과장, 김철환 1중대장까지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
오상진이 이끄는 1소대에 이어 또다시 전원 생존 소대가 나왔다.
“시, 시간은?”
김철환 1중대장이 작전 장교를 바라봤다.
“18분입니다.”
“18분? 말도 안 돼! 어떻게 이런 일이?”
김철환 1중대장이 흥분해 소리쳤다. B조의 훈련이 시작되기 전 작전장교의 입에서 20분을 깨기란 불가능하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런데 한 명의 사상자도 없이 2분이나 시간을 단축하다니. 도대체 어떻게 된 영문인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그러자 3소대장이 불쾌하다는 투로 말했다.
“1중대장님. 말씀이 지나치십니다.”
“뭐?”
“오상진이가 20분 만에 해내면 잘한 거고 우리 1소대장이 18분 만에 하면 말도 안 되는 겁니까?”
“그런 뜻이 아니라…….”
“중대를 떠나 우리 충성 대대의 병사들입니다. 장한 일을 했으면 칭찬해야죠. 1중대가 아닌 다른 중대에서 기록을 세워서는 안 되는 겁니까?”
“3중대장.”
“오 소위가 기록을 세웠다면 저희 3중대도 기록을 세울 수 있습니다. 그 점을 잊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3중대장은 그 길로 상황실을 박차고 나갔다. 분명 하극상과 다름없는 행동이었지만 김철환 1중대장은 차마 나무랄 수가 없었다. 실언이라 하더라도 3중대를 무시하는 발언을 무심코 내뱉었기 때문이다.
“중대장님. 어떻게 된 일입니까?”
뒤늦게 상황을 듣고 달려온 오상진이 김철환 1중대장에게 다가왔다.
김철환 1중대장 역시 영문을 모르겠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나도 어떻게 된 일인지 알고 싶다.”
잠시 후. 장재일 2소대장이 상황실로 복귀했다.
“2소대장!”
“네.”
“어떻게 된 거야?”
“그게 적들이 너무 순식간에……, 죄송합니다.”
2소대장이 고개를 푹 숙였다.
“죄송하다는 말은 나중에 하고 어떻게 된 일인지 자세히 설명해 봐.”
김철환 1중대장의 다그침에 장재일 2소대장이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별거 없었습니다. 작전대로 위치를 확보한 후 수비를 하는데 적들이 일제히 달려드니 어떻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어떻게 대비를 했기에 꼼짝없이 당해?”
“그게…… 우회로를 통해 돌아온 것 같습니다.”
2소대장의 변명에 오상진이 눈빛이 흔들렸다. 어쩌면 자신이 사용한 우회로를 3중대 1소대에서 사용했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든 것이다.
하지만 장재일 2소대장이 말한 우회로는 오상진이 사용한 지름길이 아니었다.
“뭐? 정말 이 길을 이용했다고?”
“네. 아무래도 그런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그런 것 같다니? 그런 말이 어디 있어?”
“이렇게 돌아온 게 아니라면 저희 등 뒤에서 나타날 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장재일 2소대장의 변명은 그럴듯했다.
10분이 지나도 3중대 1소대의 모습이 보이질 않아서 함정에 걸려든 줄 알고 마음을 놓았는데, 갑작스럽게 방비가 허술한 우측 측면을 통해 적들이 침입하는 바람에 손 한 번 써 보지 못하고 당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기에는 이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함정을 설치한 곳은 어디야?”
“여기하고 여기입니다.”
“이 두 곳을 피해갔다면 정말로 이렇게 돌아갈 수밖에 없긴 하겠는데…… 매복은?”
“매복은 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왜? 만에 하나 함정을 피해 우회로를 선택할 걸 대비해서 매복을 파놓았어야지!”
“그게…… 매복을 하지 않아도 지형적 특성상 이쪽으로 돌아오진 않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야!”
김철환 1중대장이 자신도 모르게 언성을 높였다. 그러자 장재일 2소대장의 표정도 굳어졌다.
“죄송합니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누가 그런 소리를 들으려고 이러는 줄 알아?”
“저는 배운 대로 작전을 세웠습니다.”
“대체 어디서 뭘 배운 거야!”
김철환 1중대장은 변명으로 일관하는 장재일 2소대장에게 화가 났다.
하지만 변명으로 때우기로 작심한 장재일 2소대장은 이때다 싶어 김철환 1중대장의 말꼬리를 잡고 늘어졌다.
“육사를 나오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이 자식이, 아니, 거기서 왜 또 그쪽으로 튀어?”
“죄송합니다. 다 제 불찰입니다.”
“하아…….”
김철환 1중대장은 그저 한숨만 났다. 이제 와 잘잘못을 따져 봐야 의미 없다는 걸 모르는 바 아니지만 꼬일 대로 꼬인 장재일 2소대장을 보고 있자니 전술 훈련이 중요한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알았으니까 그만 나가봐.”
김철환 1중대장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장재일 2중대장이 몸을 돌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김철환 1중대장은 땅이 꺼지라 한숨을 내쉬었다.
“2소대장도 잘하고 싶었을 겁니다.”
오상진이 김철환 1중대장을 달랬다. 물론 자신이 생각해도 다소 어이없는 작전이긴 했지만 장재일 2소대장도 지고 싶어서 진 게 아닐 거라 여겼다.
하지만 김철환 1중대장의 생각은 달랐다.
“뭔가 있어. 뭔가가.”
“그냥 운이 나빴다고 생각하십시오.”
“그러지 말고 상진이 네가 가서 좀 알아봐.”
“중대장님.”
“3사 이야기는 꺼내지도 않았는데 저러는 거 보면 모르겠어? 분명 뭔가 켕기는 게 있는 거라고.”
“후우……. 알겠습니다.”
오상진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자신을 보며 실실 웃어대는 3중대장을 피해 상황실을 빠져나갔다.
3.
오전 일정이 모두 끝나고 11시 30분부터 점심 식사가 시작됐다.
오후에도 시가전 전술 일정이 잡힌 터라 모두 야외에서 식판을 들고 배식을 받아야 했다.
“적당히 담아. 적당히.”
한종태 대대장이 가장 먼저 식판을 들고 나섰다. 가만히 있어도 알아서 다 챙겨주겠지만 병사들과 함께 고생한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던지 직접 식사를 챙겨서 상황실로 돌아갔다.
한종태 대대장에 이어 대대 간부들이 차례대로 배식을 받았다.
장재일 2소대장도 일찌감치 배식을 받고는 식판을 들고 그늘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소대장님. 소대원들하고 같이 식사하시겠습니까?”
“자리 잡고 있으면 잠깐 볼일 보고 가겠습니다.”
“그럼 제가 식사 받아 가겠습니다. 일 보고 오십시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괜히 식판 들고 다니시다가 엎지르십니다. 제가 잘 보관하고 있을 테니까 얼른 다녀오십시오.”
“그럼 부탁합니다.”
오상진은 식판을 박중근 하사에게 넘겨 주고 장재일 2소대장에게 다가갔다.
“무슨 일입니까?”
오상진의 꿍꿍이를 눈치챈 것일까.
장재일 2소대장이 퉁명스럽게 물었다.
“소대원들하고 같이 식사하지 않으십니까?”
“됐습니다. 저 녀석들도 죽을 맛일 텐데 괜히 저까지 보태주고 싶지 않습니다.”
“그럼 저희하고 같이 하시겠습니까?”
“괜찮습니다. 그건 제가 편치 않습니다.”
오상진이 장재일 2소대장을 살살 구슬려 봤지만 장재일 2소대장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그 모습이 오상진의 눈에도 미심쩍어 보였다.
차라리 화를 낸다면 그러려니 하겠는데 스스로 죄인 취급을 하는 게 어딘지 모르게 석연찮게 느껴졌다.
“뭐 하나 물어봐도 괜찮겠습니까?”
“후우. 밥 먹고 하면 안 됩니까?”
“아, 미안합니다. 그럼 식사 맛있게 하십시오.”
“아닙니다. 그냥 빨리 물어보십시오.”
“3중대 1소대 말입니다. 정확하게 몇 분쯤에 건물에 진입했습니까?”
“13분쯤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럼 5분간 교전이 이루어진 겁니까?”
“그렇습니다. 원래라면 좀 더 버틸 수 있었는데 첫 교전에서 병력의 절반을 잃어서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절반이나요? 1층에 7명을 배치하신 겁니까?”
“3층에서 농성을 해봐야 시간 끌기용밖에 더 됩니까? 1소대장님이 신기록을 세웠다고 하니까 저도 욕심이 좀 났습니다. 앞서 3중대 2소대가 3층에 병력을 배치했다가 당했으니 역으로 1층에 매복하면 통할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적들이 뒤에서 쳐들어 왔다는 거죠?”
“네. 솔직히 거기까진 방비를 하고 있지 않아서 전부 당해버렸습니다.”
“운이 없었네요.”
오상진이 이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 모습이 꼭 자신의 말을 믿는 것처럼 보였을까. 장재인 2소대장이 어울리지도 않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냥 다 제 잘못입니다.”
“아닙니다. 그게 왜 2소대장 잘못입니까.”
“1층이 너무 허무하게 뚫려 버리니까 솔직히 기운이 빠졌습니다. 남은 병사들이라도 추슬러서 3층에서 농성을 했다면 기록을 세우는 것까진 막을 수 있었을 텐데 그것까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기운 내십시오.”
“후우……. 아무튼 고맙습니다.”
대화를 마친 오상진이 몸을 돌려 분대원들 쪽으로 다가갔다. 그러다 슬쩍 고개를 돌리니 2소대장이 언제 그랬냐는 듯 맛있게 닭 다리를 먹고 있었다.
‘그 먼 거리를 돌아서 13분 만에 왔단 말이지?’
오상진은 장재일 2소대장의 말을 곰곰이 곱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