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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리셋 오 소위-104화 (104/1,018)

인생 리셋 오 소위! 104화

14장 뜻대로 된다면 그게 인생이겠는가(2)

“시간! 시간은 어떻게 됐어?”

“20분 13초입니다.”

“20분? 그게 말이 돼?”

3중대장은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이럴 줄 알았다면 그냥 1소대를 수비조로 투입하는 건데. 괜히 2소대장의 말을 들었다가 1중대 기만 살려주고 말았다.

“2소대장은 대체 뭘 한 거야?”

“아무래도 작전 실패인 것 같습니다.”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해? 아무튼 1소대장 너 정신 똑바로 차려. 알았어?”

“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2소대가 무너진 상황에서 3중대장이 믿을 수 있는 건 1소대밖에 없었다.

하지만 오상진의 활약에 잔뜩 주눅이 든 1소대장을 보고 있자니 좀처럼 믿음이 가질 않았다.

“이대로는 안 되겠어. 이대로는.”

3중대장은 공격과 수비가 바뀌는 타이밍에 몰래 상황실을 빠져나갔다.

밖으로 나가니 1중대 2소대장이 소대원들을 집합시키고 있었다.

“크흠. 2소대장.”

3중대장이 나직한 목소리로 2소대장을 불렀다.

하지만 그 소릴 듣지 못한 듯 2소대장은 부소대장과 잡담을 나누느라 정신이 없었다.

“저 자식이? 야! 장재일이!”

결국 3중대장이 버럭 목소리를 높였다.

“누구야?”

2소대장이 신경질적으로 고개를 돌리다 3중대장을 발견하고는 냉큼 걸음을 움직였다.

“충성. 부르셨습니까?”

“잠깐 나 좀 보자.”

“지금이요? 또 왜 그러십니까?”

장재일 2소대장은 화들짝 놀라며 주위를 살폈다. 아무리 같은 3사 출신이라 해도 지금은 중대 단위의 전술 훈련 중이었다. 1중대 소대장으로서 3중대장과 살갑게 대화를 나눌 상황이 아니었다.

“누가 보며 어쩌려고 그러십니까.”

“누가 보긴 누가 봐.”

“그런데 어째 표정이 영 그렇습니다. 혹시 결과가 좋지 않습니까?”

장재일 2소대장이 넌지시 물었다.

15분 상황까지 지켜보다가 상황실을 나선 탓에 이후의 상황은 미처 전달을 받지 못했다.

“야, 말도 마라. 완전 개 발렸다.”

“그게 정말입니까?”

“그래, 인마! 그것도 20분 만에 털렸어.”

“15분 때까지만 해도 대치 중이었는데 그게 가능한 일입니까? 2소대장이 너무 봐준 거 아닙니까?”

“짜식이. 지금 그런 농담할 기분이 아니야.”

“저도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서 그렇습니다.”

같은 1중대 소속이긴 하지만 장재일 2소대장은 라이벌인 오상진이 주목받는 게 싫었다.

그래서 내심 3중대 2소대장이 오상진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주길 바랐는데 돌아가는 분위기로 봐서는 또 오상진만 대대장의 눈에 들 것 같았다.

그런 불편한 속내가 표정으로 드러났을까.

“그건 그렇고 지난번에 했던 이야기 말이야. 가능하겠냐?”

주변을 쑥 한번 훑어 본 뒤 3중대장이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난번이라면……?”

“사흘 전에 술 마시면서 했던 이야기 말이야.”

“3중대장님 그건…….”

“뭐야, 그냥 해본 말이라고? 그럼 실망인데. 난 너 진짜로 3중대로 부르려고 준비 중이었단 말이야.”

사흘 전 3중대 간부들끼리 회식이 있었다.

참석자는 3중대장과 네 명의 소대장들.

앞으로 있을 전술 훈련의 각오를 다지기 위해 마련된 자리였다.

하지만 술이 몇 잔 들어가고 주제가 3사 시절 이야기로 바뀌면서 ROTC 출신 4소대장이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저는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2차가 끝날 무렵 4소대장이 조용히 빠지자 3중대장은 잘 됐다며 장재일 2소대장을 불렀다.

3사 출신들끼리 모인 술자리는 더욱 화기애애해졌고 3차로 끝내자던 게 4차와 5차까지 이어졌는데, 그 자리에서 몇 가지 위험한 발언들이 나돌았다.

그중에 하나가 4소대장을 대신해 장재일 2소대장을 3중대로 데려오자는 것이었다.

분위기가 분위기인지라 장재일 2소대장도 웃으며 반겼고 어차피 3중대로 옮길 거 논개처럼 3중대의 승리를 위해 희생하겠다는 말까지 내뱉고 말았다.

술자리에서 떠든 말은 술자리에서 덮는 게 상식이라지만 제 처지가 급한 3중대장은 그걸 빌미로 장재일 2소대장을 옭아맸다.

“장재일이. 확실히 말해. 정말 농담으로 한 말이야?”

“그건 아닙니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똑바로 대답 안 해?”

“솔직히 3중대로 옮길 수만 있다면 옮기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지 않습니까?”

“야, 너 내가 고작 1중대 한 번 이겨보려고 이러는 줄 알아? 너 데려오려고 이러는 거야. 보란 듯이 1중대 잡고 나서 대대장님께 정식으로 너 데려오고 싶다고 요청할 생각이었다고.”

“그, 그게 정말입니까?”

“그래 인마. 이미 곽 대위 하고는 이야기 다 끝났어. 근데 너 이런 식으로 나올 거야?”

3중대장의 다그침에 장재일 2소대장이 눈을 굴렸다.

오상진이 버티고 있는 한 1중대에서 출세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3사 출신을 적극적으로 밀어주는 3중대에 가는 편이 나았다.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 알겠습니다. 이번에 제대로 논개 노릇 해보겠습니다.”

“정말이지?”

“네. 저만 믿으십시오. 그리고 이거…….”

“이게 뭐냐?”

“보시면 압니다.”

장재일 2소대장이 내민 종이를 확인한 3중대장이 씩 웃었다. 그리고는 장재일 2소대장의 어깨를 툭 친 뒤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상황실로 복귀했다.

“후우. 이미 동전은 던져졌어.”

장재일 2소대장도 애써 결연해진 얼굴로 소대원들에게 돌아갔다.

그렇게 3중대장과 장재일 2소대장의 은밀한 거래가 이루어졌다.

2.

그 시각 김철환 1중대장은 뿌듯한 얼굴로 상황실에서 나왔다. 압도적인 성적을 거둔 오상진을 맞이하기 위함이었다.

저 멀리서 오상진과 소대원들이 다가오자 김철환 1중대장이 환하게 웃으며 그들을 맞이했다.

“하하하, 고생했다. 고생했어. 정말 잘했다. 잘했어!”

김철환 1중대장이 오상진의 어깨를 두드렸다. 오상진은 모든 공을 소대원들에게 돌렸다.

“저뿐만 아니라 박중근 하사와 소대원들 전부 다 고생했습니다. 아마 저 혼자였으면 못했을 것입니다.”

“그래, 그래. 다들 장하다. 수고했어. 대대장님이 아주 1소대가 최고라고 몇 번을 칭찬하시더라. 하하하.”

기분 좋은 김철환 1중대장을 보며 소대원들도 저마다 뿌듯한 얼굴을 감추지 못했다. 김철환 1중대장으로도 모자라 대대장까지 자신들의 활약상을 지켜봤다고 하니 절로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대식아. 애들 데리고 가서 쉬어.”

“네. 소대장님.”

오상진의 지시에 김대식 병장은 소대원들을 이끌고 그늘진 곳으로 이동했다.

“훈련 중이니까 너무 풀어지진 말자.”

김대식 병장의 말을 시작으로 병사들은 군모를 벗고 앉아서 휴식을 취했다.

그중 이해진 일병과 조영일 일병은 궁금해하는 병사들을 모아놓고 오상진의 활약상을 떠들어댔다.

“뭐? 지름길? 그런 게 있었어?”

“저도 몰랐습니다. 그래서 사실 소대장님이 길을 돌아갈 때 망했구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소대장님이 수풀 속으로 몸을 던지시는 겁니다!”

“던지긴 또 뭘 던져. 소대장님이 돌멩이냐? 던지게?”

“아무튼 그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저희도 어쩔 수 없이 소대장님을 따라 수풀을 헤치고 나갔는데 놀랍게도 저만치 건물이 보이지 않겠습니까?”

“그건 별로 안 궁금하니까 전투 상황을 풀어보란 말이야. 전투 상황을!”

“그렇지 않아도 지금부터 설명드리려고 했지 말입니다. 아무튼 소대장님을 필두로 우리는 빠르게 건물 외벽에 붙었습니다. 그때 소대장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왼쪽은 내가. 오른쪽은 박 하사가. 캬아, 진짜 영화 대사 아닙니까?”

“이 일병님. 반대로 말씀하셨습니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에잇, 흐름 끊기게.”

“죄송합니다.”

“아무튼 소대장님하고 부 소대장님이 서로 마주 보며 고개를 끄덕이는데 꼭 태극기를 휘날리며 보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소대장님이 깊게 숨을 고르시고는 손가락을 이렇게 피셨습니다. 그리고 셋. 둘. 하나. 그 순간 번개처럼 앞으로 뛰어들어가시는데 와아, 진짜 특공대원이 따로 없지 말입니다. 달려들기가 무섭게 오른쪽에 숨어 있는 병사의 머리를 정확하게 탕 하고 맞히시는데…….”

“올, 헤드샷!”

“2중대 상병이 찍소리도 못하고 당했지 말입니다.”

“상병인데 반격도 못 했다고? 무슨 계급장을 고스톱 쳐서 땄나.”

“그게 아닙니다. 상병이 잘못한 게 아니라 우리 오 소위님이 잘하신 겁니다.”

“언제부터 소대장님이 우리 오 소위 님이 됐냐? 야, 조영일. 네가 말해봐. 정말이야?”

“전반적인 상황은 맞습니다.”

“맞아? 소대장님이 정말로 헤드샷을 쏘셨다고?”

“네. 제가 원래 소대장님 뒤를 따라갔는데 눈 깜짝할 사이에 머리를 맞히셨습니다. 그리고는 반대편에 숨어 있는 적을 향해 총구를 돌리시는데 박 하사님이 먼저 총을 쏘지 않았다면 소대장님이 둘 다 해치우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와우, 그 정도야?”

조영일 일병의 진지한 설명에 이해진 일병의 이야기를 허풍처럼 듣던 상병들의 표정이 달라졌다.

“제가 뭐랬습니까? 저 이런 거로는 뻥 안 치지 말입니다.”

“아무튼 계속 말해봐.”

“여기서부터 중요한 이야기 나오니까 집중하시지 말입니다. 그렇게 3중대원 2명을 사살한 뒤 박 하사님이 소대장님을 바라봤습니다. 그러자 소대장님이 지금은 지체할 시간이 없다며 곧바로 계단을 뛰어오르셨습니다.”

“작전도 없이 바로?”

“그게 작전이었습니다. 우리가 너무 깔끔하게 1층을 점령했으니 2층에선 제대로 방비하지 못했을 거라면서요.”

“그런데 정말 소대장님이 앞장서신 거 맞아? 박 하사님이랑 바뀐 거 아냐?”

“아닙니다. 소대장님이 확실히 앞장서셨습니다. 못 미더우시면 박 하사님께 직접 물어보십시오.”

“알았으니까 계속해 봐.”

“솔직히 2층의 전투 상황은 저도 잘 기억이 안 납니다. 박 하사님 뒤를 열심히 따라 올라가긴 했는데 도착하고 보니 이미 병사 둘이 죽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너희는 또 구경만 했어?”

“솔직히 기회를 안 주셨습니다. 저희도 억울한 게, 뭐라도 하고 싶었는데 소대장님하고 부소대장님이 너무 빨랐습니다. 안 그래?”

이해진 일병이 조영일 일병을 바라봤다.

그러자 조영일 일병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일병님 말이 맞습니다. 적을 발견하고 저도 총을 겨눠 봤는데 이미 가슴에 페인트 탄이 튀고 있었습니다.”

“크으, 진짜 영화 속 한 장면이네.”

“그러게 말입니다. 전 금방 점령했길래 수류탄이라도 쓴 줄 알았는데 전부 총으로 잡았을 줄은 몰랐습니다.”

“그래서? 그다음은?”

“3층도 바로 올라간 거야?”

“아뇨. 여기선 또 우리 소대장님이 여유를 부리셨습니다. 저하고 영일이를 보시고는 잠깐 숨을 돌리자고 말씀하시는데 진짜 멋있었습니다.”

“그건 넘기고 빨리 3층!”

“그래서 말입니다…….”

이해진 일병은 다시 침을 튀겨가며 3층 공방전을 설명했다.

이번에도 뒤늦게 따라간 터라 상상이 다소 포함됐지만 조영일 일병도 공감하듯 고개를 끄덕이면서 오상진 주연, 이해진 각본의 전쟁 드라마 한 편이 완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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