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103화
14장 뜻대로 된다면 그게 인생이겠는가(1)
1.
김대식 병장이 벌어준 시간을 이용해 오상진은 건물을 빙 둘러서 뛰어갔다. 그리고 수풀이 우거진 곳에 도착한 후 망설임 없이 고개를 숙였다.
“소, 소대장님!”
박중근 하사가 화들짝 놀라 오상진을 만류하려는데 수풀 속으로 오상진이 쑥 하고 사라져 버렸다.
“박 하사. 빨리!”
“아, 넵!”
오상진의 다그치는 목소리에 박중근 하사도 그곳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이해진 일병과 조영일 일병도 수풀 길을 통과했다.
“이곳에 길이 있었습니까?”
수풀을 빠져나온 박중근 하사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고개를 들어보니 저만치 3층 건물 뒤쪽이 보였다.
그런데 3중대 2소대는 이쪽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설마하니 빙 둘러 지름길을 통해 치고 올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한 것이다.
그러자 오상진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제가 지난번에 이 근처를 쭉 한 번 훑다가 우연히 찾아낸 길입니다.”
“이야, 저는 전혀 몰랐습니다.”
“모르는 게 당연합니다. 솔직히 지난 전술 훈련 때처럼 작전을 짰다면 이 길을 이용할 이유도 없었을 테고요.”
만약 전술 훈련 규칙이 바뀌지 않았다면 오상진도 굳이 무리해서 우회로를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가뜩이나 2명이 적은 상황에서 병력이 쪼개진 게 들통난다면 3중대 2소대가 역으로 공격을 펼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보다 적극적으로 전술 훈련에 임하라는 상부의 지시 때문에 3중대 2소대가 매복 작전을 걸었고, 그걸 오상진이 피해 없이 돌파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수적 우위가 사라진 3중대 2소대 입장에서는 무리해서 반격을 시도하기가 어려울 터.
덕분에 오상진도 체력 좋은 이들을 선별해 건물의 뒷길로 돌아오는 작전을 펼칠 수 있었다.
“아무튼 그 얘기는 나중에 하고, 지금은 신속하게 건물로 들어가서 처리하죠.”
“넵!”
잠시 숨을 고른 뒤 오상진이 건물 안으로 빠르게 진입했다. 그 뒤를 박중근 하사, 이해진 일병, 조영일 일병이 일정 간격을 유지한 채로 뒤따랐다.
그렇게 뒷문 근처 외벽으로 바짝 붙어 선 오상진과 별동대는 잠시 숨을 골랐다.
“1층에 수비 병력이 있을 것 같습니까?”
“공격조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안으로 진입해야 하니까 소수의 병력을 배치시켜 놓았을 것 같습니다.”
“그럼 이렇게 하죠. 나는 오른쪽. 박 하사는 왼쪽. 너희 둘은 여기서 엄호.”
“바로 뚫고 들어가는 겁니까?”
“이미 충분히 시간을 허비했습니다. 더는 뜸 들일 시간이 없습니다.”
“알겠습니다.”
간단하게 작전을 세운 뒤 오상진은 모두가 볼 수 있도록 손가락을 세 개 폈다.
셋. 둘. 하나.
세 개의 손가락을 모두 접기가 무섭게 오상진이 앞장서서 건물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수비병이 입구 좌우로 붙어 있었다면 꼼짝없이 당했겠지만 다행히도 두 명의 병사들은 좌우 쪽 창가에 붙어 전방을 바라보고 있었다.
푸슝!
오상진은 미리 정한 대로 오른쪽 병사의 등을 향해 총을 쐈다.
그리고 왼쪽 병사는.
푸슝!
멋들어지게 몸을 굴린 박중근 하사가 가볍게 처리했다.
“소대장님. 이제 어떻게 할까요?”
“바로 올라갑시다. 이 녀석들 표정 보니까 우리가 뒤로 돌아올 거라고는 생각 못 한 것 같습니다.”
의견 교환을 마친 오상진은 곧바로 2층 계단으로 뛰어 올라갔다.
1층에서 교전다운 교전을 펼치고 올라가며 오상진은 생각했다.
2층을 지키고 있는 병사들 역시 잔뜩 긴장하고 있을 것이고 시간을 끌면 좋을 게 없을 거다. 눈 깜짝할 사이에 수비병을 해치운 만큼 속전속결로 해치워 버리는 게 나을 것이라 판단했다.
푸슝! 푸슝!
때문에 오상진은 2층에 올라가서도 망설임이 없었다.
“저, 적이다!”
뒤늦게 오상진을 발견한 일병 하나가 소리를 내질렀지만 그때는 오상진의 페인트 탄에 얻어맞은 뒤였다.
오상진을 따라 계단을 오른 박중근 하사와 이해진 일병, 조영일 일병도 숨어 있던 병사들을 향해 정확하게 페인트 탄을 쐈다.
그렇게 4명의 2층 수비조를 전멸시키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 20초 남짓.
우회로를 따라 돌아온 시간을 만회하는 쾌거였다.
“3층은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박중근 하사가 상기된 얼굴로 오상진을 바라봤다.
오상진이 샛길을 따라 공격하자는 작전을 냈을 때만 해도 큰 기대를 하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샛길을 빠져나오기가 무섭게 1층과 2층을 점령하고 나니 빨리 3층으로 올라가고픈 욕심이 생겼다.
하지만 오상진은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일단 숨 좀 돌리는 게 좋겠습니다.”
박중근 하사는 멀쩡했지만 이해진 일병과 조영일 일병의 호흡은 가쁜 상태였다.
지금까지 제압한 3중대 2소대원의 수는 총 8명.
2소대장과 부소대장을 포함해 남은 인원 6명이 전부 3층에 있다면 수적으로 불리했다.
이런 상황에서 무리하게 3층에 진입했다가 손발이 어긋난다면 오히려 당하게 될 가능성이 컸다.
“지금 몇 분 지났습니까?”
오상진이 뒤따라 올라온 판정관을 바라보며 물었다.
“정확하게 16분 지났습니다.”
판정관이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8분 째부터 교전 상태에 접어들면서 쉽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눈 깜짝할 사이에 두 개의 층을 점거해 버린 오상진이 대단하게 느껴진 모양이었다.
“이대로 가면 20분 안에 끝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말로만 듣던 20분 컷입니까?”
마지막 전투를 앞두고 진지한 순간이었지만 박중근 하사는 왠지 모르게 들뜬 모습이었다.
“그런데 박 하사는 안 떨립니까?”
“전혀요. 전 확실히 실전 체질이지 말입니다.”
“해진이 너는 어때?”
오상진이 고개를 돌려 이해진 일병을 바라봤다. 그러자 이해진이 한술 더 떠 말했다.
“솔직히 전 자신이 없습니다.”
“자신이 없어?”
“네. 죽을 자신이요. 왠지 제가 두 명은 잡을 것 같습니다.”
“짜식이, 무슨 소리인가 했네.”
똘똘한 조영일 일병은 자신감에 가득 찬 단호한 눈빛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렇게 2분여 동안 호흡을 고른 뒤.
“가자!”
오상진의 신호 속에 별동대가 계단을 뛰어올랐다.
그 시각.
“계속 쏴! 절대 건물로 진입하지 못하게 견제해!”
1층과 2층에서 벌어진 상황도 모른 채 3층에서는 정면에 자리 잡은 1소대원들을 향해 총을 쏘느라 정신이 없었다.
“소대장님. 아무래도 1소대장이 바짝 쫀 모양입니다.”
“내가 뭐랬어? 그냥 버티기로 나가면 1소대장도 어쩌지 못할 거라고 했지?”
“제가 소대장님의 넓은 혜안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하하. 알면 됐어. 아무튼 이대로 조금만 더 버티자고. 그럼 승리는 우리 차지일 테니까.”
물론 이대로 30분의 제한 시간이 끝난다고 해서 수비 측의 승리가 되는 건 아니었다.
바뀐 규정에 따르면 승패가 나지 않는 경기는 무의미했다.
수성보다 공성이 몇 배는 더 어려운 상황에서 3일도 아니고 고작 30분 버틴 거로 으스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다만 1중대가 자랑하고 대대장이 아끼는 오상진의 부대를 상대로 선전했다는 건 자랑할 만했다.
그래서 3중대 2소대장은 발이 묶인 1중대 1소대원들을 보며 웃음을 참지 못했다.
그건 부소대장도 마찬가지였다.
“소대장님. 이제 20분 다 되어 갑니다.”
끈질긴 공격으로 1소대를 꼼짝 못 하게 만든 지 10분이 지났으니 남은 10분을 버티는 건 일도 아닐 것 같았다.
그때였다.
쾅!
갑자기 요란스럽게 3층 문이 열리더니.
푸슝! 푸슝!
갑자게 페인트 탄이 날아들기 시작했다.
“어어?”
“뭐야?”
지상을 경계하느라 정신이 팔려 있던 병사 둘이 순식간에 전사했고.
“자리 잡아! 정신 차렷! 윽!”
다급히 고함을 내지르던 2소대장 역시 오상진이 쏜 페인트 총에 가슴을 맞았다.
순간 극심한 통증에 절로 신음이 나왔다. 그러느라 우왕좌왕하는 병사들을 미처 챙기지 못했다.
“무, 뭐야? 어떻게 된 거야? 왜 1소대장님이 여기 있지? 아래에 있는 거 아냐?”
“몰라! 어서 총이나 쏴!”
당황한 2소대 병사들도 페인트 탄을 맞았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리고 대응 사격에 나섰다. 그러자 뒤쫓아 올라온 판정관이 다급히 사격 중지를 외쳤다.
“사격 중지! 상황 종료!”
2소대 병사들은 하나같이 벙 찐 얼굴이었다. 분명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흘러가고 있었는데 이런 식으로 판이 뒤집힐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사이 병사들을 확인한 판정관이 단호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A조 수비팀 전원 사망!”
“네? 전 아직 죽지 않았습니다.”
2소대장이 다급히 소리쳤다.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한 상태에서 사망 판정이라니.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러나 2소대장의 왼쪽 가슴에는 페인트 탄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규칙을 모르나? 저기 계단에서부터 여기까진 반경 5m 이내다. 그리고 자네는 가슴에 페인트 탄을 맞았고.”
“하지만…….”
“하지만은 뭐가 하지만이야! 오 소위가 상황을 봐줬으니 그 정도에서 끝났지 실제 전투였다면 총을 수십 방 얻어맞고 넝마가 됐을 거라고.”
판정관의 단호한 말에 2소대장이 눈을 치떴다.
오 소위라니.
저 밑에서 병사들을 지휘하는 오상진이 무슨 수로 자신을 죽였단 말인가.
그렇게 따져 물으려던 순간
“고생했습니다, 2소대장.”
오상진이 철모를 들어 올리며 멋쩍게 웃었다.
3중대 2소대장은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아, 아니, 어떻게…….”
하지만 오상진은 이유를 설명해 주지 않고 박중근 하사와 두 이병부터 살폈다.
“다들 괜찮아?”
“죄송합니다, 소대장님 제가 페인트 탄에 맞아버렸습니다.”
박중근 하사가 미안한 얼굴로 자신의 가슴 부위를 가리켰다.
그곳에는 누군가가 쐈을 페인트 탄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전투 중에 벌어진 일인데 어쩔 수 없죠. 괜찮습니다.”
오상진이 애써 아쉬움을 삼켰다. 2분의 패널티가 크긴 했지만 그렇다고 지금까지 최선을 다해준 박중근 하사를 탓하고 싶지 않았다.
그때 판정관이 다가와 말했다.
“박중근 하사 사망 아닙니다.”
“……?”
“사망한 적군이 쏜 총에 맞았습니다. 아까 말했듯 이 근방이 전부 5미터 이내이기 때문에 먼저 총에 맞은 적군은 사망으로 간주, 박 하사가 맞은 페인트 탄은 무효입니다.”
“그럼 저희 전원 생존입니까?”
“네. 축하합니다, 오 소위. 전원 생존입니다.”
판정단의 대답에 박중근 하사와 두 일병이 얼싸안고 좋아했다.
오상진도 냉큼 건물 아래를 내려다보며 소대원들을 챙겼다.
“대식아!”
“병장 김대식!”
“그쪽은 다들 무사하냐?”
“네. 그렇습니다.”
“알았다. 전투 끝났으니까 철수 준비해.”
“벌써 끝났습니까?”
“그래. 우리가 이겼다.”
그렇게 오상진과 별동대가 3층 건물 옥상을 점령하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정확하게 20분에 불과했다.
판정관이 모든 상황을 체크한 후 무전기로 보고를 했다.
-취익, 상황 종료! A조 전투 결과 공격팀 승리. 공격팀 사상자 없음. 수비팀 전원 사망.
그 한마디에 김철환 1중대장과 3중대장의 표정이 엇갈렸다.
“좋았어!”
김철환 1중대장이 주먹을 움켜쥐었다. 오상진을 믿고 있었지만 이렇게 잘해낼 줄은 몰랐다는 반응이었다.
“역시 1소대장이지 말입니다.”
옆자리를 지키고 있던 4소대장도 제 일처럼 좋아했다.
반면 3중대장은 죽을 맛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