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102화
13장 내 생에 봄날은 왔다(9)
“소대장님. 너무 걱정 마십시오. 여차하면 제가 소대원들 이끌고 어떻게든 뚫고 가서 점령해 보이겠습니다.”
박중근 하사가 결연한 얼굴로 말했다. 교전 중에 상황이 어려워진다면 죽음을 각오하고 적진을 뚫고 나갈 각오가 되어 있었다.
소대장으로서 박중근 하사처럼 몸을 사리지 않는 부소대장이 있다는 건 더없이 든든한 일이었다.
다만 사망자당 패널티가 추가된다는 걸 감안했을 때 박중근 하사의 각오는 최후의 한 수로 남겨놓고 싶었다.
“박 하사. 일단 희생 없이 이기는 걸 목표로 삼읍시다.”
“물론입니다. 소대장님.”
오상진과 1소대가 작전을 점검하는 사이 3중대 2소대도 방어 작전을 펼쳤다.
“저쪽. 그리고 저쪽.”
철조망이 넓게 깔린 지대가 나오자 2소대장이 곧바로 수비 병력을 배치시켰다. 지형지물의 특성상 공격팀의 발을 묶고 시간을 끌기 용이했다.
뒤이어 야전삽을 이용해 실제로 지뢰를 매설하는 훈련도 실시했다.
판정은 판정관이 지뢰 위치를 파악한 후 연막 수류탄을 통해 지뢰가 폭발했음을 알려주기로 했다.
그 외에도 훈련용 크레모어까지 꼼꼼하게 매설하며 쉽게 뚫리지 않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그렇게 한참의 작업 끝에 3중대 2소대 쪽에서 준비를 모두 마쳤다는 무전이 왔다.
“자, 모두 준비되었나?”
“네.”
“공격 앞으로.”
연락을 받은 오상진과 1소대원들은 재빨리 전투 훈련지로 뛰어들어갔다.
1소대원들이 재빠른 동작으로 엄폐를 하며 신속히 움직였다. 덩굴 속을 지나 곧바로 사수 경계를 취하고 그 뒤로 동료들의 지원사격에 힘입어 자리를 하나둘 잡았다.
그때 앞서가던 오상진이 주먹을 들어 소대원들을 멈춰 세웠다.
“소대 정지!”
“소대 정지!”
소대원들이 일제 정지를 한 후 다시 사수 경계에 들어갔다.
그사이 오상진은 전방에 있는 철조망 지대를 확인했다.
그러자 박중근 하사가 옆으로 다가왔다.
“왜 그러십니까?”
“아무래도 저기 철조망 지대에 매복과 함정이 있을 것 같습니다.”
오상진의 말에 박중근 하사가 철조망 지대 근처를 확인했다. 하지만 주변은 왜인지 조용했다. 수비팀 병사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아무도 없습니다.”
“아닙니다. 분명 매복해 있을 것입니다. 여긴 제가 잘 아는 지형입니다.”
“으음…….”
박중근 하사가 낮은 신음을 흘렸다. 잠시 생각을 하던 박중근 하사가 오상진에게 물었다.
“정확하게 매복한 지역이 어디일 것 같습니까?”
오상진은 철조망 건너편 건물을 가리켰다. 박중근 하사가 그곳을 확인한 후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다녀오겠습니다.”
“혼자 가능하시겠습니까?”
“네. 앞에서 시선 좀 끌어주십시오.”
“네.”
박중근 하사가 우회로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그사이 오상진과 소대원들은 철조망 지대를 개척하기 위한 움직임을 보였다. 그때까지 적의 어떤 공격도 없었다.
“일도야. 적이 숨어 있을 수도 있으니까 너무 가까이 가지 말고 하는 시늉만 해.”
“네.”
미끼 역을 맡은 김일도 상병이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오상진과 소대원들은 만약의 상황에 대비해 철조망 건너편 건물로 총을 겨눴다.
그렇게 잠깐의 시간이 흐른 후 건물 내부에서 ‘푸슝, 푸슝’ 하는 페인트 총소리가 들렸다.
“윽!”
“으윽.”
두 명의 비명 소리와 함께 건물에서 박중근 하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숨어 있던 적들을 모두 처리했는지 박중근 하사가 손동작으로 OK 사인을 보냈다.
“됐다. 가자.”
오상진은 남은 소대원들을 이끌고 최대한 신속하게 철조망 지대를 통과했다.
건물에서 박중근 하사가 나오며 곧이어 사망 처리가 된 두 명의 병사가 가슴에 페인트 탄을 맞고 걸어 나왔다. 그 모습을 보고 오상진이 피식 웃었다.
“역시…….”
박중근 하사가 오상진 곁으로 다가왔다. 오상진이 박중근 하사를 보며 물었다.
“괜찮습니까?”
“네. 괜찮습니다. 그런데 진짜 매복이 있었습니다. 어떻게 아신 것입니까?”
“그냥 느낌이 그랬습니다.”
오상진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렇다고 과거 자기가 몇 번 써먹은 전술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척 보니 감이 왔다는 말씀이시죠? 역시 소대장님이십니다.”
“하하. 제가 한 게 있나요. 사상자 없이 무사히 통과한 건 박 하사 덕입니다.”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부끄럽습니다.”
“자, 그럼 계속 가 볼까요?”
오상진과 박중근 하사가 마주 보며 웃었다.
그렇게 1소대는 기분 좋게 첫 단추를 끼웠다.
한편, 간부들은 상황실에 모여 훈련 진행 상황을 체크하고 있었다.
치익! 칙!
-A조 수비팀 철조망 지대 매복조 2명 사망! 공격팀 사상자 없음.
무전기를 통해 보고가 올라오자 김철환 1중대장은 저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좋았어!’
3중대 2소대장이 허술하게 매복 작전을 쓴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이로써 2명의 인원 차이가 빠르게 사라졌다.
반면 3중대장은 똥 씹은 얼굴이 되었다.
‘멍청한 놈들. 대체 어떻게 매복을 했기에 한 명도 못 죽인 거야? 아무튼 복귀만 해봐라.’
매복을 했는데도 적을 제압하지 못했다는 건 그만큼 안이하게 임했다는 소리나 다름없었다.
3중대장이 슬쩍 한종태 대대장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대놓고 좋아하진 않았지만 한종태 대대장은 희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이 3중대장의 눈에는 꼭 1중대를 칭찬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어떻게든 만회해야 해.’
3중대장이 질근 입술을 깨물었다. 그사이 무전기로 계속해서 1중대 1소대의 위치가 보고되었다.
-취익, A조 공격조 3층 건물 입구에 도착! 현재 진입 작전을 펼칠 듯!
“오호 벌써?”
한종태 대대장이 눈을 반짝였다. 그러고는 옆에 있던 곽부용 작전과장에게 물었다.
“몇 분 지났지?”
곽부용 작전과장이 시계를 확인했다.
“네. 대략 8분 정도 지난 것 같습니다.”
“8분 만에 본 건물 입구까지 갔단 말이지?”
“지난 전술 훈련 때보다 확실히 빠른 것 같습니다.”
“지금 사상자도 없지?”
“네, 그렇습니다.”
“이거 잘하면 기록 세우겠는데.”
한종태 대대장이 우스갯소리로 말했다. 그럴수록 3중대장은 속이 타들어 갔다.
“2소대장은 대체 뭘 하고 있는 거야? 오상진이 책임지고 잡겠다고 큰소리칠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후우…….”
3중대장이 무겁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자 옆쪽에 앉아 있던 1소대장이 움찔하며 말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매복 작전은 실패했지만 작전대로 하면 쉽게 뚫리지 않을 겁니다.”
“확실한 거야?”
“물론입니다. 저희 1소대가 공격조를 맡았을 때도 2소대를 뚫는 데 애를 먹었습니다.”
“그런데 오상진이는 뭐야? 숫자도 2명이나 적다는데 8분 만에 본 건물까지 갔잖아!”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게 지금 내 앞에서 할 소리야?”
“죄, 죄송합니다.”
3중대장의 날 선 시선에 1소대장이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아무튼 1소대장 너도 각오 단단히 해. 이번에도 제대로 못 하면 알아서 하라고.”
“……네.”
그 시각.
푸슝! 푸슝!
틱! 티티틱 틱!
오상진이 이끄는 1소대가 모습을 드러내자 본 건물 3층에 있던 3중대 2소대의 집중 공격이 시작되었다.
적아가 명확한 상황에서 신중한 사격은 큰 의미가 없는 법.
그래서 3중대 2소대는 1소대가 건물 입구로 진입하는 걸 최대한 지연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1중대 1소대원들도 엄폐물에 몸을 숨기며 침착하게 대응 사격을 했다.
푸슝, 푸슝!
하지만 위에서 날아드는 공격이 워낙 거세다 보니 쉽사리 건물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이대로 소강상태에 빠져 시간을 허비한다면 3중대만 좋은 일 시키는 꼴이 될 터.
‘어떻게든 진입해야 해.’
오상진은 품에서 지도를 꺼냈다. 잠시 주변의 소음을 지우고 현재 위치와 주변 건물, 그리고 우회로가 있는지 다시 한번 확인했다.
그 순간 오상진의 머릿속으로 과거 사용했던 샛길이 떠올랐다.
‘맞아. 이쯤에 우회로가 있었지?’
오상진이 눈을 번쩍하고 떴다. 그리고는 곧바로 김대식 병장을 보았다.
“대식아.”
“병장 김대식.”
“너 철모랑 내 철모랑 바꾸자.”
“네?”
김대식 병장이 눈을 크게 떴다. 주위에 있던 다른 소대원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오상진은 이렇다 할 설명도 없이 자신의 철모를 벗었다.
“설명은 나중에. 어서 벗어서 줘.”
“아, 네네.”
김대식 병장이 얼떨결에 철모를 벗어서 건넸다. 오상진이 자신의 철모를 김대식 병장에게 건넨 후 말했다.
“대식아, 이제부터 네가 소대장이다.”
“네? 갑자기 무슨 말씀이신지…….”
김대식 병장은 오상진의 갑작스러운 지시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오상진도 일일이 설명해 줄 여유가 없었다.
대신 오상진은 박중근 하사를 바라봤다.
“박 하사와 해진이, 영일은 나와 함께 움직인다.”
“네.”
“일병 이해진, 알겠습니다.”
“일병 조영일, 알겠습니다.”
박중근 하사도 의문스럽긴 마찬가지였지만 일단은 교전 중이기 때문에 군말 없이 오상진의 말에 따랐다.
그렇게 조를 나눈 오상진이 김대식 병장에게 임무를 주었다.
“대식아,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잘 들어라.”
“네. 소대장님.”
“아까 말했듯 넌 지금부터 소대장이 되는 거야. 위험하지 않은 선에서 자주 모습을 노출해서 내가 여기에 있다고 믿게 만들어라. 무슨 소리인지 알겠지?”
“아, 네. 제가 이목을 잡아끌면 되는 겁니까?”
“그래. 그렇다고 너무 소극적으로 굴면 저쪽에서 밀고 내려올 수도 있으니까 연기를 잘해야 해. 할 수 있지?”
“네. 소대장님. 저만 믿으십시오.”
최용수 병장이 군사 재판을 받게 되면서 본의 아니게 1소대의 최고참이 되긴 했지만 김대식 병장은 아직도 분대장보다 소대를 직접 이끄는 부분대장의 역할이 좋았다. 그래서 오상진이 맡긴 중요한 임무를 꼭 해내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나와 박 하사는 샛길을 통해 돌아서 뒷문으로 침투할 거야. 그러니까 적당히 견제 사격을 하면서 시선을 끌어줘야 해.”
“네! 맡겨 주십시오.”
“좋아. 박 하사, 준비되었으면 이동하지.”
“네.”
옆에서 듣고 있던 박중근 하사가 군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오상진 이하 별동대는 엄폐물을 이용해 우회로로 향했다.
오상진이 다른 상병들을 두고 이해진 일병과 조영일 일병을 선택한 이유는 체력검정 때 특급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경험은 상병들이 많을지 모르지만 몸을 사리지 않는 건 일병들이 최고였다.
“쉴 시간 없다. 힘들더라도 계속 간다!”
“넵!”
“알겠습니다.”
오상진은 두 일병을 재촉해 부지런히 우회로를 따라 움직였다.
그러는 동안 김대식 병장은 계속해서 발이 묶인 것처럼 오상진의 철모를 쓴 채로 남은 분대원들을 지휘했다.
“계속 공격해!”
“김 병장님! 좀 앉으십시오. 그러다 맞으실지도 모릅니다!”
“내 걱정은 말고 사격이나 똑바로 해. 인원이 빠진 거 알면 소대장님이 위험해지실 수 있어!”
김대식 병장은 직접 총을 들고 3층을 향해 발사했다.
푸슝! 푸슝!
그러자 건물 3층을 장악하고 있던 3중대 2소대 병력도 지지 않고 반격을 날렸다.
분위기가 달아오르자 김대식 병장은 다시 엄폐물 뒤에 몸을 숨겼다. 그리고 소대원들에게 말했다.
“무리하지 말고 최대한 몸을 숨겨!”
“알겠습니다.”
그렇게 김대식 병장은 오상진을 대신해 3중대 2소대원들의 이목을 잡아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