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100화
13장 내 생에 봄날은 왔다(7)
“또 전술 훈련입니까? 아니, 도대체 전술 훈련이 뭐 하는 겁니까? 이참에 제대로 설명 좀 해보십시오.”
같은 군인이지만 한 대위는 의무관이라 전술 훈련에 관해서는 잘 몰랐다.
“그게 말입니다. 우리 부대가 주로 맡은 것은 시가전 전술 훈련입니다. 우리는 아시다시피 서울에 본거지를 둔 부대입니다. 그래서 전쟁이 벌어졌을 때 주로 도심에서 전투를 합니다. 빌딩에 숨어 있는 적들을 색출해 내거나, 인질 구출, 그리고 빌딩 장악 등 여러 가지 상황을 두고 그에 맞는 전술을 훈련을 하는 것입니다.”
“오호. 듣고 보니 재미있을 것 같은데요? 그런 훈련이라면 한 번쯤 받아봤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이번 기회에 한번 받아보시겠습니까?”
“말이 그렇다는 겁니다, 말이! 한 달 후면 전역인데 몸 상할 일 있습니까. 그러다 우리 소희 씨가 알면 난리 납니다.”
“하하하, 알겠습니다.”
“아참, 아침 식사는 안 했죠?”
“했을 리가 없지 않습니까.”
“그럼 가죠. 같이 아침이나 합시다.”
“좋습니다.”
한 대위가 한발 앞서 방을 나섰다.
오상진도 대충 옷을 갈아입고 한 대위의 뒤를 쫓았다.
11.
다시 하루가 지난 다음 날.
시가지 전술 훈련의 아침이 밝았다.
한종태 대대장이 슬쩍 대진표를 확인했다. 1중대 옆에 3중대가 떡하니 있었다.
“뭐야? 대진표가 왜 이래? 이거 누가 짰어?”
김한용 중위가 손을 들었다.
“제가 짰습니다.”
“왜 이렇게 짰어?”
“그건 대대장님께서 알아서 짜라고 해서 말입니다. 제비뽑기를 했습니다.”
“제비뽑기? 환장하겠네. 무슨 이런 일로 제비뽑기까지 하고 난리야.”
한종태 대대장이 한숨을 내쉬었다.
별생각 없이 짰다고 하면 한소리 하려고 했는데 공평함을 위해 제비뽑기까지 했다니 할 말이 없었다.
“뭐, 이렇게 된 거 어쩔 수 없겠어. 그래도 뭐 1중대가 워낙에 잘하니까 별걱정 안 해도 되겠지.”
그때 곽부용 작전과장이 한종태 대대장을 불렀다.
“대대장님.”
“왜?”
곽부용 작전과장이 옆쪽으로 눈짓을 주었다. 그곳에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 오른 3중대장이 콧김을 뿜으며 앉아 있었다.
그제야 한종태 대대장은 자신의 혼잣말이 생각보다 컸음을 깨달았다.
“물론 우리 3중대도 잘하지. 우리 부대 최고들 아닌가? 하하. 이거 둘이 붙으면 결승전이나 다름없겠어?”
“네, 맞습니다.”
곽부용 작전과장이 넌지시 장단을 맞춰 주었다. 하지만 3중대장은 이미 기분이 상할 대로 상해 있었다.
그때 3중대장이 보란 듯이 손을 들었다.
“뭐야? 갑자기 왜?”
“건의 드릴 것이 있습니다.”
“그럼 말로 하지 뭐하러 손을 들어? 말해.”
“지난번 체력 검정 때 대대장님께서 우승팀에게 포상을 해주셨지 않습니까. 이번에 전술 훈련에도 열심히 할 수 있게 포상 좀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뭐, 포상? 뭔 퍽 하면 포상이야? 내가 돈이 남아도는 것도 아니고. 그것도 전부 내 사비로 사준 건데 그걸 또 하자고? 내가 무슨 통장이야?”
한종태 대대장의 말에 3중대장은 입을 꾹 다물었다.
짠돌이 한종태 대대장이 저리 나오면 더는 요구할 수가 없을 것 같았다.
그런데 한종태 대대장은 그런 3중대장의 표정이 신경 쓰였다. 대놓고 말하진 않았지만 1중대장과 자신을 차별한다며 불만스러워하는 것 같았다.
그러자 곽부용 작전과장이 한종태 대대장에게 귓속말을 전했다.
“대대장님. 그냥 들어주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3사 쪽 중대장들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또야? 알았어, 알았다고. 젠장. 이번에도 LA갈비 쏜다. 대신 토너먼트가 아니니까 가장 성적이 좋은 중대 한 팀에게만 쏜다. 됐지?”
“넵! 그거면 충분합니다.”
한종태 중대장의 한마디에 3중대장의 표정이 밝아졌다.
반면 김철환 1중대장은 한숨이 절로 났다.
‘뭐야, 또 3중대랑 대결이야? 도대체 요즘 왜 이러지? 굿이라도 해야 하나?’
김철환 1중대장는 3사를 대표하는 3중대장과 자꾸 부딪치는 게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3중대장은 벼르고 벼르던 복수의 기회가 왔다는 사실을 반겼다.
‘두고 봐. 이번에는 제대로 밟아 줄 테니까.’
12.
월요일 아침 상황실 중앙에 거대한 모형 훈련장이 들어왔다.
그 모형 훈련장은 부대 외곽에 설치된 시가전 훈련장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이었다.
‘쩝. 작전과 계원들 이거 만드느라 또 며칠간 밤을 새웠겠네.’
김철환 1중대장이 모형 훈련장을 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만큼 모형 훈련장은 섬세하게 잘 만들어져 있었다.
“좋아. 잘 만들었네, 아주.”
한종태 대대장도 만족스러운 얼굴로 모형 훈련장을 살펴본 뒤에 자리에 앉았다.
“작전과장, 시작하지!”
“네.”
곽부용 작전과장이 손에 든 지휘봉을 움직여 모형 훈련장 이곳저곳을 가리켰다.
“이번 시가전 전술 훈련에 앞서 앞에 보이는 모형을 주목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번 훈련의 목표는 건물을 장악하고 있는 적을 섬멸하고 건물을 탈환하는 것입니다.”
곽부용 작전과장의 설명이 이어질수록 각 중대장과 참모들의 눈빛이 진지하게 변했다.
“이번 시가전 전술 훈련은 약 5일간 진행이 되며 서바이벌 장비를 이용한 ‘상호공방전’으로 운용하게 될 것입니다. 여기 모형을 보시게 되면 여러 가지 형태의 건물과 계단, 철조망, 하수구, 지하 통로 등 시가지에서 실제 마주칠 수 있는 환경들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곽부용 작전과장은 차근차근 설명했다.
“이번 시가전 모의전술공방전의 간략한 규칙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소대별로 공격과 수비로 나뉘어 실시하며 각 공방전 제한시간은 30분입니다. 승리 조건은 제한시간 안에 어느 한쪽을 전멸시키거나 혹은 마지막 건물 3층의 옥상을 점거하는 것입니다. 시간관계상 한 소대당 공격이나 수비를 한 번만 할 수 있습니다. 아울러 오늘 전술 훈련을 치를 중대는 이렇습니다.”
곽부용 작전과장이 한쪽 벽에 놓인 대진표를 가리켰다.
첫째 날.
오전, 1중대 A소대 공격. 3중대 A소대 방어.
3중대 B소대 공격. 1중대 B소대 방어.
오후, 1중대 C소대 공격. 3중대 C소대 방어.
3중대 D소대 공격. 1중대 D소대 방어.
둘째 날.
오전, 2중대 A소대 공격. 4중대 A소대 방어.
4중대 B소대 공격. 2중대 B소대 방어.
오후, 4중대 C소대 공격 2중대 C소대 방어.
2중대 D소대 공격 4중대 D소대 방어.
대진 방식은 간단했다.
4소대로 이루어진 중대끼리 오전과 오후 시간을 나누어 한 차례씩 공방을 주고받는 것이었다.
실제 전투처럼 치르기 위해 소대명은 알파벳으로 처리했고 소대 순서는 전투 직전 곽부용 작전 과장에게 제출하기로 했다.
이런 식으로 셋째 날, 넷째 날, 마지막 다섯째 날까지 훈련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잠시 뜸을 들이던 곽부용 작전과장은 새롭게 만든 규칙 설명을 이어갔다.
“지금부터 보다 나은 훈련을 위해 적용한 추가 규칙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일단 이번 훈련부터 타임어택 규칙을 적용하기로 했습니다. 승패를 떠나 가장 빨리 적을 섬멸하거나 기지를 탈환한 부대가 속한 중대에게 우승을 줄 생각입니다.”
타임어택이란 말에 중대장들의 표정이 달라졌다.
훈련이 게임도 아니고 시간 경쟁을 시키겠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곽부용 작전 과장도 괜히 이런 규칙을 만든 게 아니었다.
“다들 기억하겠지만 지난 시가전 전술 훈련 때 서로 버티기 작전을 쓰면서 시간을 허비하는 부대가 많았던 것으로 압니다. 물론 진짜 적도 아니고 계속 얼굴 보며 부딪칠 상대니까 무리하고 싶지 않은 건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비겨서 승패가 나지 않으면 무슨 훈련이 되겠습니까?”
곽부용 작전 과장의 일침에 상황실 안이 조용해졌다.
매년 반복적으로 해오는 훈련이다 보니 다들 안이한 마음이었다. ‘좋은 게 좋은 거지’ 하는 마음으로 훈련을 해온 감이 없지 않았던 것이다.
“게다가 이번에는 여기 계신 대대장님께서 특별히 LA갈비 세트를 1등 포상으로 내거셨습니다. 당연히 지난 전술 훈련 때처럼 대충대충 해서는 안 되겠죠? 그러니 새로 바뀐 규칙을 잘 참고해서 실전 같은 마음으로 훈련에 임해주길 바랍니다.”
곽부용 작전 과장의 말에 다들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때 5중대장이 손을 들고 질문했다.
“사상자와 상관없이 무조건 빨리 승리하면 되는 겁니까?”
“물론 아닙니다. 적극적인 참여를 위해 타임어택 규칙을 적용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병사들을 무리하게 희생시키는 작전은 용납하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사상자 한 명당 2분의 추가 시간을 더할 생각입니다.”
곽부용 작전과장이 진지하게 설명했다. 간부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이어리에 메모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렇게 모든 보고가 끝이 나고 한종태 대대장이 흡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좋았어. 작전과장 수고했어.”
“네.”
곽부용 작전과장이 자리에 앉았다.
한종태 대대장이 간부들을 쭉 훑어보며 말했다.
“매번 하는 훈련이라고 해서 대충하지 말고 이번 훈련은 다들 최선을 다해서 임해주기 바란다. 다들 오늘을 위해서 오랫동안 준비를 했을 테니까 기대해도 되겠지?”
한종태 대대장이 중대장 한 명 한 명과 눈을 맞췄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김철환 1중대장을 지그시 바라본 뒤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를 따라 앉아 있던 모든 간부가 일어났다.
“됐어.”
한종태 대대장이 손을 휘젓고는 밖으로 나갔다. 그렇게 회의가 마무리되었다.
“하아, 이거 참…….”
“이번에도 5중대야? 왜 맨날 너희만 만나지?”
“누가 할 소리. 그보다 1중대랑 3중대가 제일 볼만하겠는데?”
“그러게 말이야. 또 한 번 피 터지겠군.”
중대장들은 대진표를 확인하며 불만을 늘어놓았다.
이번 전술 훈련은 토너먼트 방식이 아니다. 소대끼리의 전투를 통해 승자와 패자를 나누며 그중에서 가장 빨리 적진을 점령한 부대가 있는 중대가 1등을 하는 방식이었다.
당연하게도 상대가 어떤 부대냐에 따라 승패가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김철환 1중대장도 결연한 얼굴로 행정반으로 돌아왔다. 그곳에는 이미 각 소대장과 부소대장들이 회의를 할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모두들 자리했나?”
“네!”
“자, 오늘부터 시가전 전술 훈련하는 거 알지?”
“네.”
“지난 한 달간 준비를 잘해왔으니까 오늘 꼭 유종의 미를 거두자고. 알았지?”
“네, 알겠습니다.”
“그전에 새롭게 바뀐 규칙에 대해서는 들었나?”
“네. 작전장교로부터 전해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그럼 따로 설명할 필요는 없을 거 같고. 우리 상대는 3중대다.”
“허, 또 3중대입니까?”
김철환 1중대장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4소대장이 반사적으로 투덜거렸다. 최근 들어 무슨 일만 생겼다 하면 3중대와 붙는 기분이었다.
오상진의 입가에도 쓴웃음이 번졌다. 이미 들어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다시 들어도 찜찜함이 가시질 않았다.
2소대장과 3소대장의 표정도 마찬가지였다. 4소대장처럼 대놓고 불만을 내뱉지는 않지만 같은 3사 출신인 3중대장이 이끄는 중대와 경쟁한다는 게 맘이 편할 리 없었다.
“진짜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열불이 나네. 툭하면 3중대랑 붙어? 4소대장 생각은 어때? 작전과 이것들이 일부러 그렇게 붙인 거 같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