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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리셋 오 소위-99화 (99/1,018)

< 13장 내 생에 봄날은 왔다(6) >

인생 리셋 오 소위! 098화

13장 내 생에 봄날은 왔다(6)

“오빠 후배가 하는 레스토랑이라고 했던 거 같은데 솔직히 전 별로예요. 그렇다고 서비스가 좋은 것도 아니고.”

“그럼 소희 씨는 어떤 음식 좋아하시나요?”

“벌써 애프터 신청하시는 거예요?”

“아, 제가 또 실수했나요?”

“칫. 뭐래. 음식 나오네요. 너무 큰 기대는 말고 맛있게 먹어요, 우리.”

때마침 음식이 나오고 두 사람은 식사를 시작했다.

이런 자리에서 한소희 같은 미인과 함께 식사하는 건 처음이다 보니 오상진은 조금 허둥댔다.

다른 여자들 같았다면 오상진을 보며 촌스럽다거나 창피하다고 생각했겠지만 한소희는 오히려 그런 오상진이 좋았다.

적어도 자신을 어떻게 해보려고 되지도 않는 느끼한 멘트를 날려대는 남자들보단 백번 나아 보였다.

그렇게 식사를 끝마치고 오상진과 한소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상진이 계산서를 들고 계산대로 갔다. 그 옆으로 한소희가 다가와 섰다.

카운터에 선 종업원이 밝은 얼굴로 말했다.

“식사 맛있게 하셨습니까?”

“네.”

오상진이 답했다. 그러자 웨이터가 슬쩍 한소희를 훔쳐보고는 오상진에게 묘한 시선을 보냈다.

그런 줄도 모르고 오상진이 지갑을 꺼내려 하자 한소희가 냉큼 오상진의 손을 잡았다.

“오빠, 오늘 점심은 제가 살게요.”

“아, 아니야. 괜찮습니다.”

“왜요? 항상 오빠가 샀는데 이번에는 제가 살게요. 네?”

오상진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또다시 오빠라 부르는 한소희에게 어떻게 장단을 맞춰야 할지 난감하기만 했다.

그사이 한소희가 냉큼 자신의 지갑을 꺼내 카드를 내밀었다.

“이걸로 계산해 주세요.”

“이 카드로요?”

“왜요? 설마 한도 초과일까 봐 그래요? 걱정 말고 긁으세요. 밥값 정도는 있으니까요.”

“아, 네에.”

종업원이 멋쩍게 웃으며 한소희의 카드를 긁었다. 왠지 저것도 철저하게 계산된 연기일 거라 여겼지만

지직. 지지직.

아무렇지도 않게 영수증이 출력됐다.

“오빠. 얼른 가요. 영화 시간 늦겠어요.”

카드를 받아 든 한소희가 오상진의 팔짱을 끼고 가게를 나섰다.

오상진은 한소희와 엘리베이터를 탄 후 조심스럽게 물었다.

“소희 씨, 조금 전에는 왜 그랬어요?”

“뭐가요?”

“아니, 주문할 때도 그렇고, 계산할 때도 그렇고.”

“그냥요. 좀 기분 나빠서요.”

“······.”

“왠지 절 순진한 오빠 등쳐먹는 꽃뱀처럼 보는 거 같았거든요.”

“아, 그랬어요?”

오상진의 표정이 또다시 당혹스럽게 변했다. 오빠라는 호칭 속에 자신에 대한 호감이 숨겨져 있을지도 모른다고 기대했는데 혼자서 김칫국을 들이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친오빠인 한 대위에게도 퉁명스럽게 구는 한소희가 아무에게나 오빠라 부를 리 없었다.

“그런데 우리 이제 뭐 해요?”

1층에 엘리베이터가 도착하자 한소희가 물었다.

“아까 영화 시간 다 되었다면서요. 영화 보러 가요.”

오상진이 살짝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러자 한소희가 짓궂은 표정을 지었다.

“그냥 해본 소린데, 정말 영화 보자고요?”

“그럼 다음에 볼까요?”

“뭐야, 남자가 이랬다저랬다. 하나만 딱 정해요.”

“그럼 보러 가요.”

“저 때문에 마지못해 보러 가는 거 아니죠?”

“그럴 리가요. 제가 보고 싶어서 그렇습니다.”

“그래요? 그럼 보고 싶은 영화 있어요?”

“소희 씨가 보고 싶은 영화요.”

“······네?”

“여기서 이러지 말고 일단 영화관부터 가 보죠. 아, 저기 있네요. 영화관.”

혹시나 싶어 미리 검색해 둔 영화관을 향해 오상진이 손가락을 가리켰다. 그러느라 한소희가 잠시 묘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봤다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다.

10.

다음 날 오상진은 알람시계에 맞춰 관사에서 눈을 떴다.

“오늘은 좀 피곤한데?”

침대에 걸터앉아 정신을 차리려는데 그때 관사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 시간에 누구지?”

오상진은 김철환 1중대장인가 싶어 문을 열었다.

하지만 문 앞에 서 있는 건 김철환 1중대장이 아니라 한 대위였다.

“한 대위님?”

“오 소위. 잘 잤어요? 내가 잠 자는 거 깨운 건 아니죠?”

“아닙니다. 이제 막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로······.”

“그게······ 들어가서 이야기하면 안 됩니까?”

“아, 네에. 일단 안으로 들어오십시오.”

허락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한 대위는 냉큼 집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잠시 두리번거리다가 의자에 앉았다.

오상진도 침대에 걸터앉아 눈곱을 정리했다.

“그런데 이 시간에 무슨 일이십니까?”

“어쩐 일이겠습니까?”

“아, 혹시 소희 씨 때문에 오신 겁니까?”

“그럼 그거 말고 뭐가 더 있겠습니까. 소희는 물어도 알려 주지 않을 것 같고 내가 너무 답답해서 이렇게 직접 찾아왔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어제 둘이 뭐 했습니까?”

여기까지만 듣고 보면 드라마 속에 종종 등장하는 동생을 걱정하는 팔불출 오빠가 틀림없었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한 대위는 오상진과 한소희가 진심으로 잘 되길 바란다는 정도였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오상진은 한 대위의 기대를 충족시켜 줄 수가 없었다.

“그냥 밥 먹고, 영화 보고 그랬습니다.”

“영화 보고 뭐했습니까?”

“잠깐 대화 좀 하다가 택시 태워서 보냈습니다.”

“그게 답니까?”

“네.”

“하아. 왜 그렇게 빨리 헤어졌습니까! 간단하게 술이라도 먹고 좀 더 시간을 보내시지.”

“어제 낮에 만났지 않습니까. 첫 날에 그 정도면 오래 보냈다고 생각합니다.”

“뭐, 그건 그렇고. 어떻습니까? 제 동생 맘에 드십니까? 담에 또 만날 생각이 있습니까?”

한 대위의 노골적인 질문에 오상진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저는 솔직히 좋습니다.”

솔직히 한소희가 한 대위의 친동생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부담스러웠던 게 사실이다. 김소희 중위와 잘 되는 것만 해도 벅찰 텐데 한 대위 집안에 자신까지 일을 보태고 싶지 않은 마음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한소희와 영화를 보고 대화를 나누면서 자신도 모르게 호감이 생겼다.

물론 예쁜 외모도 크게 한몫했겠지만 다시 한번 만날 수 있다면 만나보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아, 그렇습니까. 다행입니다.”

조마조마한 얼굴로 오상진의 대답을 기다렸던 한 대위가 가슴을 쓸어내렸다. 초반에 너무 실례를 한 건 아닐까, 그래서 오상진이 혹시 싫어하지는 않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도 잘 풀린 모양이었다.

“그런데 소희 씨는 뭐라고 합니까?”

“그렇지 않아도 이 녀석에게 물어봤는데 이걸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여태껏 그런 반응을 처음이었습니다.”

“뭐라고 했는데 그러십니까?”

“자기 연애에 끼어들지 말라고 하더라고요.”

“아, 네.”

살짝 긴장했던 오상진이 피식 웃고 말았다.

표현 그대로 받아들이자면 대단할 게 없는 말이었다.

하지만 한소희를 잘 아는 한 대위는 ‘자기 연애’라는 표현이 꽤나 충격적이었다.

사실 한 대위가 한소희에게 남자를 소개시켜 준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워낙에 예뻐서 주변에서 관심을 갖는 남자들이 많다 보니 그나마 상태 괜찮은 친구들 몇 명 소개시켜 준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한소희에게 단 한 번도 좋은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나랑 장난해? 왜 이런 남자를 소개시켜 줘?”

“오빠. 그 사람하고 놀지 마. 그 사람 완전 마마보이던데?”

“앞으로 나한테 누구 소개시켜 준다고 말하기만 해봐.”

매번 이런 식이었다. 그런데 처음으로 전혀 다른 반응이 튀어나와버렸다.

그리고 그 속에 숨은 의미야 뻔했다.

최소한 한소희도 오상진에게 호감을 갖고 있다는 뜻이었다.

“난 진짜 우리 소희랑 오 소위랑 진심으로 잘 되었으면 합니다. 그래서 나중에 우리 넷이서 커플 데이트를 했으면 좋겠습니다. 어떻습니까?”

두 사람의 마음이 통했다는 사실에 한 대위는 벌써부터 상상의 나래를 펴기 시작했다.

“올 여름에 펜션을 빌려서 같이 노는 게 어떻습니까? 요즘 풀빌라 좋은 곳 많다던데. 아니지, 아니야. 아예 해외로 나가는 것은 어떻습니까?”

한 대위의 말에 오상진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한 대위님, 저 아직 군인입니다. 해외는 좀 그렇습니다.”

“그런 게 어디 있습니까. 나가면 나가는 거죠.”

한 대위는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리며 혼자 기뻐했다.

오상진은 설레발 치는 한 대위에게 말했다.

“그런데 소희 씨가 별로 안 좋아할 것 같습니다.”

“우리 소희가 왜요?”

“제가 듣기로는 김소희 중위님하고 좀······.”

순간 한 대위의 표정이 굳어졌다.

“허, 벌써 그 얘기까지 했습니까?”

오상진이 어색하게 웃었다. 그러다 어제 한소희와 커피숍에서 나왔던 대화를 떠올렸다.

“그런데 소희 씨. 뭐 하나 물어봐도 돼요?”

“뭔데요?”

“그날 말입니다. 우리 부대에 무슨 일로 오셨던 거예요?”

“왜요? 상진 씨 몰래 숨겨 놓은 군인 남자 친구라도 있을까 봐서요?”

“그런 뜻이 아니라······.”

“농담이에요. 그날 오빠가 여자 친구를 소개시켜 준다고 해서 갔어요.”

“아, 김 중위님 만나셨구나. 그런데 좀 화가 나신 거 같던데······.”

“아, 그거요. 사실 오빠 때문에 조금 짜증이 나 있긴 했어요. 그런데 택시는 안 잡히는데 병사들이 자꾸 이상한 눈으로 힐끔거려서 화가 났었어요.”

“그랬군요.”

오상진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솔직히 한 대위와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했지만 한소희에게 대놓고 물어 볼 용기는 나지 않았다.

그런 오상진의 속내를 읽기라도 한 듯 잠시 뜸을 들이던 한소희가 그 날의 일을 알려주었다.

“웃긴 게 여자 친구 소개시켜 준다고 해서 날 불러놓고, 내 앞에서 어찌나 염장질을 하는지······.”

“염장질이요?”

“참, 상진 씨도 알죠. 김 중위 이름 저랑 같은 거.”

“네네, 알죠.”

“그런데 내 앞에서 우리 소희! 우리 소희! 하는데 얼마나 열이 받던지.”

“아, 하하하. 그랬습니까.”

“이름 같은 것도 별로인데 오빠 앞에서 여우 짓 하는 것도 꼴 보기 싫어서 한마디 했다가 오빠가 나가라고 소리 질러서 나간 거예요.”

“아이구.”

“그런데 그게 제가 그렇게 잘못한 거예요?”

한소희의 서운한 시선이 오상진에게 향했다.

그러자 오상진이 냉큼 한소희의 편을 들었다.

“제가 보기에 한 대위님이 너무 하셨습니다.”

“그렇죠?”

“네. 아무리 그래도 여동생이 먼저 아니겠습니까.”

“맞아요. 내 말이 그 말이에요.”

그날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오상진과 한소희는 좀 더 가까워졌다.

오상진은 어젯밤을 생각하며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그러자 한 대위가 슬그머니 입가를 끌어 올렸다.

“이거 제가 괜한 걱정을 한 것 같습니다. 혹시 다음에 언제 보기로 했습니까?”

“그건 아직 안 정했습니다.”

“왜 안 정합니까! 자주 만나야 정도 쌓이고, 아니지 사랑도 무럭무럭 쌓일 텐데. 무엇보다 진도도 팍팍 나가고 말이죠.”

“하하하, 소희 씨하고 한번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그래도 다음 주 주말에는 한 번 만나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한 대위가 채근하듯 말했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고 기껏 만들어진 호감이 사라질까 봐 걱정됐다.

그러자 오상진이 아쉽다는 듯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다음 주에는 전술 훈련이 잡혀 있습니다.”

< 13장 내 생에 봄날은 왔다(6)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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