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장 내 생에 봄날은 왔다(1) >
인생 리셋 오 소위! 093화
13장 내 생에 봄날은 왔다(1)
1.
오상진은 평소보다 이른 시각, 아침 7시 30분에 출근을 마쳤다.
“후후. 내가 1등인가?”
중대 행정반에 도착을 했지만 다들 출근 전이었다.
오상진은 홀로 책상에 앉아 오늘 교육할 내용을 숙지했다.
“일정이 바뀐 건 없지?”
오상진은 먼저 주간 훈련 예정표를 체크했다. 혹시 전날 결산에서 어떻게 바뀌었는지 확인도 하기 위함이었다.
“오늘부터 중대 훈련이 맞네. 그렇다면 전술훈련을 중점적으로 해야 하는데······.”
오상진은 조용히 훈련 관련 사항들을 훑었다.
그때 문이 열리며 박중근 하사가 출근을 했다. 그는 곧장 오상진에게 다가갔다.
“소대장님. 좋은 아침입니다.”
“어? 박 하사. 이제 나옵니까?”
박중근 하사가 미소를 띠며 입을 열었다.
“요즘 소대장님이 가장 먼저 출근하시는 것 같습니다.”
오상진이 피식 웃었다.
“박 하사도 일찍 나오셨습니다.”
“저는 소대장님을 뵈려고 일찍 나왔습니다.”
“저를 말입니까?”
“네.”
오상진이 자세를 바로잡으며 말했다.
“따로 할 말이라도 있습니까?”
“우선 어제 모금 건에 대해서 감사 인사를 못 건넸습니다. 신경 써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모금이 어디 나 혼자 한 것입니까. 모든 부대원이 다 같이 힘을 보태준 거죠. 그런데 수술은 어떻게 됐습니까?”
“네. 소대장님 덕분에 수술 날짜 잡았습니다.”
“잘 되었습니다.”
“그보다 말입니다.”
“네.”
“어제 봉투를 확인······.”
박중근 하사가 막 말을 하려는데 행정반 문이 열리며 다른 소대장들이 들어왔다.
“1소대장님. 좋은 아침입니다.”
“네, 좋은 아침입니다.”
서로 인사를 하며 각자 자리로 갔다. 오상진이 그들에게 인사를 한 후 다시 박중근 하사를 보았다.
“박 하사. 아까 하던 말 계속해 보십시오. 뭘 물어보려고 하셨습니까?”
“아, 아닙니다.”
박중근 하사는 생각보다 많은 모금액에 대해 물어보고 싶었지만 다른 사람들이 있어 애써 입을 다물었다.
“아무튼 감사합니다.”
박중근 하사가 다시 인사를 했다. 오상진이 고개를 흔들었다.
“아닙니다, 여기 있는 모두가 도움을 주셨습니다.”
오상진의 말에 박중근 하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행정반에 있는 간부들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뜻을 전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소대장님들과 동료들의 도움으로 저희 아들 무사히 수술받게 되었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거참, 당연한 걸 가지고······. 아무튼 잘 되었습니다. 무사히 수술되길 빌겠습니다.”
3소대장이 말했다. 곧이어 4소대장과 각 부소대장들이 한마디씩 했다.
“이것이 진정한 전우애 아닙니까. 안 그렇습니까?”
“맞습니다. 당연히 서로 도와야죠.”
“아무튼 좋게 해결되어서 다행입니다.”
“이제 박 하사 아들만 무사히 수술 마치면 되는 겁니다.”
“네.”
박중근 하사가 살짝 감동한 얼굴로 자리에 돌아갔다. 오상진은 그런 박중근 하사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엊그제까지만 해도 굳어 있던 박중근 하사의 얼굴이 다시 밝아졌다는 게 기분 좋았다.
그러다 박중근 하사와 눈이 마주치자 오상진은 언제 그랬냐는 것처럼 책상 위로 고개를 돌렸다.
“어디 보자. 오늘은······.”
오상진은 교범을 참고하며 찬찬히 내용을 다시 한번 숙지했다. 그때 박중근 하사가 다시 오상진의 옆으로 다가왔다.
“아까 하려던 말 때문에 온 겁니까?”
“아닙니다. 소대장님. 오전 훈련을 보니 인질구출작전에 관한 전술훈련이 되어 있어서 왔습니다.”
“네, 저도 방금 확인했습니다.”
“허락해 주신다면 이 훈련은 제가 진행하겠습니다.”
“에이, 왜 혼자 하려고 합니까. 같이 하죠.”
“아닙니다. 저 혼자 해도 충분합니다.”
박중근 하사는 오상진에 대한 고마움을 어떻게든 보답하고 싶었다. 하지만 오상진은 이런 식으로 박중근 하사에게 일을 떠넘기는 상관이 되고 싶지 않았다.
“저도 집안일 때문에 요즘 부대에 소홀했잖습니까. 이제는 집안일도 대충 끝이 났으니까 그동안 신경 못 쓴 거 만회 좀 할 생각입니다. 그러니까 같이 하죠.”
오상진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박중근 하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소대장님께서 직접 지휘하시고, 저는 후방지원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네. 좋죠. 이쪽에 앉으십시오. 합을 맞춰 봅시다.”
“네.”
오상진과 박중근 하사는 시가전 전술훈련에 관해서 서로 토의를 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못마땅한 눈으로 바라보던 2소대장이 살짝 인상을 썼다.
“쳇! 인질구출작전을 가지고 호들갑은. 그 훈련을 어디 하루 이틀 하나. 안 그래?”
2소대장이 자신의 옆으로 다가온 부소대장, 김 하사를 보며 물었다. 김 하사가 곧바로 말했다.
“그래도 저렇게 논의하면서 하면 좋지 않겠습니까?”
“논의? 그런 걸 해서 뭐하려고? 전쟁이 논의한 대로 된대?”
“그건 아니지만······.”
“저런 거 다 필요 없어. 그냥 몸으로 부딪치고 경험하는 게 최고라고.”
“그, 그렇긴 하죠.”
“그건 그렇고 김 하사.”
“네.”
“자네 박 하사가 행동하는 거 봤지?”
“무슨······.”
김 하사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자 2소대장이 답답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거참! 자넨 눈치가 없는 거야? 아니면 일부러 모른 척하는 거야?”
“무슨 말씀이신지 잘 모르겠습니다.”
“박 하사 봐봐. 알아서 자신이 나서서 하겠다고 하잖아. 자네도 저런 건 좀 본받아야 하지 않아?”
“아, 예에······.”
“쯧쯧쯧, 그렇게 만날 눈치가 없어서 어떻게 해. 이런 식이라면 중사 달기도 힘들겠다.”
순간 김 하사의 눈빛이 사납게 변했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알아채지 못한 2소대장은 언제나처럼 제 할 말만 떠들어댔다.
“아무튼 눈치 좀 있자. 눈치 좀!”
“네, 알겠습니다.”
김 하사는 잔뜩 굳어진 얼굴로 대답했다. 2소대장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튼 오늘 난 물리치료 받으러 갔다 와야 하니까. 알아서 훈련시켜.”
“네. 다녀오십시오.”
“그래.”
2소대장이 행정실을 나가고, 김 하사는 인상을 썼다.
“언제는 내가 안 했나? 갑자기 왜 저래?”
김 하사가 혼잣말로 구시렁거렸다. 그러다가 4소대장과 눈이 마주쳤다.
“어?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충분히 이해합니다. 솔직히 2소대 일은 김 하사가 다 하지 않습니까.”
“역시 절 이해해 주시는 분은 4소대장님밖에 없습니다.”
“에이, 내가 또 언제 그랬다고······.”
김 하사가 말하고는 슬쩍 오상진을 보았다.
“그건 그렇고 1소대장님 진짜 좋은 일 하셨습니다.”
“네?”
“박 하사 일 말입니다.”
박중근 하사가 움찔했다. 오상진이 슬쩍 박중근 하사를 보면서 말했다.
“다들 함께하지 않았습니까. 어디 저 혼자 했습니까.”
“그래도 누군가 선뜻 나선 사람은 없죠. 사실 저도 박 하사가 힘들어하는 모습 보고 돕고 싶었지만 나서지 못했습니다. 막말로 어떻게 도와줄 방법도 없었고 말입니다. 그런데 1소대장님께서 나서서 해주시니 일이 잘 풀렸습니다. 진심으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하하, 자꾸 그러시니까. 부끄럽습니다. 그게 어디 제 공입니까. 모두 다 십시일반 돈을 모아서 해준 것이죠. 안 그렇습니까? 한마디로 전우애 아닙니까. 이번에는 제가 앞장섰을 뿐입니다. 오히려 제가 감사해야죠. 우리 박 하사 일에 이렇듯 도움을 주셔서 말입니다.”
오상진이 거듭 감사의 말을 전했다. 그러자 박중근 하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닙니다. 제가 감사해야 합니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다시 한번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이 은혜는 절대로 잊지 않겠습니다.”
“박 하사, 무슨 은혜까지······. 당연한 겁니다.”
“맞습니다.”
본의 아니게 또다시 박중근 하사의 모금 이야기를 하게 됐지만 덕분에 행정반 분위기는 다시 한번 화기애애해졌다.
오상진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자자, 벌써 9시가 다 되어갑니다. 오전 일과하러 가시죠.”
“네.”
“박 하사.”
“네. 준비 끝났습니다.”
그렇게 오상진과 박중근 하사는 전술훈련 교범을 들고 행정반을 나갔다.
2.
오전 일과가 모두 끝났을 때가 11시 40분쯤이었다.
오상진은 행정반에 와서 전술교범과 책상을 정리한 후 시계를 확인했다.
“자, 다들 점심들 먹고 하시죠.”
오상진이 말했지만 식사를 같이하자는 소대장은 없었다.
“죄송합니다. 1소대장님. 저 아직 일이 마무리 안 되어서 말입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병사 식당에서 간단히 해결해야 할 것 같습니다.”
3소대장과 4소대장이 고개를 흔들었다. 표정을 보니 두 사람만 따로 식사를 하려는 모양이었다.
“박 하사는 어떻습니까?”
오상진이 박중근 하사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박중근 하사도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소대장님 먼저 가서 식사하십시오. 저도 마무리해야 할 일이 있어서 말입니다.”
“그렇습니까? 알겠습니다. 그럼 저 먼저 먹고 오겠습니다.”
“네, 식사 맛있게 하십시오.”
오상진이 전투모를 챙겨서 행정반을 나섰다. 그리고 1중대장실에 노크를 해봤는데 문이 잠겨 있었다.
-중대장님. 점심 안 드십니까?
-나 약속 있어서 나왔는데 왜? 같이 먹자고?
-아닙니다.
-그래. 내일 같이 먹자.
“쩝, 오늘은 혼자 먹어야겠네.”
오상진이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간부식당으로 향했다. 간부식당은 대략 10여 분 거리에 있었다.
간부식당에 들어서자 홀에 있는 관리병들이 이리저리 바삐 움직였다. 그들의 손에는 갖가지 반찬들이 가득했다.
“어디 보자, 빈자리가······.”
때마침 창가 쪽에 자리가 있어 그곳으로 갔다. 자리를 잡고 앉자 곧바로 관리병이 다가와 상을 차렸다.
“오늘 메뉴가 뭐냐?”
“오늘 메뉴는 제육볶음입니다. 후식으로는 사과와 멜론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래. 고맙다.”
오상진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관리병이 곧바로 밥을 가져왔다. 그렇게 한 숟갈 뜰 때 간부식당으로 3중대장이 들어섰다. 그는 슬쩍 자리를 확인하다가 오상진을 발견하고 다가왔다. 오상진이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3중대장이 말렸다.
“됐어, 밥 먹어. 간부식당에서 무슨 경례야.”
“네. 3중대장님도 맛있게 드십시오.”
“그래. 오 소위도 맛있게 먹어.”
3중대장은 식탁에 차려진 반찬을 스윽 훑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제육볶음이네.”
그렇게 중얼거리며 지나가려던 3중대장이 발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슬쩍 고개를 돌려 오상진을 바라봤다.
“참, 오 소위, 내가 말했었나?”
오상진은 밥을 입에 넣다가 다시 내려놓았다.
“뭘 말입니까?”
“이번에 말이야. 우리 3중대에서도 이번에 모금할 때 힘 좀 썼다는 것을 말이야. 자네도 알다시피 우리 3중대가 워낙에 전우애가 깊지 않나.”
“아, 그 점에 대해서는 정말 감사히 생각하고 있습니다.”
“감사하다라······. 그러면 말만 감사하다고 하지 말고 앞으로 나한테 좀 잘해. 막말로 나처럼 다른 중대 일에도 신경 써주는 좋은 중대장이 어디 있나? 안 그래?”
“아, 네에······.”
오상진은 어색하게 웃었다.
그 뒤로 3중대장의 생색이 이어졌다.
< 13장 내 생에 봄날은 왔다(1) > 끝
ⓒ 세상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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