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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리셋 오 소위-93화 (93/1,018)

< 12장 전우이지 말입니다(5) >

인생 리셋 오 소위! 092화

12장 전우이지 말입니다(5)

“얘들아, 소식 들었어?”

“어떤 소식 말입니까?”

“박중근 하사님 아들이 수술한다고 하네. 그래서 간부들이 지금 모금을 진행한다고 한다.”

“네? 모금 이야기는 없었는데 말입니다.”

“아무래도 간부 일이다 보니까 병사들은 뺄 모양인가 봐.”

“에이, 그러는 게 어디 있습니까? 우리 부소대장님 일인데 우리 소대도 조금이라도 모금하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차우식 상병이 말했다. 그러자 김대식 병장이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이야. 차우식! 제법인데? 네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줄은 몰랐다.”

“에이, 뭡니까? 저를 어떻게 보시고······.”

“미안하다. 그래, 우식이 말처럼 우리 소대만이라도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었으면 하는데 너희들 생각은 어때?”

“당연하지 말입니다. 박 하사님 저희를 엄청 챙겨주셨는데 말입니다.”

“맞습니다. 한 식구이지 않습니까?”

“이럴 때는 전우애 아닙니까?”

“맞습니다. 전우애!”

“후훗, 그래 고맙다. 우리도 조금 모아서 마음을 전하도록 하자.”

“네. 좋습니다.”

그때 이해진 일병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김 병장님. 제 생각인데 저희 소대만 모금하지 말고 1중대 전체도 의견을 물어보는 것이 어떻습니까? 모금을 할 정도면 수술비가 많이 드는 것 같은데 한 푼이라도 더 모으는 게 박 하사님에게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김대식 병장이 잠시 생각을 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내가 한번 알아볼게.”

“네.”

김대식 병장은 곧바로 1중대 행정보급관인 김도진 중사를 찾아갔다.

“행보관님.”

“오, 김 병장. 그래 무슨 일이야.”

“박 하사님 모금 이야기를 듣고 찾아 왔습니다. 저희 병사들도 조금은 도움을 드리고 싶어서 말입니다.”

“아이고, 이놈들 기특하네. 그런 의도라면 내가 도와줘야지. 어떻게 도와줄까?”

“각 소대 분대장들만 따로 모이면 어떻습니까?”

“그런 거야 쉽지! 알았다. 내가 따로 자리를 마련해 보마.”

“네.”

김대식 병장이 가고 김도진 중사는 흐뭇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기특한 자식들!”

그렇게 알게 모르게 병사들도 조금씩 모금에 참여하게 되었다.

5.

반나절을 허비해 오상진은 모든 중대를 돌며 모금을 마쳤다.

행정반으로 돌아오자 4소대장이 바로 물었다.

“벌써 다 하셨습니까?”

“하실 분들은 거의 다 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병사들도 모금 합니까?”

“에이, 굳이 병사들도 필요하겠습니까. 병사들 월급이 얼마나 된다고 말입니다. 왠지 코 묻은 돈 뺏는 기분입니다.”

“하긴 그렇죠.”

4소대장도 공감이 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3소대장이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모금은 얼마 정도 되었습니까?”

“대략 750만 원 정도 모인 것 같습니다.”

“네? 750만 원 말입니까?”

3소대장과 4소대장이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대대 규모를 감안했을 때 이 정도면 기대 이상의 성과였다.

물론 기천 만 원이 넘는다는 수술비로는 부족했지만 이 정도면 박중근 하사의 부담을 어느 정도 덜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시각, 박중근 하사는 은행 대출을 알아보기 위해 외출을 했다가 부대에 복귀하는 길이었다.

“후우······.”

차에서 내리는 박중근 하사의 얼굴이 많이 어두웠다.

그때였다.

“야, 박 하사!”

박중근 하사가 고개를 돌렸다. 저만치 김도진 중사가 손짓을 했다.

“넵!”

박중근 하사가 곧장 김도진 중사에게 뛰어갔다. 김도진 중사가 박중근 하사를 보며 물었다.

“외출 갔다 오는 거냐?”

“네.”

“대출 건 때문에? 어떻게 됐어?”

김도진 중사의 물음에 박중근 하사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긴. 주거래 은행도 안 되는데 다른 은행 찾아가 본다고 달라질 게 있겠냐. 아직도 많이 부족하냐?”

“네.”

“내가 적금까지 깨서 줬잖아. 그걸로 안 돼?”

그러자 박중근 하사가 살짝 어이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김 중사님. 그 적금 100만 원이 조금 넘던데 말입니다.”

“야 인마, 그거 내 전 재산이야. 그렇게 말하면 나 서운해.”

“네, 그래서 정말 감사히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니면 내가 집이라도 담보 잡혀서 대출이라도 받아줘?”

“아닙니다. 무슨 그렇게까지······. 제가 다른 곳 좀 더 알아보겠습니다.”

박중근 하사가 흐릿하게 웃었다. 상황은 힘들지만 이렇게나마 격려해 주는 김도진 중사가 있어서 마음이 든든했다.

그런 박중근 하사를 보며 김도진 중사가 얄밉게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그건 그렇고 박 하사, 너 소대장님 하나는 잘 뒀더라.”

“네?”

“오 소위님 말이야. 네 얘기 듣고 나서 부대 돌아다니면서 모금하고 있잖아.”

“네?”

박중근 하사의 두 눈에 당혹감이 번졌다. 아들이 수술받아야 한다는 걸 이야기한 건 김도진 중사뿐이었다.

그러자 김도진 중사가 미안한 얼굴로 말했다.

“솔직히 말 안 하려고 했는데 1소대장이 점심시간 이후에 날 찾아와 묻더라고. 처음에는 이 양반이 무슨 생각으로 물어보나 싶어서 좀 떠봤거든. 그런데 이 양반이 널 돕겠다더라. 솔직히 대대장님까지 설득할 줄은 몰랐다.”

“김 중사님, 뭐하러 그런 말씀까지 하셨습니까.”

“야, 조카 수술 때문에 네가 돈 구하러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는데 선배가 되어서 가만히 지켜볼 수 있겠냐.”

“하지만······.”

박중근 하사가 말끝을 흐렸다. 오상진에게 직접 도움을 청한 것도 아닌데 모금이 진행될 줄은 몰랐던 것이다.

“괜찮아, 인마. 그래도 1소대장 수완 좋더라. 오늘만 해도 거의 700만 원 가까이 모금을 한 모양이더라.”

“네? 그렇게나 많이 말입니까?”

“수술비가 1,000만 원 넘는다고 했지? 그것까진 안 되겠지만 그 정도면 어느 정도는 괜찮지 않아? 적어도 당장 입원이라도 시킬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리고 군부대에서도 이 정도 모으기 쉽지 않아. 너도 알잖아, 군인들 월급 뻔한 거.”

“알죠.”

“그러니까 괜히 자존심 내세우지 마. 그냥 고맙게 받으라고. 지금 박 하사가 생각할 것은 네 아들 철수야. 그 생각만 해.”

“······.”

박중근 하사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김도진 중사는 그 맘을 잘 알기에 어깨를 두어 번 두드려 준 후 사무실로 갔다.

6.

다음 날.

오상진은 조심스럽게 박중근 하사에게 다가갔다.

“저기 박 하사······.”

“네.”

“박 하사 아들 얘기는 들었습니다. 소대장으로서 그 얘기를 듣고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박 하사에게 양해도 구하지 않고, 제가 일을 좀 벌였습니다.”

“김 중사님께 대충 얘기는 들었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그럼 바로 얘기하겠습니다. 제가 얼핏 들어보니까. 수술비 및 입원비까지 포함하면 대략 1,500만 원 정도 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네.”

“아드님 수술비에 보태 쓰십시오. 다들 십시일반 모았습니다.”

“아, 네.”

박중근 하사는 떨리는 손으로 봉투를 받았다. 봉투는 생각보다 가벼웠지만 그 속에 쌓인 마음의 무게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였다.

“아무튼 이거 받으시고 수술 잘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아, 그리고······.”

오상진이 또 다른 봉투를 꺼내 내밀었다.

“이건 우리 병사들이 모은 모금입니다.”

“네?”

“솔직히 애들에게 부담이 될 것 같아서 말을 안 했는데 이 녀석들이 기특하게도 자발적으로 이렇듯 모금을 했습니다. 원래는 하나로 합칠까 했는데 녀석들의 맘이니까 그냥 모금한 그대로 주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따로 담았습니다.”

“제가 이걸······ 어떻게 받습니까.”

“그런 생각 하지 마시고, 우리 부대원들 마음이라고 생각하고 받아 주십시오.”

박중근 하사의 눈에 살짝 눈물이 고였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런 말 마십시오. 서로 힘들 때 돕는 게 진짜 전우 아니겠습니까? 그동안 제가 박 하사에게 신세 진 것이 많은데 제가 미리 챙기지 못했습니다.”

“아닙니다.”

“그리고 앞으로 이런 일이 있으면 나에게 먼저 말씀해 주십시오. 제가 박 하사 얘기를 행보관님에게 들어야겠습니까?”

“죄송합니다.”

“아무튼 수술 잘 되어서 좋은 결과가 있길 빌겠습니다.”

“네,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참, 수술 날짜는 잡혔습니까?”

“아뇨, 수술비 때문에 아직 못 잡았습니다.”

“그럼 어서 수술 날짜부터 잡으십시오.”

“네.”

“그리고 당분간은 아들에게 신경 쓰십시오. 소대 일은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제가 안 괜찮아서 그럽니다. 소대도 중요하지만 가족이 먼저잖습니까.”

“알겠습니다. 그리고 정말 감사합니다. 소대장님.”

박중근 하사는 울컥하며 몇 번이고 감사 인사를 건넸다.

7.

박중근 하사는 집으로 돌아와 아내에게 두 개의 봉투를 내밀었다.

“여보.”

“이게 뭐예요?”

“우리 부대에서 도움을 줬어.”

“그래요?”

아내의 표정이 환해졌다.

“대충 7, 800 정도 될 거야. 나머지는 내가 어떻게든 해볼게.”

“절반이라도 되는 게 어디에요. 정말 다행이에요.”

박중근 하사는 안방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그런데 돈 봉투를 확인하는 아내의 표정이 이상했다.

“왜 그래?”

“여, 여보!”

“혹시 돈이 적어?”

“그게 아니라 처, 천오백만 원이에요.”

“뭐?”

박중근 하사가 깜짝 놀라며 아내가 펼친 수표를 확인했다.

100만 원권 열다섯 장.

정확하게 1,500만 원이었다.

“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박중근 하사는 재빨리 휴대폰을 꺼내 김도진 중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김 중사님 접니다.”

-어, 그래. 박 하사. 왜?

“모금이 700만 원 정도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랬지. 내가 대충 돌면서 확인했으니까. 그런데 왜? 돈이 좀 비어?

“그게 아니라 1,500만 원이 들어 있습니다.”

-뭐? 모금이 1,500만 원이나 됐다고? 그럴 리가 없는데······.

“정말입니다.”

-그럼 대대장님께서 크게 쏘셨나? 아니지, 그럴 양반이 아닌데.

“그럼 어떻게 된 겁니까?”

-흠······. 혹시 너희 소대장은 별 얘기 없었어?

“네. 그냥 십시일반 모았다고만 했습니다.”

-그래? 그렇게 말했다면 소대장이 보탠 거 같은데. 혹시 적금이라도 깼나?

“네?”

-나한테 넌지시 물었거든. 얼마가 필요하냐고. 내가 그 이야기 해준 건 너희 소대장뿐이니까 아마 너희 소대장이 보탠 게 맞을 거다.

“아······.”

박중근 하사는 소파에 털썩 앉으며 낮은 신음을 흘렸다. 수화기 너머로 김도진 중사의 음성이 들려왔다.

-그건 그렇고 너 진짜 소대장 하나는 잘 만났다. 일단 수술이 급하니까. 그걸로 수술부터 해. 그리고 나중에 소대장에게 슬쩍 물어보고.

“네, 알겠습니다.”

박중근 하사는 전화를 끊고 고민했다. 정말로 오상진이 적금까지 깨서 도와준 것이라면 고맙지만 받을 수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속내를 모르는 아내는 어느새 담당 의사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네, 수술비 마련했어요. 이제 바로 수술 들어갈 수 있는 거죠? 네, 바로 입금할 테니까. 수술 날짜 잡아주세요. 네네.”

그렇게 통화를 하며 박중근 하사를 바라봤다. 그런 아내를 보는 박중근 하사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아내의 눈가에는 이미 눈물이 잔뜩 고여 있었다.

“여보, 우리 철수 수술 날짜 잡혔어요. 다음 주래요. 이제 우리 아들 살 수 있어요. 살 수 있다고요. 흐흑······.”

“그, 그래?”

아내가 기쁨에 눈물을 흘리는 모습과 아들의 수술 날짜가 잡혔다는 소리에 박중근 하사는 차마 돈을 돌려주자는 말이 입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래, 일단 받자! 철수부터 살리고 봐야지.’

박중근 하사는 자신도 모르게 주먹에 잔뜩 힘이 들어갔다.

‘감사합니다. 소대장님. 이 은혜 꼭 갚도록 하겠습니다.’

< 12장 전우이지 말입니다(5)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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