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장 전우이지 말입니다(4) >
인생 리셋 오 소위! 091화
12장 전우이지 말입니다(4)
“정말 그 양반 맞아?”
“네.”
“그 양반 엄청 짠돌인데 200만 원이나 냈다고?”
한종태 대대장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자 곽부용 작전과장이 조용히 말했다.
“그래서 제가 좀 알아봤는데 말입니다. 최 대령님께서 진급을 앞두고 계셨지 않습니까. 아마 그걸 염두에 두고 크게 내신 모양입니다.”
“그런다고 진급에 도움이 되겠어?”
“도움이 된 모양입니다. 그 일이 소문이 잘 나서 진급 점수에 플러스가 됐다고들 합니다.”
“그냥 소문 아냐?”
“실제로 국방부 신문까지 났다고 합니다.”
“그래?”
한종태 대대장이 까끌거리는 수염을 매만졌다. 비록 좌천성 인사를 당하긴 했지만 그 역시도 아직까지는 진급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있었다.
“그렇다면야······.”
한종태 대대장이 냉큼 표정을 바꿨다. 잠시 좋지 않았던 표정은 오간 데 없었다. 오히려 조금 전 결정을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정작 목돈을 내야 한다고 생각하니 속이 쓰라린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이백은 좀 과한 거 아냐?”
한종태 대대장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다가 곽부용 작전과장을 보며 물었다.
“작전과장 생각은 어때?”
“어떤 게 말입니까?”
“저쪽에서 200만 원을 냈잖아. 그럼 나도 200만 원을 내야 하는 거 아냐?”
“꼭 그럴 필요가 있겠습니까? 모금이야 마음이 중요하니 여유껏 내면 되는 것이지요.”
“그러다 소문이라도 나면? 최 대령이 200만 원을 냈는데 충성대대 대대장은 반도 안 냈다는 소문이라도 나면? 그때는 자네가 책임질 텐가?”
“그, 그건······.”
“그러니까 잘 생각해 보란 말이야. 내가 뭘 어떻게 하면 되겠나?”
“그렇다면 200만 원을 내시는 게······.”
“나야 그러고 싶지. 돈이 있으면 200만 원이 아니라 2,000만 원이라도 내고 싶어. 그런데 자네도 내 주머니 사정 알잖나. 그렇다고 비교당하고 싶지도 않고. 하아. 이 일을 어찌하면 좋을지 모르겠어.”
한종태 대대장이 한탄하듯 중얼거렸지만 그 말이 곽부용 작전과장에게는 달리 들렸다.
‘하아, 또 시작이네. 그래서 나보고 어쩌라고.’
보아하니 제 돈 내긴 아까우니 남의 돈으로 생색을 내고 싶은 모양인데 한두 푼도 아니고 200만 원을 떠안기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러시면 누가 얼마를 냈는지 비공개로 하고 적당히 하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그런다고 소문이 안 나겠어? 대충 모금액만 봐도 티가 날 텐데.”
“그럼 어떻게······.”
“그러니까 방법을 찾아보라고, 방법을!”
한종태 대대장이 작전과장을 닦달했다. 그러자 곽부용 작전과장도 더는 버티지 못했다.
“그럼 이렇게 하시죠.”
“어떻게?”
“대대장님께서 200만 원 냈다고 하고, 부족한 금액은 저희들이 십시일반 채워 보겠습니다.”
순간 한종태 대대장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렇게까지 해야겠어? 이거 내가 자네들한테 너무 부담 주는 거 아냐?”
“아닙니다.”
“뭐, 자네 생각이 그렇다면 그렇게 한번 추진해 봐. 그럼 나는 얼마쯤 내면 되려나? 그래도 20만 원은 내야겠지?”
“조, 조금 더 쓰심이······.”
“까짓거 인심이다. 30. 나머지는 자네들이 알아서 해결해 봐.”
“······알겠습니다.”
곽부용 작전과장이 대대장실을 나왔다. 그리고 문 앞에서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우, 저 짠돌이······. 내가 진짜 미치겠네.”
그렇게 대대 장교들은 십시일반, 한종태 대대장의 모금액을 분담해야 했다.
4.
그 시각.
오상진은 본격적인 모금 활동을 시작했다.
“거참, 얼마를 내야 하나?”
“자네는 얼마 낼 거야?”
“저는 다른 사람들 내는 거 봐서 할 생각입니다.”
“그래? 그럼 나도 그래야겠네.”
소문을 들은 간부들은 고민했다. 누군가 금액을 정해준다면 고맙겠지만 서로 눈치를 보다 보니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오상진은 가장 먼저 1중대장실을 찾아갔다.
“하아, 고민이네. 얼마를 내야 할까?”
“뭘 그리 고민하십니까? 그냥 형편 되는 대로 내면 되지 말입니다.”
“야, 그래도 내 중대 일이고 1번 타자인데 내가 많이 내야지. 그래야 다른 간부들도 눈치껏 알아서 낼 거 아냐.”
“모금에 참여했다는 데 의미가 있지 않겠습니까.”
“말이 그런 거고. 막말로 내가 조금 내봐. 그럼 다들 내 핑계 대면서 조금만 낼 거 아냐? 이야기 들어보니까 박 하사 애 수술비도 적잖게 들 것 같은데. 이럴 때 최대한 많이 모아서 줘야지.”
“그래도 너무 부담갖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나 걱정해 주는 건 고마운데 중대장으로서 이왕이면 도움이 되고 싶다. 기껏 참여하는데 얼마 되지 않은 돈을 줘봐라. 막말로 내 손이 부끄럽지 안 그러냐?”
“에이, 박 하사는 그리 생각 안 할 겁니다.”
“알아! 내가 쪽팔려서 그래. 내가!”
김철환 1중대장이 울컥 짜증을 냈다. 로또 2등에 당첨되면서 대출의 상당 부분을 갚긴 했지만 아직도 대출 빚이 남아 있는 상태였다. 그렇다 보니 통 크게 모금에 참여하지 못하는 스스로가 부끄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잠깐만 네 형수랑 통화 좀 하고 올게.”
김철환 1중대장은 잠시 고민을 하더니 오상진에게 말했다.
그리고 밖으로 나가서 약 10분간 통화를 하고 다시 들어왔다.
“네 형수가 20만 원 하란다.”
“우와! 우리 형수님 큰 결심 하셨네.”
“인마, 이 중에 10만 원은 내 한 달 용돈이다. 이번 달은 로또도 못 사. 어떻게 하냐?”
오상진이 김철환 1중대장이 내민 돈을 받으며 말했다.
“로또 얘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말입니다. 중대장님 아무래도 들킨 것 같습니다.”
“뭐? 들켜? 뭘 들켜?”
“로또 말입니다. 형수님께서 아신 것 같습니다.”
“뭐라고? 그게 정말이야? 혹시 네가 말했어?”
김철환 1중대장이 펄쩍 뛰었다.
“제가 왜 말합니까. 중대장님께서 직접 들키신 겁니다.”
“내가? 아닌데? 나 확실하게 잘 숨겼는데?”
“하아······. 로또 사고 주로 어디다가 두셨습니까?”
“어디다 두긴 어디다 둬? 당연히 지갑 안쪽에 잘 숨겨 뒀지.”
“그 지갑을 관리해 주는 분이 누굽니까?”
“그야 너희 형수······. 헛. 내가 왜 그 생각을 못했지?”
순간 김철환 1중대장이 눈을 크게 떴다. 매번은 아니지만 아내가 종종 자신의 지갑을 들여다보며 영수증을 정리하고 부족한 용돈을 채워 준다는 걸 깜빡 잊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멍청이!”
“그러게 잘 좀 숨기시지 그러셨습니까.”
“집사람이 다 알고 있는 거 같은데 나 어떻게 하냐?”
김철환 1중대장은 금세 울상이 되었다.
“형수님이 아무 말씀 안 하셨다면 그냥 조용히 넘어가겠다는 겁니다. 그러니 조용히 계십시오. 대신 이제 더 이상 로또는 사지 마시고 말입니다.”
“그래야 하나? 아니면 이실직고할까? 가, 가만. 그냥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고······.”
김철환 1중대장은 곧바로 밖으로 나가며 휴대폰을 꺼냈다.
“아무래도 네 형수에게 전화해서 이실직고해야겠다.”
김철환 1중대장은 곧바로 휴대폰 통화 버튼을 눌렀다. 잠시 후······.
“어, 여보······.”
오상진은 그 모습을 보고는 피식 웃으며 중대장실을 나왔다.
그리고 금액을 적으려는데 20만 원을 적었다가 지우고 30만 원으로 적었다. 자신의 돈으로 10만 원을 더 보태 김철환 1중대장의 위신을 살려주고 싶었다.
-김철환 1중대장 30만 원.
-오상진 1소대장 20만 원.
오상진은 이렇게 작성한 후 1중대 행정실로 들어갔다.
“자, 다들 얘기는 들으셨죠? 좋은 취지로 하는 것이니까. 성의껏 부탁드립니다.”
오상진의 말에 2소대장이 살짝 인상을 썼다.
“갑자기 말도 없이 모금을 하면 어쩌자는 겁니까? 나 돈 없는데······.”
“그냥 성의만 보이셔도 됩니다. 너무 부담 가지지 마십시오. 2소대장.”
“그래서 얼마를 내란 겁니까?”
“2소대장이 내고 싶은 만큼 내면 됩니다.”
오상진의 말에 2소대장이 오상진의 손에 든 리스트를 힐끔 봤다.
“그런데 누가 제일 먼저 냈습니까?”
“아, 중대장님께서 먼저 냈습니다.”
“중대장님은 얼마 내셨습니까?”
“30만 원입니다.”
“네? 30만 원이요?”
2소대장이 깜짝 놀랐다. 다른 소대장들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중대장님은 무슨 30만 원이나 냈답니까. 군인이 돈이 어디 있다고······.”
2소대장이 투덜거렸다. 그러다가 힐끔 오상진을 보며 물었다.
“그럼 1소대장은 얼마 냈습니까?”
“저도 20만 원 냈습니다. 아무래도 우리 소대 부소대장 일이니까요.”
오상진이 적당한 핑계를 댔다. 군인 치고 김철환 1중대장과 오상진의 모금액이 크긴 했지만 박중근 하사가 1중대 1소대 부소대장이라는 걸 감안했을 때 조금 더 내는 게 당연한 노릇이었다.
하지만 2소대장은 불만을 숨기지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이런 모금은 좀 그렇습니다. 이런 식이라면 우리 장인어른도 모금해야겠네. 지난번에 허리를 삐끗해서 수술까지 받았는데 말입니다.”
그 소리에 오상진을 비롯해 3소대장, 4소대장까지 헛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아들 수술 문제로 힘들어하는 박중근 하사를 두고 장인어른까지 운운하는 건 과했다.
“죄송합니다. 저는 이 정도만······.”
고개를 흔들던 3소대장이 지갑에서 만 원짜리 지폐 5장을 꺼내어 오상진에게 건넸다.
“아이고, 아닙니다. 이 정도도 충분합니다.”
오상진이 곧바로 리스트에 이름과 금액을 기록했다. 그러자 4소대장이 3소대장에게 조용히 물었다.
“3소대장님 얼마 내셨습니까?”
“5만 원 냈습니다.”
“그럼 저도 5만 원 하겠습니다.”
4소대장도 지갑에서 5만 원을 꺼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2소대장이 눈을 크게 떴다.
“다들 미쳤어? 돈이 남아도나 보네.”
2소대장은 이 분위기가 확산되는 걸 원치 않았다. 하지만 행정실에 있던 다른 부소대장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5만 원을 꺼내 오상진에게 주었다.
“저희도 5만 원하겠습니다.”
“어? 3부소대장!”
“저희 부사관들이 먼저 나서야 했는데······. 감사합니다. 1소대장님.”
행정실의 모든 간부들이 5만 원을 내자 2소대장의 표정이 난감해졌다. 심지어 2소대의 부소대장마저 5만 원을 꺼냈다.
“이야, 장 하사······. 술 한번 사라고 할 때마다 빼더니 너 돈 많다?”
“돈 없습니다. 제가 박 하사랑 많이 친하지 않습니까.”
“그렇게 친해? 그럼 아예 월급을 통째로 주지 그래? 5만 원 가지고 되겠어? 어?”
장 하사는 그에 대꾸를 하려다가 이내 고개를 흔들며 자신의 자리로 갔다. 그를 대신해 오상진이 2소대장에게 한마디 했다.
“정해진 건 없으니까 2소대장도 내키는 만큼만 참여 하십시오.”
“돈이 있어야 하죠, 돈이!”
“알겠습니다. 그럼 2소대장은 안 하는 거로 하고.”
오상진이 몸을 돌려 다른 곳으로 가려는데 2소대장이 오상진을 붙잡았다.
“아, 거참! 말은 끝까지 들어야죠.”
“그래서 하시겠다는 겁니까?”
“정말 해도 너무하네.”
2소대장은 투덜거리며 지갑을 꺼냈다. 그러면서 주위 눈치를 살피더니 만 원짜리 다섯 장을 꺼내 오상진에게 내밀었다.
“자요, 5만 원! 저도 5만 원 했습니다.”
“예, 감사히 잘 전달하겠습니다.”
오상진이 환한 얼굴로 행정실을 나갔다.
“자, 우리 중대는 끝났고······. 그럼 2중대를 방문해 볼까?”
그렇게 오상진이 모금을 진행하는 사이 1소대 내무실 분대장인 김대식 병장도 소문을 접했다.
< 12장 전우이지 말입니다(4) > 끝
ⓒ 세상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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