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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리셋 오 소위-91화 (91/1,018)

< 12장 전우이지 말입니다(3) >

인생 리셋 오 소위! 090화

12장 전우이지 말입니다(3)

“우리 1소대장님. 혹시 그쪽 취향이신가?”

“무, 무슨 소리입니까. 그런 거 아닙니다.”

오상진이 당황하며 말했다. 그 모습을 보며 김도진 중사가 크게 웃었다.

“하하, 그런데 왜 당황하십니까? 딱 보니 갔네, 갔어!”

“딱 한 번 가긴 했습니다. 지인이 왔는데 마땅히 대화할 곳이 없어서 말입니다.”

“정말 그것이 다입니까?”

“네, 정말 그게 다입니다. 그리고 제가 부임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다방을 다니겠습니까.”

오상진이 정색하며 말했다. 설사 짬이 생긴다 하더라도 다방을 즐겨 찾을 나이는 아니었다.

그러자 김도진 중사가 다시 한번 크게 웃었다.

“하하, 농담입니다. 농담!”

오상진은 능구렁이 같은 김도진 중사의 입담에 정신을 바짝 차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속내가 표정으로 읽혔을까. 김도진 중사도 농을 멈추고는 슬그머니 자세를 바로잡았다.

“자,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 볼까요? 우리 1소대장님이 그냥 저에게 커피를 얻어먹으려고 오신 것은 아닐 거고, 뭡니까? 뭐가 궁금해서 이렇게 친히 절 찾아 오셨습니까?”

오상진이 사뭇 진지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다른 게 아니라 박 하사 말입니다.”

“박 하사라라면 박중근 하사 말입니까?”

“네.”

“박 하사가 왜요? 박 하사 일 잘하지 않습니까? 똑 부러지고, 책임감 강하고 절대 사고 칠 사람이 아닌데.”

김도진 중사가 섣불리 넘겨짚었다. 오상진이 박중근 하사가 마음에 안 들어 뒷조사를 한다고 착각한 것이다.

“하하, 저도 압니다. 박 하사처럼 듬직한 사람도 또 없죠.”

“그럼 왜······?”

“혹시 말입니다. 박 하사 집에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오상진의 질문에 김도진 중사가 그제야 이유를 알겠다는 듯 묘한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갑자기 박 하사 집안일은 왜 물으십니까?”

“요즘 들어 표정이 좋지 않아서 말입니다. 그리고 아까 점심 먹고 오는 길에 잠깐 통화하는 내용을 들었는데 급하게 돈이 필요한 느낌이어서······. 중대 행보관님이라면 혹시 알고 계시지 않을까 해서 찾아왔습니다.”

오상진이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갔다. 설사 자신의 생각이 맞다 하더라도 남의 집안 이야기를 함부로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김도진 중사는 그런 오상진의 마음 씀씀이가 마음에 들었다.

“우리 1소대장님. 보기보다 박 하사를 아끼는가 봅니다.”

“당연하죠. 아마 박 하사 같은 부소대장이라면 모든 소대장이 다 좋아할 겁니다.”

“그건 그렇죠. 박 하사가 일처리 하나는 확실하니까요.”

“그래서 한편으로는 미안한 마음이 큽니다.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제가 조금 더 빨리 눈치를 챘어야 했는데······.”

오상진이 걱정스러운 투로 말했다. 그러자 김도진 중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하하, 이걸 말씀드려야 할지······. 사실 박 하사 개인사인데 말입니다.”

역시 김도진 중사는 박중근 하사가 무슨 이유로 표정이 어두운지 알고 있었다. 오상진의 눈빛이 반짝였다.

“말씀해 주십시오. 무슨 일이 있는 겁니까?”

김도진 중사가 가만히 오상진을 바라봤다. 약 5초간이었지만 5분처럼 느껴졌다. 그러고는 시선을 피하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에이, 소대장님이라면 당연히 알아야 할 일이긴 하지만······.”

김도진 중사가 다시 오상진을 똑바로 쳐다봤다. 오상진 역시 가만히 기다렸다.

“이걸 말씀드려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박 하사가 절대 말하지 말라고 했거든요.”

“박 하사가 그렇게 말했습니까?”

“네.”

“그럼······.”

오상진이 잠시 고민을 하더니 입을 열었다.

“박 하사가 원하지 않으면 말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어? 소대장님께서 또 그렇게 말씀하시니 말해 주고 싶어지는데······.”

그런 김도진 중사의 행동이 살짝 얄밉기도 했지만 오상진도 어느 정도 이해는 갔다. 후배의 비밀을 지켜주고 싶은 마음을 말이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입씨름해서는 원하는 답을 얻기 어려울 것 같았다.

“그럼 그냥 속 시원히 말씀해 주십시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제가 도울 수 있는 일이라면 꼭 돕고 싶어서 그럽니다.”

“그렇습니까?”

오상진의 진심을 확인한 김도진 중사도 이내 표정을 바로잡았다.

“알겠습니다. 1소대장님께서 그리 말씀하시니 말씀드리겠습니다. 박 하사에게 아들이 하나 있는 건 아시죠?”

“네, 들었습니다.”

“그 아들이 많이 아픕니다. 태어날 때부터 심장이 약하게 태어났습니다. 사실 여태까지 약물 치료로 버텨오긴 했지만 최근에 상태가 악화된 모양입니다. 그래서 긴급수술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심장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 수술비용이 만만치 않은 모양입니다.”

“하아. 전 정말 몰랐습니다.”

오상진의 얼굴이 심각하게 굳어졌다. 무슨 일이 있을 거라 짐작하긴 했지만 아들의 수술비 때문일 줄은 생각지도 못한 것이다.

김도진 중사도 조금 전과 달리 진지한 얼굴로 설명을 했다.

“병명이 뭐랬더라? 아, 선천성 심부전이라고 합니다. 현재로서는 수술 말고는 방법이 없어서 박 하사가 다급히 돈을 모으고 있는 중이고요.”

“박 하사가 고생이 많을 것 같습니다.”

“지금 제정신이 아닐 겁니다. 소아 심장 수술에 들어가는 돈이 한두 푼이 아니니까요. 그런데 은행 대출도 꽉 막혀 버려서 난감한 모양입니다.”

“대출이 막히다니요?”

“아들 생겼다고 관사에서 나와 따로 독립하느라 아파트를 구입하면서 은행에서 대출을 좀 많이 받았던 모양입니다.”

오상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관사도 좋지만 가족들과 편히 지내기 위해 독립하는 군인 가족들이 늘어나는 추세였다.

“그래서 부랴부랴 군인 아파트를 알아보고 있긴 한데 지금 당장은 힘든 모양입니다. 그래서 제가 가지고 있던 적금까지 깨서 우선 주긴 했지만 그것으로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그러셨군요.”

오상진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런 오상진의 눈치를 보며 김도진 중사가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사실 민 상사님께 넌지시 말했지만, 그 양반 새로 와서 그런지 별 관심이 없어 보였습니다.”

김도진 중사는 민용기 상사 얘기를 꺼내면 인상을 굳혔다.

“민 상사라면 이번에 대대 상임 행정보급으로 오신 민용기 상사 말씀입니까?”

“네. 그분 맞습니다.”

“혹시 그분에 대해서 잘 아십니까?”

“아뇨, 저도 그다지 그분과 대화를 많이 하지 않아서······.”

“그런데 보통 이런 일이 있으면 부대 차원에서 도움을 주고 그래야 하지 않습니까?”

오상진의 물음에 김도진 중사가 답했다.

“제 말이 그 말입니다. 솔직히 우리 중대에서 한 푼 두 푼 모은다고 해서 얼마나 되겠습니까? 부대 차원에서 하면 또 모를까. 그런데 민 상사는 자기 온 지 얼마나 됐다고 그런 거로 귀찮게 하냐면서 화를 내지 뭡니까. 그래서 모금의 모 자도 꺼내지 못했습니다.”

오상진만큼이나 김도진 중사도 박중근 하사를 아끼고 걱정했다. 그래서 직접 총대를 메려 했지만 대대 행정보급관이 단호하게 잘라 버리니 더 이상 힘쓸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장교인 오상진에게는 아직 기회가 남아 있었다.

“으음, 그럼 제가 한번 해보면 어떻습니까?”

“네? 1소대장님께서 말입니까?”

“제가 중대장님 통해서 대대에 정식으로 요청해 보겠습니다.”

“어이구, 그래 주시면 정말 감사하죠. 아마 박 하사에게 엄청 큰 힘이 될 것입니다.”

“알겠습니다. 제가 한번 해보겠습니다.”

오상진은 김도진 중사와 헤어진 후 곧바로 김철환 1중대장을 찾아갔다.

똑똑똑!

“들어와.”

오상진은 문을 열고 들어가자 업무를 보고 있던 김철환 1중대장이 고개를 들었다.

“어, 1소대장. 어쩐 일이야?”

“상의할 것이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그래? 잠깐만 기다려.”

“네.”

오상진이 자리에 앉아 기다렸다. 잠시 후 업무를 마친 김철환 1중대장이 다가왔다.

“말해봐.”

“실은 말입니다.”

오상진은 박중근 하사에 대해서 설명을 했다. 박중근 하사의 가정사에 대해서 알지 못했던지 김철환 1중대장도 놀란 표정을 지었다.

“박 하사에게 그런 일이 있었어?”

“네.”

“아니 그런 일이 있었으면 진작 날 찾아왔어야지.”

“아무래도 부담 주고 싶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부담은 무슨. 이런 식으로 알게 되는 게 더 부담스러워. 다른 사람들이 날 뭐라고 생각하겠어?”

“경황이 없어서 그랬을 겁니다. 장교도 아니고 부임한 지 얼마 안 된 부사관이니까요.”

“후우. 그래서 네 생각은 부대 차원에서 돕자 이거지?”

“네. 우리 중대원들이 얼마 안 되니까. 가능하면 부대 차원에서 도움을 줬으면 합니다.”

“그래, 좋은 생각이다. 박 하사 일이면 우리 부대 전체의 일이지. 한번 해보자. 다행히 요즘 대대장님이 너를 무척 좋아하시니까 별문제 없이 허락하실 거 같고.”

“네.”

김철환 1중대장이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했다고, 지금 가자! 대대장님 뵈러.”

“지금 말입니까? 네, 알겠습니다.”

오상진과 김철환 1중대장은 곧장 한종태 대대장을 만났다. 한종태 대대장은 사정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당연히 그래야지. 우리 오 소위. 기특하네. 어떻게 그런 생각을 다 했어?”

“아닙니다.”

“그럼 이번 일 오 소위가 잘 추진해 봐. 작전과장에게도 미리 말해 놓을 테니까.”

“네.”

오상진과 김철환 1중대장이 밝은 얼굴로 대대장실을 나섰다. 그러자 한종태 대대장은 곧바로 곽부용 작전과장을 불렀다.

“네, 대대장님.”

“작전과장.”

“네.”

“자네 1중대 1소대 부소대장 박중근 하사라고 알아?”

“네. 알고 있습니다.”

“걔 아들이 아프다면서.”

“네? 그런 일이 있습니까?”

한종태 대대장의 질문에 곽부용 작전과장이 눈을 똥그랗게 떴다.

“넌 말이야 그것도 모르고 뭐 하고 있었어? 뭐 하고 있기에 오 소위랑 1중대장이 와서 부대 모금하자는 소리가 나와?”

한종태 대대장이 인상을 썼다.

“죄송합니다. 제가 다시 알아보고······.”

“알아보긴 뭘 알아 봐? 이미 허락했는데.”

“벌써 말입니까?”

“그럼 전우의 아들이 죽어가니 모금을 하고 싶다고 하는데 거기다 대고 고민 좀 해보자고 할까?”

“아, 아닙니다. 잘 하셨습니다.”

“됐고! 그래서 난 얼마나 내야 해?”

“예?”

“아니, 보통 이런 경우면 얼마나 내야 하냐고.”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도대체 아는 게 뭐야?”

“잠깐 시간을 주시면 다른 부대는 어땠는지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알아봐!”

“네.”

곽부용 작전과장은 한 시간 만에 다시 대대장 실로 돌아왔다.

“알아봤어?”

“네. 석 달쯤 전에 옆 부대에서 모금했던 적이 있는데 그쪽 대대장님께서 이백만 원을 내셨다고 합니다.”

“뭣이? 이백? 이십도 아니고 이백?”

“네. 저도 놀라서 몇 번 확인했는데 이백만 원이 확실하다고 합니다.”

“허, 아주 돈이 아주 남아도는 구먼. 남아돌아! 도대체 그 정신 나간 대대장이 누구야?”

“그게 이번에 진급하신 최 대령님이십니다.”

순간 한종태 대대장이 움찔했다. 최 대령이라면 자신이 함부로 떠들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 12장 전우이지 말입니다(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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