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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리셋 오 소위-89화 (89/1,018)

< 12장 전우이지 말입니다(1) >

인생 리셋 오 소위! 088화

12장 전우이지 말입니다(1)

1.

매주 월요일은 간부 회의가 있는 날이었다. 특별한 일이 없더라도 간부들은 상황실에 모여 회의를 했다.

그렇게 회의를 마치고 오전 일과를 본 뒤 오상진은 행정반으로 돌아왔다.

“오셨습니까?”

“네.”

오상진이 힐끔 2소대장 자리를 확인했다. 이제 점심시간이 다 되어 가는데 2소대장이 보이지 않았다.

“2소대장은 어디 있습니까?”

오상진의 질문을 받은 3소대장이 곧바로 말했다.

“2소대장 의무대에 갔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아직도 상태가 좋지 않습니까?”

“아마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언제 가셨습니까?”

“조금 전에 갔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오상진은 고개를 끄덕인 후 자신의 자리로 갔다. 그때 4소대장이 한마디 툭 던졌다.

“아까 봤을 때 별로 아프지 않아 보였는데. 의무대 핑계로 푹 쉬다 올 심산인 거겠죠.”

4소대장의 특유의 깐족거림에 3소대장은 살짝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오상진을 따르기로 마음먹긴 했지만 그렇다고 2소대장의 험담에 끼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런 3소대장의 속내를 읽은 것일까. 오상진이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그럴 수도 있죠. 우리끼리 너무 그러지 맙시다.”

“네.”

그때 오상진의 휴대폰이 울렸다. 발신자는 박은지였다.

“네, 은지 씨.”

-상진 씨 뭐해요?

“지금 일과 거의 마무리하고, 점심 먹으려고 합니다.

-아, 잘됐다. 약속 없으면 오늘 점심 어때요?

“점심요?

-네. 제가 일이 있어서 상진 씨 부대 근처에 와 있거든요.

“정말요?”

-왜요? 다른 사람이랑 약속 있어요?

“그건 아닙니다.”

-그럼 저랑 먹어요. 여기까지 왔는데 퇴짜 놓는 건 아니죠?

“알겠습니다. 지금 나갈게요. 위병소 앞에서 뵙죠.

-네, 알겠어요.

오상진이 전화를 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 먼저 일어나 보겠습니다.”

4소대장이 물었다.

“어딜 가십니까?”

“갑자기 점심 약속이 잡혔습니다.”

“혹시 여자분이십니까?”

4소대장이 살짝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아, 예에, 뭐······.”

“혹시 김 중위님?”

한 대위와 사귀는 김소희 중위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지만 아직도 많은 이들이 오상진과 김소희 중위가 교제한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그렇다고 이제 와 진실을 털어놓을 수도 없는 노릇.

“김 중위님은 아닙니다. 그냥 아는 분입니다.”

“아는 분이오?”

“네. 그럼 점심 맛있게 하십시오.”

오상진은 서둘러 그 자리를 벗어났다. 4소대장이 심각한 얼굴이 되더니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설마 1소대장님 김 중위님 두고 딴 여자랑 양다리?”

3소대장도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게 말입니다. 1소대장님 정말 딴 여자 만나시는 겁니까?”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솔직히 이해가 안 됩니다. 김 중위님을 두고 어떻게 다른 여자가 눈에 들어오겠습니까?”

최근 연애를 하면서 김소희 중위는 미모에 물이 올랐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물론 그 연애 대상이 오상진은 아니었지만 내막을 알지 못하는 3소대장은 오상진이 바람둥이가 아닐까 의심이 들었다.

하지만 4소대장은 충분히 그럴 수도 있다며 오상진을 두둔했다.

“에이, 우리 1소대장님 요즘 잘 나가지 않습니까. 세상에 여자가 어디 김 중위님 한 명뿐이겠습니까? 아직 젊으니까 이 여자도 만나고 저 여자 만나고 그러는 거죠.”

“그건 순 양아치죠.”

3소대장이 정색하며 말했다. 그러자 4소대장이 피식 웃었다.

“원래 영웅은 호색한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와, 정말 1소대장님이 그런 것이라면 실망할 것 같습니다.”

“전 부러울 뿐입니다.”

“부러울 것도 많습니다. 그건 그렇고······ 3소대장님은 여자 친구 있으십니까?”

영웅호색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연애 경험 부족이라 넘겨짚은 4소대장이 짓궂게 물었다.

4소대장이 보기에 3소대장은 몸은 건강하고 좋은데 썩 호감 가는 얼굴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못생긴 건 아니지만 지나치게 순박하달까. 여자 좀 만나 본 느낌상 여자 친구가 없을 거라는 촉이 왔다.

하지만 돌아온 답변은 예상을 크게 벗어났다.

“네, 여자 친구 있습니다.”

“예? 있습니까?”

“네.”

“그럼 사진 있습니까? 실례가 안 되면 보여주실 수 있습니까?”

“네. 괜찮습니다.”

3소대장이 휴대폰을 꺼내 자신과 찍은 여자 친구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헉!”

4소대장은 순간 헛바람을 삼켰다. 조금이라도 어색하면 여자 친구 맞냐고 트집을 잡았겠지만 3소대장의 목을 끌어안고 활짝 웃는 모습을 보니 여자 친구가 아니면 이상할 것 같았다.

게다가 그 여자 친구가 생각보다 너무 예뻤다.

“정말 이 분입니까?”

“예!”

“어디서, 어떻게 만났습니까?”

질문을 던지는 4소대장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 반짝였다. 3소대장은 약간 쑥스러워하며 말했다.

“친구 동생인데 소개받았습니다.”

“친구 동생이면 몇 살 차이입니까?”

“세 살 차이 납니다.”

“오오! 궁합도 안 본다는 세 살! 혹시 말입니다. 여자 친구분 친구 중에 괜찮은 사람 없습니까?”

3소대장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왜, 소개시켜 드립니까?”

“뭐, 소개시켜 주신다면야 엄청 감사하죠.”

“어, 그런데 4소대장님은 여자 친구 없습니까?”

4소대장이 멋쩍게 웃었다.

“원래 있었는데 얼마 전에 헤어졌습니다. 하하하!”

“그렇습니까? 그런데 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괜찮습니까?”

“여자는 여자로 잊는다고 했습니다. 아시지 않습니까. 그러지 말고 오늘 나가시죠. 제가 쏘겠습니다.”

“크흠, 그럼 모처럼 사식을 먹는 겁니까?”

3소대장이 책상을 정리하며 일어났다. 4소대장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 드시고 싶습니까?”

“일단 나가면서 천천히 생각하죠.”

오상진만 바라보던 두 사람이 모처럼 서로를 향해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2.

행정실을 나선 오상진은 서둘러 위병소 앞으로 나갔다. 그 앞에 단발머리에 정장 차림으로 서 있는 박은지가 있었다.

워낙에 귀여운 외모를 소유하고 있어 정장을 입고 있어도 숨길 수가 없었다. 위병소에 근무하는 군인들과, 지나가는 군인들이 힐끔힐끔 박은지를 보며 감탄하고 있었다.

“은지 씨!”

오상진이 부르는 소리에 박은지가 고개를 돌렸다. 오상진을 발견하고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 순간 오상진은 주위에 있던 모든 군인들의 부러운 시선을 한 몸에 받아야 했다.

“진짜 계셨네요.”

“그럼 제가 농담하는 줄 아셨어요?”

“그건 아니지만 신기해서요. 그보다 어쩐 일이에요?”

“얘기는 나중에 하고 우리 밥부터 먹어요. 저 엄청 배고파요.”

박은지가 자신의 배를 어루만지며 말했다. 오상진이 피식 웃으며 입을 뗐다.

“그래요. 뭐 먹고 싶어요?”

“여기 뭐가 맛있어요?”

“군부대라 딱히 먹을 게 없는데 혹시 차 가지고 오셨어요?”

“오늘은 차 안 가지고 왔어요. 그러지 말고 그냥 근처에서 먹어요. 충성대대 장교들이 즐겨 찾는 소문난 맛집 같은 데 있을 거 아니에요.”

“맛집이라. 아! 김치찌개 맛있게 하는 곳이 있는데 괜찮아요?”

“저, 김치찌개 엄청 좋아해요.”

“그럼 그곳으로 갑시다.”

“네!”

오상진과 박은지는 인근 김치찌개 집으로 향했다. 부대에서도 그리 멀지 않은 곳이라 금방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이모! 여기 김치찌개 주세요.”

“네.”

정말 배가 고팠던지 박은지는 일단 컵에 물을 따라 연거푸 마셨다.

“물은 그만 마셔요. 그러다가 물배 채우겠다.”

“목이 말라서요. 오늘 유독 더운 거 같지 않아요?”

“이제 봄이 가고 서서히 여름이 올 시기니까요. 그건 그렇고 정말 어쩐 일이에요?”

오상진의 물음에 박은지가 컵을 내려놓았다.

“실은 취재하러 왔어요.”

“취재요?”

“기왕 충성대대에 왔으니까 미뤄뒀던 식사도 할 겸 상진 씨 얼굴이나 보고 갈까 해서 연락했는데 제가 귀찮게 한 것은 아니죠?”

“전혀 아닙니다. 오히려 그냥 가시면 섭섭할 뻔했습니다.”

“헤에. 정말요?”

“그런데 메뉴가 김치찌개라 참 민망합니다.”

오상진은 살짝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도 지금까지 도와준 걸 생각해 나름 멋진 레스토랑에서 비싼 음식을 대접하고 싶었다.

그러자 박은지가 손을 휙휙 저었다.

“지금 김치찌개 무시해요?”

“무시라뇨. 저 김치찌개 엄청 좋아합니다.”

“저도 그래요. 그러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오상진은 박은지의 말에 살짝 감동을 받았다. 진심 여부를 떠나 자신을 배려해 주는 마음이 고마울 따름이었다.

“그래도 부대 최고의 맛집이니까 실망하시진 않을 겁니다.”

“상진 씨가 보장한다면 믿고 먹을 만하겠는데요.”

“네. 믿고 드셔보세요.”

“참, 이사했다는 소식은 들었어요. 언니는 초대했던데······. 저는 부르시지도 않고.”

“아, 그게······.”

오상진이 살짝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박은지가 집을 구하는 데 큰 도움을 주긴 했지만, 이삿날 초대하기에는 애매한 관계였다.

그러자 박은지가 짓궂게 웃었다.

“농담이에요, 농담. 나중에 집 정리가 되면 그때 한번 초대해 주세요.”

“아,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언니에게 들어보니까 펜트하우스로 이사했다고 하던데요. 맞아요?”

“아, 그게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매물도 싸게 나오고 식구들도 많고 해서요. 지금까지 고생했던 가족들 생각해서 결정을 내렸습니다.”

“로또 당첨되신 건 알지만 대출도 적잖게 받으신 것 같은데요?”

“예?”

“아, 미안해요. 언니한테 형부하고 같이 로또 당첨되셨다는 얘기 들었어요. 비밀 지키기로 했는데 제가 입방정을 떨었네요.”

“아닙니다. 기사만 안 쓰시면 되죠.”

오상진이 농담 식으로 말하자 박은지 역시 농담으로 받았다.

“어? 기사로 쓰려고 했는데······.”

박은지의 장난스러운 대답에 오상진이 피식 웃었다.

“생각만큼 대출을 많이 받은 건 아닙니다. 지금까지 모아두었던 돈도 제법 있고 전에 살던 집도 처분했고요. 로또 당첨되었다고 하니까 은행에서도 초저리로 대출해 주겠다고 해서 바로 구입했습니다.”

“그래요?”

박은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김철환 1중대장 부부는 이쯤에서 납득하고 넘어간 반면 박은지는 어딘지 모르게 미심쩍어하는 반응이었다.

오상진은 그 모습을 보고 살짝 고민했다.

‘로또 1등에 당첨됐다고 말할까? 아니지. 아니야. 역으로 형수님 귀에 들어가면 형님하고 형수님이 많이 서운해하실 거야.’

하지만 로또 당첨의 비밀은 아는 사람이 적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잘했어요. 저도 돈만 있으면 한강의 쫙 보이는 뷰를 가진 아파트를 사고 싶었으니까요. 혹시 다음에도 꿈에 할아버지가 나오시면 정보 공유 좀 해줘요.”

박은지가 살짝 애교 섞인 얼굴로 말했다. 오상진이 살짝 당황했다.

“그건 어떻게······.”

“아, 그것도 언니가 알려 줬어요. 하하하······.”

“예, 알겠습니다.”

“약속한 거예요?”

“네.”

“참, 로또 얘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요. 이번에 로또 기사 봤어요?”

순간 오상진이 움찔했다.

“무슨 기사인데요?”

“이번에 드디어 1등 당첨자가 나왔데요. 그것도 단 한 명! 그분 당첨금만 2백억이 넘을 거라고 하던데요. 완전 대박이지 않아요?”

< 12장 전우이지 말입니다(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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