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장 일보 앞으로!(5) >
인생 리셋 오 소위! 085화
11장 일보 앞으로!(5)
시큰둥해하던 인부가 눈을 반짝였다. 몇억도 큰돈인데 200억이라니! 이 정도면 속는 셈 치고 로또 몇 장 사 둬야 할 것 같았다.
“어쩌면 그것보다 더 많을지도 몰라. 아까 보니까 로또 판매점마다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더라.”
“그럼 오늘 일 끝나고 로또 사러 갑시다!”
“난 이미 샀지 인마.”
“와 치사하게, 혼자 그러는 게 어딨어요?”
“치사하긴. 왜? 아깐 로또를 왜 사냐며?”
“그거야 이 정도일 줄은 몰랐으니까 그랬죠. 그나저나 형님은 얼마나 샀어요?”
“나? 10만 원.”
“그렇게나 많이요?”
“200억에 당첨될 수 있는데 그깟 10만 원이 아깝겠어?”
“그럼 저도 오늘 10만 원 지릅니다!”
“그래. 잘 생각했어. 대신에 당첨되면 나한테 크게 한턱내는 거야.”
“한턱이 아니라 열 턱이라도 쏠 테니까 제발 당첨됐으면 좋겠네요.”
인부들이 종이컵에 담배꽁초를 털어내는 걸 본 오상진은 조용히 발걸음을 되돌렸다.
“생각해 보니까 이번 주가 9회차네.”
어제 8회차 로또 번호가 발표됐으니 이제부터 9회차 로또를 살 수 있었다.
과거에는 9회차 역시도 당첨자가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10회차 때 3천억에 가까운 로또가 팔렸는데 그 과정에서 1등 당첨자만 13명이 나왔다.
과거로 돌아오면서 로또의 판매량이 조금씩 달라지긴 했지만 당첨자의 숫자가 달라진 적은 없었다.
그렇다면 10회차보다는 이번 9회차를 노리는 게 나았다.
9회차 때도 당첨자 없이 지날 경우 10회차 때는 과거보다 더 많은 로또 판매가 이루어지겠지만 나를 포함해 14명이 나눠 먹어야 하니 손에 들어오는 돈은 100억 남짓일 터.
그보다는 앞선 2회차 누적에 이번 9회차 판매금까지 혼자 독식하는 게 백번 이익이었다.
“지금까지 정확하게 얼마가 팔렸다는 거지?”
핸드폰으로 검색을 해 보니 7회차와 8회차를 통해 누적된 금액이 천억 원이 넘는다고 했다. 이런 상태에서 9회차 판매 열풍이 이어질 경우 9회차까지 누적 판매 금액은 최소 2천억을 넘어설 터.
“2천억에 세금을 떼도 300억은 넘겠네.”
계산을 마친 오상진이 씩 웃었다. 너무 욕심부리면 안 될 것 같은 불안함이 없지 않았지만 모든 로또 번호를 전부 다 외우고 있는 것도 아닌 터라 이번 기회에 제대로 상금을 타 먹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다 보셨습니까?”
“네. 잘 봤습니다. 그리고 이거.”
“······?”
“음료수라도 사 왔어야 했는데 제가 급한 마음에 그냥 와서요. 별거 아니지만 식사하실 때 보태 쓰십시오.”
오상진이 미리 준비한 10만 원을 꺼내 내밀었다.
큰돈은 아니지만 고생한 인부들에게 뭐라도 해 주고 싶었다.
“아이고, 사장님! 괜찮습니다.”
“부담 갖지 말고 받아주세요. 이러시면 제 손이 다 부끄럽습니다.”
오상진의 부탁에 사장은 더 이상 거절하지 않고 받았다.
“감사합니다. 사장님. 직원들하고 잘 먹겠습니다.”
“네. 사장님. 그럼 마무리 부탁드리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시고 들어가십시오. 먼지 하나 없도록 깨끗이 치워놓고 가겠습니다.”
사장은 기분이 좋은지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
“네, 그럼.”
오상진이 업체 사장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아파트를 나섰다. 그리고 아파트 근처 로또 판매점에 들어갔다.
인부들의 말처럼 로또 판매점 안에는 로또를 사려는 사람들이 바글거렸다.
오상진은 남들이 보지 않도록 구석에서 9회차 1등 번호를 마킹한 후 사장에게 건넸다.
“로또 하나 주세요.”
“어? 하나만 하시게요?”
“예.”
“아이고, 이번에 얼마가 누적되었는지 아세요? 어마어마합니다. 저기 저 사람들 보십시오. 어떻게든 한 장이라도 더 사겠다고 난리인데 한 장으로는······.”
사장이 훈수하듯 말했다. 그렇게 하면 오상진도 다른 사람들처럼 열심히 로또를 사 줄 것이라 생각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1등 번호를 알고 있는 오상진은 로또 한 장이면 충분했다.
“전 괜찮습니다. 그냥 재미로 하는 거라서 말이죠. 마킹한 것만 주십시오.”
“이걸로는 당첨 안 될 텐데······.”
“괜찮아요. 장난삼아 하는 건데요. 그냥 마킹한 것만 뽑아 주세요.”
“알겠어요.”
사장이 시큰둥한 얼굴로 오상진이 마킹한 것으로 로또를 뽑아 주었다. 로또 용지를 받은 오상진이 확인을 하면서 가게를 나왔다.
사장은 그런 오상진을 보며 저래서 되겠나 중얼거렸다.
‘이게 당첨될지 안 될지는 두고 봐야 할 일입니다. 사장님.’
오상진이 피식 웃었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엷은 구름이 살짝 있지만 하늘은 맑고 푸르렀다.
“로또 사기 딱 좋은 날씨네!”
5
그 날 저녁.
몇 장의 사진과 함께 리모델링 공사가 끝났다는 문자 메시지가 왔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거짓말처럼 부대 진지 공사가 하달됐다.
이맘때쯤이면 항상 하는 추계 진지 공사였다.
“다들 그런 줄 알고 잘 준비하도록. 이상.”
김철환 1중대장이 전달을 한 후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사무실로 갔다.
“하아······.”
그러자 2소대장이 기다렸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또 진지 공사. 망할 놈의 공사는 매년 하고 지랄이야. 도대체 뭐 한다고 자꾸 하는지 모르겠네.”
2소대장은 쓸데없는 곳에 시간을 허비하는 것을 무척이나 싫어하는 편이었다. 그렇다고 효율적인 일 처리를 하는 건 아니다. 그저 적당히 적당히 하는 게 2소대장의 군 생활 신조였다.
“저도 진지 공사는 지긋지긋합니다.”
“이걸 앞으로 매년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거릴 지경입니다.”
3소대장과 4소대장의 입에서도 푸념이 흘러나왔다.
그러자 2소대장이 기다렸다는 듯이 오상진을 끌어들였다.
“1소대장이 가서 말 좀 해보십시오. 왜 자꾸 이런 걸 하냐고 말입니다.”
“그걸 제가 어떻게 합니까?”
“에이, 왜 그러실까? 대대장님의 총애를 한 몸에 받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러니 1소대장이 또 나서면 모르지 않습니까?”
오상진은 고개를 흔들며 한숨을 내쉬었다.
‘와, 진짜 저 양반 참 대단하다 대단해.’
무슨 소리인가 했더니 대대장에게 예쁨받는 게 못마땅했던 모양이었다.
오상진도 대대장의 지나친 관심이 부담스럽긴 마찬가지였지만 그런 고충을 털어놓는다고 해서 2소대장이 진지하게 받아줄 것 같지도 않았다.
“그럼 전 소대원들에게 전달하러 가 보겠습니다.”
오상진이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 오상진을 한참 동안 노려보던 2소대장이 나직이 중얼거렸다.
“재수 없는 새끼.”
6
행보관을 통해 한 발 먼저 추계 진지 공사를 전해 들은 소대원들은 김대식 병장의 지휘에 따라 작업복으로 환복했다. 작업복이라고 해봤자 밑에 전투화에 전투복 하의, 위에는 활동복 차림이었다.
“와, 젠장! 또 그날이 왔구나.”
“그러게 말입니다. 이번에도 또 거기겠지 말입니다.”
“그렇겠지! 만날 파고 묻고, 파고 묻고.”
차우식 상병의 한마디에 김대식 병장이 피식 웃었다.
“야, 누가 그러잖아. 병사들을 그냥 두는 것 역시 전투력 손실이라고. 어떻게든 굴리는 거지.”
“젠장!”
차우식 상병이 인상을 썼다. 그때 문이 열리며 오상진이 들어왔다. 김대식 병장이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경례를 했다.
“충성, 1소대 작업 준비 중.”
“쉬어.”
“쉬어.”
“너희들도 알다시피 이번 주는 추계 진지 공사 철이다. 맡은 곳은 섹터 24-7이다.”
“거봐 맞잖아. 작년이랑 다를 것이 없냐.”
“몸 안 다치게 잘하고! 알겠지?”
“네!”
“그래. 대식이는 애들 통솔 잘하고, 박 하사가 아마 나갈 거야.”
“네, 알겠습니다.”
오상진은 전달 상황만 대충 전달하고 내무실을 나섰다. 그 뒤는 김대식 병장 몫이었다.
“일단 벽돌 어디 있지?”
“일병 이해진”
“그래, 해진아.”
“창고 옆에 잔뜩 쌓여 있습니다.”
“좋아 그럼 해진이는 애들 데리고 벽돌 좀 옮겨놓자.”
“네.”
“나머지는 진지 공사 작업장으로 이동한다.”
“알겠습니다.”
분대장이 된 이후 처음으로 맞는 진지 공사라 김대식 병장은 의욕이 넘쳤다.
하지만 진지 공사를 좋아하는 소대원은 아무도 없었다.
“하아.”
“비 안 오나.”
“오늘 날씨 맑지 말입니다.”
1소대원들은 마지못한 얼굴로 터벅터벅 내무실을 나섰다.
7
김철환 1중대장과 함께 점심을 먹은 뒤 오상진은 행정실로 복귀해 업무를 봤다.
그때 낯익은 얼굴이 행정실로 들어왔다.
조영일 일병이었다.
“어, 그래 영일아. 무슨 일이야?”
“충성. 다름이 아니라, 오전에 벽돌 옮기느라 허리를 삐끗한 것 같습니다.”
“그래? 많이 아파?”
“네 좀······.”
“허리를 전혀 못 움직이겠어?”
“네. 죄송합니다.”
“아니야, 아니야. 소대장이랑 의무대로 가자.”
오상진이 전투모를 챙겨 입고 조영일 일병을 데리고 의무대로 향했다.
“아무래도 침을 맞는 편이 낮겠지?”
“네. 저도 한 대위님께 진료받는 게 좋습니다.”
오상진은 한 대위 쪽으로 조영일 일병을 데리고 갔다.
잠시 후 조영일 일병의 진료 차례가 됐다.
“오오, 오 소위.”
“잘 지내셨습니까?”
“저야, 한창 똑같죠. 그런데 무슨 일로?”
“조 일병이 오늘 무거운 곳을 들다가 허리를 삐끗한 것 같습니다.”
“그래요? 어디 한번 볼까요?”
한 대위는 조영일 일병을 보며 허리를 살짝 만졌다.
“악!”
옆구리 쪽을 압박하자 조영일 일병이 자신도 모르게 신음을 토해냈다.
“크게 다친 건 아니고 허리 근육이 좀 놀란 듯합니다. 침이랑 쑥뜸 좀 놓겠습니다.”
“네. 그렇게 해주십시오.”
한 대위는 익숙하게 침을 놓고 쑥뜸을 올렸다.
뜸이 타들어 가는 데 시간이 걸렸기 때문에 오상진과 한 대위는 그동안 밀렸던 대화들을 나눴다.
“치료 끝났으니까 오늘 하루 푹 쉬면 괜찮을 겁니다.”
“고생하셨습니다.”
“고생은요. 그리고 오 소위는 나랑 잠깐 얘기 좀 하시죠.”
“네?”
한 대위는 잠시 주위를 살피더니 나직이 속삭였다.
“아까 말하려다 말았는데 오 소위. 내가 지난번에 말했던 소개팅. 주말 어떻습니까?”
“아, 이번 주 주말은 좀······.”
오상진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왜요?”
“저희 집 이사합니다.”
“아, 맞다. 그렇죠. 저번에 이사한다고 그랬죠. 어디로 하십니까?”
“동생 학교 근처 갑니다.”
“아, 그래요? 자가? 전세? 아니면 월세?”
“그게······ 매매입니다.”
생각할 시간을 주고 질문이 날아왔다면 그럴듯한 변명을 했을 텐데 저렇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으면 애써 둘러대기가 난감했다.
한 대위는 자가란 말에 눈을 크게 떴다.
“오오, 자가? 우리 오 소위 돈 많이 모았나 보네요.”
“아닙니다. 대출 많이 받아서 산 겁니다.”
“대출을 받았어도 소유주는 오 소위 아닙니까?”
“에이, 그 아파트가 어디 제 것입니까. 현관 빼고 다 은행 것이죠.”
오상진의 재치있는 대답에 한 대위가 껄껄 웃었다.
“하긴, 다 그렇죠. 요즘에 은행 안 끼고 어떻게 아파트를 마련합니까. 요즘 서울 집값이 한두 푼입니까? 원래 다 그렇게 하면서 사는 겁니다. 정말 멋집니다. 오 소위.”
“감사합니다.”
“집도 구했겠다, 이제 여자만 잘 만나면 될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까?”
“솔직히 이런 말씀 드리기 좀 그렇지만 소개해 주려던 애가 성격이 많이 까다롭습니다. 한데 또 똑 부러집니다. 자기 사람이라 생각하면 살뜰하게 챙기는 편이고요. 그러니 잘 좀 해보세요.”
“아, 네에······. 하하하······.”
오상진이 어색하게 웃으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직 얼굴은커녕 사진조차 보지 못했는데 벌써부터 압박을 주시다니. 이거 두 번 만났다가 결혼하자는 소리까지 나오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
< 11장 일보 앞으로!(5)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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