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장 일보 앞으로!(1) >
인생 리셋 오 소위! 081화
11장 일보 앞으로!(1)
1.
일과 후 오상진은 부대 체력 단련실로 갔다.
모처럼 장교들까지 체력검정을 한다고 해서일까.
몇몇 간부들이 나와 체력 단련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오상진은 간단히 눈인사를 하고 가볍게 러닝머신을 뛰었다.
그렇게 10여 분간 몸을 푼 후 본격적인 운동에 들어갔다.
그때 문이 열리며 2소대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오, 1소대장님 운동 하십니까?”
“아, 네에.”
하필이면 체력단련장에서 껄끄러운 2소대장을 만났지만 오상진은 신경 쓰지 않고 다시 운동에 집중했다.
체력 검정이 코앞이다 보니 2소대장도 평소처럼 오상진에게 시비를 걸지 않았다.
이후 두 시간 동안 오상진과 2소대장은 적당히 거리를 두고 운동에 열을 올렸다.
“후우. 이만하면 됐어.”
적당히 펌핑이 된 가슴 근육을 두드리며 오상진이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런 오상진이 꼴 보기 싫었던 것일까.
2소대장이 기어코 말을 붙였다.
“1소대장님. 운동 다 끝나셨습니까?”
“네.”
“그 정도로 이번에 특급 전사 되시겠습니까?”
“저는 2소대장보다 30분 먼저 운동 시작했습니다.”
“그러지 말고 저랑 시합 한번 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2소대장의 뜬금없는 제안에 오상진은 인상을 살짝 찡그렸다.
운동 마니아로 불리는 2소대장이 자신의 눈치를 보며 슬렁슬렁 운동을 하기에 왜 저러나 싶었는데 이런 식으로 자신을 골탕을 먹일 속셈이었던 모양이었다.
“어떤 시합을 하자는 겁니까?”
“따로 정할 게 있겠습니까. 이걸로 가시죠. 벤치 프레스.”
2소대장이 벤치 프레스를 툭 치며 웃었다.
하지만 방금 전까지 벤치 프레스를 했던 오상진은 따라 웃지 못했다. 지금은 지친 상태라 제 실력이 나올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2소대장이 원하는 대로 꼬리를 내리고 도망치고 싶진 않았다.
“벤치 프레스로 시합을 하자는 말씀입니까?”
“싫습니까?”
“아닙니다. 상관없습니다.”
“그런데 1소대장은 벤치 프레스 얼마나 치십니까?”
2소대장의 물음에 오상진이 말했다.
“글쎄요. 조금 전에 80㎏로 했습니다.”
그러자 2소대장이 피식 웃었다.
“에이 그거 가지고 되겠습니까. 군인이라면 100㎏는 해야죠.”
순간 오상진은 벤치 프레스랑 군인이랑 무슨 관계가 있냐고 따지고 싶었다. 게다가 벤치 프레스는 무작정 무게만 늘린다고 해서 좋은 게 아니었다. 자신의 몸무게 정도를 목표 삼아서 정확한 자극점을 찾아 꾸준히 하는 게 훨씬 더 효율적이었다.
하지만 2소대장은 기 싸움에서 이겼다고 생각했는지 의기양양한 표정을 감추지 않으며 오상진에게 말했다.
“제가 하는 거 보시죠.”
2소대장이 벤치 프레스에 가까이 서 있던 오상진을 슬쩍 밀어냈다. 그리고 라벨에 무게를 더 추가했다.
“지금 무게가 100㎏ 정도입니다. 이 상태에서 30개 정도는 거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100㎏으로 30개를 하신다고 하셨습니까? 그러다가 팔에 부상이라도 입으면 어떻게 하시려고 그럽니까?”
“에이, 장난하십니까? 항상 하는 운동인데 부상은 말도 안 되죠. 이 정도는 가뿐합니다.”
2소대장이 호기롭게 말했다. 그러곤 허리보호대를 더 곽 쪼여 매며 벤치 프레스에 누웠다. 오상진은 2소대장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전문 보디빌더도 아니고 무슨······.’
오상진은 말없이 2소대장을 지켜봤다. 2소대장은 잠시 뜸을 들이며 자세를 잡다가 힘껏 역기를 들어 올렸다.
그런데.
“읍!”
세 개째부터 얼굴이 터질 듯 부풀어 오르는 것으로 봐서 30개까지는 무리일 것 같았다.
예상대로 10개쯤 반복하던 2소대장이 자세를 잘못 잡았다면서 슬그머니 바벨을 놓았다.
물론 그 자체도 대단하긴 했다. 2소대장의 체중이 자신보다 조금 더 나가긴 해도 100㎏의 바벨을 들어 올리는 건 어지간한 사람들은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오상진도 2소대장이 자꾸 자신을 도발하니까 약이 올랐다.
“다 끝나신 겁니까?”
“끝나긴요. 그냥 잠깐 맛만 보여드린 겁니다.”
그렇게 말하는 2소대장의 얼굴에는 땀이 비 오듯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딱 봐도 많이 지쳐 보였다.
“아, 그렇습니까? 저는 아까 30개도 거뜬하다고 하셔서 조금 기대했는데 말입니다.”
“30개까지 충분하지만 굳이 오늘 힘 뺄 필요가 있습니까?”
“뭐 그렇죠.”
오상진이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이 꼭 비웃는 것처럼 느껴졌을까.
2소대장이 살짝 인상을 쓰며 물었다.
“지금 제 말을 믿지 못하십니까?”
“아닙니다. 2소대장이 거짓말할 사람은 아니죠.”
“그런데 표정이 왜 그렇습니까?”
“오해입니다. 그리고 솔직히 10개나 한 게 어디입니까. 안 그렇습니까?”
오상진이 2소대장의 자존심을 살살 긁었다. 그러자 2소대장이 질근 입술을 깨물더니 다시 벤치 프레스에 도로 누웠다.
“더 하시게요?”
“딱 기다리십쇼. 1소대장이 그렇게 말씀을 하시니까 제가 꼭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 않습니까?”
“그렇게 들렸다면 미안합니다.”
“됐으니까 기다려 보십시오. 제가 거짓말하지 않았다는 걸 보여드리겠습니다.”
“그럼 20개만 더 하시죠. 아까 10개 했으니까.”
“장난합니까? 아까는 아까고 지금은 지금이죠. 30개 제대로 가니까 보기나 하십시오.”
그렇게 2소대장은 이를 악물고 바벨을 움직였다.
10개가 넘어가면서부터 바벨을 드는 속도가 점점 떨어지기 시작했지만 오상진에게 망신을 당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지 기어코 30개를 채워냈다.
“봤죠? 제가 30개 한다고 했지 않았습니까.”
2소대장이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말했다.
오상진은 피식 웃고는 보란 듯이 박수를 쳐 주었다.
“진짜 30개를 할 줄 몰랐습니다. 대단하십니다.”
“그럼 1소대장도 해보시죠.”
“저요? 에이, 전 못합니다.”
“네에?”
“시합이라면 제가 졌습니다. 와, 100㎏의 역기를 어떻게 30개씩이나 할 수 있지? 저는 못합니다. 못해.”
오상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체력단련장을 나갔다.
2소대장은 약간 넋이 나간 얼굴로 오상진의 얄미운 뒷모습을 지켜보아야 했다.
“뭐야? 이거 내가 이긴 거야, 진 거야?”
그러자 옆쪽에서 지켜보고 있던 다른 소대장이 한마디 했다.
“이긴 겁니다.”
“그쵸? 그런데 왜 이렇게 찝찝하죠.”
“하하. 그건 저도 잘 모르죠.”
2소대장은 이겼지만 마음이 후련하지 않았다. 마치 제대로 당했다는 기분이 들었다.
“젠장. 이게 아닌데.”
2소대장이 얼굴을 구기며 벤치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떨어진 수건을 잡기 위해 팔을 뻗었다.
그 순간 마치 전기에 감전이라도 된 것처럼 짜릿한 통증과 밀려왔다.
“아앗!”
뒤이어 걷잡을 수 없는 고통에 순식간에 밀려왔다.
“으아아악! 내 팔!”
주위에 있던 다른 간부들이 우르르 다가왔다.
“왜 그러십니까? 2소대장.”
“파, 팔이······.”
“팔이요? 아무래도 근육 파열이 일어난 것 같습니다. 병원에 당장 가 보셔야 할 듯합니다.”
다음 날 2소대장은 김철환 1중대장에게 외출을 허락받고 병원에 갔다.
X-ray 검사 결과 근육 파열이 맞았다.
최소 4주간 요양치료와 재활 치료가 필요한 상태였다.
그 소식을 접한 오상진은 쓰게 웃었다.
‘그러게 왜 가만있는 사람을 자꾸 건드립니까?’
객기를 부리다 다친 2소대장에게는 미안한 말이겠지만 이번 일로 제발 정신을 차렸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2
월요일.
회의를 위해 중대장급 이상 간부들이 상황실에 모였다.
“수요일하고 목요일이 체력검정 날이지?”
“네, 그렇습니다.”
“저번에는 1중대가 이겼나? 그럼 당연히 이번에도 1중대가 이기는 거겠지?”
한종대 대대장은 옆에 앉아 있는 김철환 1중대장을 바라봤다. 그러자 김철환 1중대장이 어색하게 웃었다.
“죄송합니다만 지난번에 체력검정에서 1등 한 건 저희 중대가 아니었습니다.”
“그래? 1중대가 아니었어?”
한종태 대대장이 약간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자 가만히 듣고 있던 3중대장이 발끈하며 말했다.
“대대장님. 지난번 체력검정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둔 중대는 바로 저희 3중대입니다.”
“뭐야? 3중대가 우승했어? 정말이야?”
“네, 그렇습니다.”
“이것 참. 1중대장.”
“네.”
“어떻게 된 거야? 아무리 체력검정이어도 그렇지 봐주면서 한 거야?”
멧돼지 사건 이후로 사단장의 표창을 받아서일까.
한종태 대대장은 처음보다 티 나게 1중대를 편애하는 중이었다.
물론 같은 육사 출신끼리 끌어주고 미는 게 특별할 건 없었다.
다만 지금처럼 농담 삼아 던진 말이 비육사 출신 중대장들의 심기를 건드린다는 게 문제였다.
“아닙니다. 봐준 거!”
듣다 못한 3중대장이 자신도 모르게 언성을 높였다.
그러자 한종태 대대장이 미간을 찌푸리며 3중대장을 바라봤다.
“이봐, 3중대장.”
“네.”
“내가 지금 자네에게 물었나?”
“아, 아닙니다.”
“그럼 자네가 1중대장 대변인이야?”
“아닙니다.”
“그런데 왜 자네가 나서고 그래? 내가 뭐라고 했어? 농담 한번 한 걸 가지고 분위기를 이렇게 만들어야겠어?”
“죄, 죄송합니다.”
3중대장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대대장이 농담이었다고 말하는데 여기서 더 나가봐야 좋을 게 없었다.
“암튼 지난번에는 3중대가 이겼다는 거지?”
“네.”
“그럼 이번에 1중대장이 이겨 보라고. 그래도 1중대 체면이 있잖아. 안 그래?”
“아, 알겠습니다.”
김철환 1중대장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여야 했다. 바로 코앞에서 자신을 노려보는 3중대장보다 대대장이 먼저였기 때문이다.
“하하핫. 그래 그래야지. 그러면 이참에 상품 같은 걸 걸어보는 게 어떨까?”
“네?”
“우승 상품 말이야. 전투력도 높일 겸 각 중대별로 상품을 걸고 대결하는 거 재미있지 않겠어? 안 그래, 작전과장?”
“괜찮은 생각입니다.”
“자네들은 어때?”
한종태 대대장이 다른 간부들을 바라봤다.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감히 대대장의 말에 토를 다는 간부들은 없었다.
3중대장도 차라리 잘 됐다며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그렇게 한종태 대대장의 한마디에 이번 체력검정은 중대별 대결로 바뀌었다.
그렇게 회의가 끝나고 중대장들은 상황실을 나섰다.
“진짜 해도 너무하네.”
3중대장이 5중대장과 나란히 걸으며 말했다.
“저번에 오 소위가 멧돼지 사건으로 사단장님께 표창을 받지 않았습니까. 그것 때문에 저러는 것 같습니다.”
“그걸 누가 몰라?”
“그런데 좀 웃기긴 합니다. 언제는 오 소위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더니.”
“내 말이. 5중대장도 아까 대대장님 얘기하는 거 들었지?”
“들었습니다. 1중대가 봐줬다는 식으로 말씀하시는데 솔직히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다른 건 몰라도 체력은 3중대와 5중대가 최고이지 않습니까.”
“우리 3중대가 1등이었고 5중대가 아슬아슬하게 2등이었잖아. 1중대는 4등인가 5등이었고.”
“아무튼 이렇게 된 거 확실하게 보여줘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야지.”
“그래서 말인데 판을 우리에게 유리하게 짜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어떻게?”
“특급 전사를 많이 배출하는 쪽이 이기는 거로 하는 겁니다.”
“저번 체력검정 때 1중대에서는 몇 명이 특급 판정을 받았지?”
< 11장 일보 앞으로!(1) > 끝
ⓒ 세상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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