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장 일이 점점 커지네(8) >
인생 리셋 오 소위! 079화
10장 일이 점점 커지네(8)
“역시 1중대장이야. 자네가 내 마음을 제대로 알아주는군. 사실 말이야. 원래는 오 소위 고생할 거 뻔하니 딱히 보내고 싶지 않았어. 그런데 왠지 모르게 자꾸만 오 소위를 보내야 한다, 보내야 한다, 이런 메시지가 내 머릿속으로 들어오더라고.”
“아, 그렇습니까?”
“그래. 아무래도 호국 정령께서 내게 암시를 줬던 것 같아.”
“역시 대대장님이십니다.”
오상진은 뒤에서 피식 웃었다. 거짓말인 것을 뻔히 알고 있지만 장단은 맞춰줘야 했다.
“이 모든 것이 다 대대장님 덕분입니다.”
“오 소위도 그리 생각하나?”
“네, 물론입니다.”
“어험. 자네까지 그렇다면야······.”
한종태 대대장의 얼굴에 뿌듯함이 묻어났다. 그러다가 문득 뭔가가 떠올랐는지 김철환 1중대장을 봤다.
“참, 1중대장.”
“네.”
“혹시 오늘 1소대 훈련 있나?”
“훈련은 없습니다. 개인 정비 및 전술 교육이 있습니다. 교육자는 2소대장입니다.”
“그래? 그럼 오늘 하루 1소대장 없어도 되지?”
“네, 그렇습니다.”
“그럼 됐네. 1소대장.”
한종태 대대장이 오상진을 봤다.
“네.”
“오늘 하루 외출하고 와. 대대장이 특별히 허가한다.”
“감사합니다.”
오상진의 표정이 밝아졌다. 김철환 1중대장 역시 미소를 지으며 바로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1소대장이 오후에 집안일 때문에 외출을 요청했었습니다.”
“그래? 잘 됐네. 부대 복귀하지 말고, 지금부터 갔다 와. 아예 푹 쉬고 내일 아침에 복귀해.”
“감사합니다. 대대장님.”
“껄껄! 감사는 무슨······.”
“그럼 중대장님.”
“대대장님께서 허락하셨는데 무슨. 어서 다녀와.”
“네, 알겠습니다.”
오상진은 마다하지 않고 곧바로 위병소로 향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한종태 대대장과 김철환 1중대장이 흐뭇하게 웃었다.
13.
부대를 나선 오상진은 곧장 집으로 향했다.
오늘은 온 가족과 함께 새로 이사할 집을 보는 날이었다.
“우왕! 우와! 우와아아아아!”
새로 계약한 집에 도착하자 오상희는 어린아이처럼 비명을 질러댔다.
“큰 오빠! 진짜야? 진짜 여기 우리 집이야?”
“그래.”
“정말이지? 우리 여기로 이사하는 거 맞지?”
“맞다니까.”
“진짜지? 이래놓고 막 딴 데로 가는 거 아니지?”
“이미 계약 끝났어. 이제 우리 집이야.”
“오빠, 진짜 대박!”
오상희는 오상진에게 재차 확인을 하고서야 여기저기 집 구경을 하러 다녔다. 그 뒤에는 오정진이 어머니 신순애를 모시고 나타났다.
“상진아, 정말 여기 맞는 거니?”
“지난번에 말씀드렸잖아요. 요즘 아파트들은 방이 3개뿐이라 여기로 정했다고요.”
“여기 무척 비쌀 텐데······. 괜찮겠니?”
신순애도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시간을 맞추는 게 쉽지가 않아서 오상진더러 알아서 집을 구하라고 했는데 설마하니 가장 꼭대기에 있는 펜트하우스로 데려올 줄은 몰랐던 것이다.
오상진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엄마. 저 돈 많아요. 여기 아파트 사고, 남은 돈으로 엄마 가게까지 충분히 돼요.”
“정말 괜찮은 거지?”
신순애가 재차 물었다. 오상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괜찮다니까요. 그리고 여기 급매로 나와서 아래층하고 별 차이도 없어요.”
“그래?”
“네. 그러니까 너무 부담스럽게 생각하지 마세요. 어차피 위층은 서비스 공간 같은 거니까요.”
한참을 고민한 끝에 오상진이 고른 건 노블리스 아파트.
대한민국 10대 건설사 중 하나인 대반 건설이 내세운 프리미엄 브랜드였다.
전용 면적 84㎡에 실평수 34평, 방 3개에 화장실이 2개 딸린 기본 평형의 가격은 층마다 다르지만 8억에서 9억 사이.
지은 지 5년밖에 되지 않았고 프리미엄 브랜드이다 보니 주변의 아파트들에 비해 평당 단가가 비싼 편이라 처음에는 내키지 않았는데, 중개사가 숨겨두었던 펜트하우스 매물을 내놓으면서 마음이 달라졌다.
물론 펜트하우스라고 해서 강남권 펜트하우스들처럼 대단한 건 아니었다.
옥상에 추가로 제공된 면적을 시공해 추가로 2층에 방 2개와 화장실 1개를 더 설치한 정도였다.
옥탑방 밖으로는 바람을 쐴 만한 베란다도 있었다.
자신의 돈으로 구매한 집에 자신의 방이 없다는 사실이 속 쓰렸던 오상진으로서는 거부할 수 없는 매물이었다.
하지만 신순애의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했다.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오상진이 과한 결정을 내렸다고 생각한 것이다.
반면 철없는 오상희는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집 구경에 여념이 없었다.
“우와, 대박! 엄마! 우리 2층도 있어. 여기 내 방 해도 돼?”
“상희야, 그만 좀 뛰어다녀.”
신순애의 말에도 상희의 눈은 집 구경에 홀라당 빠져 있었다.
“어머니도 좀 구경하세요.”
“집이 다 거기서 거기지, 뭘······. 그보다 진짜 비쌀 텐데······.”
신순애는 계속해서 걱정이 되는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렇게 하면 오상진이 마음을 바꿀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오상진도 어머니의 마음이 이해는 했다.
‘하긴 서울 집값이 한두 푼도 아니니까. 당첨된 돈을 전부 다 집값에 썼다고 하면 걱정이 드는 게 당연해.’
만약 1회차 로또 당첨이 전부였다면 오상진도 이토록 통 큰 결정은 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집값을 치르고도 아직 통장에는 5회차 당첨금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엄마. 이미 계약 다 끝났어요. 이제 와서 무르면 위약금만 몇천만 원 물어야 해요.”
“뭐? 정말?”
“그러니까 이제 더 마음 쓰지 마시고, 우리 이 집 살아요. 정말 싸게 나와서 나도 고민 끝에 결정한 거예요.”
“그래. 알았어.”
어머니는 마지못해 집 구경을 시작했다. 괜히 부엌으로 가서 물줄기를 체크하고, 거실 발코니로 나가 이것저것을 확인했다.
“참, 여기 키 있습니다.”
그사이 중개업자가 오상진에게 슬그머니 키를 건넸다.
“고생하셨습니다.”
“고생은요. 솔직히 여기 탐내는 사람들 정말 많았는데 선생님께서 가져가실 줄은 몰랐습니다.”
“잔금은 다 처리되었죠?”
“네. 방금 확인했습니다. 그래도 이런 펜트하우스를 12억에 산다는 것은 정말 행운이십니다. 이분들이 너무 급하게 이민을 가시는 바람에 급매로 내놔서 말이죠.”
“알죠. 그래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도 원래 쉽게 내놓을 생각이 없었는데 사모님 되시는 분께서 하도 닦달을 하셔서······.”
공인중개사가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전 주인 부부의 사정도 급했겠지만 조금 더 괜찮은 곳 없느냐고 괴롭힌 박은지가 아니었다면 이 집을 보여주는 일은 없었을 터였다.
“네. 와이프가 워낙 똑 부러져서요.”
오상진이 멋쩍게 넘겼다. 그렇다고 이제 와 진실을 털어놓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참, 이사는 언제쯤 생각하시고 계십니까?”
“일단 다음 주 주말 정도로 생각 중입니다.”
“혹시 알아보신 이삿짐센터가 있으십니까?”
“아뇨. 혹시 잘 아시는 곳 있으세요?”
“아무럼요. 있다마다요. 특히나 이 집 같은 고층은 아무 데나 맡기시면 안 됩니다. 전에 살던 주인집이 이용했던 곳이니까 아마 깔끔하게 해줄 겁니다.”
앓는 소리를 하던 공인중개사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 속내를 모르지 않았지만 오상진도 이내 웃어넘겼다.
“리모델링은 따로 하지 않으실 거죠?”
“네.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까요.”
“그래도 기본적으로 장판하고 벽지는 하셔야죠? 주방이랑 화장실 쪽도 보수할 곳은 보수하고요.”
“네. 그럴 생각입니다. 벽지는 산뜻한 거로 바꾸고, 싱크대는 타일을 좀 바꿨으면 좋겠습니다. 너무 밝은 거 같아서요.”
“좋은 생각이십니다. 그런데 업체는 혹시······?”
“하하. 좋은 데 있으면 소개해 주세요.”
“어이구. 감사합니다, 사장님. 제가 정말 잘하는 곳으로 연결시켜 드리겠습니다.”
중개인이 신이 나서 이곳저곳에 전화를 하는 동안 오상진도 찬찬히 집을 둘러봤다.
이미 한 번 봤지만 이제 확실히 자신의 아파트라고 생각하니 느낌이 또 달랐다.
‘내가 이런 곳에서 살게 되다니 진짜 꿈만 같네.’
오상진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고등학교를 다닐 때만 하더라도 방이 2개뿐인 집에 있는 게 불편했다. 조용조용한 오정진과 같은 방을 쓰긴 했지만 여러모로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육사 시절에도 어지간해서는 집에 오지 않았다. 와봐야 편히 쉴 수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1층에 있는 방 3개를 어머니와 오정진, 오상희에게 하나씩 주고 2층에 있는 방을 하나 쓰더라도 방 1개가 남았다.
거기다 화장실도 무려 3개였다.
가족끼리 화장실을 가지고 다툴 일 따위는 없을 것 같았다.
오상진은 2층으로 올라가 베란다로 향했다.
십여 평쯤 되는 공간으로, 넓지는 않았지만 잘 가꾸면 제법 괜찮은 옥상 정원이 나올 것 같았다.
“여긴 엄마도 좋아하시겠다. 이곳에 바비큐를 할 공간을 마련해도 좋을 것 같고.”
오상진은 벌써부터 집 꾸밀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가 2층의 구석진 방으로 시선이 갔다.
“이곳을 정진이 방으로 주면 되겠다. 이제 곧 고3이니까 조용한 곳이 낫겠지.”
화장실의 활용도를 고려하더라도 오정진이 2층의 구석진 방을 쓰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형. 내가 여기 써도 괜찮지?”
비슷한 생각을 한 듯 오정진이 방안을 보며 말했다.
“그래라.”
“정말이지?”
“어차피 안방은 엄마 쓰실 거고, 나는 남는 방 하나 쓰면 되니까 너 쓰고 싶은 방 써.”
“고마워, 형!”
오정진이 활짝 웃었다. 하지만 2층 방을 노리는 건 오정진만이 아니었다.
“내 방 여기! 나 여기 할래! 이방 완전 맘에 들어요.”
“야, 여기 내가 먼저 찜했거든?”
“그런 게 어딨어어어! 아 몰라! 나 여기 할 거야!”
남아도는 방을 두고 다투는 오정진과 오상희를 보며 오상진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이제야 좀 사람 사는 집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14.
집을 다 구경한 후 오상진은 가족들과 함께 근처 고깃집으로 향했다. 입구에 들어서자 곧바로 메뉴판이 눈에 들어왔다.
“어? 한우도 파네.”
그러자 신수애가 오상희를 툭 쳤다.
“아, 왜?”
“넌 한우밖에 눈에 안 들어오니?”
“내가 언제? 엄마는······.”
오상희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그때 종업원이 다가왔다.
“어서 오세요. 몇 분이세요?”
“다섯 명이요.”
“안쪽으로 안내해 드릴게요.”
오상진은 종업원의 안내에 따라 구석진 자리로 이동했다. 자리에 앉자마자 메뉴판을 펼치며 물었다.
“여기 뭐가 맛있어요?”
오상진의 물음에 종업원 아주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저희 ‘맛가정’의 음식은 다 맛있어요. 특히 한우 소갈비가 인기가 많아요. 마침 오늘 새로 고기가 들어와서 신선하기도 하고요. 어떻게 이걸로 드릴까요?”
오상진의 시선이 오상희에게 향했다.
‘철딱서니 없는 오상희는 당연히 한우 소갈비를 달라고 하겠지.’
오상진은 당연히 그럴 거라 생각하고 바로 종업원에게 말했다.
“네, 그게 좋겠네요.”
오상진이 메뉴판을 돌려주려고 할 때 오상희가 바로 말했다.
“아뇨. 그거 말고요. 돼지갈비 주세요.”
“뭐?”
“오빠, 나 돼지갈비 먹고 싶어. 오늘은 돼지 갈비 먹자.”
오상희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네가 웬일이야?”
< 10장 일이 점점 커지네(8) > 끝
ⓒ 세상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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