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장 일이 점점 커지네(6) >
인생 리셋 오 소위! 077화
10장 일이 점점 커지네(6)
“전혀 아닙니다. 은지 씨 덕분에 제가 억울함을 풀지 않았습니까. 오히려 제가 은지 씨에게 고마워해야죠.”
-그렇죠? 상진 씨도 그렇게 생각하죠?
“당연하죠.”
-전 기자로서 본분을 다했는데 그게 잘못된 것은 아니잖아요.
“네, 맞습니다. 은지 씨는 기자로서 본분을 다했고, 저 역시도 군인으로서 본분을 다했습니다. 그래서 이 일이 잘 풀린 것이 아닙니까.”
-역시 상진 씨는 그렇게 말해줄 줄 알았어요.
“기분은 좀 나아지셨습니까?”
-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상진 씨가 절 인정해 주시니 다시 기분이 좋아졌어요.
박은지의 목소리가 처음보다 밝아졌다.
-그런데 우리 밥은 언제 먹어요? 먹을 수 있긴 한 거죠?
“그럼 말 나온 김에 약속을 잡으시죠.”
-그럴까요? 저야 언제든지 좋죠. 언제쯤 시간 괜찮아요?
“이번 주는 계속해서 대민지원을 나가 철책을 설치해야 할 것 같고······. 주말이나 혹은 다음 주쯤에 시간이 될 것 같습니다.”
-네, 알겠어요. 저도 주말에는 바쁠 거 같으니까 다음 주쯤에 시간 맞춰 봐요.
“네, 알겠습니다.”
-어! 국장님이 부르시네요. 저 가 봐야겠어요.
“네. 오늘 하루 수고하십시오.”
-네, 상진 씨도요.
박은지와 짧은 통화를 끝낸 오상진은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그런데 갑자기 ‘지잉’ 하고 핸드폰이 울렸다.
“응?”
오상진이 휴대폰 화면을 확인했다.
김세나에게서 온 문자였다.
-오빠! 완전 대박, 멧돼지 잡았다면서요. 완전 짱 멋있어!
오상진이 피식 웃으며 문자를 남겼다.
-잡은 건 아니야.
곧바로 김세나에게서 답 문자가 왔다.
-기사랑 동영상 봤는데요. 완전 짱, 멋져요.
-정말? 그렇게 멋져?
-응응! 오빠 나랑 결혼해요! 오빠가 딱 내 이상형이에요!
장난스러운 문자였지만 오상진은 순간 심쿵했다.
아이돌 그룹 엔젤스로 데뷔해 대한민국 뭇 남성들의 방심을 흔들어놓을 김세나가 청혼이라니.
멧돼지를 향해 몸을 던지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또다시 지잉 하고 휴대폰이 울렸다.
-뭐예요. 읽음표시 떴는데 답도 없고. 혹시 심쿵하셨나?
오상진은 또다시 장난스럽게 온 문자에 이번에는 똑같이 대응을 했다.
-이거 캡쳐 해놓았다. 각오해. 나중에 진짜 너 나랑 결혼해야 해.
-뭐야, 이 오빠. 완전 꾼이잖아?
-꾼은 무슨. 먼저 시작한 건 너다.
-흥! 암튼 오빠 하는 거 봐서 생각해 볼게요. 그러니까 앞으로 나한테만 잘해요. 알았죠?
오상진은 피식 웃으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이야, 오상진 출세했네. 세나하고 이런 문자도 주고받고 말이야.”
김철환 1중대장과 함께 대대장실로 갈 때만 하더라도 우중충한 하늘이 갑자기 참 맑아진 기분이었다.
7
오상진는 그다음 날도 대민지원을 나갔다. 작업 현장은 박중근 하사에게 맡겨놓고 오상진은 할머니 댁으로 향했다.
때마침 할머니는 툇마루에 앉아 있었다.
“할머니.”
“흥!”
할머니는 입이 툭 튀어나온 상태로 고개를 홱 돌려 버렸다. 오상진은 여전히 화가 나 있는 할머니를 보고 난감한 얼굴이 되었다.
그때 뒤에서 오상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오 소위.”
오상진이 고개를 돌리자 한 대위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오상진은 환한 표정으로 다가갔다.
“한 대위님. 오셨습니까?”
“네.”
“찾기 어렵지 않았습니까?”
“내비 찍고 왔는데 괜찮았습니다.”
“아무튼 이렇듯 선뜻 나서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오 소위의 부탁인데 당연히 와야죠.”
“아닙니다, 이렇게 먼 곳까지 어려운 걸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상진은 진심으로 감사했다. 병원을 가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리시는 할머니가 걱정되어 한 대위에게 넌지시 부탁해 봤는데 휴가까지 내며 도와줄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보다 할머니는······.”
한 대위가 툇마루에 등을 돌린 채 앉아 있는 할머니를 발견했다. 한 대위가 손가락을 가리키며 낮게 물었다.
“저분?”
오상진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할머니는 여전히 고개를 돌린 채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런 할머니를 보며 한 대위가 피식 웃었다.
“어째 저기압이신 것 같은데요.”
한 대위가 장난스럽게 말했다. 오상진이 바로 말을 받았다.
“아직 화가 안 풀리신 모양입니다.”
“혹시 기사를 보셨나?”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오상진이 조심스럽게 할머니에게 다가가 말했다.
“할머니, 여기 군의관님께서 오셨습니다. 한의사신데 할머니만 괜찮으시다면 치료를 해주겠다고 하십니다.”
“뭐, 치료? 일없어.”
“할머니께서 병원 안 가시고, 계속 불편해하시니까, 제 마음이 좀 그렇습니다. 그래도 침이라도 좀 맞는 것이 어떻습니까?”
“······.”
할머니는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그때 한 대위가 나섰다.
“오 소위. 여기서부터는 제가 하겠습니다. 이래 봬도 할머니를 많이 상대해 봤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그럼 부탁 좀 하겠습니다.”
“네, 걱정 마십시오.”
“개인 휴가까지 써가면서 도움을 주신 점 나중에 꼭 보답하겠습니다.”
“후후, 보답까지는 바라지도 않습니다. 게다가 오 소위 일이 곧 내 일입니다. 우리 이런 거 가지고 그러지 맙시다. 나 제대하면 안 볼 사이도 아니고, 안 그렇습니까?”
“네. 그렇죠.”
오상진이 멋쩍게 웃었다. 그래도 고마운 것은 고마운 것이었다.
“참, 오 소위 언제 시간 됩니까?”
“네?”
“내가 지난번에 말했지 않습니까. 소개팅.”
“아, 예.”
오상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 대위가 슬쩍 물어봤다.
“설마 마음 달라지고 그런 것은 아니죠? 난 이미 말 다 해놨는데······.”
“아닙니다. 달라지다니 절대 아닙니다. 언제든지 날짜와 시간 말씀해 주시면 준비해서 나가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내가 조만간 날짜를 잡도록 하겠습니다.”
“네.”
한 대위기 피식 웃으며 할머니 곁으로 다가갔다.
“할머니······.”
한 대위가 나긋나긋하게 할머니를 불렀다.
“제가 진찰 한번 봐드릴게요. 손 한번 줘보세요.”
“아이, 뭐 됐어. 진찰은 무슨 진찰이야.”
“에이, 그러지 마시고 좀 줘보세요. 제가 침을 좀 잘 놓는 편입니다.”
“딱 봐도 어리게 생겼는데 잘 놓기는 무슨.”
“어휴. 저희 외할아버지가 유명한 한의사셨습니다. 그 업을 제가 물려받은 거고요.”
“그게 참말이야?”
“네. 그러니까 잠깐 손 좀 주세요.”
한 대위가 할머니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진맥을 했다.
“우리 할머니 허리랑 무릎이 많이 안 좋으시네.”
순간 할머니의 눈이 번쩍하고 떠졌다.
“맞아, 맞아. 요새 허리하고 무릎이 너무 안 좋아.”
“할머니 혀 한번 쭉 내밀어 보시겠어요?”
“혀?”
할머니는 아예 몸을 돌린 채 한 대위에게 진찰을 받았다. 그리고 한 대위가 시키는 대로 혀를 쑥 내밀었다.
“어디 보자, 우리 할머니 간도 안 좋으시고, 속 쓰림도 자주 있으시네.”
“맞아. 아이고, 용하다, 용해. 어떻게 그걸 다 알아?”
“제가 말씀드렸잖아요. 저희 외할아버지가 유명한 한의사시라고.”
“그랬지 참.”
한 대위는 피식 웃었다. 오상진은 그런 한 대위를 보며 안심이 되었다.
“역시 한 대위님이시라니까.”
생각해 보면 나이가 지긋한 노인분들은 어디 아프다는 것을 알아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워하고 그랬다. 그런 속내를 한 대위가 살살 긁자 꿍하게 앉아 있던 할머니도 꿈뻑 넘어가 버렸다.
8
일주일을 예상했던 철책 작업은 닷새 만에 끝이 났다.
오상진은 마지막으로 점검을 하고 내려왔다.
“모두 고생 많았다.”
오상진이 흐뭇한 얼굴로 소대원들을 바라봤다.
“아닙니다.”
하루 종일 철책 작업에 매달린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을 텐데도 소대원들은 크게 불만을 갖지 않았다.
그런 소대원들이 기특해 오상진은 약속한 간식을 푸짐하게 주문했다.
“자, 저쪽에 보면 피자랑 햄버거 콜라 사다 놨으니까. 먹어라.”
오상진의 한마디에 소대원들의 표정이 환해졌다.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
“그래. 대식아. 데리고 가.”
“네.”
김대식 병장의 인솔하에 준비된 곳으로 갔다.
“와. 피자다.”
“햄버거라니······.”
“이것이 진정 사재 햄버거가 아닙니까.”
“크아······. 톡 쏘는 이 콜라 맛! 역시 콜라는 코크지!”
오상진은 기뻐하는 소대원을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그때 저만치 차량 한 대가 다가왔다.
“응?”
차량 옆면에는 ‘공무 수행 중’이라는 글씨가 적혀 있었다. 그리고 앞 유리에 광주시청이라고 적힌 스티커가 부착되어 있었다.
잠시 후 조수석에서 할머니 아들이 내리고 뒷좌석에서 정장을 입은 중년 남성이 내렸다.
딱 봐도 할머니 아들보다 직책이 높아 보이는 인물이었다.
“혹시 오상진 소위님 되십니까?”
그 중년 남성이 다가와 정중하게 물었다. 오상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제가 오상진 소위입니다.”
그러자 그 남성의 표정이 환해졌다.
“반갑습니다. 저는 광주시청 민원 담당 팀장인 김한솔입니다.”
“아, 네에. 반갑습니다.”
“혹시 시간이 괜찮다면 잠시 얘기 좀 나눌 수 있을까요?”
김한솔 팀장의 물음에 오상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괜찮습니다.”
오상진은 근처 정자로 향했다. 할머니 아들인 주사는 눈치를 보다가 근처 구멍가게에 가서 음료수를 사 왔다.
“이거 하나 드세요.”
“감사합니다.”
김한솔 팀장이 눈치를 주자 주사가 어색하게 웃으며 물러났다.
그 모습을 잠시 지켜보던 김한솔 팀장이 말을 꺼냈다.
“바쁘실 테니 빙빙 돌려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현재 오 소위님의 동영상 때문에 저희 시청이 엄청 욕을 먹고 있습니다.”
“그러십니까?”
“물론 오 소위님을 탓하려고 온 것은 아닙니다. 오해는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네.”
오상진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군에 계시니까 아시겠지만 조직 사회라는 게 이런 식의 구설수를 정말 싫어합니다.”
“그렇죠.”
“그래서 말인데······ 다소간에 오해가 있었다고 좀 말씀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김한솔 팀장이 오해라는 단어에 힘을 주며 말했다.
“오해요?”
“그렇다고 조 주임의 편을 드는 건 절대 아닙니다. 누가 봐도 조 주임이 잘못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노모가 다쳤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아들의 마음도 조금만 생각해 주십시오.”
“그 부분은 저도 이해합니다.”
“이해해 주신다니 정말 감사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추가 기사 하나만 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농담이 아니라 저희가 죽을 것 같아서 그렇습니다. 어제 하루 동안 쏟아진 항의 전화가 얼마나 많은지 직원들이 다들 너무나 힘들어합니다.”
김한솔 팀장이 불쌍한 표정을 지었다. 덩달아 오상진도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답례라고 하긴 뭣하지만 저희 광주시청에서 오 소위님에게 명예시민 표창장을 드릴까 합니다.”
“명예시민 표창장 말입니까?”
“네. 솔직히 별건 아니지만 저희 광주시의 귀한 생명을 구해주셨으니까 응당 감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군부대 쪽에도 별도로 감사 인사를 하겠습니다. 원래는 우리 시장님께서 직접 오시겠다는데 일이 너무 바쁘셔서 말이죠.”
“그렇게 안 해주셔도 되는데 감사합니다.”
“그리고······ 저희 시장님께서 사단장님하고 친분이 좀 있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 10장 일이 점점 커지네(6) > 끝
ⓒ 세상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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