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장 일이 점점 커지네(5) >
인생 리셋 오 소위! 076화
10장 일이 점점 커지네(5)
“어? 어떻게 알고 왔어?”
“네?”
오상진이 영문을 몰라 눈을 깜빡였다. 그러나 김철환 1중대장은 신경 쓰지 않고 곧바로 손짓을 했다.
“야야, 마침 잘 왔다. 너 기사 봤냐?”
김철환 1중대장은 기분이 좋은지 입가에 연신 미소를 띠고 있었다.
“아뇨, 안 봤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기사 보려고 왔습니다.”
“뭐? 기사를 왜 여기서 보려고 해?”
“그게 좀······.”
오상진이 살짝 난처하다는 기색을 내비치자 김철환 1중대장이 바로 이해를 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 행정실 난리 났냐?”
“예. 좀 그렇습니다. 그래서 여기서 기사 좀 편하게 보려고 합니다.”
“그래? 알았다. 여기서 편하게 봐.”
“아닙니다. 핸드폰으로 보겠습니다.”
“자식이, 뭘 번거롭게 그래? 그냥 내 자리에서 봐. 나는 다 봤으니까.”
“감사합니다, 중대장님.”
김철환 1중대장이 자리를 비켜줬다. 오상진은 곧바로 김철환 1중대장의 의자에 앉아 노트북을 확인했다. 그 모습이 제법 자연스러웠을까. 김철환 1중대장이 짓궂게 놀렸다.
“인마, 세상에 이런 중대장이 어디 있어. 안 그래? 이렇게 군기 빠진 소대장을 보살피고, 이렇듯 중대장실에서 기사까지 맘 놓고 보게 해주고 말이야. 안 그러냐, 상진아?”
김철환 1중대장이 장난스럽게 말했지만 오상진은 이미 기사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철환 1중대장의 얼굴에는 함박웃음이 지어졌다.
“자식이 아주 그냥······.”
그러면서 속으로 뒷말을 말했다.
‘예뻐 죽겠다니까.’
-경기도 광주의 외곽 시골 마을에서 군인이 멧돼지의 습격을 받을 뻔했던 민간인을 구해 화제가 되고 있다.
최근 굶주린 야생 멧돼지들이 기승을 부리면서 경기도와 강원도 산간 지역에서 해당 민원이 급증했고 충성대대 소속 1개 소대가 대민 봉사 차원에서 해당 지역의 방책 설치 작업을 맡았다.
군인들이 철책 작업을 하고 있던 도중에 군인들이 남긴 음식물 냄새를 맡은 멧돼지 한 마리가 내려왔고 그 상황에서 민간인과 멧돼지가 대치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하지만 충성부대 오상진 소위가 몸을 날려 민간인을 구하면서 인명피해 같은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해당 영상은 본 기자가 직접 촬영한 것으로 그 당시의 긴박한 상황이 담겨 있다.
촬영 영상에 따르면 병사들의 부축을 받고 자리를 옮기던 70대 여성이 넘어지면서 비명을 내질렀고 그 소리를 들은 멧돼지가 여성에게 달려드는 것을 오상진 소위가 구조하면서 위급했던 상황이 일단락됐다.
지자체에서 해결하지 못한 일을 위해 투입된 군인들이 민간인의 생명을 구했으니 칭찬을 받아야 마땅한 상황.
하지만 정작 여성의 아들인 광주시청의 공무원 조 모 씨는 오히려 멧돼지를 퇴치하지 못한 군인 때문에 어머니가 다쳤다며 배상을 요구하고 있다.
오상진은 살짝 페이지를 내려 댓글을 살폈다.
올라온 지 채 3시간도 안 되는 기사였지만 다소 자극적인 제목 때문일까.
벌써 200여 개의 댓글이 달려 있었다.
-와, 대박! 요새 군인들은 멧돼지도 잡나 봐. 진짜 대한민국 군인 다시 봤다. (동의 761 / 비동의 72)
└저 멧돼지 장난 아니네. 우리 할머니도 멧돼지 때문에 골치 아파하시던데.
└우리 할아버지도요. 혹시 대민지원 어디다 신청하면 되는지 아시는 분?
└이 사람들이 장난하나. 군인들이 나라 지키는 사람이지 멧돼지 퇴치하는 사람입니까? 저러다 다치면 군인이라는 이유로 제대로 보상도 못 받아요.
└군대 좀 간 거로 유세는. 대한민국 남자 중에 군대 안 다녀온 사람 있나?
└군대 다녀왔으니까 군인들 막 부려먹지 말라고 하는 거다. 그러는 너는 군대 다녀왔냐? 꼭 군대도 안 다녀온 애들이 함부로 떠든다니까?
└군인도 국가에서 먹여주고 재워주는데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님?
└너는 꼭 군대에서 말뚝 박고 평생을 헌신해라. 알았지?
기분 좋게 열었던 최고 공감 댓글은 때아닌 군인 처우 논란이 벌어졌다.
“사람들 하고는.”
오상진은 두 번째 공감 댓글을 열었다.
-와, 멧돼지 덩치가 어마어마하네. 새끼 멧돼지겠거니 했는데 장난 없는데? (공감 667 / 비공감 32)
└에이, 저 정도면 큰 것도 아님. 나 어릴 적 황소만 한 멧돼지도 봤습니다.
└황소만 한 멧돼지? 지금 장난함? 혹치 차우 찍음?
└풉! 방금 차우에서 뿜었다.
└차우가 괜히 나온 게 아니에요. 옛 문헌에는 진짜 황소만 한 멧돼지가 있었다고 합니다.
└예전에는 황소 크기도 작았어요. 황소들이 요즘처럼 몸집이 큰 줄 아시나.
└그런데 저 정도면 나도 잡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지랄하고 있네. 멧돼지가 얼마나 포악한 동물인데. 한번 들이박으면 최하 사망임!
└에이, 그 정도는 아니지. 무슨 사망이야.
└막상 멧돼지랑 대치하면 꼼짝도 못 할 사람들이 입으로만 떠든다니까.
이번에는 멧돼지의 크기에 대한 논쟁이 벌어졌다.
세 번째 공감 댓글과 네 번째 공감 댓글의 내용도 비슷했다.
하지만 다섯 번째 공감 댓글 내용에는 대처가 무모했다는 의견들이 나왔다.
-진짜 대한민국 참군인이다. 저 상황에서 누가 저렇게 행동할 수 있을까? (공감 374 / 비공감 112)
└두 팔 벌려 달려들면서 소리치는 거 완전 멋짐.
└진짜 지릴 뻔!
└저것이 바로 현역군인의 포스인가?
└나만 불편한가? 솔직히 뭘 믿고 멧돼지 앞으로 뛰어들었나 싶던데?
└나도 불편함. 저 상황에서 멧돼지에게 달려드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임. 앞에 보면 돌 던지고 멧돼지 자극하고 하던데 영웅이 되고 싶어서 쇼한 거로밖에는 느껴지지 않음.
└영웅 심리였다고? 내 눈이 잘못됐나? 딱 봐도 멧돼지의 시선을 잡아끌려고 억지로 한 행동 같은데?
└군인의 목숨은 무슨 10개라도 되나요? 따지고 보면 같은 사람인데 아무리 생각해도 무모했어요.
└거 참 프로불편러들 많네. 칭찬할 건 칭찬합시다. 그래도 저 군인 때문에 할머니가 무사한 거잖아요. 그럼 된 겁니다. 다들 헛소리 좀 그만하시죠.
└내가 TV에서 봤는데 저거 멧돼지가 달려들 때 우산을 확 펴면 놀라서 달아난다던데. 군인이라 그런가 무작정 덤벼드네.
└와, 진짜 위기 대처를 글로 배운 사람이 여기 있네. 막상 저 상황이면 그렇게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1분 1초가 급한 상황에서 어디서 우산을 챙겨요? 막말로 우산 들고 멧돼지한테 뛰어갔다가 멧돼지가 할머니 들이받기라도 했어 봐. 그땐 또 뭐라고 할 건데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
오상진은 대수롭지 않게 받아넘겼다. 사실 일이 잘 풀렸으니 망정이지 만에 하나 멧돼지가 방향을 바꾸지 않았다면 자신의 무모함이 이 정도로 칭찬받지는 못했을 것 같았다.
-이 기자 누굽니까? 하마터면 군인이 누명 쓸 뻔했는데. 아주 칭찬합니다. (공감 153 / 비공감 74)
└진짜 이 영상 아니었으면 군인이 전부 덤터기 썼을 듯.
└광주시청 공무원 조 모 씨. 딱 기억함.
└막상 일해야 할 공무원들은 뒷짐 지고 군인들이 고생했는데 이제 와서 피해 보상? 피해 보사아앙?
└아들이었다잖아요. 연로하신 어머니가 다쳤으니까 좀 흥분했을 수도 있다고 봅니다. 이 일로 애꿎은 다른 공무원들까지 비난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네. 다음 공무원이요.
└저 공무원 아닙니다.
└네다공~
└그런데 동영상 후반에 보면 여자 비명 소리가 들리지 않나요? 이 목소리 주인 누구죠?
└동영상 찍고 있는 여기자분 같은데요.
└와, 해도 너무하네. 저런 상황에서 촬영할 생각을 했을까?
└여기에 진짜 바보인 사람 많네. 그럼 저 여기자까지 나서야 했어요? 괜히 나섰다가 상황만 더 악화되지. 게다가 이 동영상을 찍어서 군인의 억울함이 풀린 거 아니에요?
└투철한 직업 정신을 발휘한 우리 기자님은 욕하지 맙시다.
└투철한 직업 정신 좋아하네. 암튼 이래서 여자들이 문제라니까.
└여기서 여자 이야기가 왜 나와요?
이후로 몇 개의 댓글들을 확인한 오상진이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박은지가 기사를 쓰겠다고 했을 때만 해도 이 정도로 파급력이 클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사회란에 실린 군대 관련 이야기는 보통 묻히게 마련이었다.
하지만 박은지가 동영상까지 올리면서 적극 해명해 준 덕분에 대대장에게 된통 혼날 뻔한 일이 너무나도 잘 풀려 버렸다.
“이거 은지 씨에게 큰 빚을 졌는데.”
오상진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러자 김철환 1중대장이 눈을 번쩍 떴다.
“은지 씨? 설마 너! 형수가 소개시켜 줬다던 그 사람이야?”
“네.”
“뭐야, 둘이. 언제 그렇게 된 거야? 이제 막 대민지원하는 곳에 부르고 그러는 사이야?”
“무슨 소리십니까. 저희 그런 사이 아닙니다.”
“아니긴, 어떻게 된 거야? 좀 자세히 말해봐.”
“그냥 친구입니다.”
“야, 여자랑 남자랑 친구가 어디 있냐!”
“친구가 왜 없습니까.”
“내가 여태까지 봐왔지만 절대로 여자와 남자는 친구가 될 수 없어.”
“여기 있습니다.”
“웃기는 소리 하지 말고. 어디까지 갔어?”
“어디까지 갔냐니, 무슨 말씀입니까.”
“자식, 당황하는 거 봐. 그래, 그래. 다 알아 인마! 너희 형수한테는 말 안 할 테니까 나한테만 솔직히 말해봐.”
“중대장님, 그냥 친구 같은 사이입니다.”
오상진이 대놓고 발뺌하자 김철환 1중대장이 서운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야, 그래도 형수가 소개시켜 준 사람인데 나한테 그 정도는 말해줘도 되지 않냐.”
“중대장님. 지금은 진짜 친구입니다. 절대 그 이상 아닙니다.”
“지금은?”
“네. 그리고 은지 씨도 절 친구로 생각하고 있고 말입니다.”
“그래도 서로 싫은 건 아닌가 보네. 아무튼 잘 해봐. 지난번에 사진 봤는데 상당히 미인이더만?”
“기사 다 봤습니다. 이제 가 보겠습니다.”
오상진이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김철환 1중대장의 표정으로 봐서는 며칠간 놀려먹을 것 같았다.
“왜? 좀 더 있다가 가. 응?”
“아닙니다. 일과 있습니다.”
“일과는 무슨.”
“정말입니다. 못 미더우시면 직접 확인해 보십시오.”
도망치듯 중대장실을 나선 오상진은 휴대폰을 꺼냈다.
생각해 보니 큰 도움을 준 박은지에게 아직까지 감사 인사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네, 상진 씨.
몇 번의 통화음이 울리고 박은지가 전화를 받았다.
그런데 수화기 너머 들려오는 박은지의 목소리가 잔뜩 풀이 죽어 있었다.
“은지 씨. 무슨 일 있었어요?”
-아니에요. 아무것도.
“혹시 그 기사 냈다고 혼났습니까?”
-에이 혼나긴요. 오히려 칭찬받았는데요.
“그런데 왜 목소리가 축 처져 있어요? 기분이 많이 안 좋아 보여요.”
그러자 박은지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후우, 상진 씨도 제가 동영상 찍은 것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해요?
박은지의 물음에 오상진은 그제야 목소리가 축 처져 있는 이유를 알았다.
‘그일 때문이었구나.’
오상진은 올라온 동영상 아래 댓글의 일부분을 떠올렸다. 일부 댓글 중에는 아무리 기자라지만 그걸 뻔히 보고 있었냐는 비난의 댓글이 적잖았다.
열심히 기사를 작성한 박은지가 기운이 빠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 10장 일이 점점 커지네(5) > 끝
ⓒ 세상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