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장 총알 일발 장전!(8) >
인생 리셋 오 소위! 070화
9장 총알 일발 장전!(8)
“정말입니까?”
“네. 이런 말 하긴 그렇지만 좀 더 군인다워졌다고 할까요. 아, 그렇다고 예전의 김 중위님이 군인답지 않았다는 건 아닙니다.”
오상진도 최근 들어 김소희 중위가 달리 보이긴 했다. 그래서 얼마 남지 않은 군 생활에 최선을 다하는 줄 알았는데 정반대의 생각을 가지고 있을 줄은 몰랐다.
그렇다고 김소희 중위의 결정에 토를 달고 싶진 않았다. 아마 앞으로도 예쁜 외모 때문에 군 생활이 순탄치는 않겠지만 김소희 중위가 조금 더 군인의 길을 걸어 보겠다면 묵묵히 박수를 쳐 줄 생각이었다.
“김 중위님라면 아마 잘할 겁니다. 그러니 믿어 보십시오.”
“그래야겠죠. 저도 믿습니다.”
한 대위는 살짝 애써 미소를 지었다. 그러다가 뭔가 생각이 났는지 바로 말했다.
“참, 오 소위에게 부탁이 있는데 들어 주실 수 있습니까?”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하겠습니다. 말씀해 보십시오.”
“현재도 내부적으로는 둘이 사귀는 것으로 되어 있지 않습니까.”
“네.”
“그럼 불편하지 않으면 조금만 더 교제하는 척해줬으면 좋겠습니다.”
“그건······.”
오상진이 살짝 난감한 얼굴이 되었다. 곧바로 한 대위가 다시 입을 뗐다.
“부탁합니다.”
한 대위가 다시 말했다. 자신이 제대하고 나면 김소희 중위가 기댈 곳이 없으니 오상진이 그 역할을 해 주길 바랐다.
“죄송합니다. 교제하는 척은 힘들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까?”
한 대위가 살짝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가 애써 미소를 머금었다.
“하긴 누가 그런 부탁을 이해하겠습니까. 괜찮습니다.”
한 대위가 애써 담담하게 말했다. 그렇게 말하니 오상진도 자신이 너무 야박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겠습니다. 사귀는 것처럼 행동하는 건 어렵습니다만 누군가 물어보면 대충 얼버무리겠습니다. 적어도 김소희 중위와의 관계가 끝난 건 아닌 것처럼요. 물론 남들이 오해를 해도 신경 쓰지 않겠습니다. 이 정도면 어떻습니까?”
오상진의 제안은 현상 유지였다. 지금도 부대 내에서는 김소희 중위와 오상진이 끝났느니 아니니 말들이 많았다. 다만 두 사람이 입을 꾹 다물고 있다 보니 다들 추측만 할 뿐이었다.
“네. 그렇게만 해줘도 충분합니다.”
한 대위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오상진이라면 김소희 중위를 알아서 신경 써줄 것 같았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모든 걱정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내가 곧 제대하는 입장이라······. 오 소위도 알다시피 군대라는 것이 좀 험한 곳 아닙니까.”
“그렇죠.”
“그러니, 난 오 소위만 믿습니다.”
“제가 얼마나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지난번 일은 정말 고마웠습니다.”
“네?”
“예전 새로 부임한 대대장 취임식 때 큰일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때 오 소위가 아니었다면 크게 봉변당할 뻔했다고 말입니다.”
“아, 그일 말입니까? 그때는 제가 좀 술에 취했습니다. 사실 김 중위가 여동생 같기도 했고 말입니다.”
“여동생이요?”
“제가 여동생이 있지 않습니까. 제 여동생도 나중에 사회생활하다가 이런 일을 겪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까 저도 모르게 도와주고 싶었나 봅니다.”
“그래도 고맙습니다. 오 소위 아니었다면 김 중위도 큰 상처를 받았을 테니까요.”
한 대위는 이후로도 한참을 더 오상진에게 고마워했다.
10
이틀 후 오상진은 1소대원들을 데리고 대민지원을 나가게 되었다.
충성부대에서 아침 일찍 부대를 출발해 도착한 곳은 경기도 광주에서도 아주 깊은 시골이었다.
비포장도로를 달리던 버스가 멈추자 오상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자, 자는 애들 깨워라.”
오상진의 말에 달콤한 잠에 취해 있던 소대원들이 하나둘 일어났다.
“정신들 차리고!”
“네.”
“대식아.”
“병장 김대식.”
“소대장은 이장님 만나고 올 테니까. 넌 애들 좀 챙기고 있어.”
“네, 알겠습니다.”
오상진은 버스에서 내렸다.
그 뒤로 김대식 병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모두 버스에서 내린 후 우측에 3열 종대로 선다.”
“네.”
“차에서 짐 빠짐없이 내리고.”
“알겠습니다.”
김대식 병장의 지휘 아래 소대원들은 빠르게 움직였다. 그리고 짐을 챙겨서 버스에 내렸다.
한편 오상진은 이장 댁으로 걸음을 옮겼다.
집은 몇 가구 되지 않는 마을이지만 아주 깨끗하고 주변 산세가 참 아름다웠다.
“경치는 좋네.”
오상진이 혼잣말을 할 때 6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성이 걸어왔다. 머리에는 옛날 새마을운동 모자를 푹 쓰고서 말이다.
“저기 어르신 말씀 좀 묻겠습니다. 이장님 댁이 어디인 줄 아십니까?”
오상진의 물음에 그 사내가 피식 웃었다.
“내가 이장인데 어디서 오셨소?”
“아, 이장님이십니까? 저는 충성부대 1중대 1소대장 오상진 소위라고 합니다.”
“아, 오기로 한 날이 오늘이었나? 아무튼 반가워요.”
일단 두 사람은 악수를 나눴다. 그리고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았다.
“어디서 왔어?”
“서울에서 왔습니다.”
“어이구. 서울에서 여기까지? 이거 미안해서 어쩌나.”
“아닙니다. 당연히 도움이 필요하면 당연히 도와드려야죠. 그런데 피해 상황이 큰가요?”
“어휴. 말도 마. 그놈의 멧돼지 새끼들 때문에 우리가 피땀 흘려 지은 농작물의 피해가 엄청나다니까? 아주 이러다 전부 굶어 죽게 생겼어.”
“그 정도입니까?”
“말해 뭐해. 일단 나랑 같이 가자고.”
“그전에 저희 대원들부터 한번 보시죠. 움직이더라도 같이 움직이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그럼 그렇게 하고.”
오상진은 이장님을 데리고 소대원들이 있는 곳으로 갔다. 3열 종대로 줄을 맞춰서 대기하고 있었다.
“저희 소대원들입니다.”
3열 종대로 서 있다고 해도 고작 열 명뿐이라 살짝 눈치가 보였는데 이장의 얼굴에는 고마움이 가득했다.
“어이구, 많이도 왔네.”
“상황이 심각한 줄 알았다면 더 왔을 텐데 죄송합니다.”
“죄송은 무슨. 관공서에 전화를 해도 한두 놈 와서 생색만 내고 가는데 이렇게라도 와준 게 고마운 거지.”
이장이 오상진의 손을 꼭 잡아 쥐고는 한 발 앞으로 나왔다. 그리고 소대원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먼 길 오느라 다들 정말 고생 많았습니다. 이 동네에는 노인네들밖에 없어서 멧돼지 처리를 못 하고 있어요. 그러니 많이들 도와주세요. 내 이렇게 부탁합니다.”
“네, 알겠습니다.”
“역시 군인들이라 그런지 목소리가 우렁찹니다.”
이장이 흐뭇한 얼굴로 말했다. 오상진 역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럼 저희는 작업할 장소로 가시죠.”
“그럽시다.”
이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소대원들 앞이라 그런지 하대를 하던 이장이 적당히 말을 올려주었다.
오상진은 곧바로 김대식 병장을 불렀다.
“대식아.”
“병장 김대식.”
“난 이장님하고 우리가 지원할 곳 좀 둘러보고 올 테니까. 한쪽으로 가서 대기하고 있어.”
“네, 알겠습니다.”
“그래.”
오상진이 이장을 보며 말했다.
“가시죠.”
이장은 오상진을 데리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여기, 이것 좀 봐봐. 이거 전부 멧돼지가 다 파헤쳐 놓은 거라니까?”
이장이 가리킨 곳에는 멧돼지 발자국이 수두룩했다. 그리고 곳곳이 땅이 파헤쳐져 있었고, 농작물이 헤집어져 있었다.
“직접 보니 정말 심각하네요.”
“어디 여기뿐인 줄 알아? 저 밭 하고 저쪽 밭은 아예 농작물 수확을 못 했어. 멧돼지 새끼들이 먹을 것만 먹고 갈 것이지 온 밭을 전부 헤집어 놓아서 팔아야 할 것들이 전부 상해버렸다니까.”
“그런 일도 있었습니까?”
오상진은 이장을 따라 돌아보며 두 눈으로 직접 확인했다.
뉴스를 통해 접했을 땐 이 정도일 줄 몰랐는데 예상했던 것보다 피해가 너무 커 보였다.
이장은 땅이 꺼지라 한숨을 내쉬었다.
“예전 같았으면 미리미리 울타리도 치고 해서 피해를 줄였을 텐데, 봐서 알겠지만 이제 이곳에는 젊은 사람이 거의 없어. 멧돼지를 잡아 줄 인원도 없고. 위에서 방비책이라고 내려온 거 전부 다 해봤는데 말짱 헛짓이야. 그렇다고 몇십 년을 살아온 여길 버리고 떠날 수는 없잖아.”
“그렇죠.”
“그러니까 좀 도와줘. 응?”
“알겠습니다. 이장님! 그럼 저희가 무엇을 도와드리면 됩니까?”
“저기 산 중턱에 빨간색 끈 보이지?”
이장이 산 쪽으로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몇백 미터 떨어진 곳에 빨간색 끈이 바람에 나부꼈다.
“아, 저기 빨간 끈 말씀이시죠.”
“그려. 거기서부터 저쪽 빨간 끈이 있는 곳까지 철조망 설치를 해줄 수 있겠어?”
보아하니 마을 자체적으로 철조망을 설치하려고 했던 모양이었다. 그리고 아마도 인건비나 다른 문제로 인해서 실행에 옮기지 못한 것 같았다.
“네. 알겠습니다.”
오상진이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생각보다 범위가 넓었다.
‘이거 오늘 안으로는 힘들겠는데.’
오상진은 다이어리에 체크를 한 후 고개를 끄덕였다.
서두르면 사흘.
넉넉잡아 5일은 걸릴 것 같았다.
사흘간 서울과 이곳을 오간다는 게 말처럼 간단한 일은 아니었지만 대민지원의 특성상 나섰으면 제대로 도와야 했다.
만에 하나 대충 설치한 철조망을 뚫고 멧돼지가 내려왔다가 사람이라도 다친다면 그 책임은 충성대대가 질 수밖에 없었다.
“알겠습니다. 저희가 최대한 작업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네.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이장이 가고 오상진은 소대원이 있는 곳으로 왔다.
“자, 다들 잘 쉬었어?”
“네.”
“그럼 소대 이동하자. 대식아.”
“넵! 소대 정렬.”
김대식 병장의 한마디에 소대가 후다닥 정렬했다. 그리고 오상진을 따라 작업할 곳으로 갔다.
“자, 우리가 할 작업은 저쪽에서 저기까지 멧돼지가 못 내려오게 철조망을 설치하는 것이다.”
오상진의 작업지시 내용을 듣고 소대원들의 눈이 커졌다. 생각했던 것보다 작업량이 너무 많았다.
“워! 너무 길다.”
“그러게 말입니다. 이거 오늘 안으로 끝나겠습니까?”
“며칠 걸릴 것 같습니다.”
“하아······.”
오상진이 말한 라인을 눈으로 좇아보니 작업이 언제 끝날지 막막해 보였다. 그렇다 보니 소대원들의 어깨가 축 처졌다.
그러자 오상진이 소대원들을 보며 말했다.
“얘들아, 어차피 오늘 안으로 끝날 작업량이 아니야. 며칠 더 와야 할 거야.”
“그렇습니까?”
“그래. 그리고 이 소대장이 고생하는 너희들을 그냥 두겠냐. 먹는 건 소대장이 확실하게 책임질 테니까 투덜거리지 말고 움직이자.”
“네,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점심 말인데. 짜장면 어떠냐? 아니면 피자? 원하는 거 다 시켜 줄게.”
“정말입니까?”
“그래, 인마. 소대장은 절대 거짓말 안 해. 그런데 여기까지 배달이 되려나?”
오상진은 그게 의문이었다. 그러자 누군가가 말을 했다.
“요새 배달 안 되는 곳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냐?”
오상진이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한두 시간만 있으면 점심시간이었다.
“대식아, 넌 애들 데리고 가서 작업 시작해.”
“네.”
“다치지 않게 조심하고.”
“알겠습니다.”
김대식 병장이 소대원을 데리고 이동했다. 자재는 이미 준비되어 있었다.
“철조망 챙기고, 망치와 말뚝도 챙겨서 가자.”
“네.”
소대원들이 이동하고 오상진은 이장에게 갔다.
“저기 이장님.”
“뭐 필요한 게 있어?”
“다름이 아니라 혹시 여기도 배달이 옵니까?”
그러자 이장이 가볍게 눈을 흘겼다.
< 9장 총알 일발 장전!(8) > 끝
ⓒ 세상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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