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장 총알 일발 장전!(7) >
인생 리셋 오 소위! 069화
9장 총알 일발 장전!(7)
“취재 말입니까? 상관은 없지만······ 취재할 만한 것이 있겠습니까?”
-모르죠. 뭔가 나올지도. 겸사겸사 우리 바쁜 상진 씨 얼굴도 보고요.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십시오.”
-네, 그럼 어느 지역으로 가는지 꼭 문자로 남겨 주세요.
“알겠습니다.”
오상진은 전화를 끊고 피식 웃었다. 그리고 1소대 내무실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9
그날 저녁.
일과를 마치고 관사로 돌아와 쉬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누구지?”
오상진은 침대에서 일어나 책상으로 향했다. 발신자를 확인하니 한 대위였다.
“어? 한 대위님이시네. 이 시간에 무슨 일이지?”
오상진이 전화를 받았다. 곧바로 전화를 받았다.
“오상진 소위입니다.”
-접니다, 한 대위.
“네, 한 대위님. 그런데 이 시간에 어쩐 일이십니까?”
-지금 어디십니까?
“관사입니다.”
-그럴 것 같아서 전화했습니다. 혹시 오늘 약속은 있으십니까?
“아뇨, 없습니다.”
-잘 됐습니다. 괜찮다면 저랑 술 한잔하시죠.
“지금 말입니까?”
-네.
“안 그래도 심심하던 참이었는데 좋습니다. 어디서 만납니까?”
오상진은 통화를 하며 옷을 챙겨 입었다.
-거창하게 먹지 말고, 제 진료실로 오십시오. 제가 미리 준비해 놨습니다.
“의무대 진료실 말입니까?”
-네.
“알겠습니다. 곧 가겠습니다.”
오상진은 전화를 끊은 후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관사를 나섰다. 관사에서 의무대까지는 걸어서 약 15분 거리에 있었다.
의무대에 도착한 오상진은 조심스럽게 진료실 문을 열었다.
“계십니까?”
한 대위가 사무실에서 부랴부랴 뛰쳐나왔다.
“어? 왔습니까?”
“네. 그런데 오늘 당직사령이십니까?”
“하하, 아닙니다.”
한 대위가 대답을 하면서 슬쩍 건너편 사무실 쪽으로 턱짓을 했다. 그곳에 불이 켜져 있었다.
“아, 최 대위님이 계십니까?”
“네. 설마 제가 당직사령 할 때 술을 마시겠습니까?”
“저도 그래서 의아하던 참이었습니다. 혹시 무슨 일이라도 있나 해서요.”
“일은요. 그냥 오늘 오 소위하고 술 한잔하고 싶어서 전화했습니다. 그렇다고 쉬고 있는 오 소위를 멀리 불러내는 것도 그렇고 해서요.”
“그냥 술이 고프셨던 겁니까?”
“뭐······ 따로 할 말도 있고요.”
한 대위가 오상진의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오상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왠지 그러실 것 같았습니다. 한 대위님하고 한잔한 지도 오래됐고요.”
“그럼 잠깐만 기다리세요.”
“네.”
한 대위는 사무실로 가서 봉지를 들고 나왔다. 그 안에는 맥주 캔과 안줏거리가 잔뜩 담겨 있었다.
‘PX를 터셨네.’
책상 위로 간단한 술상이 차려졌다.
“이것도 괜찮죠? 밖에서 먹으면 왠지 소란스럽기만 하고 말이죠.”
“네. 저도 조용한 곳을 좋아합니다. 물론 의무대 진료실에서 술을 먹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지만 말입니다.”
“하하, 그렇습니까? 여기서 먹는 술도 나름 묘미가 있습니다.”
“네, 그럴 것 같습니다.”
한 대위가 맥주 캔 하나를 따서 오상진에게 건넸다.
“감사합니다.”
한 대위 본인 것도 땄다.
“건배하겠습니까?”
“좋죠.”
가볍게 맥주 캔을 부딪친 후 오상진이 단숨에 들이켰다. 냉장실에서 막 꺼내서인지 시원하게 잘 넘어갔다.
“후아, 오늘따라 맥주 맛이 정말 좋습니다.”
오상진의 말에 한 대위도 고개를 끄덕였다. 오상진은 땅콩 하나를 입에 넣고 오물거렸다.
그리고 본론을 물어보았다.
“그런데 하실 말씀이 뭡니까?”
“무슨 약속 있습니까?”
“아뇨. 그냥 먼저 이야기 듣고 편하게 술 마시고 싶어서 그렇습니다.”
“그게 사실 말입니다.”
한 대위는 남아 있던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러고도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저, 김 중위랑 사귑니다.”
오상진은 이렇게 될 거라 예상했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한 대위와 김소희 중위가 교제하기를 내심 바랐다.
그런데 막상 긴장하며 말을 꺼내는 한 대위를 보니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아, 그렇습니까?”
오상진의 반응이 별로 없자, 한 대위는 뭔가 진이 빠지는 기분이었다.
“하아, 난 무척 긴장하며 말했는데 오 소위는 별로 놀라지 않습니다. 눈치채고 계셨나 봅니다.”
한 대위의 물음에 오상진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솔직히 말씀드리면 알고 있었습니다. 언제 말씀을 해주시려나 생각을 하고 있었죠.”
“이런······.”
한 대위는 씁쓸한 미소를 머금었다. 오상진이 그런 한 대위를 보며 말했다.
“그래도 전 두 분을 응원하고 있었습니다. 정말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고 있었지 말입니다.”
한 대위가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내 생각이 맞았습니다.”
“네?”
“예전에 오 소위와 김 중위에 대해서 얘기를 나눴던 적이 있지 않습니까.”
“그랬죠.”
“그때 오 소위가 마치 나에게 김 중위를 맡긴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물론 잘못 생각한 것일 수도 있지만 말이죠.”
“아뇨, 정확했습니다.”
오상진이 미소를 지었다.
“역시······. 그런데 김 중위는 절대 아니라고 합니다. 오 소위도 분명 조금은 자신에게 마음이 있을 것이라면서 말이죠.”
한 대위가 떠보듯 물었다. 그 표정을 보아하니 절대 그런 일이 없다고 잡아떼더라도 실망할 것 같았다.
“솔직히 말씀드려도 됩니까?”
“솔직한 게 좋죠.”
“김 중위님이 우리 부대 최고의 미인이시지 않습니까. 군대라는 폐쇄적인 곳에서 김 중위님 보면 어느 남자가 안 좋아하겠습니까?”
“그래서 좋아는 하셨다는 겁니까?”
“저도 김 중위님 보면서 미인이시구나 했죠. 하지만 좋아한 건 아닙니다. 제 이상형하고는 조금 거리가 있어서요. 무엇보다 상관이기도 하고. 그러니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오상진이 적당한 말로 둘러댔다. 이쯤 되면 한 대위의 의문도 풀렸을 거라 여겼다.
하지만 정작 한 대위는 오상진이 말한 이상형이라는 말에 꽂혔다.
“그럼 이상형이 어떻게 됩니까?”
“갑자기요?”
“한번 말해보십시오. 혹시 압니까? 제가 이상형에 가까운 여자를 알고 있을지요.”
“하하. 제 이상형은 말입니다. 일단······ 자기 일 잘하고, 똑 부러지는 여자?”
오상진은 자신도 모르게 박은지를 떠올렸다. 고작 두 번 만났을 뿐이지만 만약 누군가를 진지하게 만나게 된다면 박은지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예쁘고, 몸매까지 좋으면 더 좋고 말이죠?”
“아이고, 그럼 대박이죠.”
한 대위가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오 소위.”
“네.”
“사실 방금 오 소위가 말한 이상형에 가까운 사람이 딱 한 명 내가 알고 있습니다. 혹시 소개 한 번 받을 생각 있습니까?”
오상진의 눈이 커졌다.
“한 대위님께서 아는 지인입니까?”
“뭐? 지인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한 대위가 묘한 미소를 지으며 아리송한 답변을 내놓았다.
“그런데 갑자기 왜 소개를 시켜주신다는 겁니까?”
“솔직히 말해서 오 소위가 도와줘서 김 중위랑 잘 되었지 않습니까. 인간적으로 보답을 하고 싶었습니다. 게다가 오 소위 이상형하고도 어느 정도 일치하는 것 같고요.”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 거절은 안 하겠습니다.”
“좋습니다. 그럼 제가 조만간 자리를 한 번 마련하겠습니다.”
“네. 그럼 저 오늘부터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오상진이 짓궂게 말하자 한 대위도 피식 웃음을 흘렸다.
“네. 기대해도 됩니다.”
“알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다시 한번 건배 어떻습니까?”
“좋죠.”
두 사람은 다시 맥주 캔을 부딪치며 시원하게 들이켰다. 그리고 오상진은 속으로 생각했다.
‘정말 잘 됐다. 김 중위랑 잘 만나서 말이야. 그런데 이러면 내가 또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꾼 건가? 별문제는 없겠지?’
어느 정도 술자리가 무르익을 때쯤 오상진이 한 대위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한 대위님. 뭐 하나 물어봐도 됩니까?”
“네. 물어보십시오.”
“김 중위가 왜 그렇게 좋습니까?”
“오 소위가 말하지 않았습니까? 우리 부대 최고의 미인이라고. 솔직히 정말 예쁘긴 합니다.”
한 대위는 말을 하면서도 실실 웃음을 흘렸다. 그러다가 이내 진지해진 얼굴로 말했다.
“농담이고, 나는 원래 생활력이 강한 사람이 좋습니다. 그런데 김 중위를 가만히 지켜보니 성실하면서도 책임감이 강해 보였습니다. 게다가 알뜰하기까지 하고 말이죠.”
“아, 그렇습니까?”
오상진은 김소희 중위의 의외의 모습에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한 대위가 진지한 얼굴로 오상진을 불렀다.
“저기······ 오 소위.”
“네, 말씀하십시오.”
“김 중위에 대해서 들은 게 있습니까?”
“김 중위님 말입니까? 솔직히 많이 알지는 못하고, 조금 알고 있습니다.”
“집안 사정도 혹시 알고 있습니까?”
“자세히는 모릅니다. 다만 집안 형편이 어렵다는 이야기는 얼핏 들었습니다. 한 대위님도 알겠지만 저희 집안 사정도 좋은 편은 아니니까요.”
“아, 대충 어떤 건지 알겠습니다.”
한 대위가 넘겨짚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오상진도 굳이 설명하기 번잡한 일이라 그냥 그렇게 넘겨 버렸다.
“얘기를 들었다니 알겠지만 김 중위네 집안 형편이 그리 좋지 못합니다. 그래서 군대 와서도 사실 장녀로서 꼬박꼬박 집에 생활비도 보태주고 있었습니다. 그 와중에도 바깥으로 티 내지 않고 군 생활을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고 제가 반했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물론 이 이야기는 비밀입니다. 김 중위가 그런 걸 싫어해서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입 꾹 다물겠습니다. 그런데 한 대위님은 전역이 얼마 안 남았지 않습니까?”
“네. 몇 개월 안 남았습니다.”
“그럼 김 중위님도 한 대위님 따라 곧 전역하시는 겁니까?”
오상진이 넌지시 물었다. 그러자 한 대위의 표정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하아, 사실 또 그게 문제인데······.”
한 대위는 연거푸 맥주를 들이켰다. 오상진은 그가 입을 뗄 때까지가만히 기다려줬다.
사실 과거의 김 중위는 대위를 달지 못하고 전역을 했다. 건넛방의 최 대위와 비밀 교제를 하는 과정에서 제대 후 결혼하자는 이야기가 오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 대위가 제대 후 일체 연락을 끊으면서 김소희 중위는 낙동강 오리 알 신세가 되어버렸다.
물론 이번에는 사정이 달랐지만 김소희 중위의 사정상 한 대위와 잘 되면 굳이 군대에 남아 있을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그런데 한 대위의 표정을 보니 김소희 중위의 결정이 달라진 모양이었다.
“사실 나도 김 중위와 함께 제대를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김 중위는 계속 군대에 남고 싶은 모양입니다.”
“그렇습니까?”
“솔직히 이런 말 하기는 그렇지만 김 중위가 육사 출신이 아니지 않습니까. 지난번에 그런 일도 있고 해서 군에 미련을 두지 않을 거라 여겼는데 갑자기 군 생활을 이어가겠다고 하니 날 못 믿는 것 같기도 하고······ 좀 그렇습니다.”
“김 중위님이 군대에 대한 애착이 생기셨나 봅니다.”
오상진이 적당히 맞장구를 쳐주었다. 정확한 사정은 모르겠지만 김소희 중위가 한 대위를 만나면서 생각 자체가 바뀐 모양이었다.
한편으로는 이해도 갔다. 일단 한 대위는 집안이 좋았다. 한 대위도 제대하면 부모님이 물려주신 한방 병원 원장이 될 테니 그런 점이 신경 쓰였을 수도 있었다.
“본인 말로는 진급에 대한 욕심이 생겼다고 하던데 정말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오 소위가 보기에는 어떻습니까?”
“그러고 보니 요즘 군 생활 엄청 열심히 하시는 것 같습니다.”
< 9장 총알 일발 장전!(7) > 끝
ⓒ 세상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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