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장 총알 일발 장전!(5) >
인생 리셋 오 소위! 067화
9장 총알 일발 장전!(5)
“괜찮습니다. 그냥 두십시오. 이미 지난 일입니다.”
“그래도 저건······.”
“괜찮습니다. 없는 자리에서는 나라님 욕도 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오상진은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 했다. 다시 과거로 돌아와 잘못 낀 퍼즐 조각을 잘 맞춰 나가고 있는데 별것 아닌 문제로 소대원들 앞에서 얼굴을 붉히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부소대장인 박중근 하사의 생각은 달랐다.
“그래도 너무 풀어주시는 것 같아 걱정입니다.”
“그럼 부소대장이 적당히 굴려 주세요.”
“네?”
“각개전투장에서 말입니다. 제 말 무슨 뜻인지 아시죠?”
오상진이 넌지시 말했다. 그러자 박중근 하사가 피식 웃었다.
“걱정 마십시오. FM은 제 전공분야입니다.”
“네. 믿겠습니다.”
5.
모든 일과를 마친 오상진은 김철환 1중대장과 함께 밖에서 저녁을 먹었다.
메뉴는 늘 그렇듯 삼겹살에 소주였다.
“야, 이번에 로또 1등 뉴스 봤냐? 무려 50억이란다. 50억! 진짜 그 사람 대박이지 않냐.”
“아, 네에.”
오상진은 대답을 하면서 살짝 시선을 피했다. 땅이 꺼지라 한숨을 내쉬는 김철환 1중대장을 보고 있자니 당첨자로서 미안해진 것이다.
한편으로는 1등 당첨에 집착하는 김철환 1중대장이 걱정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오상진 역시 한때 그런 적이 있었기 때문에 별다른 말을 하지 못했지만.
‘뭐 저러다가 마시겠지. 형수가 있으니까······.’
오상진이 김철환 1중대장의 빈 술잔에 술을 채웠다.
“크으. 술맛 쓰다.”
김철환 1중대장이 술을 단숨에 털어 넣고는 바짝 익은 삼겹살을 오물거렸다.
“그건 그렇고, 너 과외 언제 해줄 거야?”
“과외 말입니까?”
“너희 형수가 난리다. 처제 성적표가 나왔거든.”
“성적이 별로인가 보네요.”
“별로니까 과외를 해달라고 한 거지. 그건 그렇고 너희 형수가 소개시켜 준 그 사람과 잘 된다며?”
“잘 되는 건 아니고 그냥 두 번 정도 얼굴 본 게 다입니다.”
“왜? 마음에 안 들어? 다른 사람 소개시켜 달라고 할까?”
“아뇨. 좋은 사람인 거 같아서 좀 더 만나 볼 생각입니다.”
“그럼. 너희 형수가 아무나 소개시켜 준 게 아냐. 얼마나 깐깐하게 고르는데?”
“형수님께 꼭 감사하다고 전해주십시오.”
“우리 사이에 감사는 무슨. 아무튼 인마! 가는 게 있으면 오는 게 있어야지.”
김철환 1중대장이 장난스럽게 말했다. 오상진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내일 찾아가도록 하겠습니다.”
“내일? 좋아. 너희 형수한테 말해 놓는다?”
“네. 그렇게 하십시오.”
6
다음 날 저녁.
오상진은 약속한 대로 김철환 1중대장 집에 갔다.
“어서 오세요, 도련님.”
김선아는 오늘도 맛있는 갈비찜을 준비해 놓고 있었다.
“네, 형수님 잘 지내셨어요?”
“저는 잘 있었어요. 저녁 전이시죠?”
“네.”
“어서 이리와 앉으세요.”
오상진과 김철환 1중대장은 식탁에 앉아 먼저 저녁을 먹었다. 형수인 김선아의 음식 솜씨가 어찌나 좋던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세 공기를 뚝딱 해치우고 있었다.
“밥 더 드릴까요?”
“아뇨. 괜찮습니다. 더 먹으면 진짜 배가 터질지도 모릅니다.”
“변변찮은데 맛있게 먹어줘서 고마워요.”
“변변찮긴요. 정말 최고의 요리였습니다.”
오상진이 엄지손가락 두 개를 들어 올리며 말하자 김선아의 얼굴에도 웃음이 번졌다.
“그럼 앞으로도 솜씨를 좀 발휘해 볼 테니까 우리 세나 공부에 취미 좀 붙일 수 있게 해주세요.”
“네, 노력해 보겠습니다.”
그때 문이 열리며 축 처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 왔어.”
“왔니?”
김선아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런데 교복 입은 누군가가 훅 하고 식탁 앞을 지나 방으로 사라져 버렸다.
“잠깐만요.”
김선아가 멋쩍게 웃으며 김세나를 쫓아 방으로 들어갔다. 그러곤 김세나의 등짝을 치며 혼을 냈다.
쫙!
“아, 왜에! 아프다고.”
“손님을 봤으면 인사를 해야지!”
“몰랐어!”
“모르긴 뭘 몰라? 아무튼 너 얼른 씻고 준비해.”
“배고파. 밥부터 줘.”
“오는 길에 군것질 잔뜩 했으면서 무슨. 과외부터 하고 먹어.”
“과외? 싫다고 했잖아아.”
“성적을 그따위로 받아놓고 그런 소리가 나와?”
다시 한번 짝 소리가 나고
“이 씨, 맨날 언니 맘대로야.”
김세나의 투정 소리가 식탁까지 울려 퍼졌다.
“처제가 씩씩하네요.”
오상진이 멋쩍게 웃자 김철환 1중대장도 살짝 민망해했다.
“이해해라. 네 형수가 처제한테는 호랑이다, 호랑이.”
“이해합니다. 저도 여동생한테는 저러거든요.”
오상진과 김철환 1중대장은 거실로 자리를 옮겼다. 그사이 김선아가 차와 과일을 내오며 말했다.
“옷 갈아입을 시간이 필요하니까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네. 형수님. 전 괜찮으니까, 천천히 하십시오.”
“네.”
그렇게 차를 거의 다 마실 때쯤 김선아가 다가왔다.
“도련님. 이제 시작하셔도 될 거 같아요.”
“알겠습니다.”
오상진은 헛기침을 하며 건넛방에 들어갔다.
책상 앞에는 머리카락이 촉촉이 젖은 여자아이가 앉아 있었다.
“안녕, 나는 오상진이라고 해. 이름이 김세나라고 했지?”
오상진이 조심스럽게 말을 붙였다. 그러자 김세나가 고개를 돌려 오상진을 바라봤다.
자연스럽게 김세나와 눈이 마주쳤는데······ 어딘지 모르게 낯이 익었다.
‘어? 어디서 많이 봤는데······. 어디였더라.’
잠깐 생각을 하던 오상진의 기억 속에 한때 좋아했던 아이돌 그룹 엔젤스의 센터, 세나가 떠올랐다.
‘서, 설마 이 세나가 그 세나라고?’
오상진의 눈동자가 흔들리자 김세나가 슬쩍 입가를 비틀어 올렸다.
“왜 그렇게 절 보세요?”
“아, 아니야.”
“피이. 저도 알아요. 제가 좀 예쁘죠?”
그때 열린 문으로 김선아가 과일을 가지고 들어왔다.
“예쁘긴 뭐가 예뻐! 너 같은 애들이 밖에 수두룩해. 요즘 애들 중에 너만큼 안 예쁜 애들이 어디 있니.”
“칫, 언니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김선아는 그런 김세나의 말을 깨끗이 무시하며 오상진에게 환하게 웃었다.
“도련님 이거 드시면서 하세요.”
“네, 형수님 잘 먹겠습니다.”
오상진이 과일 접시를 받아서 한쪽에 뒀다.
“그럼 천천히 하세요.”
김선아는 김세나를 힐끔 쳐다보며 말을 한 후 방을 나섰다. 오상진은 일단 마음을 진정시키며 책을 폈다. 그런데 김세나가 턱을 팔에 괴고는 오상진을 빤히 쳐다봤다.
“오빠!”
“오, 오빠? 선생님이라고 안 하고?”
“왜요? 난 선생님은 딱딱해서 싫은데. 혹시 오빠라는 소리 듣기 싫어요?”
“아, 아니야. 너 편한 대로 해.”
“그래서 말인데요, 오빠는 어떻게 생각해요?”
순간 오상진의 심장이 두근두근 뛰기 시작했다.
맥락상 자신의 외모에 대한 평가를 물어본 것이겠지만 팬심에 사심이 더해지니 꼭 자신을 유혹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 글쎄······.”
오상진이 슬쩍 시선을 피했다. 과외 선생으로 온 이상 확실하게 기선 제압을 해야 했지만 눈앞의 김세나와 엔젤스 김세나가 겹쳐 보이기 시작한 순간부터 평정심을 유지하기조차 쉽지 않았다.
‘로또 때문에 과거로 돌아온 줄 알았더니 아니었어. 세상에 세나의 과외 선생님이라니.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일찍 오는 건데. 그건 그렇고 형님은 처제가 세나라는 걸 왜 말해주지 않았지?’
오상진은 괜히 김철환 1중대장을 탓했다. 세나를 가르치는 줄 알았다면 샤워도 하고 향수도 뿌렸을 텐데. 근무 후에 옷만 갈아입고 왔다는 게 민망하기만 했다.
‘하긴 그 당시에는 내가 로또에 미쳐 있었으니까. 처제를 소개시켜 주고 싶지 않았겠지. 그런데 만약에 내가 로또에 미치지 않고, 제대로 군 생활을 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어쩌면······.’
오상진이 힐끔 세나를 보았다. 어쩌면 눈앞에 있는 세나와 잘 되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갑자기 문이 또 열리더니 김선아가 들어왔다.
오상진이 흠칫 놀라 김선아를 바라봤다.
“아, 마실 것을 안 갖다 드려서······.”
자신이 공부를 방해했다고 오해한 김선아가 음료가 담긴 쟁반을 내려놓고는 서둘러 방을 나섰다.
‘정신 차려 오상진. 형수가 지켜보고 있다.’
오상진은 시원한 음료를 벌컥벌컥 들이켜며 마음을 다잡았다. 그리고 김세나가 아니라 오상희를 가르치는 것이라며 자기 암시를 했다.
“그럼 이제부터 공부를 해볼까?”
“칫. 벌써요?”
“특별히 하고 싶은 과목 있어? 약한 과목이라던가.”
“사실 저 공부 못 해요. 별로 관심도 없어요.”
“그럼 어떻게 할래? 원래 다니던 학교로 돌아갈래?”
“그건 싫어요. 서울에서 오디션 보려면 여기서 학교를 다녀야 하거든요.”
김세아가 진지하게 말했지만 오상진은 괜히 웃음이 났다. 평소 오상희가 자주 하는 말과 비슷했기 때문이다.
“왜 웃어요?”
“아니야.”
“뭐야? 오빠! 오빠도 제가 연예인 안 될 거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오상진이 비웃었다고 오해한 김세아가 눈을 흘겼다. 그러자 오상진이 냉큼 김세아를 달랬다.
“안 된다고 말한 적 없어. 그렇게 생각하지도 않고.”
“그런데 왜 웃었어요?”
“그게 실은······ 내 동생도 너처럼 연예인 지망생이거든.”
“오빠도 동생 있어요?”
“있어. 그것도 둘이나. 틈만 나면 오디션 보러 다니는 건 여동생이고.”
“사진 보여줘요. 사진!”
“사진? 갑자기?”
“혹시 제가 아는 사람인가 해서요.”
“글쎄. 아마 모를 텐데.”
김세아의 재촉에 오상진이 휴대폰을 꺼내 포토샵으로 다듬은 오상희의 사진을 보여줬다.
“어? 예쁘네요?”
“응? 그럴 리가.”
“이 정도면 예쁘죠. 그런데 어디서 본 것 같은데······.”
김세나가 한참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자 오상진이 냉큼 핸드폰을 닫아버렸다.
“혹시라도 얘를 만나거든 무조건 피해. 알았지?”
“왜요? 친하게 지내면 안 돼요?”
“큰일 날 소리 말고 이제 공부하자.”
“그런데 오빠는 아이돌 중에 누구 좋아해요?”
“나? 엔젤스?”
“엔젤스? 그런 그룹이 있었나? 처음 들어보는 이름인데.”
김세나의 반문에 오상진은 순간 아차 싶었다.
‘맞아, 엔젤스는 아직 데뷔하지 않았지.’
다행히 김세나는 오상진이 미래를 언급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엔젤스가 아니라 혹시 다른 그룹하고 착각한 거 아니에요?”
“아무래도 그런 거 같은데?”
“에이스나 에잇걸스 말하는 거 아니에요?”
“어, 맞아. 에잇걸스였나 봐.”
“그럼 에잇걸스에서 누구 좋아하는데요?”
“그냥 TV에서 몇 번 본 게 전부야. 군인들에게 걸그룹은 종교 같은 거거든.”
“이런 식으로 말을 돌리시겠다?”
김세나가 건수라도 잡은 것처럼 실실 웃었다. 이대로는 완전히 말리겠다 싶어서 오상진도 다급히 화제를 돌렸다.
“그런데 너는 왜 연예인이 되고 싶어?”
“보면 몰라요? 예쁘잖아요.”
“너 예쁜 건 아는데 예쁘다고 다 연예인을 하고 싶어 하는 건 아니잖아.”
“올. 방금 인정했죠? 나 예쁜 거.”
“그래. 인정. 대신 형수한테는 비밀이야.”
“그야 당연하죠. 그럼 나도 솔직하게 대답해 줄게요. 우리 집 사정은 대충 알죠?”
“어느 정도는.”
“그래서 돈 벌고 싶어요. 최대한 빨리.”
“그럼 공부를 열심히 해야지.”
“에이, 전 공부할 머리는 아니에요. 그리고 좋은 회사 취직하려면 대학도 졸업해야 하고 해외 연수도 다녀와야 하잖아요. 그렇다고 언니처럼 빨리 시집가고 싶지도 않고요.”
“형님이 들으시면 서운해하시겠네.”
“그렇다고 형부가 싫다는 소리는 아니에요. 사실 우리 언니 공부 엄청 잘했거든요. 만약 계속 공부했으면 지금보다 훨씬 더 멋진 인생을 살고 있을지 몰라요.”
< 9장 총알 일발 장전!(5) > 끝
ⓒ 세상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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