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장 그냥 죽으라는 법은 없다(8) >
인생 리셋 오 소위! 062화
8장 그냥 죽으라는 법은 없다(8)
“어?”
3중대장은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원래 오상진이 공격수였는데 이번에는 공격수가 바뀌어 있었기 때문이다.
‘흥! 그래도 소용없어. 이대로 끝낸다.’
그렇게 생각하며 공격이 시작됐다. 예상대로 3중대장은 오상진을 향해 공을 찼다. 오상진이 기다렸다는 듯이 몸을 슬쩍 피했다. 그러자 뒤에서 어느새 나타난 김우강 일병이 공을 받아냈다.
“나이스!”
손강민 상병이 가볍게 토스를 해 줬다. 그 순간 강종인이 바람같이 뛰어오르더니 발등찍어차기로 냅다 내리꽂았다.
뻥!
공이 크게 바운드 되면서 뒤로 날아가 공격 포인트를 올렸다.
“우오오오!”
“봤어? 봤어? 완전 멋있는데.”
“이야, 강종인 상병님 진짜 멋있습니다.”
“종인이가 족구를 저렇게 잘했나?”
1중대에서 연일 탄성이 흘러나왔다. 3중대원들 역시 넋이 나가 있었다.
“저, 저거 어떻게 하는 거야?”
“몸이 확실하게 뒤로 젖혀졌지?”
“거의 땅에 닿는 줄 알았습니다.”
3중대장도 깜짝 놀랐다. 1중대에 저런 공격수가 있다는 것은 처음 들었다. 그 뒤의 흐름은 1중대의 일방적인 공격으로 이어졌다.
“다들 정신 차려! 어쩌다 하나 걸린 거야.”
“주, 중대장님. 방금 공격은······.”
“시끄러워!”
3중대장이 고함을 지르며 독려했지만 단 한 번의 강력한 공격으로 전의가 많이 상실된 상태였다.
“잘 들어. 저 녀석이 공격할 때는 일단 뒤로 다 빠져서 수비를 해. 그럼 받을 수 있다고.”
“네.”
“알겠습니다.”
“가자. 일단 한 점 올리자.”
3중대장이 소리쳤다. 그리고 다시 경기가 시작되었다.
“리시브 좋았어! 토스 똑바로 올려!”
3중대장은 곧바로 공격 타이밍을 잡았다. 때마침 오상진이 시야에 들어왔다.
‘오상진, 이 새끼야. 넌 죽었다고 복창해라!’
빠득 이를 깨물던 3중대장이 감아차기로 정확하게 공을 내리꽂았다.
방향은 오상진의 발 쪽.
하지만 오상진은 무리해서 공을 받으려 하지 않았다.
“우강아!”
“넵!”
오상진이 몸을 홱 피했다. 때마침 바람처럼 나타난 김우강 일병이 튀어 오르기 직전의 공에 다리를 가져갔다.
텅!
살짝 다리를 댄 것만으로 공은 정확하게 손강민 상병에게 배달되었다.
“나이스, 우강이.”
손강민 상병이 나이스를 외쳤다. 강종인 상병이 곧바로 공격 자세를 잡았다.
“띄우십시오.”
“자, 간다!”
손강민 상병이 공을 띄웠다. 자세를 잡던 강종인 상병이 빈 공간을 향해 그대로 내리꽂았다.
뻥!
“막아!”
3중대장이 소리를 질렀지만 소용이 없었다.
“와아아아아! 진짜 짱이다.”
“세상이 저렇게 족구를 잘해?”
“멋지다.”
여기저기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강종인 상병이 손강민 상병에게 엄지손가락을 올려 보였다.
“토스 멋졌습니다.”
“공격도 좋았어.”
오상진은 김우강 일병에게 갔다.
“나이스 리시브.”
“뒤는 걱정 마십시오.”
다시 경기가 시작되었다.
3중대장은 고집스럽게 오상진을 노렸다. 오상진이 헛발질을 해서 나자빠지는 모습을 꼭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때마다 귀신같이 나타난 김우강 일병이 공을 받아냈고 손강민 상병은 그 공을 정확하게 네트 근처로 차올렸다.
덕분에 강종민 상병은 오로지 공격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뻥!
“와아아아아!”
강종민 상병의 공격이 통할 때마다 구경을 온 1중대원들 사이에서 함성이 터졌다.
반면 3중대원들은 어느 순간부터 입을 다물고 말았다.
“좋아. 좋아. 잘하고 있어.”
김철환 1중대장의 얼굴에도 웃음꽃이 피었다.
1세트를 허무하게 내줄 때 잠깐 걱정했지만 김우강 일병의 신들린 수비 능력과 손강민 상병의 안정적인 어시스트, 그리고 높은 타점에서 이루어지는 강종민 상병의 환상적인 마무리를 보고 있자니 어딘지 모르게 압도적인 느낌이 들었다.
거기다 1세트 때 미끼 노릇을 충실히 한 오상진도 간간이 허를 찌르는 공격으로 2세트를 가져오는 데 보탬이 됐다.
“이러다 지는 거 아닙니까?”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마. 그냥 한 세트 접어준 거잖아. 두고 봐. 3세트 때 다시 살아날 테니까.”
경기를 지켜보던 5중대장은 방심해서 2세트를 내준 것이라고 착각했다.
3중대장 역시 실력 차이를 인정하기보다는 선수들 간의 호흡을 문제 삼았다.
“야, 공 제대로 안 올려?”
“죄, 죄송합니다.”
“그리고 넌 내 동선에 걸리지 말라고 했냐 안 했냐! 너 때문에 공격을 제대로 할 수가 없잖아!”
“시정하겠습니다!”
“아무튼 3세트 때도 무조건 나한테 공 보내. 내가 확실히 꽂아 넣을 테니까.”
3중대장이 콧김을 씩씩 뿜어대며 말했다.
반면, 오상진은 흐뭇하게 웃으며 선수들을 독려했다.
“다들 잘했다. 긴장 풀지 말고 3세트도 지금처럼 간다.”
“네!”
그렇게 다시 경기가 시작되었고, 이미 한 번 넘어간 흐름은 좀처럼 넘어오지 않았다.
“야, 새끼들아. 그거 하나 못 받아? 나에게 보내라고 나에게!”
3중대장은 계속해서 선수들에게 소리를 내질렀다. 족구를 하러 온 것인지 악을 쓰러 온 것인지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당연하게도 3중대 선수들의 몸은 점점 굳어져 갔고 오상진을 비롯한 1중대 선수들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차곡차곡 점수를 쌓아 올렸다.
그 결과 점수가 14 대 7까지 벌어졌다.
툭!
“모두 뒤로 물러나!”
코너 깊숙이 파고든 서브를 김우강 일병이 높게 걷어 올리고 송강인 상병이 그 공을 쫓아 움직이자 3중대장이 다급히 소리쳤다.
경기를 마무리 짓기 위해서 강력한 한 방이 꽂힐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 움직임을 확인한 손강민 상병은 슬쩍 몸을 틀어 오상진의 위치를 확인했다.
‘소대장님!’
오상진 역시 손강민의 눈빛을 본 후 앞으로 뛰어갔다. 동시에 네트 쪽에 붙어 있던 강종인 상병도 마지막 공격을 위해 자세를 잡았다.
“공 온다! 다들 집중해!”
3중대장이 다시 한번 악을 내질렀다. 하지만 손강민 상병이 걷어 올린 공은 강종민 상병을 향하지 않았다.
네트 근처로 띄우긴 했지만 강종민 상병이 때리기에는 좀 낮았다. 그보다는 네트 근처로 달려들던 오상진이 머리로 처리하기 딱 좋은 높이였다.
“소대장님!”
오상진은 속도를 늦춰 공의 낙하지점을 포착했다. 그리고 이마로 공을 받아 뒤늦게 앞으로 달려드는 3중대장 앞쪽으로 툭 떨어뜨렸다.
“크아아아!”
3중대장이 발을 쭉 뻗어 공을 걷어 올리려고 했지만 소용없었다.
툭. 투둑.
낮게 바운드 된 공이 다시 한번 지면에 부딪혔고.
“제, 젠장할······.”
1중대의 마지막 점수가 올라갔다.
“이겼다!”
그렇게 1중대와 3중대의 족구 시합은 2:1, 1중대의 승리로 돌아갔다.
“에이!”
한종태 대대장이 인상을 썼다.
“이게 뭐야? 족구의 신이라며······.”
한종태 대대장은 빨리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다. 그런데 한종태 대대장을 발견한 김철환 1중대장이 서둘러 다가와 경례를 했다.
“충성!”
“그래, 1중대장.”
“족구 보러 오셨습니까?”
“그래. 지나가다 들렀어. 경기 잘 봤다. 역시 1중대야. 이렇듯 족구도 잘하고 말이지.”
“재미있게 보셨습니까?”
“그래, 재미있었네.”
“그럼 가서 고생한 병사들에게 한마디 해주시는 게 어떠십니까?”
부대 내 공식 대회는 아니지만 중대 간의 자존심이 걸린 한판 승부였던 만큼 김철환 1중대장은 한종태 대대장에게 인정을 받고 싶었다.
하지만 내기에서 진 한종태 대대장은 그럴 기분이 아니었다.
“아아, 나중에. 지금은 내가 바빠서. 그럼 수고하게.”
“네.”
한종태 대대장이 김철환 1중대장의 어깨를 두 번 두드리고는 몸을 돌렸다.
김철환 1중대장도 더는 권하지 않고 승리를 한 중대원들에게 돌아갔다.
“기껏 시간 내서 족구 경기 구경 왔더니······. 이게 뭐야? 그리고 저 3중대장 저 자식은 큰소리치더니 져버리고 말이야.”
한종태 대대장은 한심하다는 듯한 얼굴로 3중대장을 쳐다봤다. 그리고 다시 오상진을 향했다.
승리에 취해 병사들과 하이파이브를 하는 꼬라지를 보니 절로 인상이 지어졌다.
“아무튼 오상진 저 새끼는 맘에 드는 구석이 하나도 없네.”
그때 곽부용 작전과정이 대대장실로 들어와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기 대대장님······.”
“왜!”
“내기는 어떻게 합니까?”
그러자 한종태 대대장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내기라니?”
“지난번에······.”
“어허! 군인이 어디서 내기를 한다는 건가?”
“아닙니다.”
“할 말이 있고, 안 할 말이 있지. 농담으로 한 말 가지고 작전과장이 되어서 분위기 파악도 못 해!”
“죄송합니다.”
곽부용 작전과장은 괜히 한소릴 듣고는 대대장실을 나왔다. 그리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후우, 내가 저럴 줄 알았다니까.”
그렇게 작전과로 향하면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건 그렇고 이거 1소대장에게 고마워해야 하나?”
한종태 대대장은 단단히 화가 났겠지만 곽부용 작전과장은 이 결과가 그리 나쁘지 않았다.
만약 3중대가 이겼으면 한종태 대대장은 기다렸다는 듯이 내기 돈을 달라고 했을 테고 1중대의 승리에 건 간부들이 소수이다 보니 결국 십시일반 돈을 걷어 한종태 대대장이 원하는 만큼의 돈을 맞춰 줘야 했을 것이다.
그런데 1중대가 이기면서 자연스럽게 돈을 아낄 수 있게 됐다.
“가서 고맙다고 한마디 해야 하나? 아니지. 살다 보면 언제든 빚을 갚을 날이 있겠지.”
곽부용 작전 과장이 피식 웃었다. 그리고 저만치 멀어지는 한종태 대대장을 쫓아 다급히 걸음을 옮겼다.
10
오상진이 급조한 1중대 족구팀은 식당에서 특별 회식을 했다.
메뉴는 삼겹살.
추가로 막걸리 한 잔씩이 주어졌다.
“이건 특별히 수고해서 주는 거다. 중대장님의 허락이니까, 감사하다고 하고.”
“네. 감사합니다. 중대장님!”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래, 그래. 많이들 먹어.”
김철환 1중대장은 입가의 웃음이 가시지 않았다. 그렇게 길길이 날 뛰던 3중대장의 콧대를 꺾었다는 사실에 기분이 너무 좋았다.
‘후훗, 월요일 날 볼만하겠는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오상진이 품에서 외박증을 꺼냈다.
“자, 소대장이 약속했던 외박증이다. 포상금은 너희들 통장으로 넣었으니까, 나중에 외박 나갈 때 찾아서 써라.”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우와, 대박!”
“아니다, 너희들이 고생했지. 다음에 이런 기회가 있으면 또 같이 하자.”
“넵!”
세 명의 얼굴이 환해졌다.
반면 김철환 1중대장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포상금은 또 뭐야?”
“아, 제가 동기 부여를 위해서 상금을 좀 걸었습니다.”
“그래? 그럼 나한테 먼저 말을 하지.”
“아닙니다. 제가 주기로 했으니까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런데 상진아, 너 너무 무리하는 거 아냐?”
“에이, 괜찮습니다.”
“야, 인마. 로또 당첨금 얼마나 된다고······. 아껴서 써!”
김철환 1중대장은 오상진의 씀씀이가 커진 것 같아 걱정이 앞섰다.
김철환 1중대장은 로또 당첨금에서 세금을 떼고 빚을 갚고 나니 수중에 남는 게 하나도 없었다. 오상진도 이런 식으로 돈을 쓰다간 자신처럼 허무해질 것 같아 걱정이었다.
하지만 오상진에게는 아직 남겨 놓은 로또 번호가 5개나 있었다.
“걱정 마십시오. 쓸 돈 빼고 나머지는 다 저축해 놓았습니다.”
“그럼 다행이고.”
“그럼 저도 이만 가 보겠습니다.”
“그래! 오늘 고생 많았다.”
행정반으로 돌아온 오상진이 자신의 책상에 앉았다. 그리고 휴대폰을 꺼냈다.
“로또 발표가 끝났을 텐데······. 어디 보자.”
휴대폰으로 로또 번호를 확인하던 오상진의 입가에 스르륵 미소가 번졌다.
< 8장 그냥 죽으라는 법은 없다(8) > 끝
ⓒ 세상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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