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장 그냥 죽으라는 법은 없다(6) >
인생 리셋 오 소위! 060화
8장 그냥 죽으라는 법은 없다(6)
“사실 헌팅을 하려고 접근한 건 맞습니다. 하지만 기분 나쁘게 훑어보진 않았습니다.”
그러자 뒤에 있던 여자가 고함을 질렀다.
“거짓말하지 마! 다리가 어쩌고 몸매가 어쩌고 했잖아!”
여자의 말에 오상진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어졌다.
“다시 한번 묻는다. 정말이야?”
“아, 네에······. 죄송합니다.”
오상진은 그 말을 듣자마자 다시 몸을 돌려 여자를 보았다. 그리고 정중하게 허리를 숙인 후 사과를 했다.
“다시 한번 죄송합니다. 저희 애들이 실수를 많이 했습니다. 부디 이번만 너그럽게 용서해 주십시오.”
사실 여자의 의상은 군인들이라면 눈이 돌아갈 정도로 아찔한 편이었다. 하의는 짧은 핫팬츠에 상의 시스루 의상이었다.
게다가 얼굴도 상당히 예뻤다. 짙은 화장이 오히려 미모를 깎아 먹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다.
홍대도 아니고 군부대 근처에서 이런 옷차림의 여자를 봤으니 병사들의 눈이 돌아가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병사가 되어서 이런 식으로 민간인과 접촉을 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오상진이 애써 눈을 돌려 세 명의 병사들을 노려봤다.
“외출 나온 거냐?”
“네.”
“외출 나왔으면 조용히 놀다가 복귀할 것이지 누가 민간인에게 실례를 범하라 그랬나!”
“죄송합니다.”
“일단 외출 나왔으니까 조용히 놀다가 복귀해. 또 말썽부리지 말고.”
“넵! 알겠습니다.”
“그리고 너희들 얼굴, 소대장이 기억했으니까 내일 부대 복귀하면 그때 두고 보자.”
“아, 알겠습니다.”
세 명의 병사들이 부랴부랴 그곳을 벗어났다. 오상진이 몸을 돌려 다시 한번 여자에게 사과를 했다.
“다시 한번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실례가 정말 많았습니다.”
그런 오상진을 보며 여자가 묘한 표정을 지었다.
‘이 남자는 다른 놈들하고는 좀 다르네.’
지금껏 지나친 남자들이라면 한 명도 빠짐없이 자신을 훑어봤다. 그런데 눈앞의 남자는 달랐다. 고개를 숙일 때도 잠깐 눈을 감으며 불필요한 오해를 피하려 노력하는 모습이 꼭 배려받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사과는 됐어요. 대신 저 사람들, 확실히 교육시켜 주세요.”
“네.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런데······ 댁으로 가시는 길이시죠?”
“네.”
“그럼 가시죠. 제가 택시 잡아 드리겠습니다.”
오상진이 반보 앞서 걸어갔다. 택시 정류장에 도착할 때까지 앞만 보고 걸었다.
가끔 지나치는 남자들의 시선이 여자에게 향하려고 하면 발걸음을 늦춰 여자를 보호했다. 그 이외에 오해받을 행동은 조금도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모든 군인이 여자에게 치근덕거리는 건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럴수록 여자의 시선은 자꾸 오상진 쪽으로 갔다.
‘군인 중에 이런 사람도 있구나. 우리 오빠하고는 딴판이네.’
여자가 속으로 생각할 때 오상진이 말했다.
“다 왔습니다. 여기서 택시 타시면 됩니다.”
“고마워요. 그런데 저한테 왜 이렇게 잘해주세요?”
여자가 궁금한 듯 물었다. 처음에 오상진이 에스코트를 자처했을 땐 딴마음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닌 거 같아 살짝 서운한 마음마저 들었다.
그런 여자의 속내를 느낀 것일까.
“미인이시니까요. 이렇게나마 도움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뻔한 대답보다 여자가 기분 좋을 말을 해 주었다.
그러자 여자가 씨익 웃으며 다시 물었다.
“제가 예쁜가요?”
“네. 충분히 아름다우십니다.”
“그런데 오 소위님은 저한테 왜 연락처 안 물어보세요?”
“하하. 그렇지 않아도 언제 말씀드릴까 고민 중이었습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여자도 오상진이 자신에게 사적인 관심이 없다는 건 알고 있었다.
설사 딴마음이 있었다 해도 이토록 자신을 존중해 주는 남자라면 상관없었다.
“흥, 저 그렇게 쉬운 여자는 아니거든요.”
“이런. 제가 큰 실수를 했습니다. 부디 너그럽게 용서해 주십시오.”
“이번 한 번만이에요. 다른 여자들한테는 이러시면 안 돼요. 아셨죠?”
“네. 명심하겠습니다.”
그때 마침 택시가 왔다.
“어, 저기 택시 옵니다.”
오상진이 나서서 손을 흔들며 택시를 잡아주었다. 그리고 뒷문까지 열어주며 말했다.
“그럼 안녕히 가십시오.”
여자가 택시에 앉으려다가 오상진을 보며 손을 내밀었다.
“줘 봐요.”
“네?”
“핸드폰 달라고요. 제 번호 달라면서요.”
오상진은 순간 당황했다. 아까는 장난식으로 대답을 한 것뿐이었다.
그렇다고 여자가 먼저 말했는데 안 줄 수도 없었다.
“아, 예에.”
오상진이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주었다. 여자는 열심히 입력을 하고는 오상진에게 건넸다.
“자요.”
여자가 휴대폰을 건네고는 안쪽으로 들어가 앉았다.
“네. 조심히 들어가십시오.”
“연락해요. 알았죠?”
“아, 넵.”
여자를 태운 택시가 떠나고 오상진은 뒤늦게 핸드폰을 확인했다.
낯선 번호 위로 한소희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또 소희네. 소희라는 이름하고 뭐가 있나?’
오상진이 피식 웃었다. 그리고는 저만치 멀어진 택시를 보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날씨 조오타.”
9
매주 월요일은 간부회의가 열리는 날이었다.
약 1시간 동안 이어진 회의가 끝이 나고, 하나둘씩 간부들이 상황실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유독 3중대장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1중대장님!”
김철환 1중대장이 3중대장이 부르자 고개를 돌렸다.
“왜 그러십니까?”
“아까 말입니다. 좀 너무 하신다고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뭐가 말입니까?”
“마지막에 저희 중대 애들 안건 말입니다. 그 건은 저에게 미리 알려주시지 그랬습니까. 이렇듯 말도 없이 간부회의 때 말씀하시면 제 입장이 뭐가 됩니까?”
“아, 미안합니다. 내가 그 생각을 못 했습니다. 다음에 또 그런 일이 생기면 안 되겠지만 그런 일을 알게 된다면 미리 얘기해 드리겠습니다. 됐죠?”
김철환 1중대장이 짓궂게 웃고는 몸을 돌려 걸어갔다. 3중대장은 그 모습을 보며 인상을 찡그렸다.
“젠장, 지금 나 엿 먹이려고 저러는 거지?”
그때 5중대장이 다가왔다.
“왜 그래?”
“아니, 1중대장. 지금 나 엿 먹이려고 나에게 말도 안 하고 애들 일을 간부회의에서 터뜨린 것 같아. 그게 뭐가 큰일이라고.”
“나도 그렇게 느꼈어.”
“대체 나한테 왜 저러는 거야?”
“어쩌면 말이야. 예전에 시가전때······.”
순간 3중대장의 눈빛이 바뀌었다.
“뭐야? 그 얘기는 또 왜 꺼내는 거야?”
3중대장이 빠르게 주위를 확인했다. 5중대장도 입을 다물며 조용히 말했다.
“끝나긴 했지만 1중대장도 당하고만 있는 성격은 아니니까.”
“아무튼 짜증 나네.”
“그보다 1소대장 그 새끼를 조져야지. 어디 겁도 없이 남의 중대 애를 건드려?”
5중대장이 화제를 돌렸다. 결국 이 사달을 만든 건 1중대 1소대장인 오상진이었다.
“그래, X발 새끼! 그 새끼가 문제야!”
“뜸들일 것 없이 지금 가자고.”
“그래, 가. 아주 이 새끼 박살을 내줄 테니까.”
3중대장과 5중대장은 오상진을 찾으러 행정반으로 향했다.
“야, 오 소위!”
“네.”
“너 말이야. 일요일에 우리 중대 애들 건드렸다며.”
“네? 건드리다니 무슨 말씀입니까?”
“인마, 민간인과의 접촉사건 말이야.”
“아, 3중대 병사 두 명이 여자분에게 집적댄 일 말입니까? 그거 저희 중대장님께 보고드렸는데 말입니다.”
“그래, 새끼야. 그런 일이 있으면 내게 먼저 말해야지. 왜 말을 안 해?”
“네? 순서상 1중대장님께 보고를 드리는 것이 맞는 거 아닙니까?”
“이봐, 3중대원이라고 3중대원. 그럼 3중대장인 내가 미리 알아야 할 것 아니야.”
3중대장이 억지를 부렸다. 보나 마나 그 문제로 대대장에게 된통 깨진 듯한데 화풀이할 상대가 필요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오상진도 호락호락 당하고만 있을 생각은 없었다.
“저는 원칙대로 보고드렸을 뿐입니다.”
중대를 떠나 오상진이 보고해야 할 당사자는 직속 상관인 1중대장이었다. 1중대장을 건너 뛰고 3중대장에게 보고한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설사 1중대장에게 보고한 이후 3중대장에게 별도 보고를 한다고 해도 마찬가지. 대대장에게 깨진다는 결과가 달라질 리 없었다.
“이 새끼가 어디서 지금 대들어! 죽고 싶어?”
“전 도대체 3중대장님께서 왜 화를 내시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이 새끼가······.”
3중대장이 위협하듯 오상진에게 다가섰다.
그때 김철환 1중대장이 나타났다.
“지금 뭐하는 겁니까!”
3중대장이 움찔했다. 5중대장이 급히 김철환 1중대장에게 말했다.
“아, 그게 3중대장이 오 소위에게 물어볼 것이 있어서 그럽니다.”
“그럼 조용히 물어보면 되지 뭐가 이렇게 시끄럽습니까?”
“아, 별일 아닙니다. 그렇지? 오 소위?”
“야, 5중대!”
김철환 1중대장이 눈을 부라렸다. 김철환 1중대장이 처음으로 5중대장에게 반말로 말했다. 3중대장도 그렇고, 5중대장도 매우 놀란 듯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내가 지금 너희들한테 존대해 주니까 만만해 보여?”
“아닙니다.
“야, 3중대장.”
“네.”
“내가 우스워 보여?”
“······.”
3중대장은 입을 꾹 다문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러자 김철환 1중대장이 무서운 얼굴로 말했다.
“보자 보자 하니까 누굴 바보로 알아? 지금 뭣들 하는지 내가 모를 것 같아?”
“······.”
“내가 알아서 하겠다고 했다, 내가! 그런데 나에게 따지지 못하니까 만만한 1소대장에게 따지러 온 거야?”
“그게 아니라······.”
3중대장이 입을 열려고 했다. 김철환 1중대장이 눈을 부라렸다.
“내 말 아직 안 끝났어.”
“······.”
“내가 지금 너희들 중대장 대접해 줄 때 잘해라.”
김철환 1중대장은 잔뜩 화가 난 얼굴로 소리쳤다. 그러자 눈치를 보던 5중대장이 곧바로 중재하고 나섰다.
“1중대장님 진정하십시오. 3중대장도 자신의 중대원 일인데 미리 알지 못해서 그런 겁니다.”
“내가 아까 말 안 했어? 내 말을 개X으로 들었네.”
“아닙니다.”
“아니긴 얼굴에 불만이 가득한데. 좋아, 뭐야? 뭘 원해?”
3중대장이 바로 말했다.
“전 오 소위의 사과를 원합니다.”
“이 새끼가 진짜 끝까지! 딱 봐도 너희 소대원들이 잘못한 거잖아!”
“그래도 이건 아니죠. 이런 식으로 바로 징계를 올리면 모르는 저는 당황스럽지 않습니까.”
“3중대장, 말은 똑바로 하자. 막말로 1소대장이 막지 않았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 것 같아? 엄밀히 따지고 보면 1소대장에게 상 줘야 하는 거 아냐? 더 큰 사고를 미연에 방지했잖아!”
“그래도 이건 아닙니다. 그럼 1중대장님은 이번 일로 저희와 계속 불편하게 가실 겁니까?”
3중대장이 ‘저희’라는 단어에 힘을 주었다.
자신뿐만 아니라 3사 출신 중대장들 전체와 불편해질 수도 있다는 말을 돌려한 것이었다.
육사 출신이기 이전에 1중대장으로서 김철환 1중대장은 다른 중대장의 모범이 되어야 했다. 별것 아닌 일로 중대장들과 척을 져서 좋을 게 없었다.
“후우, 알았어, 그래 사과를 원한다는 거지?”
“네.”
“좋아. 내가 대신 사과하지.”
“저는 오 소위의 사과를 원합니다.”
“이렇게까지 해야겠어?”
“아까 대대장님 말씀 들으셨잖습니까.”
“그래. 뭐 3중대장 기분이 상했으니까 그 마음은 이해해. 하지만 내 입장에서도 잘못한 게 없는 오 소위를 무턱대고 사과시킬 수는 없어.”
“그럼 이렇게 하시죠.”
< 8장 그냥 죽으라는 법은 없다(6) > 끝
ⓒ 세상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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