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장 그냥 죽으라는 법은 없다(4) >
인생 리셋 오 소위! 058화
8장 그냥 죽으라는 법은 없다(4)
“아아, 이거. 지난번에 못 줬던 월급. 그때 내가 한 말은 그냥 홧김에 한 말이야. 그러니 미안해. 병원비에 보태라고 조금 더 넣었으니까 받아둬.”
박정자가 웃으면서 슬쩍 돈 봉투를 밀었다.
“안 그러셔도 됩니다.”
“에이, 신 씨. 자꾸 이럴 거야?”
“월급은 필요 없다고 말씀드렸잖아요.”
“신씨가 이러면 나 좀 섭섭해. 왕국밥 2호점 안 할 거야?”
신순애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툭하면 2호점으로 사람을 부려먹더니 병원까지 와서 저럴 줄은 몰랐던 것이다.
물론 오상진이 로또에 당첨된 통장을 보여주지 않았다면 또다시 마음이 흔들렸을지 몰랐다. 왕국밥에서 일하면서 자신이 운영하는 가게를 차리는 게 소원이 됐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달랐다.
“아뇨, 2호점 필요 없어요. 우리 아들이 내가 원하면 식당 하나 차려주기로 했거든요.”
“뭐라고? 가게를 차려?”
“네.”
박정자는 순간 화가 났다.
‘뭐야? 이 년이 우리 집 기술을 다 베껴가서 가게를 차리겠다고?’
신순애가 확실하게 정리하기 위해 말을 했지만 박정자는 다른 뜻으로 받아들였다.
“아니, 신 씨, 이러면 곤란하지. 얼마 전까지 우리 집 주방에서 일했으면서 식당을 연다니. 그러면 안 되지. 상도덕에 어긋나는 거야.”
“그게 어째서 상도덕에 어긋나는 거죠? 저는 뭐 식당 차리면 안 되나요?”
신순애 역시 맞받아쳤다.
“아니, 막말로 우리 식당에서 다 배운 걸 가지고 나가서 식당 차리면 우리 단골 사람 다 뺏어가려고? 신 씨 그런 사람이었어?”
신순애는 박정자의 말에 너무 어이가 없었다. 솔직히 배운 것도 없고 단골을 빼 갈 마음도 없었지만 제 잘못은 생각지도 않고 언성부터 높이는 박정자를 보니 화가 났다.
“제가 뭘 하든 사장님이 무슨 상관이에요?”
“상관있지. 이건 말이야. 원칙적으로도 이러면 안 되는 거야.”
신순애는 마치 벽이랑 얘기하는 것 같았다. 말꼬리를 잡으며 계속 딴소리만 했다.
그때 문이 벌컥 열리며 오상진이 나타났다.
오상진은 박정자를 보며 잔뜩 굳은 얼굴이 되었다. 박정자 역시도 움찔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큰아들이 왔네. 반가워요, 전에 우리 봤죠. 그때 인사도 제대로 못 했는데······. 아무튼 반가워요.”
박정자가 애써 웃어봤지만 오상진의 굳은 표정은 쉽사리 풀어지지 않았다.
“여긴 무슨 일이십니까?”
“에이, 왜 그렇게 딱딱하게 말해요. 저 몰라요?”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그러자 박정자가 괜히 말을 돌렸다.
“그런데 아드님이 좀 그러네. 어른을 봤으면 인사부터 해야지. 군대에서는 그런 것도 안 가르치나?”
“네, 안녕하십니까.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오상진이 인사를 하며 다시 정중하게 물었다.
“엄마랑 얘기할 것이 있어서 왔어요. 그래서 말인데요. 자리 좀 잠깐만 비켜주면 안 될까요?”
그랬더니 신순애가 바로 나섰다.
“아뇨, 전 사장님과 할 말 없어요. 그러니 사장님이 가 주세요.”
“신 씨 이러지 말고······.”
그러면서 자신의 손에 들린 돈 봉투를 억지로 신순애에게 안기려고 했다.
“이거 받아. 받고 얘기 좀 해요.”
“이거 필요 없어요. 그리고 전 할 말 없다니까요.”
“신 씨!”
오상진이 다가와 돈 봉투를 낚아챘다. 그리고 그 돈 봉투를 박정자의 손에 쥐여주며 말했다.
“무엇 때문에 오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저희 어머니 아직 허리 다 낫지 않았습니다. 아직 환자입니다. 왜 자꾸 이러십니까? 이 돈 가지고 그만 나가주시죠.”
박정자는 오상진의 부릅뜬 눈을 보며 많이 당황했다.
“나 참······. 알았어요. 그리고 신 씨 잘 좀 생각해 봐요. 알았죠?”
그러면서 박정자가 병실을 나갔다. 뒤늦게 요양사인 강순자가 들어왔다.
“어멋? 방금 그 사람 나가면서 욕까지 하던데 무슨 일 있었던 거예요?”
“아닙니다.”
오상진이 딱딱하게 말했다. 강순자는 곧바로 눈치를 살피더니 입을 열었다.
“미안해요, 모르는 사람이었다면 내가 막았을 텐데요. 죄송해요, 아드님.”
그러자 신순애가 나섰다.
“괜찮아요. 전에 일하던 사장님인데······. 어차피 한 번은 부딪쳐야 할 사람이었어요.”
오상진은 신순애를 보았다.
“엄마, 저 사람 어떻게 여길 알고 왔어요? 엄마가 알려 줬어요?”
“그게······.”
신순애는 어제저녁 같이 일했던 최말숙과 통화한 내용을 떠올렸다.
-언니! 어딘지 알려줘요. 퇴원하기 전에 얼굴 한 번 보게요.
“아니야, 됐어! 나중에 퇴원하고 나서 보자.”
-언니! 나 지금 너무 힘들어요. 나 언니에게 할 말 많단 말이에요.
“왜? 사장님이 뭐라고 그래?”
-그게 죽겠어요. 지금 식당 단골손님 다 떠나고, 사장은 나만 보면 소리만 질러요.
“아이고, 자네도 고생이 많네. 그럼 내일 오후에 잠깐 볼까? 우리사랑 병원 쪽으로 와. 근처 커피숍에서 보자고.”
-우리사랑 병원이요? 네, 언니. 알았어요.
신순애가 입원한 병원을 알려준 건 최말숙뿐이었다.
정황상 박정자가 최말숙을 통해 알아냈을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오상진에게 곧이곧대로 말하고 싶진 않았다.
‘최 씨도 사정이 있었겠지.’
그때 신순애의 휴대폰이 ‘지잉’ 하고 울렸다.
최말숙에게서 온 문자였다.
-언니 미안해요. 사장이 옆에서 얼마나 닦달을 하는지 저도 어쩔 수가 없었어요. 용서해 주세요. 매일 시달리다 보니 도저히 안 되겠더라고요. 사장 지금 언니에게 간 거 맞죠? 저도 가고 싶은데 사장이 가게를 저에게 맡겨 놓고 가는 바람에 못 갔어요. 정말 미안해요.
신순애는 문자를 확인하고 바로 답 문자를 보냈다.
-방금 사장 왔다 갔어. 그리고 앞으로는 이런 짓 하지 마.
-네, 언니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 조만간 한 번 찾아뵐게요.
오상진이 기웃거리면서 물었다.
“누구예요? 아까 그 사장이에요?”
신순애가 황급히 휴대폰을 덮고는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아는 사람. 그건 그렇고 어쩐 일이야?”
“오늘 엄마 퇴원하시는 날이잖아요. 그래서 왔죠.”
“아이고, 나 혼자 퇴원하면 되지. 굳이 뭐하러 오고 그래?”
“엄마 퇴원하는 날인데 당연히 와야죠. 그리고 정진이와 상희까지 오기로 했어요.”
“뭐하러 다 부르고 그래. 공부하기 바쁜 애들을······.”
“상희도 공부해요?”
“상희한테 너무 그러지 마아.”
“그래도 잔소리할 건 해야죠.”
오상진이 피식 웃었다. 듬직한 오빠의 모습을 보여주는 오상진에 신순애도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때 문이 열리며 오정진과 오상희가 나타났다.
“엄마!”
오상희가 엄마에게 달려가 부둥켜안았다. 오상진이 오정진을 보며 말했다.
“왔냐?”
“응.”
“자, 그럼 너희들은 엄마랑 있어. 난 퇴원 수속 밟고 올 테니까.”
그렇게 오상진은 병실을 나가 퇴원 수속을 밟았다.
6
“우와! 진짜 우리 여기서 밥 먹는 거야?”
오상희는 눈을 휘둥그레 뜬 채로 주위를 살폈다. 신순애와 오정진은 가격을 확인하며 얼굴이 굳어 있었다.
“여기 엄청 비쌀 텐데······.”
신순애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괜찮아요. 한 번쯤은 여기서 먹어도 되잖아요. 그리고 맛있는 걸 드셔야 엄마도 빨리 건강해지죠.”
“그럼 옆에 돼지갈비집 가자.”
“엄마. 이미 들어왔는데 자꾸 그러실 거예요?”
“그래. 알았다. 대신 오늘만이야. 알았지?”
오상진과 신순애가 모처럼 대화를 나누는 동안 오정진은 묵묵히 수저와 젓가락을 놓았다.
오상희는 메뉴판을 보면서 신나 했다.
“이게 얼마 만에 먹어보는 소고기냐.”
그렇게 입맛을 다시며 오상진을 보았다.
“큰 오빠. 이거 내가 먹고 싶은 다 시켜도 돼?”
“그래. 먹고 싶은 거 다 시켜!”
“진짜지, 나 다 시킨다?”
“그래!”
“야호! 역시 우리 큰 오빠야. 요즘 왜 이렇게 멋있게 보이지?”
“진짜냐?”
“응!”
“소고기 사 줘서 그런 것이 아니고?”
“물론 그런 감이 아예 없진 않은데······ 여기서 용돈까지 주면 완전 최고의 오빠지?”
“됐어. 어서 시키기나 해.”
“칫!”
잠깐 티격대던 그들은 곧 종업원을 불러 이것저것 시켰다. 신순애는 그런 오상희를 보며 ‘적당히 시켜!’라며 조용히 말했다.
“오빠가 먹고 싶은 거 다 시키라고 했단 말이야.”
“네, 엄마. 그냥 두세요. 지금 아니면 또 언제 먹어보겠어요.”
“그래도 너무 비싸.”
“괜찮아요. 이번에 일 잘했다고 포상금도 받았거든요.”
정확하게는 포상금이 아니라 김철환 1중대장에게 용돈을 조금 받긴 했지만 어머니에게는 좋게 둘러대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그보다 엄마. 우리 이사 언제 가요?”
“정말 거기로 이사 가게?”
“네, 거기 좋다면서요. 왜요? 엄마는 별로예요?”
“그게 알아보니까, 미분양이 좀 있다더라. 신축 아파트인데 미분양이 있으면 좀 그렇지 않니?”
“제가 알기로는 회사보유분을 푼 거라고 하던데요.”
오상진의 말에 신순애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야. 거기 소문을 들어보니 말이 좀 많아. 부실 공사가 있었나 봐.”
“그래요? 그럼 오늘 당장 부동산에 가서 좀 더 알아봐요.”
“아니야. 무슨 이사를 그리 급하게 하려고 해. 천천히 하자. 천천히.”
“알았어요. 아무튼 거기가 안 되면 주변에 괜찮은 아파트 사면 되죠.”
“그래.”
그때 오상희가 불쑥 끼어들었다.
“우리 이사 가는 거야? 몇 평짜리?”
“아직 안 정했는데 한 30평짜리로 알아보려고.”
“뭐? 그렇게 작은 데 간다고? 우리 가족이 네 명인데? 최소한 50평은 가야지.”
오상희는 그렇게 철없는 말을 내뱉었다.
“야, 50평짜리 아파트가 얼마인 줄 아냐?”
“뭐야? 오빠! 돈 많다며, 실망이야. 흥!”
그 모습에 오상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으이구, 이런 철딱서니하고는······. 나중에 널 누가 데려갈지 걱정이다.”
“오빠 몰랐어? 나 결혼 안 할 건데.”
“뭐?”
“나 톱스타 될 거잖아. 그런데 왜 내가 결혼을 해? 혼자 멋진 삶을 살 건데.”
오상희는 벌써부터 스타라도 된 것처럼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그 모습을 보던 오정진은 조용히 쌈을 엄청 크게 쌌다. 그리고 그 쌈을 재잘재잘거리는 오상희 입속에 쑤셔 넣었다.
“읍, 으으읍!”
오상희는 놀라며 쌈을 도로 뱉어냈다.
“뭐야, 작은 오빠!”
“야, 그거 먹을 때까지 말하지 마.”
“아, 진짜아!”
“쓰읍. 도로 안 집어넣지?”
“치이······.”
그러면서 조심스럽게 그 쌈을 먹었다. 오상진은 두 사람을 보며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라? 상희가 정진이에게는 꼼짝을 못하네. 가만히 보니, 예전에도 그랬어. 상희가 유독 정진이 말은 참 잘 들었단 말이야. 정진이 요 녀석이 상희를 아주 잘 가르쳤네.’
오상진은 그 생각을 하며 피식 웃었다. 그때 신순애가 말없이 고기를 오상진 접시에 놓았다.
“너도 어서 먹어.”
“네. 잘 먹겠습니다.”
오상진이 잘 익은 고기를 장에 찍어 입에 넣었다. 그리고 오정진을 보며 말했다.
“정진이 너는 뭐 갖고 싶은 거 없어?”
“없어.”
오정진은 고민도 하지 않고 바로 말했다. 오상진이 큰 돈을 쓰고 있으니 더는 부담주지 않으려는 모양이었다.
‘기특한 놈.’
오상진은 그런 오정진이 예뻤다. 그래서 뭐라도 더 하나 챙겨주고 싶어졌다.
< 8장 그냥 죽으라는 법은 없다(4) > 끝
ⓒ 세상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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