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장 그냥 죽으라는 법은 없다(1) >
인생 리셋 오 소위! 055화
8장 그냥 죽으라는 법은 없다(1)
오상진은 최용수 병장의 어머니인 오진숙의 전화를 받고 고민에 잠겼다.
‘날 만나고 싶다는 이유가 뭘까? 이해진 일병처럼 돈으로 회유할 생각인가? 아니면 권력을 이용해서 날 협박할 건가?’
오상진은 볼펜으로 책상을 두드렸다.
어느 식으로든 자신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끌고 갈 것이 분명해 보였다.
‘어떻게 한다? 이번 기회를 잘 활용하면 기회가 될지도 모르는데······.’
오상진은 거기까지 생각을 하자 자신도 모르게 여러 가지 방법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일단 최용수 엄마가 날 압박했다는 증거를 확보할 수 있다면 더 이상 윗선의 개입을 막을 수 있을지도 몰라.’
물론 혼자 오진숙을 상대하면서 증거까지 확보하기는 힘들었다. 자신이 딴마음을 먹었다는 걸 알면 저쪽도 다르게 움직일 가능성이 높았다.
결국 누군가 도와줄 사람이 필요했다.
‘누구에게 도움을 청하지?’
오상진은 자신이 아는 사람들의 이름을 떠올려보았다. 하지만 딱히 떠오르는 사람이 없었다.
혹시 고등학교 동기 중에 도움을 줄 친구가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휴대폰을 꺼내 전화번호부에서 이름을 확인했다.
“어디 보자······. 도움이 될 만한 친구가 있으면 좋겠는데······.”
오상진이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찾아보는데 그때 한명의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박은지? 누구지?”
오상진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다 뭔가를 떠올리고는 눈을 빛냈나.
“박은지라······. 아, 맞다! 박은지!”
박은지는 이름은 사흘 전 김선아 형수로부터 소개받은 여자였다.
“도련님 있잖아요. 소개팅 한번 해보세요.”
“소개팅 말입니까?”
“네. 친구 여동생인데 예쁘고 마음씨도 착하고 좋아요. 제가 도련님 사진을 보여줬거든요. 그런데 맘에 들어 하는 눈치였어요. 그러니 일단 한번 만나나 봐요. 네?”
김선아의 간곡한 부탁에 오상진은 일단 연락처를 받아놨다. 그리고 먼저 연락을 하겠다고 했는데 사건이 터지는 바람에 연락을 하지 못했다.
“형수님에게 듣기로는 소개받으려는 여자가 사회부 기자라고 했는데. 어쩌면······.”
오상진은 곧바로 통화버튼을 누르려고 했다. 그러다가 순간 움찔하며 손가락을 멈췄다.
“아, 첫 통화인데 갑자기 부탁을 하면 실례인가?”
하지만 망설임도 잠깐이었다. 오상진에게 가장 급한 일은 현재의 일이었다.
“그래, 나중에 따로 보답을 하자.”
오상진이 결심을 하고 곧바로 통화버튼을 눌렀다. 신호음이 들리고 잠시 후 약간은 사무적인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대한 일보 사회부 기자 박은지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오상진이라고 합니다.”
-오······ 누구라고요?
“아, 저기 김선아 씨에게 소개받기로 한······.”
오상진이 우물쭈물하며 어색하게 말했다. 박은지도 그제야 기억이 났는지 밝은 목소리가 말했다.
-아! 오상진 소위님이시죠?
오상진은 자신을 알고 있자 한결 마음이 놓였다.
“네에. 기억하십니까?”
-그럼요. 소개팅하기로 해놓고선 이렇게 연락 한 통 없던 적이 처음이라서요. 당연히 기억하고 있죠.
“하하······.”
오상진은 박은지의 당돌한 말에 어색하게 웃었다.
-그런데 무슨 일이죠? 이제 소개팅할 마음이 생기셨어요?
“먼저 그 점에 대해서는 죄송합니다. 제가 군에 있다 보니 피치 못할 사정이 좀 생겨 연락을 못 드렸습니다.”
-이해해요. 저도 이 일 하다 보면 갑작스러운 일들이 많이 생기거든요. 그래서 정확한 용건이 뭐예요? 저와 만나려고 그러시는 거예요?
“네! 맞습니다. 그런데 죄송하게도 소개팅이 아닙니다.”
-네? 무슨 말이죠?
“그게······ 솔직하게 말하겠습니다. 혹시 시간 되시면 저 좀 도와주실 수 있습니까?”
-와, 갑자기 훅 들어오시네. 그러니까, 절 만나자는 이유가 도움을 요청하는 거라고요? 갑자기? 뜬금없이?
“죄송합니다. 사정이 급해서······.”
-좋아요. 일단 얼마나 사정이 급하면 첫 통화인데 도움까지 청하겠어요. 일단 무슨 일인지 알려줘요.
“네, 감사합니다. 실은······.”
오상진은 그간 있었던 일을 쭉 설명해 주었다.
“······일이 이렇게 된 겁니다. 도와주실 수 있습니까?”
오상진은 얘기를 끝내고 살짝 긴장했다. 그런데 박은지에게서 의외로 밝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 재미있겠다. 저 그거 할래요. 도와줄게요.
“네?”
오상진이 혹시 잘못 들었는지 재차 물었다.
-도와준다고요. 어떻게 하면 돼요?
“그건 아직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오상진은 살짝 당황했다. 도와준다고 하니 고마운데 이렇게 흔쾌히 승낙해 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그런데 정말 괜찮으십니까?”
-그럼요. 그리고 딱 감이 왔어요. 잘만 하면 저도 기사 하나 제대로 뽑을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참, 저에게 좋은 생각이 있는데 제 말대로 한번 해보실래요?
오상진은 수화기 너머 들려오는 박은지의 목소리가 참 밝다고 생각했다. 잠깐의 대화에도 박은지는 뭐든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여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것입니까?”
-제가 대학생 시절 때 연극 동아리에 있었거든요. 그래서 한 연기해요.
“연기요?”
-네. 저만 믿으세요!
그 뒤로 박은지는 본인이 원하는 대로 다방 여종업원 분장을 하고 기다렸다. 그리고 최용수 엄마를 안심시킨 후 자연스럽게 현장을 덮치는 데 성공했다.
“뭐, 뭐야? 이게 뭐하는 짓이야!”
오진숙이 당황했는지 고함을 고래고래 질렀다. 그리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당신들 이거 짜고 날 함정에 빠뜨렸어. 나 변호사 부르겠어.”
그러자 박은지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네. 변호사 부르세요. 하지만 쉽지 않을 거예요. 여기에 돈도 있고, 돈을 전달하는 사진도 다 찍어뒀으니까요. 이렇게 증거와 증인까지 다 있는데 어떻게 하시려고 그러실까?”
오진숙의 표정이 더욱 일그러졌다. 그런데 박은지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아, 맞다. 증거가 또 하나 있었네.”
박은지는 테이블로 가서 밑에 붙여 두었던 녹음기를 떼어냈다.
“어디 녹음이 잘 되었는지 볼까요?”
박은지가 녹음기를 틀자 오진숙의 목소리가 똑바로 들려왔다.
“어멋! 잘 됐네.”
그러면서 박은지는 녹음기를 살랑살랑 흔들며 보여주었다. 오진숙은 완전 똥 씹은 표정이 되었다. 이건 완전히 빼도 박도 못하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약 1시간이 흐른 후 연락은 받은 한중근 변호사가 달려왔다.
“안녕하십니까. 로펌 노을의 한중근 변호사입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박은지라고 합니다.”
한중근 변호사는 살짝 당황하며 박은지를 위아래로 훑었다. 순간 박은지가 불쾌한 얼굴이 되며 말했다.
“지금 뭐하시는 거예요? 이것도 성희롱으로 고소할 수 있어요.”
“아, 죄송합니다. 복장이······.”
“복장이 뭐 어때서요? 아, 그렇지. 잠시만요.”
박은지는 가방을 가져와 명함을 내밀었다. 한중근 변호사 역시 자신의 명함을 내밀었다.
“그렇군요. 박은지 기자님 그런데 대충 얘기는 들었습니다만······.”
“네. 지금 댁의 고객님께서 아주 난처한 상황에 빠졌다는 것만 알아두세요.”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좋은 쪽으로 해결을 보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좋은 쪽으로요?”
“네. 녹음기와 사진을 건네는 조건으로 원하는 것이 있으면 말씀해 보시지요.”
“지금 저를 매수하려는 거예요? 이야, 변호사님 날 아직 모르시는구나. 지금 한 행동까지 불리하다는 것은 알고 계시죠?”
순간 한중근 변호사가 당황했다. 오상진은 느긋하게 뒤에 앉아서 상황을 지켜보았다. 사건의 뒤처리를 하려고 했지만 이미 증거와 증인, 게다가 그 증인을 매수하려는 의도까지 나타나자 제대로 수습이 되지 않았다.
“아, 저어 그러니까.”
“그러니까, 뭐죠? 방금 절 매수하려고 한 것 맞죠?”
“그게 아니라 서로 좋은 쪽으로 대화를 해보자는 의도였습니다.”
변호사가 밀리자 오진숙은 어이가 없었다.
“이봐요. 한 변호사님 지금 뭐하자는 거죠? 어서 빨리 해결하지 못해요?! 그러라고 저희도 많은 돈을 드리는 거잖아요!”
사고를 친 오진숙이 오히려 더 큰 목소리로 말했다. 한중근 변호사는 삐질삐질 땀을 흘렸다.
“저기 사모님 아무래도 지금은 상황이 좋지 않은 듯합니다. 일단 돌아가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뭐라고요? 지금 이대로 그냥 돌아가자고요? 저거 당장 뺏어와야죠!”
“죄송합니다. 저것은 함부로 뺏지 못합니다.”
“그럼 어떻게 해요? 그냥 이대로 당하고 있자는 말씀이에요?”
“그, 그건······. 일단 돌아가셔서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한중근 변호사가 난감해하며 아주 조심스럽게 말했다. 오진숙도 더 이상은 생떼를 부리지 못할 것 같았다.
“미안해요, 제가 좀 교양이 없었죠. 알았어요. 일단 돌아가죠.”
어느새 냉정함을 찾은 오진숙이 몸을 홱 돌려 다방을 나섰다. 한중근 변호사가 인사를 하며 말했다.
“조만간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럼.”
한중근 변호사도 인사를 하고 뛰어나갔다. 박은지가 머리를 쓸어 올리며 말했다.
“그럼 대충 끝난 건가?”
그러면서 손에 쥔 녹음기를 보았다. 그리고 히죽 웃으며 말했다.
“어때요? 내 연기?”
“아주 좋았습니다.”
“그게 다예요?”
“뭐, 잘 어울리기도 합니다.”
“그럼 다행이에요. 제가 그랬잖아요. 한 연기 한다고요.”
“네, 맞습니다. 정말 잘하시더라고요. 진짜 여기 종업원인 줄 착각할 정도였습니다.”
“그래요? 어머나, 어떡하나. 벌써 나의 매력에 푹 빠지셨네.”
“하하하······.”
오상진은 그냥 웃음만 지었다. 박은지가 녹음기를 가방에 넣었다.
“그걸로 기사가 되겠습니까?”
오상진의 물음에 박은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여기 녹취도 있고, 제가 보고 들은 것이 있으니까요, 걱정 마세요. 기자의 소명을 가지고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적어서 기사 낼 테니까요.”
“네, 부탁드립니다.”
“그런데······.”
“네?”
“우리 소개팅은 언제 해요?”
박은지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오상진은 살짝 어색해하며 말했다.
“아, 소개팅 말입니까?”
“날 이렇게 부려먹고 설마 고맙다는 말로 퉁 치려는 것은 아니죠?”
“하하핫······.”
오상진은 그저 웃기만 했다. 그러다가 박은지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암튼 이 일 잘 끝나면 밥이나, 아니, 술 한잔 사요. 그냥 입 싹 닦으면 안 돼요.”
“네, 알겠습니다. 그것만큼은 확실하게 약속 지키겠습니다.”
“그래요. 그럼 또 연락해요.”
박은지가 가방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나 나갔다. 때마침 어르신 한 분이 다방으로 들어왔다.
딸랑!
그리고 밖으로 나가는 박은지와 마주쳤다.
“어? 자네 새로 온 아가씨야?”
박은지는 바로 활짝 웃으며 말했다.
“어멋! 맞아요. 박양이에요. 오빠, 이곳에 자주자주 놀러 와요. 알았죠?”
“어어, 그래. 그런데 어디가? 나랑 커피라도······.”
“어멋, 오빠. 너무 날로 먹으려고 하신다. 저 배달 나가요. 그럼 이따 봐요.”
그러면서 오상진을 향해 윙크를 날리고는 다방을 나갔다. 오상진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피식 웃음을 지었다.
“하여간 대단한 여자야. 그보다 과거로 돌아와서 그런가? 여자들과 자주 엮이네.”
오상진은 30대 후반을 살다가 다시 과거로 회귀했다. 그런데 이렇듯 많은 여자와 엮이니 왠지 젊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걸 좋아해야 하나?”
오상진이 피식 웃으며 다방을 나섰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인터넷 기사가 떴다.
< 8장 그냥 죽으라는 법은 없다(1) > 끝
ⓒ 세상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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