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장 인생은 실전이다(10) >
인생 리셋 오 소위! 054화
7장 인생은 실전이다(10)
17.
대대장의 호출을 받은 김철환 1중대장은 반쯤 넋이 나간 얼굴로 중대장실로 돌아왔다.
그 이야기를 전해 들은 오상진은 조심스럽게 중대장실의 문을 두드렸다.
“중대장님.”
“뭐야?”
“괜찮으십니까?”
“왜 인마. 내 얼굴 구경하러 왔냐?”
책상에 앉은 김철환 1중대장의 얼굴은 상당히 지쳐 보였다. 하지만 다행히도 오상진을 내쫓진 않았다.
“죄송합니다.”
“죄송하기는······. 그보다 너냐?”
“네?”
“헌병대 찌른 녀석이 너냐고.”
“네.”
“새끼야, 그럴 거면 나에게 말이라도 좀 해주지.”
“상황이 좀 급하게 돌아가서 그랬습니다.”
“미치겠네.”
김철환 1중대장은 머리를 부여잡으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래, 이렇게 된 거 뭐 어쩌겠냐. 물은 이미 엎질러졌고, 수습을 잘해야지. 일단 거기 앉아라.”
“네.”
오상진은 눈치껏 커피를 타서 김철환 1중대장 앞에 놨다. 김철환 1중대장이 커피를 한 모금 마신 후 어느 정도 진정이 되자 입을 열었다.
“그런데 왜 갑자기 헌병대에 연락했냐?”
“실은 최 병장 쪽에서 이해진 일병을 매수하려고 했습니다.”
“이해진을?”
“네, 최용수 병장 집에서 변호사를 보낸 모양인데 합의를 종용했다고 합니다. 제가 그 합의서의 내용을 봤는데 최용수 병장을 이번 일에서 빼내는 조건으로 금전적 보상을 하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암튼 세상에 돈이면 다 되는 줄 아는 인간들이 너무 많다니까. 그렇지 않아도 작전과에 있던 동기한테 들었는데 최용수 병장 쪽 집안이 잘산다면서? 외할아버지가 집안에서 크게 사업을 하신다고 들었는데······. 알고는 있었어?”
“집안이 좋은 줄은 알지만 거기까지는 몰랐습니다.”
“잠깐만.”
김철환 1중대장이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었다. 그리고 담뱃불을 댕기며 말을 이어갔다.
“어쨌든 조사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는 나도 들어서 알고 있어. 강상식에게 모두 덮어씌우려고 그랬다면서?”
“네. 최용수 병장은 이번 일에서 빼고 모든 책임을 강상식 상병에게 물으려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말이야.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냐? 강상식이 그놈이 주범인 건 맞잖아.”
김철환 1중대장의 입에서 앓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말하는 걸 보니 대대장 실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들은 모양이었다.
“저도 처음에는 최용수 병장이 폭행을 방조한 정도인 줄 알았습니다. 가담은 했지만 심각하지 않고요. 그런데 강상식 상병의 말은 달랐습니다.”
“강상식이 뭐라고 하는데.”
“모든 게 최용수 병장의 지시였다고 합니다.”
“뭐 최용수가 지시했다고? 확실해?”
“네.”
오상진은 강상식 상병의 증언을 간단하게 정리해 보고했다.
“최용수 이 새끼도 안 되겠네. 그래놓고 빽을 썼다 이거지?”
김철환 1중대장의 표정도 달라졌다.
“증언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있고?”
“솔직히 말씀드리면 지금 분위기상 증언을 해줄 사람은 없습니다.”
“하긴. 병사들은 괜히 나섰다 골치 아파질 테니까. 이해진이는 뭐래?”
“이해진 일병은 최용수 병장이 제대로 처벌받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지금 분위기상으로 최용수 병장을 처벌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생각한 게 헌병대였다?”
“네. 일처리를 공정하게 하려면 헌병대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김철환 1중대장이 이해를 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가 문득 뭔가가 떠올라 물었다.
“그보다 한 소령 하고는 어떻게 알고 지내는 거야?”
“네?”
“아니, 대대장님이 한 소령 말하면서 학을 떼던데. 몰랐던 거야?”
“네, 거기까지는 몰랐습니다.”
“아무튼 그것 때문에 대대장이 더 난리야. 대대장도 지금까지 군 생활한 것이 있는데 헌병대에 사람 한 명 없겠냐? 대충 무마하려고 했겠지. 그런데 그 한 소령이 그렇게 칼 같단다. 뭐 하나 걸리면 얄짤없대. 작전과 그 동기 놈이 그러는데 심지어 라인도 다르단다. 라인이. 여차하면 자기 피 볼 것 같다면서 난리다.”
“다른 말씀은 없으셨습니까?”
“없겠냐? 나중에 조사 나올 것을 대비해 지금이라도 이해진 입단속 확실하게 시키란다.”
김철환 1중대장이 말을 하면서 혀를 찼다.
“중대장님. 제가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야, 인마. 이미 사고 칠 대로 다 쳐놓고 뭘 어떻게 해. 갈 데까지 가 봐야지. 막말로 대대장도 얻어먹은 것이 있으니까 저러는 거잖아.”
김철환 1중대장이 담배꽁초를 재떨이에 힘껏 비볐다.
“에잇. 담배 끊는다고 했는데 네 형수가 또 한마디 하겠다.”
“죄송합니다.”
“차라리 이렇게 된 거 대대장도 다른 곳으로 갔으면 좋겠다. 진짜 예전 대대장도 참 별로였는데, 지금 대대장은 더하다. 더해. 진짜 진급하면 살 만할 줄 알았는데 군 생활이 왜 이렇게 힘드냐.”
김철환 1중대장의 푸념에 오상진은 그저 미안한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때 오상진의 휴대폰이 ‘지잉’ 하고 울렸다.
“잠시 전화 좀 받겠습니다.”
“뭘 여기서 전화를 받으려고 그래. 할 얘기 다 끝났으면 가, 인마. 나도 퇴근할 거야.”
“네. 알겠습니다, 중대장님. 그리고······ 사랑합니다~”
“사랑은 개뿔. 너 꼴도 보기 싫으니까 앞으로 이틀간 접근 금지야. 알았어?”
“넵!”
오상진이 피식 웃으며 중대장실을 나섰다. 그리고 막 전화를 받으려는데 전화가 끊어져 버렸다.
“모르는 번호인데. 누구지?”
오상진이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으려는데 다시 전화기가 지잉 하고 울렸다.
이번에는 문자였다.
“누구지?”
오상진이 문자를 확인했다.
-저, 최용수 엄마 됩니다. 잠깐 통화 괜찮으세요?
“최용수 엄마?”
오상진이 고개를 갸웃했다. 오상진이 곧바로 문자를 보냈다.
-네, 가능합니다.
그러자 곧바로 다시 전화가 울렸다.
“네, 오상진 소위입니다.”
-최용수 엄마예요.
“네. 무슨 일이죠?”
-좀 만났으면 하는데, 강남에 위치한 프린스 호텔 커피숍으로 나와 주세요.
오상진은 살짝 어이가 없었다.
‘이 여자 뭐야? 내가 무슨 자기 종인 줄 아나.’
오상진이 속으로 생각한 후 말했다.
“어머님, 저 군인입니다. 군인은 근무 중 근무지 이탈을 할 수 없습니다. 정 만나고 싶으면 어머님께서 직접 오시죠.”
-하! 좋아요, 제가 가죠. 어디로 가면 되죠?
“시간은 언제 가능하십니까?”
-오늘 봐요.
“알겠습니다. 그럼 제가 문자로 약속 장소를 보내겠습니다.”
-알았어요.
뚝! 뚜뚜뚜뚜.
최용수 엄마는 자기 말만 하고 끊어버렸다. 오상진은 순간 울컥했지만 크게 심호흡을 하며 분을 삭였다.
“보나 마나 해진이처럼 날 구워삶으려는 모양인데 그렇게는 안 되지.”
오상진은 최용수 어머니인 오진숙에게 약속장소를 남겼다. 그리고는 히죽 웃었다.
“후후, 엄청 당황스러울 거다.”
18.
“사모님. 여기인 것 같습니다.”
“뭐? 여기 맞아?”
“네. 저기 있는 게 별다방 같은데요?”
“나 참. 뭐 이런 데가 다 있어?”
오진숙이 투덜거리며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기사가 말한 허름한 건물로 들어갔다.
딸랑!
“어서 오세요~”
문을 열고 들어가자 나긋나긋 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진숙은 순간 인상을 썼다.
촌스러운 화장을 한 종업원이 조금만 허리를 숙여도 팬티가 보일 만큼 짧은 미니스커트를 입은 채로 서 있었다.
‘뭐야? 천박하게······.’
그러거나 말거나 여자 종업원은 껌을 쫙쫙 씹으며 자리를 안내했다.
“저희 다방 처음이세요? 그럼 일단 이쪽에 앉으세요.”
오진숙은 잔뜩 인상을 쓰며 자리로 가서 앉았다. 소파도 맘에 들지 않는지 가방에서 손수건을 꺼내 깔고 그 위에 앉았다. 그런 오진숙의 테이블에 여종업원이 와서 물었다.
“뭐 드실래요?”
“주문은 나중에 할게요. 그보다 오상진 소위라고······.”
“아, 오 소위님요. 오 소위님을 찾아 오셨구나. 그럼 여기 말고 저쪽으로 가세요.”
여 종업원이 가리킨 곳에 작은 공간이 있었다.
“저곳이라고요?”
“네. 저쪽으로 가 보세요.”
오진숙은 앉았던 곳에서 일어났다. 물론 손수건을 챙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칸막이로 가려진 구석 자리에는 군복을 입은 오상진이 앉아 있었다.
“오상진 소위?”
“제가 오상진입니다. 최용수 병장 어머니 되십니까?”
“맞아요. 오진숙이에요.”
“앉으십시오.”
간단한 통성명에 이어 오진숙은 다시 손수건을 소파에 깔고 앉았다. 그때 여종업원이 다가왔다.
“어머, 뭐 드릴까요?”
“아메리카노 주세요.”
“아메리카노? 우리는 그거 없는데 커피만 있는데. 둘, 둘로 타드릴까요?”
여종업원이 실실 웃으며 말했다. 순간 오진숙은 인상을 찡그렸다.
“아메리카노가 없다는 게 말이 되요?”
“그럼 그냥 블랙으로 타 드릴까요?”
“하아. 됐어요. 그냥 아무거나 갖다 줘요.”
“그럼 오빠는?”
“난 다방 커피로 부탁해. 달달하게.”
“역시 뭘 좀 안다니까. 금방 내 올게요.”
여자 종업원이 엉덩이를 살랑살랑 흔들며 멀어졌다. 그 모습을 힐끔거리는 오상진의 얼굴에서는 미소가 번졌고, 오진숙은 불쾌함을 참지 못했다.
호텔 커피숍에서 부잣집 사모님들과 모여 수다를 즐기던 그녀에게는 모든 게 문화 충격이나 다름없었다.
그래서일까. 어떻게든 빨리 결론을 짓고 이곳을 벗어나고 싶다는 욕망이 솟구쳤다.
“우리 아들네 소대장인 거 맞죠?”
“네, 맞습니다. 그런데 절 왜 보자고 하셨죠?”
“그냥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요. 얘기 들어보니까, 헌병대까지 알게 되었다면서요?”
“그건 또 어떻게 아셨습니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아니, 오 소위는 일 처리를 왜 그렇게 해요? 일을 키워서 오 소위한테 좋을 게 있어요?”
“이 일은 군 내부에서 일어난 일이고, 어머님께서 상관하실 일이 아닙니다.”
“아니, 내 자식 일인데 왜 상관을 안 해요. 그리고 우리 애 아빠가 누군지 모르죠? 조만간 국회에 들어갈 사람이에요. 그런데 일 처리를 이딴 식으로 해서 되겠어요? 그러다 나중에 진급 못 하면 누굴 탓하려고?”
오진숙은 마치 대대장이라도 되는 것처럼 굴었다. 오상진는 너무나도 당당한 그녀를 보고 살짝 어이가 없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로 막나올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때 커피를 탄 여종업원이 다가왔다.
“맛있게 드세요.”
여종업원이 커피를 내려놓았다. 오진숙은 커피를 보고 살짝 인상을 썼다.
“여기에 프림하고 설탕 들어갔어요?”
“네. 그럼요. 얼마나 맛있는데요.”
“나 프림은 안 먹는데······.”
오진숙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종업원은 환한 얼굴로 말했다.
“그래도 한번 드셔보세요. 정말 맛있어요.”
“네네, 알겠어요.”
오진숙이 귀찮다는 듯 말했다. 여종업원이 방긋 웃었다.
“그럼 맛있게 드세요.”
그렇게 말을 하며 여종업원이 사라졌다. 오진숙은 커피도 맘에 안 들고, 여종업원의 행동도 맘에 들지 않았다.
“아무튼 우리 일 복잡하게 만들지 말자고요. 원하는 것이 뭐예요? 돈이에요?”
“예?”
“하긴, 물어봐서 뭐해. 백이면 백, 돈이지. 원하는 금액이 얼마에요? 여기서 딱 말해봐요.”
“그런 게 아닙니다.”
“아니긴 뭐가 아니에요? 괜히 시간 낭비 말고 그냥 말해요. 달라는 대로 줄 테니까. 그리고 소대장이면 소대장답게 입단속 좀 잘 시켜요. 이게 뭐예요? 별것도 아닌 일로 여러 사람 번거롭게.”
흥분한 오진숙은 제 할 말만 떠들어댔다. 그러더니 가방에서 미리 준비한 하얀 봉투를 꺼내 탁자에 소리 나게 올려두었다.
“자! 내가 시간이 없어서 많이 못 가져왔는데. 일단 이거 받아요. 섭섭지 않게 넣었으니까요. 이번일 잘 처리되면 더 줄게요. 그럼 됐죠?”
마치 할 말이 끝난 것처럼 오진숙이 반쯤 몸을 일으켰다.
그런데 느닷없이 여종업원이 또다시 나타났다.
“어머나, 이게 뭐야? 돈 봉투예요? 오빠! 나 이거 얼마인지 봐도 돼요?”
오진숙이 짜증 나는 얼굴로 말했다.
“뭐야, 당신! 어서 저리 가지 못해요.”
오진숙의 말에도 여종업원은 아랑곳하지 않고, 돈 봉투를 집어 내용을 확인했다.
“어머나, 이게 도대체 얼마야? 어림잡아도 이백만 원은 되겠네.”
오진숙이 눈을 부라리며 소리쳤다.
“아가씨, 여기가 어디라고 함부로 끼어들어!”
“죄송해요. 최말대 의원 사모님. 제가 좀 경우가 없었죠?”
여종업원이 싱긋 웃으며 또박또박 말했다. 순간 오진숙의 눈이 커졌다.
“어, 어떻게······.”
“처음 뵙겠습니다. 사모님. 저는 대한 일보 박은지 기자입니다.”
그러면서 가슴에 꽂아 놓은 명함을 능청스레 꺼내 내밀었다. 오진숙은 손에 든 명함과 짙은 화장으로 웃고 있는 박은지 기자의 얼굴을 번갈아 보며 당혹스러워했다.
“방금 두 분 하신 말씀을 듣고 궁금한 것이 생겼는데요. 몇 가지 여쭤도 될까요?”
순간 오진숙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그런 오진숙을 보며 오상진은 박은지 기자가 내온 커피를 여유롭게 들이켰다.
< 7장 인생은 실전이다(10) > 끝
ⓒ 세상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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