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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리셋 오 소위-54화 (54/1,018)

< 7장 인생은 실전이다(9) >

인생 리셋 오 소위! 053화

7장 인생은 실전이다(9)

순간 이해진 일병의 눈이 커졌다. 천만 원이라는 금액을 직접 들으니 자신도 모르게 마음이 혹했다.

“네. 그리고 기계공학과 출신이죠?”

“네.”

“혹시 일선 전자 알죠?”

“당연히 알고 있죠. 모르는 사람 있습니까?”

“학교 졸업하고 나면 그쪽에 자리까지 만들어 드릴 수 있습니다. 용수 씨 외할아버지이신 오 회장님께서 우리 이해진 씨를 후원해 주기로 하셨으니까요.”

“······.”

이해진 일병은 말문이 막혔다. 최용수 병장의 집안이 대단하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대한민국 최고의 전자 회사인 일선 전자에 자리를 만들 정도일 줄은 몰랐던 것이다.

불현듯 지금껏 한 내무반에서 지내 왔던 최용수 병장이 다른 세상 사람같이 느껴졌다.

그런 이해진 일병의 속내를 읽은 것일까. 한중근 변호사가 쐐기를 박듯 말했다.

“이해진 씨가 조금만 도와주시면 모든 게 다 잘 풀릴 겁니다. 그러니까 이번 사건에서 용수 씨만 빼주십시오. 강상식 그 친구는 처벌을 받아도 되는데 우리 용수 씨만은 좀 빼주면 고맙겠습니다.”

순간 이해진 일병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최용수만 빼달라고? 누구 맘대로? 날 기절시킨 게 누군데?’

이해진 일병은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말한 뒤에 면회실을 나섰다. 그리고 오상진과 이 일을 논의하기 위해 행정실로 향했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 중간에서 최용수 병장과 마주쳤다.

“여, 이해진. 부대 복귀했다며.”

“네.”

“변호사는 잘 만나고 왔냐?”

최용수 병장이 실실 쪼개며 말했다. 처음에는 잘 달랠까 생각했는데 이해진 일병의 손에 들린 종이를 보자 자신도 모르게 본심이 드러났다.

확인해 보지 않아도 저건 합의서일 테고, 그걸 들고 왔다는 건 합의에 응할 생각이 있다는 의미일 거라 여겼기 때문이다.

“왜 말이 없어. 보상이 맘에 안 들었던 거야? 좀 더 필요하면 말해. 우리 집 돈 많아. 좋은 게 좋은 거잖아. 여기서 자존심 세워서 뭐해, 안 그래? 자존심 세운다고 하늘에서 돈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이해진 일병은 질근 입술을 깨물었다. 마음 같아선 당장에라도 주먹으로 최용수 병장의 얼굴을 때리고 싶었지만 똑같은 인간이 될 것 같아서 참고 또 참았다.

그런 줄도 모르고 최용수 병장은 깐족거림을 멈추지 않았다.

“해진아. 이런 일에 쓸데없이 자존심 세우는 거 아니다? 이럴 때 단단히 한 몫 챙겨. 그게 남는 거야. 너 머리 좋잖아. 이번 기회에 박사까지 따 버려. 혹시 아냐? 우리 할아버지가 유학까지 보내줄지?”

“괜찮습니다.”

“괜찮긴, 인마. 너희 집에서 돈 벌 사람 너밖에 없다며? 그러니까 알아서 잘 판단해. 괜히 가족들 힘들게 하지 말고.”

“······네, 알겠습니다.”

“그래, 그래. 넌 똑똑하니까 무슨 말인지 금방 이해를 하는구나.”

최용수 병장이 이해진 일병의 어깨를 기분 나쁘게 두드리고 사라졌다.

“최용수 개새끼······. 너 데리고 꼭 지옥 간다!”

이해진 일병은 손에 쥔 합의서를 힘껏 움켜쥐었다. 그리고 곧장 오상진을 찾아갔다.

“충성! 일병 이해진 행정반에 용무 있어 왔습니다.”

“어, 해진아. 어서 와라. 안 그래도 너 보려고 했는데 잘 됐다.”

오상진도 이해진 일병을 반겼다.

“그런데 면회라니? 부모님 오셨어?”

“아닙니다. 최용수 병장이 보낸 변호사가 왔습니다.”

“변호사? 변호사가 뭐래?”

“이걸 줬습니다.”

오상진은 잔뜩 일그러진 합의서를 빠르게 살폈다.

한중근 변호사가 말한 모든 약속이 전부 담겨 있진 않았지만 대충 내용만 봐도 어떤 분위기였을지가 짐작이 됐다.

“그래서, 어떻게 할 생각이니?”

“전 최용수 병장 용서할 생각 없습니다.”

이해진 일병은 단호했다. 오상진도 이해진 일병의 눈빛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방법은 하나다. 네가 직접 고소를 하는 거야.”

“제가 직접 말입니까? 어디에 하면 됩니까?”

“헌병대!”

“헌병대······ 말입니까.”

“그래, 물론 네가 고소를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군 생활이 조금 힘들어질 거야. 내가 더 신경 쓰겠지만 항상 네 옆에 붙어 있을 수는 없으니까.”

“상관없습니다.”

“그래도 생각할 시간을 줄게. 그러니 후회가 남지 않도록 확실히 각오를 다지고 와.”

오상진은 혹여 욱하는 마음에 질렀다가 나중에 후회를 할까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이해진 일병의 의지는 확고해 보였다.

“아뇨, 생각할 시간 필요 없습니다. 이미 맘을 굳게 먹었습니다. 하겠습니다, 소대장님!”

오상진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해진아. 알겠다. 그럼 소대장도 널 끝까지 도와줄게. 우리 함께 해보자.”

“네, 소대장님.”

오상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진 일병과 헤어진 후 오상진은 곧바로 한 대위를 만나기 위해 의무대로 향했다.

의무실에 들어서니 의무병이 있었다.

“지금 한 대위님 자리에 계시냐?”

“네. 계십니다.”

“환자는 없지?”

“네.”

“알았다.”

오상진이 고개를 끄덕인 후 진료실로 들어갔다.

“한 대위님 계십니까?”

“네. 누굽니까?”

“오 소위입니다.”

“아, 오 소위!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네.”

오상진은 자리를 찾아 앉았다. 약 2분 후 사무실에서 한 대위가 나왔다.

“하하, 잠깐 공부하던 것이 있어서······.”

“제가 방해한 것입니까?”

“아닙니다. 저도 쉬려던 참이었습니다. 그런데 오 소위가 어쩐 일로 절 찾아오셨습니까?”

“아, 사실은 도움을 청할까 해서 왔습니다.”

“도움?”

“네. 실은······.”

오상진은 한 대위에게 자신이 하려던 일에 대해서 설명했다. 한 대위는 그의 말을 가만히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소견서 같은 것은 걱정 마십시오. 제가 의사로서 양심이 있지. 내가 본 것 그대로 써서 드릴 테니까. 아무 걱정 마십시오.”

오상진은 한 대위라면 저리 말할 줄 알았다고 생각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윗선에서는 일을 키우고 싶어 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에이,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 제대 얼마 남지도 않았습니다. 그런 거로 내가 신경 쓸 것 같습니까?”

“감사합니다.”

“그보다 헌병대에 찌를 계획인 것 같은데······. 제 생각이 맞습니까?”

“네. 이렇게 된 이상 헌병대의 힘을 빌리고자 합니다.”

“어떻게 하실 겁니까?”

“일단은 투서 형식으로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에이, 그러다가 중간에서 커트당하면 어떻게 하시려고 그럽니까. 어디서 막혔는지 모르겠지만 헌병대라고 그쪽 사람이 없을 것 같습니까?”

한 대위의 말을 듣고 보니 일리가 있었다. 오상진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럼 어떻게 하죠?”

“기다려 보십시오. 저희 삼촌이 헌병대에 아는 사람이 있다고 하니까 제가 전화 한번 해보겠습니다.”

“네. 그렇게 해주시면 감사합니다.”

한 대위는 곧바로 휴대폰을 들어 삼촌에게 전화를 걸었다.

“삼촌! 혹시 예전에 일하실 때 헌병대에 아는 사람 있다고 그러지 않았습니까?”

-있지.

“그 사람 아직도 그곳에 일하십니까?”

-아마 그럴걸? 왜?

“그럼 연락처 좀 알 수 있을까요?”

-그거야 어렵지 않지. 내가 문자로 보내줄까?

“네, 삼촌! 문자로 보내주세요.”

-그런데 무슨 일 있어? 아니면, 무슨 사고 쳤냐?

“에이, 제가 사고 친 것이 아닙니다. 아무튼 그럴 일이 있으니 꼭 문자로 전화번호랑 이름 부탁합니다.”

-오냐, 알았다.

그렇게 한 대위가 전화를 끊었다. 곧바로 한 대위의 휴대폰으로 문자가 날아왔다. 한 대위는 문자를 확인한 후 오상진에게 말했다.

“자료를 나에게 주면 제가 전달하겠습니다.”

“아뇨, 그렇게까지 수고를 끼치면 제가 미안합니다. 그러지 말고 전화번호를 저에게 주십시오. 제가 직접 하겠습니다.”

“혹시 날 못 믿는 겁니까?”

“그 반대입니다.”

“······?”

“너무 깊게 관여하실 것 같아서 걱정입니다. 그리고 이 일은 제가 해야 하는 일이고요.”

“나는 괜찮은데······. 그럽시다. 오 소위 일 하나는 똑 부러지게 하니까.”

한 대위가 문자를 확인 한 후 전화번호와 이름을 쪽지에 적어서 건넸다.

“감사합니다.”

오상진이 미소를 띠우며 말했다. 한 대위가 직접 다리를 놔준다면 일이 수월하겠지만 더 이상 한 대위를 끌어들이고 싶지 않았다.

오상진은 전화번호와 이름을 확인한 후 위 포켓에 넣었다.

“그럼 전 이만 가 보겠습니다. 감사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표한 오상진이 일어나 나가려는 그때 한 대위가 오상진을 붙잡았다.

“저기, 오 소위.”

“네?”

“개인적으로 뭐 좀 물어봐도 됩니까?”

“네. 물어보십시오.”

“혹시 사귀는 사람 있습니까?”

뜬금없는 질문에 오상진은 살짝 당황했다.

“아뇨, 없습니다.”

“그렇습니까? 으음······.”

한 대위가 손으로 턱을 만지며 잠깐 고민했다. 그러다가 다시 또 물었다.

“혹시 이상형은 어떻게 됩니까?”

“네? 이상형 말입니까?”

“네.”

“······.”

16.

오상진은 잠깐 한 대위와 얘기를 나누고 의무대를 나섰다. 위 포켓에 넣어 놓은 쪽지를 꺼내 곧바로 전화를 걸었다.

-전화 받았습니다.

수화기 너머 굵직한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혹시 임규태 소령님이십니까?”

-네, 그렇습니다.

“한재철 변호사님께 소개를 받고 전화를 드렸습니다.”

-한재철 변호사? 아, 네. 연락받았습니다. 한 변호사님 조카분 되신다고요?

“한 변호사님 조카는 아니고, 개인적으로 부탁드려서 연락처를 받았습니다.”

-그럼 누구십니까?

“저는 충성부대 1중대 1소대장인 오상진 소위입니다.”

-용건은요?

“부대 내 문제로 드릴 말씀이 있어서 연락드렸습니다.”

-흠······. 그렇습니까? 정식 절차가 아닌 굳이 저에게 전화를 한 걸 보니 대충 어떤 느낌인지는 알겠는데······. 자료는 다 준비됐습니까?

“네.”

-그럼 한번 봅시다. 직접 얼굴 보며 이야기하는 게 확실할 테니까요.

“그럼 제가 그쪽으로 가겠습니다.”

-아니. 제가 가죠. 겸사겸사 바람도 쐴 겸.

“그럼 약속 장소와 시간을 문자로 보내드리겠습니다.”

-그럽시다.

그다음 날 오상진은 약속 장소로 나갔다.

이미 그곳에는 임태규 소령이 나와 있었다. 목소리를 듣기에는 좀 날카로워 보였는데 막상 만나보니 인상이 서글서글한 편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오상진 소위입니다.”

“임규태 소령입니다.”

“네. 제가 많이 늦었습니다.”

“아뇨, 제시간에 나오셨습니다. 제가 좀 일찍 움직이는 편입니다.”

“아, 네에.”

오상진은 살짝 긴장한 얼굴로 자리에 앉았다. 앉자마자 임규태가 바로 말했다.

“보낸 자료는 확인했습니다. 자료대로라면 두 녀석 다 군기교육대에서 빡세게 교육을 받고 있어야 할 텐데 어떻게 된 일입니까? 돌아가는 얘기 좀 들어봅시다.”

“네. 실은······.”

오상진은 약 20여 분간 지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끝까지 들은 임규태 소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으음, 그러니까. 윗선에서 개입해서 덮으려고 한 것 같다 이거죠. 그리고 배후에는 최용수 병장이었나? 그 집안이 뒤에 있는 것 같고 말이죠.”

“네. 그렇습니다.”

“알겠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내가 올라가서 다시 재조사를 해보겠습니다. 자료도 확실하니까 오래 걸리진 않겠네요. 그보다······.”

“······?”

“만약 제가 재조사를 벌인다면 내부 고발자가 있다는 게 확실해지는 상황인데, 괜찮습니까?”

“그 정도는 각오하고 있습니다.”

“각오 정도로는 안 될 텐데······. 뭐, 나야 상관없지만 괜히 일이 잘못되면 진급에 문제 생길 수 있습니다.”

“진급이 신경 쓰이지 않는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저는 제 앞에 일어나고 있는 불의를 그냥 두고 싶지 않습니다.”

임태규 소령이 피식 웃었다.

‘불의를 보면 못 참는다라······. 후후, 하긴 저 때에 나도 저랬었지. 불의를 보면 못 참고 물불 안 가리고 덤벼들었지. 꼭 예전의 날 보는 것 같군.’

임태규 소령은 오상진이 마음에 들었다. 서두르지 않고 꼼꼼히 자료를 준비한 것부터 시작해 정의에 대한 신념까지. 헌병대에 가서도 일을 잘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까지 말하니까 내가 도와주겠습니다. 대신 맘을 단단히 먹어야 합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로부터 사흘 후.

“김철환! 김철환이 어디 있어! 당장 데려와!”

대대장실이 발칵 뒤집혔다.

< 7장 인생은 실전이다(9)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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