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장 인생은 실전이다(7) >
인생 리셋 오 소위! 051화
7장 인생은 실전이다(7)
“좋아. 네 말이 다 맞다고 치자고. 그럼 너, 방금 말한 내용 다 증언할 수 있어?”
강상식 상병이 고개를 치켜들었다.
“네, 무조건 증언하겠습니다.”
“그때 가서 딴말하면? 내가 널 어떻게 믿지?”
“저 이대로 다 뒤집어쓰면 군 재판 받는 거 아닙니까?”
“누가 그런 소릴 해?”
“아까 과장님께서 그러셨습니다. 지금까지 사회생활에서 한 것들이랑 다 합쳐서 본때를 보여주겠다고 했습니다. 무조건 중한 형벌을 내릴 거라고 말입니다. 대신 협조를 잘하면 정상 참작해 줘서 짧게 끝내주겠다.”
“그럼 협조하면 되잖아.”
“저······ 깜빵 가기 싫습니다. 그래서 군대 왔는데 이제 와서 깜빵 갈 수는 없습니다.”
강상식 상병이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대놓고 말하진 않았지만 표정을 보니 개인적인 트라우마라도 있는 듯했다.
‘그래. 너 혼자 뒤집어쓰는 건 의미 없지.’
오상진은 생각을 마친 후 입을 열었다.
“강 상병.”
“네.”
“일단 네 말은 믿겠다. 하지만 네 말이 진실이라는 걸 증언해 줄 사람이 필요해. 누가 해줄 수 있지?”
강상식 상병이 곰곰이 생각하더니 바로 입을 열었다.
“이 하사, 이 하사가 해줄 수 있습니다. 이 하사에게 물어보면 확실하게 알 수 있습니다.”
“이 하사?”
“네. 그런 일 있을 때마다 커버쳐 준 게 이 하사입니다.”
“그래?”
“그리고 내무실에 김우진 상병하고 최우식 상병에게 물어보십시오.”
“그 두 사람도 알고 있다는 거지?”
“정확하게는 모르더라도 어느 정도 눈치채고 있을 겁니다.”
“알았다. 그리고 강상식.”
“네.”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날 끌어들여서 면죄부 받을 생각 마라. 정말로 누가 시켰다고 해도 네가 한 짓이 없어지지 않아.”
“하지만······.”
“너에게 피해당한 사람은 이미 마음에 커다란 상처를 입었어. 그건 어떻게 할 거야? 다 최 병장이 시켜서 한 일이라고 가서 말할래?”
“······.”
“지금 소대장이 너한테 해줄 수 있는 약속은 하나다. 네가 잘못한 만큼만 처벌받게 하겠다. 그 이상을 바란다면 소대장은 널 돕지 않겠다. 어떻게 할래?”
“그게······.”
잠시 망설이던 강상식 상병이 이내 주먹을 꼭 움켜쥐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자신이 그토록 무시하던 오상진에게 도움을 청하기 위해 왔을 때 강상식 상병도 어느 정도 각오는 한 상태였다.
“소대장님 뜻에 따르겠습니다.”
“확실하지?”
“그렇습니다.”
“그럼 사죄하는 의미로 이제부터라도 애들에게 잘해. 괜히 애들 적으로 돌려서 혼자 다 뒤집어쓰지 말고.”
“알겠습니다.”
강상식 상병이 힘없이 대답을 하고 행정반을 나섰다.
“멍청한 놈.”
길게 한숨을 내쉬던 오상진은 곧바로 이호준 하사를 불렀다.
“이 하사.”
“네.”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이 하사는 최용수 병장과 강상식 상병이 애들을 괴롭히고 있었던 것을 아십니까?”
이호준 하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몰랐다면 거짓말입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었던 부분이 많습니다. 저도 사병 출신이다 보니 내무실 돌아가는 사정은 어느 정도 알고 있고 어느 정도의 군기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잠자는 후임병 때려서 기절시키는 게 군기를 잡는 겁니까?”
“물론 이 정도로 심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습니다. 저도 그걸 보고 기가 차서 말이 안 나왔습니다. 미친놈들이 그 사고를 쳐놓고, 절 불러서 ‘도와주십시오’ 하는데 맘 같아서 이 새끼들 영창에 처넣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왜 저한테 연락 안 하셨습니까?”
“그건······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솔직히 일을 키우고 싶지 않았습니다.”
울컥하는 마음에 쏘아붙였는데 갑작스럽게 분위기가 이호준 하사의 청문회처럼 변해버렸다. 오상진은 애써 분을 삭였다. 그리고 이호준 하사에게 물었다.
“그럼 이 하사가 보기에는 누가 문제라고 생각합니까?”
강상식 상병은 이호준 하사가 다 알 거라고 말했다. 그런데 이호준 하사의 입에서 전혀 엉뚱한 이름이 튀어나왔다.
“이건 무조건 강상식 상병이 잘못한 겁니다.”
“누구요?”
“강상식 상병이요. 다 그놈 잘못입니다.”
“······.”
12
최용수 병장이 자리에 앉았다. 그 앞에는 무서운 얼굴로 앉아 있는 곽부용 작전과장이 있었다. 그는 서류를 한참이나 보더니 입을 열었다.
“이름!”
“병장 최용수.”
“입대는 언제지?”
“2000년 2월 입대입니다.”
곽부용 작전과장은 잔뜩 무거운 표정으로 질문을 했다. 이에 최용수 병장이 긴장한 채로 대답했다.
“혹시 네 외할아버지 되시는 분이 오성택 회장님 맞냐?”
“어? 네, 맞습니다. 어떻게······.”
쾅!
“인마, 묻는 말에 대답해!”
“넵!”
최용수 병장이 바짝 얼었다. 곽부용 작전과장은 다시 다이어리를 보며 물었다.
“너, 최용수.”
“병장 최용수.”
“너 여기에 왜 왔는지 알고 있지?”
“그게······. 잘못했습니다.”
최용수 병장이 고개를 푹 숙이며 말했다. 그러자 곽부용 작전과장이 피식 웃었다. 조금 전까지 무겁게 인상을 쓰고 있던 사람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자식아, 괜찮으니까. 고개 들어.”
“네?”
최용수 병장이 고개를 들었다. 그 앞에 조금 전과 다른 곽부용 작전과장이 앉아 있었다.
곽부용 작전과장이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사내자식이 말이야. 군 생활하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 안 그래?”
“네?”
최용수 병장은 고개를 갸웃했다. 곽부용 작전과장은 아랑곳하지 않고, 최대한 부드러운 말투로 물었다.
“이제 좀 있으면 전역이네. 그동안 군 생활 힘들었지.”
“아닙니다.”
“전역 한 달 반 남았는데 시간 참 안 간다. 그치?”
“네.”
“그런데 이런 문제에 엮여서 너도 참 곤란하겠어.”
“네······.”
최용수 병장은 계속해서 쭈뼛거렸다. 조금 전까지 너무도 당황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곽부용 작전과장은 그렇지 않았다.
“하아, 자식. 겁먹지 마라니까. 괜찮아. 원래 이렇게 하는 거야. 자식이, 고것 가지고 겁먹기는······.”
곽부용 작전과장이 수첩을 덮으며 말했다.
“남은 기간 제발 사고 치지 말고 쥐죽은 듯 있다가 전역해라. 그럼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다 처리할 테니까.”
순간 최용수 병장의 눈빛이 달라졌다. 바보가 아니고서야 곽부용 작전과장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를 리 없었다.
‘이 사람 내 편이구나.’
최용수 병장이 그렇게 생각하자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감사합니다.”
“할 일 하는데 감사는 무슨. 그건 그렇고, 오 회장님은 건강하시지?”
“넵. 건강하십니다.”
“언제 한번 찾아뵙고 인사라도 드려야 하는데 말이다.”
“제가 꼭 말씀드리겠습니다.”
최용수 병장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외할아버지가 나왔다면 이미 게임 끝났다고 봐야 했다.
“어쭈, 자식이 웃어?”
“아닙니다.”
“아직 다 끝난 거 아니니까 너무 좋아하지 마.”
“넵.”
“집에는 오늘 있었던 일 잘 말씀드리고.”
“알겠습니다.”
애써 억누르려 했지만 한 번 올라간 입꼬리는 좀처럼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곽부용 작전 과장도 이내 피식 웃고는 덮었던 다이어리를 펼쳤다.
“자. 지금부터 형식적으로 몇 가지만 물어보겠다.”
“알겠습니다.”
“너 강상식 상병에 대해서 알지?”
“네.”
“네가 아는 강상식에 대해서 모든 것을 다 말해봐. 내가 듣기로는 안 좋은 쪽으로 소문이 자자하던데. 예를 들면 애들을 어떻게 괴롭혔는지 말이야.”
최용수 병장이 눈을 번쩍 떴다. 이간질이 주특기여서 그런지 몰라도 이런 쪽으로 눈치가 또 빨랐다.
“강상식 상병 말입니까?”
“그래 들어보니 너 둘 사이도 별로 안 좋다고 하던데, 맞아? 아니야?”
“맞습니다. 요즘 그 녀석 하는 짓이 영 맘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렇지? 그럴 줄 알았어. 그리고 그 녀석 가만 보니까 아주 꼴통이던데.”
“네. 완전 꼴통입니다. 세상에 그런 꼴통도 없습니다.”
“그럼 네가 아는 거 있으면 다 말해봐. 사수라며?”
“예, 그러니까······.”
최용수 병장은 신이 난 얼굴로 강상식 상병에 대해서 줄줄 얘기했다. 모든 것을 다 들은 곽부용 작전과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알았다.”
원하던 답을 전해 들은 곽부용 작전과장이 볼펜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최용수 병장을 똑바로 응시하며 말했다.
“그건 그렇고 말이야. 이번에 다친 애 있지?”
“아, 이해진 일병 말입니까?”
“그래. 그 녀석하고는 잘 얘기가 되어야 할 거다.”
“네?”
“이해진 일병이 직접적으로 널 고소하면 골치 아파지거든. 그러니까 집에 잘 말씀드려라.”
“아, 예에. 알겠습니다.”
“그래, 나가봐.”
“충성! 감사합니다.”
최용수 병장이 힘차게 경례를 하고는 사무실을 나갔다. 그 길로 최용수 병장이 공중전화로 향했다.
“엄마, 엄마.”
-그래, 우리 아들.
“나 외할아버지가 도와줬어?”
-응, 외할아버지가 힘써 주신다고 했는데, 왜? 무슨 일 있는 거니?
“아니, 잘하면 영창 안 가도 될 것 같은데?”
-잘됐네!
“그런데 내가 때린 애 있잖아. 걔하고는 합의를 해야 할 텐데.”
-그 일은 걱정 마. 엄마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 넌 주위에 딴소리 안 나오게 신경이나 써.
“알았어, 엄마.”
최용수 병장이 전화를 끊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걸어가는데 불현듯 이호준 하사가 떠올랐다.
“맞아. 이 하사······.”
이호준 하사는 무엇보다 자신과 강상식 상병에 대해서 너무도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만에 하나 이 하사가 나에 대해서 이상한 소리를 떠벌린다면······. 안 되겠다. 이 하사를 당장 만나야겠어.”
최용수 병장은 곧바로 이호준 하사를 찾아 나섰다. 마침 행정실에서 나오던 이호준 하사와 마주쳤다.
“이 하사님.”
“어? 최 병장.”
이호준 하사는 잠시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지금은 최용수 병장과 마주치는 것이 좀 껄끄러웠다.
“무슨 일이야?”
“잠깐 시간 좀 내주십시오.”
“나랑? 지금?”
“네! 잠시······.”
최용수 병장이 주위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이호준 하사도 슬쩍 주위를 확인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할 말이 있나 본데······ 일단 나가자.”
밖으로 나온 이호준 하사가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한 대 줘?”
“아닙니다.”
“그래, 뭔 말이 하고 싶은데?”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저 좀 도와주십시오.”
“뭘 도와? 널 도와달라고?”
“네.”
“인마, 내가 왜 널 도와줘. 도와주려면 강 상병을 도와줘야지.”
“그렇지 않아도 제가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뭘 말할 건데, 뭘?”
“실은 이 하사님 여자 친구 문제 말입니다.”
순간 이호준 하사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네가 내 여자 친구에 대해서 어떻게 알아?”
“왜 모르겠습니까. 틈만 나면 강상식 상병이 떠벌리고 다녔는데 말입니다.”
“뭐야? 강상식 그 자식이? 이 새끼 안 되겠네.”
“솔직히 저도 이런 말 하고 싶지 않았는데 강상식 상병 입이 가볍습니다. 틈만 나면 영웅담처럼 이 하사님 이야기를 하는데······ 제가 말렸지만 듣지를 않았습니다. 저 없으면 얼마나 더 떠들고 다닐지 걱정입니다.”
이호준 하사의 표정이 똥 빛으로 바뀌었다. 솔직히 그 사실을 강상식 상병이 알고 있는 것만으로도 찝찝했다. 그런데 이 사실이 다른 장병들에게 알려지면 부소대장으로서 위신이 서지 않을 것 같았다.
‘아, 시발. 도대체 어디까지 말하고 다닌 거야.’
이호준 하사는 점점 불안해졌다. 그러면서 온갖 이상한 생각들로 머릿속이 복잡했다.
그런 이호준 하사를 보며 최용수 병장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 7장 인생은 실전이다(7) > 끝
ⓒ 세상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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