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장 인생은 실전이다(5) >
인생 리셋 오 소위! 049화
7장 인생은 실전이다(5)
“그런가? 나는 괜찮네만······. 이 친구가 부담스럽다고 하지 않을까?”
“아, 아닙니다. 저는 괜찮습니다.”
곽부용 대위가 군기가 바짝 든 얼굴로 대답했다. 김동군 소장이 피식 웃었다.
“그렇다면 같이 점심이나 하지.”
“네, 알겠습니다.”
한종태 대대장이 웃으며 말했다.
“김 소장님 내려가시죠. 밑에 차가 대기해 있습니다.”
“그러지.”
김동군 소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내려갔다. 그 뒤를 한종태 대대장과 곽부용 대위가 뒤를 따랐다.
8
점심을 먹은 뒤 오상진은 1소대 내무실로 향했다. 어제 보류시켰던 최용수 병장과 강상식 상병의 자체 징계를 하기 위함이었다.
내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곧바로 김대식 병장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충성, 1소대 휴식 중.”
“쉬어.”
“쉬어.”
오상진의 등장에 소대원들이 바짝 긴장했다. 특히 긴장한 사람은 최용수 병장과 강상식 상병이었다.
“대식아, 오후도 정비지?”
“네. 그렇습니다.”
“아침 이슬을 많이 받았으니까, 녹 안 슬게 신경 좀 쓰고.”
“네. 알겠습니다.”
김대식 병장이 힘차게 대답했다. 오상진의 시선이 최용수 병장과 강상식에게 향했다.
“최용수, 강상식, 너희 둘! 소대장이 보류했던 징계 지금 실시하도록 하겠다. 완전군장 해서 연병장으로 나와.”
오상진은 그 말을 남기고 내무실을 나갔다. 최용수 병장과 강상식 상병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아침까지 아무런 말이 없어서 그냥 넘어가는 줄 알았기 때문이다.
“하아, 시발······.”
“그럼 그렇지. 저 새끼가 그냥 넘어갈 리 없지.”
최용수 병장은 욕을 내뱉고 군장을 내렸다. 강상식 상병 역시 투덜거리며 군장을 쌌다. 내무실 분위기는 그야말로 찬물을 끼얹은 듯 차가웠다.
이에 김대식 병장이 안 되겠는지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자, 점심시간 끝났다. 오전에 하던 일 마무리 지어야지. 자자, 서두르자.”
“네, 알겠습니다.”
소대원들이 하나둘 내무실을 나갔고, 최용수 병장과 강상식 상병은 서둘러 군장을 싸야 했다.
“긴말 하지는 않겠다. 내가 왜 이러는지 너희들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변명은 받지 않겠다.”
“······.”
“······.”
오상진의 단호한 말투에 두 사람은 입을 꾹 다물었다.
“지금부터 구보로 연병장 100바퀴 돈다. 실시!”
최용수 병장과 강상식 상병은 똥 씹은 얼굴로 연병장을 뛰기 시작했다. 뒤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이호준 하사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는 오상진 곁으로 다가갔다.
“소대장님.”
오상진이 힐끔 이호준 하사를 바라봤다.
“네.”
“들어가 계십시오. 제가 지켜보겠습니다.”
오상진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닙니다, 제가 있겠습니다.”
솔직히 오상진은 이호준 하사의 대한 믿음이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래도······.”
이호준 하사가 막 말을 하려고 할 때 오상진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더 이상 얘기를 나누지 않겠다는 의도였다. 그에 이호준 하사의 표정이 확 일그러졌다.
“그럼 수고하십시오.”
그리고 몸을 돌려 행정반으로 올라갔다. 부대 안으로 들어가는 이호준 하사의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약 20여 분이 흘러갔다.
최용수 병장과 강상식 상병이 연병장을 약 30바퀴 돌았을 때 숨소리가 거칠게 들려왔다.
“헉헉······.”
그러더니 점점 속도가 늦춰졌다.
“이것들이! 속도 봐라. 점점 기어간다. 똑바로 안 뛰어!”
오상진의 호통에 강상식 상병이 죽을상이 되었다.
“시발, 힘들어 뒤지겠는데 여기서 속도를 더 내라고? 아예 죽으라고 하네.”
그러자 최용수 병장 한마디 했다.
“잔말 말고 달리기나 해.”
“아, 네에······.”
하지만 최용수 병장의 가슴 속에는 분노가 점점 더 차오르고 있었다.
“개새끼! 절대 가만 안 둬.”
최용수 병장이 주먹을 쥐며 이를 갈았다. 그때 저 멀리서 김철환 1중대장이 사단에 볼 일을 마치고 복귀하고 있었다.
“어? 일찍 오셨네. 일은 잘 끝내셨나? 그리고 보고는 잘하겠지?”
오상진이 잠시 생각을 하다가 고개를 흔들었다.
“어련히 알아서 하실까.”
그렇게 중얼거린 후 다시 연병장을 보았다. 그리고 어김없이 호통이 이어졌다.
“야! 또, 또! 속도 떨어진다. 100바퀴 추가해 줄까?”
9
중대장실로 돌아온 김철환 1중대장은 책상에 앉아 한종태 대대장에게 올릴 보고서를 들었다.
“지금쯤이면 괜찮으려나?”
할 수만 있다면 피하고 싶었지만 그런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크게 숨을 들이켠 뒤 김철환 1중대장은 대대장실로 향했다. C.P병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대대장님 오셨냐?”
“충성, 아직 안 오셨습니다.”
“그래? 많이 늦으시네.”
김철환 1중대장이 시계를 확인하며 중얼거렸다.
“알았다. 대대장님 오시면 나에게 알려줘.”
“알겠습니다.”
김철환 1중대장이 막 나가려는데 때마침 한종태 대대장이 들어왔다.
“어? 1중대장.”
“네.”
“여긴 무슨 일이야?”
“네. 급히 처리할 것이 있어서 말입니다.”
“급히 처리할 일?”
“네.”
“들어가지.”
한종태 대대장은 전투모를 벗어 책상 위에 올려놓고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그래, 말해봐.”
“네. 여기 병사 징계 건입니다.”
“징계? 1중대라면 자네 선에서 처리하면 되잖아.”
“그것이 영창에 관한 일이라 대대장님의 결재가 필요합니다.”
“영창? 영창을 보낼 만큼 큰 잘못을 저질렀어?”
“네. 저희 1소대에서 병장과 상병이 지속적으로 후임병들에게 가혹 행위를 행해 왔습니다.”
“가혹 행위? 이런 미친놈을 봤나. 지금 시기가 어느 때인데 가혹 행위를 해. 줘봐.”
“네.”
김철환 1중대장이 보고서를 내밀었다. 한종태 대대장이 보고서를 펼쳤다. 그런데 그곳엔 병장 최용수라는 이름이 떡 하니 있었다.
“가만, 최용수? 최용수······. 최용수!”
순간 한종태 대대장의 눈이 번쩍하고 떠졌다.
한종태 대대장이 고개를 들어 김철환 1중대장을 바라봤다.
“뭐야?”
김철환 1중대장이 곧바로 상황을 설명했다.
“사실 이번에 시가전 훈련 때 방어선이 뚫린 일이 있었지 않습니까.”
“그랬지.”
“그때 암구호가 관련되어 있었는데 알아보니까. 이 녀석들이 암구호를 제대로 숙지 못 해놓고, 후임병에게 뒤집어씌웠습니다. 조사를 하던 와중에 그것이 드러났는데 반성은커녕 후임병들에게 가혹 행위까지 저질렀습니다. 아무래도 사안도 사안이고, 지금까지 괴롭힌 것이 많다 보니까 그냥 넘어갈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래?”
한종태 대대장은 보고서에 적힌 최용수 병장의 이름을 보고 머리가 복잡했다.
‘하필 이런 일에.’
한종태 대대장이 살짝 인상을 썼다. 김철환 1중대장의 보고를 들으면 빼도 박도 못하고 영창을 보내야 할 상황이었다. 한종태 대대장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갑작스러운 한종태 대대장의 한숨에 김철환 1중대장도 바짝 긴장했다.
‘또 한소리 할 거 같은데······.’
그렇게 잠시 뜸을 들이던 한종태 대대장이 물었다.
“이거 확실하게 조사한 거 맞나?”
“네.”
“확실히 조사를 했단 말이지······.”
한종태 대대장은 그렇게 말을 하면서도 결재를 해주지 않았다.
“일단 알았네. 영창이라는 것이 쉽게 결정 내릴 일도 아니고 좀 더 내가 검토해 본 후 말해주겠네.”
“네, 알겠습니다.”
김철환 1중대장은 뭔가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한종태 대대장은 곧바로 곽부용 작전과장을 불렀다.
삐익!
-네, 대대장님.
“잠깐 대대장실로 건너오게.”
-네, 알겠습니다.
잠시 후 곽부용 작전과장이 나타났다.
“무슨 일이십니까?”
“자네 이 서류 좀 봐봐.”
한종태 대대장이 내민 서류를 확인하며 눈을 크게 떴다.
“어? 최용수 병장이라면······. 아까 김 소장님 지인분의 손자 아닙니까.”
“맞아. 그런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한종태 대대장의 물음에 곽부용 작전과장이 서류의 내용을 확인하고 뭔가를 아는 듯 바로 말했다.
“아, 그 얘기가 이 얘기인 모양입니다.”
“자네도 알고 있나?”
“네. 알고 있습니다.”
“그래, 자세히 좀 얘기해 봐.”
한종태 대대장의 물음에 곽부용 작전과장은 자신이 들었던 내용을 얘기해 주었다.
“어제였나? 새벽에 1소대에서 선임병 둘이 후임병 한 명을 구타해서 의무대에 실려 간 일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그 얘기인 것 같습니다.”
“후임병을 구타해? 게다가 의무실까지?”
“네. 그 후임병이 기절을 한 모양입니다. 게다가 구타를 당해서 얼굴 상처도 있고 말입니다.”
“그래? 허허, 이것 참······.”
한종태 대대장은 난감한 얼굴이 되었다.
“최용수가 병장이었어?”
“네.”
“제대는 얼마 남았나.”
“듣기로는 한 달 반 정도 남은 상황입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영창을 보낸다는 것이 좀 애매합니다.”
“그렇지. 제대 한 달 반 남기고 영창 가기에는 억울하지.”
“네. 그래서 이 정도 사안이면 대충 덮고 넘어가도 될 것 같은데 말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1중대장이야. 그 친구에게 내가 큰소리를 쳐놨거든.”
“그렇습니까?”
“그래. 그렇다고 김 소장이 부탁한 일을 나 몰라라 할 수도 없고 말이야. 그 양반 퇴역은 했지만 육본에 제법 인맥이 남아 있거든.”
“아, 네에······.”
한종태 대대장이 말을 하고는 속으로 생각했다.
‘일이 참 복잡하게 되었네. 김 소장이 부득이하게 제대하긴 했지만, 그래도 그쪽 라인은 아직 탄탄하단 말이야. 절대 힘없는 노인네가 아니란 말이지. 이것 참 난감하네. 괜히 같이 식사를 했나?’
한종태 대대장이 속으로 중얼거리다가 곽부용 작전과장을 바라봤다.
“작전과장. 혹시 뭐 들은 거 없어?”
“어떤 거 말씀이십니까.”
“김 소장 라인 말이야.”
“김 소장님 라인이라면 제가 조금 전에 알아보긴 했습니다. 알고 보니 황기범 중장님 라인 아닙니까. 조만간 대장으로 올라선다는 소문도 있던데 말입니다.”
“맞아, 황기범 중장. 그분 라인이었지 참. 게다가 아직까지 하나회 소속이지 않나?”
“네, 맞습니다. 그분 하나회 소속입니다. 듣기로 김 소장님도 외부 견제로 승진에서 누락 되긴 했지만 군 생활을 크게 잘못한 건 아니라고 합니다.”
“하아, 그래서 지금 고민이란 말이야. 내가 참 곤란하게 되었어. 김 소장이 직접 찾아와 부탁까지 했는데 무시할 수도 없고 말이야.”
“그럼 이렇게 하면 어떻습니까?”
“어떻게?”
“딱 보니까, 상병 놈도 잘못한 것 같은데. 강상식 상병, 이 녀석으로 몰아가시죠. 최용수 병장은 제대시키면 그만 아니겠습니까. 어차피 문제 더 키워봤자 우리 부대에도 안 좋고, 특히 대대장님께 더 안 좋아질 수도 있으니까 말입니다.”
한종태 대대장이 눈빛이 반짝였다.
“그렇겠지?”
“네.”
“흐음, 강상식이라······. 자네 강상식에 대해서 좀 더 알아봐.”
“네. 알겠습니다.”
곽부용 작전과장이 나갔다.
그로부터 약 한 시간이 흐른 후 곽부용 작전과장이 다시 대대장실에 나타났다.
“그래, 알아보라는 건?”
“네, 다 알아봤습니다. 여기.”
곽부용 작전과장이 인사과에서 프로필을 빼내 조사를 해봤다. 그것을 보고서 형식으로 만들어 한종태 대대장에게 건넸다.
“허, 이 자식 완전 꼴통이네.”
< 7장 인생은 실전이다(5) > 끝
ⓒ 세상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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